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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비사회와 금융산업의 진화

근대 자본주의사회의 형성과 함께 인류는 공동체의 부조리한 규범에서 해방되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개인과 개인 의 공정한 계약이라는 표현 속에 내재된 권력질서의 문제이다. 각 노동자 가 자본과 해야 하는 고용계약, 그리고 빚을 얻기 위해 금융기관이나 다 른 개인과 해야 하는 채무계약 등이 그것이다. 다수의 노동자들은 계약관 계하에서도 여전히 가난에 시달려 왔다. 그리고 이들은 이전 사회의 빈곤 층과 다름없이 박탈과 부채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문제는 극심한 박탈을 감내하거나 부채를 감행하는 어떠한 선택 도 행복한 결말로 이어지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에서 역사적으로 부채는 그것이 갖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 큰 주목을 받아 왔던 것이다.

서구 복지국가에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경제성장과 대규모의 고용 창출, 고용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의 강화, 그 리고 다양한 경제사회적 위험에 대비한 사회보장제도의 구축 이후의 일 일 것이다. 물론 20세기 다른 많은 국가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여전히 해 결되지 않고 있었다. 저발전국 대부분은 여전히 산업화 단계에 진입하지 못했으며, 고용에 대한 법적 보호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사회보장 제도 또한 미비했다. 그리고 이들 국가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빈곤 과 박탈 또는 부채라는 힘든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큰 문제는 가난한 사람들은 금융기관을 통해 필요한 자금을 대출받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대부업체 등을 통해 고리의 자금을 이 용하고 그로 인해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이러 한 상황은 많은 저발전국과 신흥산업국에서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가계부채 문제는 남과 북의 국가들이 처하고 있는 상황이 크게 다른 것 이다.

현대사회에서 부채 발생 원인은 크게 두 가지 측면으로 설명할 수 있 다. 하나는 최소한의 생활상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선택이고, 다른 하나는 더 나은 소비 또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선택이다. 많은 사람 이 자신과 가족의 삶을 지탱하는 데 필요한 필수적 소비재를 구입하기 위 해 부채를 감수한다. 그것은 주거와 의복, 의료와 식생활 등을 지칭한다.

하지만 부채는 종종 소비사회가 조장하는 욕망을 구현하기 위해 사용된 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의 표현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없을 수 없다. 더 욱이 이 문제와 관련해서 각 개인의 도덕적 해이를 비난하기만 할 일도 아니다. 각 개인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고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는 자본주의사회는 욕구를 충 족시키는 것을 넘어 욕망을 부추기는 소비사회로 성장해 왔다는 점이 지 적되어야 할 것이다.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 소비를 위해 돈을 숭배 하고, 이를 위해 부조리에 타협하고, 공동체의 규범과 연대성이 사라지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일상생활이 식민화되고 있다는 주 장과도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2)

스펙터클을 통해 소비사회가 형성되는 과정은 문화적 전염 또는 문화 적 전파의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문화적 전염이란 지배계층 또는 상

2) 소비사회의 스펙터클과 일상생활의 식민화에 대한 이론에 대해서는 Guy Debord(1970), La Société du Spectacle, Editions Gallimards, Henri Lefebvre(1961), Critique de la Vie Quotidienne, Editions L’Arche를 참조.

층의 소비양식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확산되고 다른 계층이 이를 모방하 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과정은 근대문명의 탄생 과정에서 잘 드러나게 된다. 과거 귀족사회의 사치스러운 소비와 예술을 부르주아계급이 모방 하는 형태가 그것이다. 자신의 작은 아파트에 궁궐의 장식을 모방한 장식 을 붙이고, 그들의 의상을 따라 하며, 회화와 음악을 소비했던 것 등이 이 를 말해 준다.3) 좋은 주택과 장식, 의상과 식생활 그리고 마차 등의 운송 수단은 이러한 모방의 중요한 대상이었다. 이러한 문화의 전파성은 오늘 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마차가 자동차로 바뀌었으며, 소비의 품 목이 다양해졌을 뿐, 소비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방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 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 여전히 그 사회의 부와 권력 그리고 질서의 모방 이라는 속성이 잠재되어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21세기에도 스펙터클이 계속되고 소비가 권장되는 자본주의사회의 본 질에는 큰 변화가 없다. 다만 소득분배구조가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도 소 비 확대와 가계부채 증가가 나타나는 데는 다음 두 가지 요인이 큰 영향 을 미치고 있다.

