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절 가계부채의 발생과 파급효과
3. 과중채무가 개인과 가구에 미치는 영향
사람들에게 부채란 다양한 형태로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그 부채가 일정 한도를 넘어 상환능력을 넘어서게 되면, 그것이 사
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지게 된다. 현대사회처럼 거의 대부분의 가구가 다양한 형태로 부채를 안고 생활하는 경우, 부채에 대한 심리적 민감도는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과중채무로 발전하는 순간, 그것은 심리적 압박을 넘어 생활태도의 변화, 노동방식의 변화, 더 나아가 자살 생각 등에 이르는 다양한 충격을 가할 수 있다. 이 문제와 관 련해서 한 연구자는 채무 상환의 압력이 심리적 긴장도를 높이고, 그로 인해 채무자는 인생의 페달을 격렬히 밟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Clerc, 2003, p. 83).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감을 느끼고, 더 많 은 시간을 일하도록 압박하며, 주위를 둘러볼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리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 과중채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가계를 제대로 관 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나 자신의 가난이 부끄럽다는 수치심 등을 심 화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 상태는 외부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 응한다는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가 어떤 행동으로 발 현되는가는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 이는 과중한 채무가 사람들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각국 또는 각 지역의 경제, 사회, 문화적인 요인에 의해 매 개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각국의 노동시장구조나 가족구조 그리고 문화적 태도, 더 나아가 정부정책 등에 따라 그 양태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체계적인 국제비교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신뢰할 만한 연구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그러나 논란 의 소지가 있는 다소 도식화된 서구적 해석 또한 발견할 수 있다. 일찍이 미국 인류학자 베네딕트(Ruth Bénédict)는 문화 패턴에 대한 연구 및 일 본 문명에 대한 연구를 통해 동서양의 문화를 수치심(honte)의 문화와 죄
의식(culpabilité)의 문화로 구분한 바 있다. 그리고 수치심과 죄의식은 모두 각 개인의 내적 분열을 반영하지만, 전자는 문제의 원인을 주체의 밖에서 찾고, 후자는 그 원인을 주체의 내부에서 찾는다는 데 차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좀 더 확대 해석하면, 수치심과 죄의식은 부채 문제 를 해결하는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일본 사회에서의 자살은 부채를 상환하는 상징적 표현에 가깝다는 것이다. 즉 자살을 통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함으로써 다시 그 집단으로 복귀하겠다는 의지의 표 현이라는 것이다(Sarthou-Lajus, 1997, p. 167).
이제 이 문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각 개인이 과 도한 부채를 지고 해결이 난망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직면하는 문제는 무 엇인가. 과중채무가 노동과 소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 또한 가족관계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어떠한 과중채무가 가족들의 채 무 상환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과중채무의 당사자는 어 떠한 심리상태에 놓이게 되는가. 과중채무의 당사자에게 외부의 시선은 중요한가. 만일 그렇다면 그가 속한 집단 내에서 그러한 사실이 알려지는 데 따른 어떤 불이익을 예상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 모든 단계에서 각 개 인은 어떠한 심리상태에 놓이게 되며, 어떠한 행동을 하게 되는가. 이는 향후 가계부채, 특히 과중채무가 개인과 가구에 미치게 되는 영향과 관련 해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아래 그림은 통제할 수 없는 부채, 즉 일종의 과중채무가 사람들의 삶 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낸 것이다. 물론 영국의 과중채무자를 대상으로 한 분석 결과라는 점에서 그 충격의 유형과 정도는 상이하게 인식될 수 있 다. 하지만 가계부채 문제가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급여, 주거, 고용 그리 고 사람들과의 관계 등에 큰 영향을 미치며, 인구집단별로도 다양한 영향 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림 2-3] 가계부채가 사회에 미치는 충격 problems in people’s lives? p. 15.
지금까지 연구 결과는 주로 가계부채가 어떤 집단 또는 어떤 소득계층
먼저 가계부채가 사회경제적 박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들이다.
오늘날 가계부채나 과중채무가 빈곤층이나 저소득층에 국한된 문제가 아 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과중채무는 어떤 계층이든 개인파산 등의 형태로 빈곤층으로 추락시킬 위험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과중채무란 개 별 가구의 소득이나 자산과의 관계에서 규정되는 상대적 개념이라는 점 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의 빈곤층에게 과중채무란 채무 상환에 소 요되는 지출을 높여, 소비 지출에 투입될 재원을 제약한다는 점에서 극도 의 결핍을 초래할 개연성이 훨씬 크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최 근의 연구 결과들은 가계부채가 생계, 건강, 주거 등의 영역에서 사회경 제적 박탈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사회경 제적 박탈이 소득수준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고소득층은 다른 비용을 절약하여 부채 상환에 다른 충격을 완화할 여력 이 있지만, 저소득층은 기본적 욕구 자체가 박탈되는 위험성이 크다는 것 이다(박정민, 이승호, 2017, p. 104).
그리고 과중채무가 미치는 영향으로 자살이라는 극단적 충격에 대한 연구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언급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과중채무와 자 살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실증연구를 통해 확인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 다. 이러한 상황은 외국의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참고로 일본의 자살 대책기구는 자살의 원인 중 하나로 경제적 원인, 특히 다중채무를 들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본격적인 실증연구를 통해 확인되지는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또한 이를 뒷받침할 데이터의 부재와 관련이 있다. 더 욱이 이 문제와 관련해서 별도의 조사를 통해 데이터를 생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양한 행정데이터의 연계를 통해 빅데이터를 구축함으로 써 준비해야 할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최근 한국복지패널데이터나 한국노동패널데이터 등을 토
대로 이러한 분석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복지패널데이 터는 가계부채가 각 개인의 심리상태나 자살 생각 등에 미치는 영향에 대 한 분석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이러한 데이터를 활용한 최근 연구 결과 들은 가계부채에 따른 심리적 부담과 자살 생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장기 부채 부담 위험군에 속한 이들이 자살을 생 각하는 비율이 높았고, 그중에서도 사채와 카드빚을 가진 집단에서 그 비 율이 유의하게 높았다. 그리고 사채나 카드빚을 지게 된 집단이 처한 상 황의 시급성이나 부채 상환능력이 이러한 극단적 생각에 영향을 미친 것 으로 나타나고 있다(이윤정, 송인한, 2015, pp. 74-75; 박정민, 오욱찬, 구서정, 2017, pp. 185-187).
가계부채 그리고 과중채무 문제가 개인과 가계에 미치는 충격은 우리 사회 전 소득계층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할 점이다. 그 것은 과중채무가 개인파산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 해당 개인이나 가구가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크게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사회경제적 박탈이나 심리적 충격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