해외 입국자가 아닌, 자가격리 대상자의 기준은 일반적으로 코로나19 의 확진환자와 접촉해서 능동감시가 필요한 사람들을 말한다66). 해외 입 국자에 대한 자가격리 요구도 감염 가능성에 대한 선제 조치의 일종이 다. 이런 맥락에서 코로나19 초기, 지금처럼 세계 각 곳에서 사태가 심각 해지지 않았을 때 중국 입국자에 대해 자가격리를 권고한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니었다고 판단된다. 논쟁은 자가격리 정도에 대한 입장 차이에 서 발생하였다.
65) 특히, 교육부가 16일에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보호 및 관리 방안을 내놓은 이후 중 국인 유학생들의 자가격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많이 보도되었다. 교육부에서 중 국인 유학생들에 입국 제한이 아닌 휴학 권고를 결정함으로써 나타난 현상이 아닌가 싶다. 예를 들면, YTN, 2020.02.17., “중국 유학생 ‘자가격리’ 사실상 통제 불가능,” <h ttps://www.ytn.co.kr/_ln/0103_202002172108039228>.
66) 대한민국 보건복지부 유튜브 채널, 2020.02.12., “자가격리대상자 생계는?|직접알려 드립니다|【Q&A】,” <https://www.youtube.com/watch?v=to5t5saWh5c>.
연구자: 전에 기자한테 인터뷰를 받으셨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 일에 대 해서 자세하게 말씀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진달희: 그 당시에 어떤 질문을 받았는지는 지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대개 학교에서 중국유학생들에 대한 조치에 관해서 말을 해달라 고, 생각을 말해달라고 부탁을 받았어요. 학교에서 중국유학생들 을 [906]동에 격리를 시킨다고 하는데 격리를 시키는 동도 층을 나눠서 격리를 시키고, 그 시스템? 이 사람이 열이 나는지 안 나 는지 그런 모니터도 갖춰있지 않고 또 이 사람들이 학교 내에서 는 식당도 갈 수 있고 편의점도 갈 수 있다고 들었는데 이거에 대해서 “학교의 조치가 너무 허술하지 않냐” 라는 말도 했었던 것 같고. 그리고 “중국 유학생들이 지금 이렇게 막 들어오려고 하는 이 시국에 두려움 같은거는 없냐” 라는 것들도 물어봤던 것 같아요. 근데 뭔가 제가 중국인인 입장에서(웃음) 그 사람이 저를 한국 사람으로 착각을 해서 피치 못하게 인터뷰에 응하기 는 했지만 그 인터뷰를 받았을 때 제가 중국인이다보니 드는 생 각은 뭔가 중국 사람에 대한 좀 그런 편견을 가지고 질문을 하 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원인이 아직은 다른 나라까지 퍼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중국에 관한 질문 들만 물어보는 것이 좀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당시 일부 언론사들이 보도한 내용을 보면, 중국에서 입국한 사람들이
‘완벽한’ 자가격리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우려를 표명하는 듯싶었다.
확실히 앞서 서술했듯이, 자가격리 실천을 책임감 있는 행위로서 마땅히 준수해야 한다고 언급했던 중국인 유학생들도 14일간 정말 두문불출하는 자가격리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사소한 불편함을 감수하는 정도의 노력이 아니라 상당한 ‘노오력’이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문화학자 엄기호는 「노오력, 노력의 배신자」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노력의 한계가 100%라면 노오력의 시대에서 100%는 미달이기에, ‘노오 력’은 살아남기 위해, 일이 되게 하기 위해 한계를 돌파하여 200%, 30 0%를 향하라는 명령이라고 설명하였다67). 학자 최은주 또한 『노오력의
배신』(조한혜정·엄기호 외, 2016)에서 근대는 ‘하면 된다’는 노력의 신화 로부터 ‘할 수 있다’는 자기계발을 거쳐, 결국 삶을 파괴하는 ‘해야 한다’
의 ‘노오력’으로 치달았다고 보았다(2016: 47).
“격리기간에 정말 황당했던 점은, 격리 됐으니까 나와서 쓰레기를 버 릴 수 없는 거예요. 그럼 생활 쓰레기를 어떻게 버려요?” 격리 기간은 어땠냐는 질문에 강용은 이렇게 답변하였다. 강용은 한국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던 2월 말에 중국으로 돌아가 9월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 온 케이스이기 때문에 4월 1일 이후 의무적으로 실행된 ‘자가격리’를 겪 은 유학생이다. 후베이성 유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시기가 맞지 않아 학교 에서 여름방학에 제공한 기숙사 격리 시설에 들 수 없었던 강용은 친구 의 도움으로 학교 밖에서 방을 구해 자가격리를 하였다. 짧지 않은 시간 을 다행히 친구들의 도움으로 잘 보냈지만 유독 불편했던 점은 바로 하 루하루 쌓이는 쓰레기들과 공존해야 했던 일이었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코로나19 초기에도 집 밖을 한 번도 안 나가는 격리생 활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법적으로 규정된 상황에서 는 어쩔 수 없이 쌓여가는 생활쓰레기를 그냥 둬야 했겠지만, 그렇지 않 았던 시기에 굳이 그렇게까지 격리를 할 필요가 있었냐는 것이다. 쓰레 기가 아니더라도 배달을 문 앞까지 해주니까 모든 물품을 인터넷으로 주 문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만한 비용을 전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것도 그들 이었다. 따라서 책임감 있는 자가격리를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만 그와 동시에 필요한 물품을 사거나 적당히 바람을 쐬는 외출도 필요했다는 것 이 그들의 입장이었다.