하나는 문화적 전파의 신속성과 공간을 넘어서는 확산성이다. 19세기 말 서구에서 신문이 노동자들의 여론을 형성하는 중요한 매체였다면, 20 세기 중반에는 TV와 영화 그리고 음악 등이 중요한 매체로 자리하게 된 다. 그리고 이러한 매체의 성장은 생산과 유통에 간여하는 거대 자본의 이해관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상품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지 는 광고와 스펙터클, 그리고 TV와 영화 등을 매개로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실제로 1950년대 이후 미국의 대량소비문화는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게 된다. 21세기에는 보다 발전된 새로운 대중매체

3) 이 주제에 대해서는 Nobert Elias(2012), Civilization : On the Process of Civilisation, edited by Stephen Mennell et. al, UCD Press를 참조.

가 생겨나고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스펙터클을 연출하 던 기존의 매체에 인터넷을 매개로 형성된 새로운 매체가 결합되는 방식 으로 이루어져 있다. 새로운 매체란 유튜브(YouTube)나 SNS 등을 지칭 하는 것이다. 이 매체들은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민주 적 정치 참여의 수단이자 개성에 따른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을 갖기도 한다. 이 점에서 억눌린 욕구와 욕망을 해소하는 새로운 방식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소비를 위한 소비로 전락하고, 소득능력을 넘어선 소비로 이어지는 순간, 부정적인 측면을 갖 지 않을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금융시스템이 발전하면서 소비사회는 과거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를 야기하게 된 점이다. 발전된 금융서비스와 그것에 대한 정 부 규제의 약화는 거의 모든 계층에서 소비를 확산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 였다. 이는 축적된 금융정보시스템과 빅데이터 등을 토대로 차주(借主)의 상환 가능성을 평가하는 기법의 발전 등에 힘입은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금융서비스에 접근하기 힘든 계층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열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종종 공동체적 규범이나 책임성보 다는 더 많은 수익을 위해 신용 공급을 무차별적으로 확산하는 금융시스 템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물론 저발전국의 경우, 여전히 금융서비스로부 터 소외된 계층이 존재하며, 이들의 금융 소외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하 지만 다른 많은 국가에서는 제1금융권, 제2금융권, 대부업자로 이어지는 포괄적이고 다양한 소득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서비스가 자리 잡고 있으며, 신용카드 등을 매개로 금융서비스의 접근성이 확대되면서 빈곤 층을 포함한 전 소득계층에서 부채 문제가 심화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 는 것이다(Clerc, 2003, p. 79).

3. 21세기 가계부채 문제의 몇 가지 특징

전 세계적으로 금융산업이 발전하고, 소비자금융이 성장함에 따라 많 은 국가에서 금융 소외나 과도한 부채 문제가 크게 개선되었다. 물론 이 또한 심각한 가계부채 문제를 경험한 이후 개선된 일이기는 하다. 그럼에 도 결과적으로 이러한 문제가 개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 히 많은 국가에서 금융서비스는 가난한 사람들의 접근성을 차단하거나, 터무니없이 높은 금리와 부당한 추심 등을 방치하는 문제를 보이고 있다.

이는 경제시스템과 금융시장의 후진성 문제이기도 하지만, 민주정치의 부재와 정부 정책의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크게 세 가지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언급하겠다.

첫째, 비교적 최근 쟁점화되었던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의 문제이다. 사실 약탈적 대출이 이루어진 것은 역사적으로 아주 오래된 일 이다. 채무와 관련된 명확한 법률이 제정되지 않은 대부분의 사회에서 부 채란 약탈적 성격을 갖기 쉬웠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을 지 칭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개념화되지 않아 왔다. 이러한 개념이 본 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미국의 경우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 었다. 법적으로 엄격하게 규제되던 금융서비스에 대한 탈규제가 시작되 면서, 다양한 형태의 공격적 신용 공급이 발생하게 되었던 시점이다. 이 과정에서 수익 창출을 위해 대출자(借主)를 기만하는 다양한 방식의 약탈 적 대출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문제는 2007년 리먼 쇼크를 계기로 전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미국의 연방정부와

첫째, 비교적 최근 쟁점화되었던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의 문제이다. 사실 약탈적 대출이 이루어진 것은 역사적으로 아주 오래된 일 이다. 채무와 관련된 명확한 법률이 제정되지 않은 대부분의 사회에서 부 채란 약탈적 성격을 갖기 쉬웠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을 지 칭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개념화되지 않아 왔다. 이러한 개념이 본 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미국의 경우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 었다. 법적으로 엄격하게 규제되던 금융서비스에 대한 탈규제가 시작되 면서, 다양한 형태의 공격적 신용 공급이 발생하게 되었던 시점이다. 이 과정에서 수익 창출을 위해 대출자(借主)를 기만하는 다양한 방식의 약탈 적 대출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문제는 2007년 리먼 쇼크를 계기로 전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미국의 연방정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