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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티 감성 역량

독일의 4차 산업 혁명에서 핵심적인 용어는 사물 인터넷(Internet of Things)이지만, 서비스 인터넷(Internet of Service)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그리고 사람, 사물, 서비스를 시스템으로 연결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람이 그 중심에 있고 부가가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4차 산업 혁명 속에서도 핵심은 ‘사람’이다(김인숙・남유선, 2016: 24-25). 이처럼 초연결 디지털 사회가 가속화되고 전혀 예측하지 못한 복잡한 사회 문제가 발생할수록 이를 대처하기 위한 사람다움, 즉 인간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에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늘어날수록 기계에 의해 인간이 대체될 수 있는 불안감은 인간의 고유성에 대한 논의를 다시 부각하고 있다.

디지털 문명에서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인간다움’, ‘인간의 본질’, ‘휴머니티’이다. 이제는 기술과 진보성보다 ‘인간성’이 무엇보다도 중시되고 있다. 사람에 대한 관심, 배려, 애정, 예의 등 휴머니티에 관한 요소가 이 시대의 중요한 자질로 부각되고 있다(최재붕, 2020: 141). 이때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모두가 저마다 주인공이라고 생각할 때 깊은 이해가 가능하고 휴머니티의 본질을 구현할 수 있다(최재붕, 2020: 154). 이렇듯 휴머니티 감성 능력이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갖고 상대방의 마음을 배려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리카이푸(Lee Kai-Fu)에 따르면, 인공지능이 수행하게 될 미래의 일들은 ‘최적화 중심’의 직업과 ‘사회성이 낮은’ 직종이라고 말한다. 최적화 중심의 직업이란 미숙한 몸놀림이나 체계적 환경에서 데이터 수집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그림 2-1]에서 창의력과 전략이 필요 없고 높은 수준의 사회성이 필요 없는 텔레 마케터, 보안 요원, 설거지, 트럭 운전 등은 위험지대에 속하며 기계에 대체되어 곧 사라질 직업군으로 본다. 반대로 능숙한 몸놀림과 비체계적 환경에서 창의성, 전략에 의존하거나 높은 수준의 사회성이 필요한 직업은 인공지능 시대에서도 대체되기 어렵다(Lee, 박세정・조성숙 역, 2019: 273-275).

따라서 우리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인간성 또는 인간다움은 창의성과 전략, 높은 수준의 정서 능력과 사회성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미래 사회를 대비하는 최선이 될 수 있다.

최적화 중심, 미숙한 몸놀림과

체계적 환경

사회성 높음

창의력 또는 전략

중심, 능숙한 몸놀림

비체계적

환경

<안전지대>

안내원, 사회 복지사, CEO, 정신과 의사, 노인 요양사, 물리치료사, 헤어스타일리스트

<인간으로 눈가림하는 지대>

교사, 의사, 웨딩플래너, 바텐더, 카페 웨이터, 고급 호텔 접수 담당자

<위험지대>

텔레마케터, 초벌 번역가, 계산직 직원, 패스트 푸드 조리사, 설거지, 조립 라인 조사 담당자, 트럭 운전사

<느린 잠식 지대>

컬럼리스트, 그래픽 디 자이너, 과학자, 항공우 주 정비사, 법률/금융분 석가

사회성 낮음

[그림 2-1] 인공지능 대체 위험 : 인지노동과 육체노동 (출처: Kai-fu Lee, 박세정・조성숙 역, 2019: 274)

그러나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보았을 때 과연 우리가 인간다움을 강화하고 다듬어가고 있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얼마 전 인터넷 공간에서 여성을 물건처럼 취급하고 상품으로 값을 매겨 거래한 n번방 사건은 우리 사회 시민교육의 실패를 보여준다(경향신문, 2020. 4. 29.). 더욱 놀라운 것은 10대들이 n번방의 주역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 19에서 우리는 정보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강력한 감시 체제를 경험했고, 차별과 혐오의 인종주의가 확산하는 경향을 직접 목격했다. 인권 감수성, 즉 휴머니티 감성 능력의 부재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철저한 인권 측면에서 시민교육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비판적 사고력과 주체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책임과 시민 의식을 함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알게 해준다.

어쩌면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 문제점이 그대로 노출된 결과이다.

그동안 사회적 분위기가 지나치게 능력 위주에 따른 경쟁 문화가 당연시되고 심지어 공정함이라는 명분 속에서 묵인되어왔다. 이와 같은 능력 지상주의는 ‘메리토크라시’의 승자독식 사회를 만든다. 점차 개인들은 자기 파괴적 기제를 형성하고 이는 심각한 역효과를 초래한다(M. Young, 1958; 성열관, 2019: 30에서 재인용). 자기 파괴적 기제는 존재의 기반을 흔들고 내면의 존엄을 파괴해 심리적 불안과 두려움을 갖게 한다. 이는 나와 비슷한 사람만을 찾아 심리적 안정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경향을 강화하고 나와는 다른 상대방에 대한 혐오감을 숨기지 못하는 문제점을 발생시킨다. 한편 다른 집단에 대한 혐오나 동일 집단 내에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배제와 거부로 상대적으로 동질 집단 내에서의 심리적 안정을 갖는다. 능력 지상주의로 인한 경쟁 위주의 승자독식 구조는 타인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공감, 연대, 돌봄과 같은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지 않는 인간의 고유성을 약화시킨다.

