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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절 가계부채와 근로빈곤의 문제

4. 근로빈곤층과 가계부채 문제

오늘날 가계부채는 경제시스템의 중요한 부분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부채가 없이 생활하기란 불가능하다. 실직이나 사업 부진 등에 따른 소득 감소 문제가 발생하면, 저축이 없는 가구라면 당연히 박탈과 부채 중 어 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근로빈곤층은 부채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의 발생 확률이 높고, 일단 부채가 발생하게 되면 상환능력이 낮아 부채의 악순환에 빠질 위험성이 크다. 노동소득이 증가하지 않는 상 황에서 피에르(Pierre)에게 돈을 빌려 폴(Paul)의 빚을 갚는 방식을 되풀 이할 위험성이 큰 것이다(Kumhof & Rancière, 2010, p. 3).

근로빈곤층은 소득이 낮고 불안정한 상황에서 가족 부양에 따른 지출 을 감당하기 버겁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추가 지출이 필요한 사건사 고가 끊이지 않는다. 어떤 것은 지출을 줄이고 박탈을 인내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대표적인 지출 절감 항목이 바로 교육비이다. 대다수 근로빈곤층은 자녀 교육비 지출을 늘리고 싶지 만, 현실에서는 가장 먼저 줄일 수 있는 지출이 되기도 한다. 당장 가족의 거처를 유지하기 위해 지출해야 하는 임대료나 식생활비는 줄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소비 지출은 도저히 줄일 수 없으며 부채를 통해서 라도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문제는 소비 영역에서 신용카드나 할부판매가 증가하면서 이들에게서 소비와 관련된 부채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본 연구의 제6장, 근로빈곤층 과중채무자에 대한 인터뷰 내용이 말해 주는 것처럼, 이들은 신용카드로 생활비나 임대료를 지불하는 과정에서 더 심각한 부채 문제에 빠져들게 된다. 저소득층에게서 생활비 조달이나 부채 상환을 목적으로 하는 생계형 부채가 신규대출의 증가로 이어질 개 연성 크다는 연구 결과 또한 이러한 위험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조영무, 2015, p. 27). 참고로 생활비 및 부채 상환 등을 목적으로 한 신용대출 비중은 2012년 40.1%에서 2015년 43.0%로 확대되었으며, 특히 1, 2분 위 등 저소득층의 경우 비중이 각각 2012년 54.3%, 41.9%에서 2015년 61.6%, 48.0%로 각각 7.3%포인트, 6.1%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 다(현대경제연구원, 2016, p. 4).

공급자 측면에서도 적지 않은 문제가 존재한다. 현재 근로빈곤층은 각 종 생계형 대출을 위해 비은행금융기관을 이용하거나, 대부업체, 심지어 는 일수나 월변 등을 이용하고 있다. 이는 저신용자 비중이 높은 근로빈 곤층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정책당국의 책임 문제 또한 적지 않다.9) 먼저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에 대한 관리 문제를 지적할

9)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금융당국의 책임과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명박 정부하의 문제를 다 룬 전성인의 2011년 원고를 참조.

수 있다. 제1금융권은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을 기피하는 대신 신용카드 를 통해 높은 수익을 거두고,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 그리고 기타 사금 융기관은 공세적 대출 광고와 높은 금리로 저신용자와 빈곤층을 표적화 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다. 이어 금융기관들 또한 각종 대출의 만기 연장을 쉽게 허락하는 방식 으로 임해 왔다. 원금 상환 없이 대출 만기를 연장함에 따라, 상환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덜어 주고 부채 감축을 위한 노력을 소홀하게 만드는 측면 이 있는 것이다. 이는 근로빈곤층이 원금 상환 없이 이자만 상환함으로써 부채 문제를 장기화하는 경향과도 관련이 있다. 끝으로 신용카드 대출 등 이 익명성과 편의성을 이유로 근로빈곤층이 지나치게 접근하기 쉽게 만 들어져 있다는 점이다. 신용카드의 현금서비스나 각종 할부구매는 누군 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 돈을 빌릴 수 있다는 점에서 편의성이 높은 반면, 이자 또한 매우 높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근로빈곤층 가계부채와 관련해서 또 한 가지 언급해야 할 사항은 자영 업자의 가계부채 증가와 그에 따른 빈곤화 문제이다. 이는 한국 근로빈곤 층의 부채 문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먼저 OECD 국가 에서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은 2015년 현재 평균 14.8%이지만, 한국은 21.4%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자영업가구는 임금근로자가구에 비해 더 많은 가계부채를 갖고 있으며, 부채의 질 또한 나쁜 것으로 알려 져 있다. 이는 사업 부진이 일정 기간 계속되는 경우, 부채 원리금을 제대 로 갚을 여력이 없을 뿐 아니라, 자산 매각을 통한 부채의 청산 또한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현실적으로 부채를 해결할 개연성이 낮 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는 경우, 매우 심각한 상 황에 처할 개연성이 높은 것이다(김재칠, 2017, pp. 1-4).

문제는 박탈과 부채라는 두 가지 선택 중 어느 것도 근로빈곤층과 해당

가족 그리고 국가와 사회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근로빈곤 층 당사자와 아동의 결핍은 자녀에게 지우기 힘든 상처를 남기고, 빈곤을 대물림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주거비나 의료비 등을 조달하기 위해 부채를 져야 하는 상황 또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상환능력이 낮 은 근로빈곤층에게 과도한 부채를 지게 하는 것은 이후에 발생할 상환연 체와 채무불이행 그리고 개인회생이나 개인파산을 방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낮은 소득으로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근로빈곤층이 장기간 감당 해야 할 대가 또한 혹독하다. 설사 전환대출이나 신용 회복 등의 절차가 있다 하더라도 근로빈곤층과 가구 구성원이 감당해야 할 고통은 여전히 매우 크다.

사회보장제도와 금융정책, 특히 근로빈곤층 지원정책은 이 문제를 해 결하는 데 매우 소극적이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많은 근로빈곤 층은 여전히 소득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남겨져 있으며, 이들의 가계부 채 문제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상환능력이 부족한 집단의 상환을 강조하 고 있다. 근로빈곤층 지원정책 또한 방대한 사각지대를 남겨 두고 있으 며, 이들의 근로소득을 통해 충족되지 않는 욕구를 해소하는 데 소극적이 다. 이는 각종 정책이 근로빈곤층으로 하여금 부채를 통해 삶을 영위하게 방임하는 측면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지나치게 잔여적인 정책의 포 괄범위는 중산층 이상의 소득계층이 부채로 인해 빈곤화되는 위험에 주 목하지 못하고 있다. 원승연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위험을 경고한 바 있다. 이미 가난한 최하위소득계층을 제외한 모든 소득계층에 서 금융부채 수준과 소득분위의 하락 가능성이 비례관계에 있다는 것이 다. 대출에 필요한 신용등급이 낮거나 미래소득이 불안정한 집단의 경우,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의 대출을 이용하게 될 개연성이 크고, 소득 불안과 채무상환 부담의 증가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원승연, 2015, pp. 6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