906동에서 격리해야 했던 기숙사생들은 애초에 ‘완벽한’ 자가격리가 불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들의 출입을 지켜보는 ‘감시자’가 없었던 것도 사 실이지만, 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서비스가 마련되지 않았던 것도 사 실이기 때문이다.
67) 경향신문, 2015.09.21., “노오력, 노력의 배신자,” <https://www.khan.co.kr/opinion/col umn/article/201509212114205>.
류걸 : 사실 그때 우리가 왔을 때, 격리이기는 했지만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어요. 제한이 없었죠. [중략] 가끔 친구들이랑 나왔어요.
그때 상관하지 않았잖아요. 그리고 우리들한테 밥을 가져다주거 나 그러지 않았으니까 저희는 나와서 먹을 수밖에 없었죠.
사태 초기 906동에서 격리할 경우 건물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굶어야 했다. 간단한 요깃거리를 하고 싶어도 906동 밖에 있는 편의점에 가야 했다. 배달은 문 앞에서 수령할 수 있지만 매일 삼시세끼를 배달로 해결 하기에는 유학생들에게 큰 경제적 부담이었고, 택배를 시킨다고 해도 통 합관제실 옆에 위치한 택배보관실에서 기숙사로 오는 택배를 관리하기 때문에 어쨌든 건물 밖으로 나가야지 수령이 가능했다. 그러므로 906동 에서 격리한 유학생들에게 건물 밖으로의 출입은 또 다른 ‘생존’이 걸린 문제였고 나갔다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학교 식당 문에는 2주 이 내에 중국에서 귀국한 사람들의 교내 출입을 금지한다는 포스터가 붙어 져 있어 밥 한 끼를 해결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연구자의 경우에는, 격 리 기간에 몇 번 낙성대까지 걸어서 내려가 필요한 물품과 음식들을 구 매한 후 다시 걸어서 격리 호실까지 올라오기도 했다. 많은 중국인 유학 생들은 일부 사람들의 의혹처럼 아무런 경각심과 책임감이 없는 것이 아 니라, 때로는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나갈 때마다 마스크를 꼭꼭 쓰고 소독을 자주 하면서 한국의 방역에 폐를 끼치지 않 으려 노력했다.
왕팡팡: 저도 올 때 걱정이 많았어요. 나가지도 못했어요. 식당 같은데도 못 가게 했잖아요. 저의 물건을 가지러 갈 때도 걱정이 많았어 요. 그러지 못하게 하니까. 그때 저기에 붙어 있었잖아요[기숙사 대문 가리키며], 중국에서 온 학생들은 들어오지 말라고, 이 구 역에 들어오지 말라고, 그래서 걱정했죠. 근데 저도 생활용품을 가져야 하잖아요. 생활용품 없이 생활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친 구한테 물어보니 기숙사에 가서 가지면 된다고, 그때 또 관리하 는 사람도 없어서 물건 가지고 그쪽으로[906동] 옮겨갔죠. 그래 도 걱정이 됐죠. [중략] 혼자 기숙사에 가서 이불하고 다른 것들
챙기고, 번거로웠어요. 그리고 일주일 후에 또 바꾸니까. 그 호텔 에 가니까 또 짐을 옮겨야 해서 엄청 피곤했어요. [중략] 거기에 서의 격리는 좋았어요. 그때는 무료잖아요. 지금이랑 달라서, 지 금은 무료가 아니잖아요. 먹는 거 다 좋았어요."
서울대학교 기숙사에서는 906동에서의 격리를 2월 28일까지 진행하고, 그 이후로는 호암교수회관으로 옮겨서 격리하도록 조치했다. 906동은 원 래 학생들이 거주하는 동이었기 때문에 개강 시즌을 맞아 다시 학생들을 들일 준비를 해야 했다. 그렇게 호암교수회관에서의 격리는 906동에서와 는 다른 수준에서 관리되었다. 학생들의 자유로운 출입을 제한하는 관리 가 실시되었지만, 반대로 삼시세끼를 제공해주는 등 서비스도 맞춤하게 제공되었다. 기숙사 측에서 해당 비용을 청구하지도 않아 학생들은 출입 이 자유로웠던 906동과는 다른 의미에서 괜찮은 격리기간을 보냈다. 왕 팡팡은 2월 말에 입국하여 906동에서 일주일, 교수회관에서 일주일을 지 내게 되었는데 중간에 챙겨왔던 짐을 다시 정리하고 교수회관으로 이동 하고 격리가 끝난 후 또 다시 짐을 짊어지고 원래 방으로 이동해야 했던 번거로움을 제외한다면, 교수회관에서의 격리는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고 했다.
한편, 여름 방학에도 906동과 호암교수회관을 임시 격리동으로 선정하 고 해외 입국 학생들을 받았는데 이때부터는 보다 완전한 격리 시스템이 구축되어 유학생들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하였다고 한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여름방학부터는 격리 관련 비용을 받게 되었는데 이것은 서 울대가 자체적으로 정한 조치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자체 격리가 아닌 격 리 시설에서 일괄 격리 서비스를 받을 경우 비용을 지불하도록 변경되었 기 때문이다.
이처럼 코로나19 초기에 중국인 유학생들은 끊임없이 변하며 불완전한 중국 국내 사태 및 방역 조치와 한국 입국 정책 변경 그리고 학교 기숙 사측에서의 방역 조치라는 세 방면의 압박을 동시에 받아야 하는 집단이 었다. 그러나 전 세계가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유례없는 전염병 사태이 기 때문에 중국인 유학생들은 갑작스러운 각종 변동들이 불안하지만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