따라서 미래 사회의 시민역량으로 휴머니티 감성 역량을 활성화해야

한다. 이는 곧 기계에 환원되거나 대체되지 않은 존엄한 존재가 됨을 의미한다. 여기서 휴머니티(humanity)는 인간다움으로 자신의 삶과 더불어 타인의 삶에 관한 관심을 갖는 것에서 출발한다. 단, 관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돌봄으로써 상생을 적극적으로 추구한다. 돌봄과 상생의 관계는 이성적 차원의 접근보다는 감성적이고 정서적 차원으로 접근할 때 포용의 크기가 커질 수 있다. 이러한 휴머니티 감성 역량을 미래 사회의 시민역량으로 강조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공감과 연대를 위해서이다. 실제적인 관계가 꾸준히 디지털 관계로 대체되고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초연결 시대이면서 외로움과 우울감이 고조되는 사회적 단절이 공존한다. 이러한 사회 상황은 공감의 필요성을 더욱 요청한다. 휴머니티 감성 역량은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되며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고귀한 행위이다.

이해(understanding)가 포괄적으로 ‘의미에 대한 이해’를 뜻한다면, 공감(sympathy)10)은 ‘타인의 심정에 대한 이해’를 말한다(김재인:

2017: 112). 인터넷을 통해 전보다 훨씬 긴밀하게 연결되고 온라인 10) 여기서 ‘sympathy’는 ‘함께’를 뜻하는 희랍어 sym과 ‘느낌’을 뜻하는 희랍어

path가 합쳐진 말로 라틴어 표현으로는 ‘함께’를 뜻하는 com과 ‘겪음’을 뜻하는 passion을 합쳐 compassion이라고 쓴다. 이는 ‘연민’의 측면에서 공감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김재인, 2017: 112). 보통 상담학과 교육학에서는 ‘sympathy’는 공감보다는 ‘동정’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공감을 ‘empathy’로 표기하고

‘sympathy’인 동정과 구분한다. 상담과 심리 치료에서 공감(empathy)은 객관적 태도 유지가 가능하고 내담자와 분리 가능해 상담 관계에 도움이 되지만, 동정 (sympathy)은 상담자가 내담자의 정서에 말려 객관적 태도를 유지하기 어려워 상담 관계에 손상을 준다고 본다(박성희, 2004: 39-42). 김재인(2017)은 공감을 동 정(sympathy)과 구분하지 않고 연민처럼 가까운 사이에 더욱 강력하게 작용하는 편파적 특성을 설명한다. 이로 인해 공감과 연민은 사회에서 갈등과 대립의 원인 이라고 진단한다. 그 이유는 연민이나 동정(sympathy)은 논리보다 앞서 인간을 사로잡는 감정적 강력함을 지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공감이 감정 대립의 원 인이 되므로 이와 같은 공감의 부정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논리보다는 감정에 치우친 동정(sympathy)보다는 인지적 요소와 정 서적 요소가 적절히 균형을 이룬 복합적 차원의 공감(empathy) 입장에서 공감이 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공감과 동정의 관계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는 본 논문 의 91쪽을 참고하길 바란다.

공간에서 수백 명의 친구를 갖고 있지만, 우리는 관계를 유지하거나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Lim-Lange &

Lim-Lange, 박선령 역, 2020: 47-48). 휴머니티는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주인공이라는 세계관을 가질 때 시작된다. 또한, 휴머니즘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가진 인격체임을 고려해야 한다(최재붕, 2020:

153-154). 따라서 휴머니티 감성 능력은 타인의 심정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갖추게 해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지속시키고 그 속에서 인간다움을 유지하게 해준다.

둘째, 돌봄과 상생이 가능하다. 레비나스(E. Levinas)에 따르면, 우리는 타인의 어려움과 고통에 응답하고 그의 짐을 같이 들어주는 타인과의 윤리적 관계를 통해 주체성을 찾을 수 있다. 타인과의 관계는

‘얼굴의 현현(顯顯)’을 통해 접근하는데, 이는 일종의 윤리적 호소로 작용하며 초월적이며 절대적 외재성을 지닌다(강영안, 2020: 33-36).

이렇듯 타자에 대한 민감성은 이기적 자아로부터 윤리적 자아로의 전환(recurrence)을 의미하며 도덕적 책임을 요청한다(진교훈 외, 2014:

278). 휴머니티 감성 능력은 타자의 고통에 관한 관심과 보살핌이다.

다시 말해 타자성의 윤리를 반영해 타인의 삶에 관심을 키워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 대한 돌봄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는 상생의 정신으로 이어져 개인과 사회, 생태계와의 전일적(holistic) 연관을 추구하게 한다.

이로써 인간의 이기적 배타성이 공동체적 협동으로, 공격적 경쟁력은 조화로운 유연성으로, 타자와의 개별적 갈등이 평화적 공존으로 나아갈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 재난에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누구나 최소한의 존엄을 훼손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돌봄과 상생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사회적 재난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전환이다.

또한, 기존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래적 고유성과 인간다움을 강화하는 계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