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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의 기세가 한풀 꺾이고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2011년의 어느 여름날, 성일 노블하이츠 커뮤니티센터 2층에 위치한 노인정에 20명 가까운 사람들이 새벽부터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주로 50대 이상 여성들로 구성된 이들은 미리 준비한 200마리의 닭고기들에 찹쌀과 인삼을 넣고 삶기 시작하여 오전 11시경 200인분의 삼계탕을 완성했다. 시간에 맞춰 노인정을 찾은 입주자대표회의 임준구 회장의 축사 를 시작으로 수십 명의 노인들은 삼계탕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성일동의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영수 의원도 이 자리에 참석해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고, 김 영수 의원의 부인은 먼저 자리를 뜬 김 의원을 대신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이 행 사에 참석한 사람들을 만났다. 노인들 외에 관리업체 직원 수십 명도 점심시간에 노 인정을 찾아 식사를 함께 했고, 업무로 인해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경비업체에서는 대표로 두 명의 직원들이 와서 22인분의 삼계탕을 커다란 통에 담아 가져가기도 했 다. 오후 2시가 다 되어 자리가 파한 가운데, 삼계탕 준비를 도맡은 여성들은 수백 개의 그릇들을 설거지하느라 바빴고, 이날 행사에 기여한 노동력 가운데 유일한 남 성이었던 연구자는 수십 개의 탁자들을 다시 창고로 옮기느라 온 몸이 땀에 젖었다.

입주 이듬해인 2008년 여름부터 성일 노블하이츠 부녀회 주최로 매년 진행되어 온

‘초복날 노인정 어르신 삼계탕 대접’ 행사의 풍경이었다.

입주 초 제1기 입주자대표회의와 부녀회 사이의 갈등117)이 어느 정도 수면 아래 로 가라앉은 뒤, 성일 노블하이츠에서는 부녀회를 중심으로 단지 입주민들을 위한 117) Ⅲ장 3-3)절에서 다루었던 부녀회 인준 과정에서의 갈등을 참고하시오.

행사들이 다수 진행되어 왔다. 위에서 소개한 초복날 삼계탕 대접 행사와 ‘어린이날 그림그리기 대회’처럼 해마다 개최된 행사들 외에도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한 노래교 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상영회 등과 같이 매주 혹은 격주 단위로 진행된 행사들을 통해 부녀회는 입주민들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 중 노래교실과 영화상영회 같은 경우는 성일 노블하이츠 단지 한가운데 위치한 커뮤니 티센터에 대규모 모임이 가능한 약 300석 규모의 대회의실을 무대로 삼아 열린다.

노래교실은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마다, 영화상영회는 격주로 초등학교가 한 달에 두 번 쉬는 토요일118)에 맞춰 역시 오전 10시에 진행되며, 두 행사 공히 매번 150 명 이상의 인원이 참석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사진 4-1> 커뮤니티센터 대회의실에서 진행 중인 노래교실의 모습

※ 사진 출처: 성일 노블하이츠 입주민 카페 (포털사이트 Z사)

노래교실은 성일 노블하이츠와 같은 대규모 고급 단지에서 많은 입주민들에게 실 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행사가 무엇일까에 대한 부녀회의 고민에서 탄생한 프로그램이었다. “청소업체나 재활용업체 등 전문 용역업체가 존재하기에 일반 아파 트 단지에서처럼 부녀회가 주축이 되어 청소 활동에 나선다 해도 크게 티가 나지 않는 상황”119)에서 “요새 부녀자들 모으기 제일 좋은 게 노래교실”이라는 아이디어 에 착안했다는 것이다. 실제 노래교실이 처음 시작된 2008년에는 200명 가까운 주

118) 2015년 현재 모든 초등학교에서 시행중인 주5일 수업제는 2012년 이후부터 실시되었다.

119) 부녀회장과의 인터뷰 내용. 다른 한편으로, 부녀회장이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성일 노블하이츠 부녀회가 다른 단지 부녀회와 달리 재활용품 판매 등과 같은 수익성 사업에 소극적인 이유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입주 초 이권사업의 주도권을 놓고 발생했던 입주자대표회의와의 갈등에 기인하는 면이 있다.

민들이 참가하는 등 단지에서 상당히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이처럼 노래 교실이 주로 4-50대 이상의 중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영화상영회는 유치원 생에서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어린이들을 주요 대상으로 했다. 아래 부녀회장과 의 인터뷰 내용은 영화상영회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과 부녀회의 생각을 보여준다.

영화상영회는 주로 저학년 아이들이 많이 와요. 한 170명 정도? 부녀회에서 돌 아가면서 담당하는 당번이 있어요. [...] 아이들이 무척 좋아해요. 극장처럼 큰 화면에서 보니까 집에서 TV로 비디오 보는 거랑은 다르잖아요. 또 엄마들 입장에 서도 토요일 10시에 애들 내보내면 청소하기도 좋고 한숨 돌리기도 좋은 점이 있 죠. 아이들이 보기에도 다른 애들한테 ‘우리 아파트는 영화상영도 한다’라고 자랑 하기 좋죠. 주로 애니메이션이나 애들 보는 영화 위주로 상영하는데, 한국 영화는 욕이 너무 많이 섞여서 고르기에 좀 그래요. (부녀회장과의 인터뷰)

아무래도 연령단계의 특성상 아파트 단지에서 펼쳐지는 주요 행사들은 중·고등학 생이나 직장인보다는 주로 가정주부들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모습을 보 인다. 중·고등학생의 경우 학교생활과 학원 활동으로 인해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렵 고, 직장인들의 경우 역시 바쁜 일과 탓에 아파트 행사에 쉽게 시간을 투자하기 어 렵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행사는 행사에 참가하는 어린이뿐 아니라 해당 아이의 부모까지도 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파트 단지 전체의 화합 을 도모하는 주된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이처럼 격주로 진행되는 영화상영회 외에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아파트 전체 행사의 또 다른 예로 ‘어린이날 그림그리기 대회’가 있다. 매년 어린이날마다 부녀회 주최로 진행되는 이 행사는 성일 노블하이 츠에서 펼쳐지는 각종 행사들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성일 노블하이츠를 대표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단뿐 아니라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 방의회 의원 등 정치인들까지 참석하는 이 행사에는 4~500명가량의 어린이들이 참 가해 왔다. 참가 어린이들은 아파트 단지 각지에 흩어져 매년 새로 주어지는 주제에 맞춰 그림을 그려 제출하고 취합된 그림들 가운데 심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어린 이들을 대상으로 시상식이 거행된다.

그림그리기 대회는 어린이날 당일 오전 10시부터 행사 주최를 맡은 부녀회장의 개회사와 행사의 후원을 맡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의 축사로 시작되며, 이와 함께 외부에서 초청된 풍물놀이패가 단지 각지를 돌며 흥을 돋우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 고 부녀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준비한 김밥과 떡볶이, 라면 등 간식거리를 싸게 판매 하는 천막들이 설치되고, 외부 업체를 섭외하여 얼굴 페인팅을 해주거나 아이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부스가 마련되기도 한다. 심사를 위한 그림들은 대략 오후 4시

<사진 4-2> 성일 노블하이츠 어린이날 그림그리기 대회의 모습들.

이날은 단지 곳곳에 전년도 대회에 제출된 그림들이 전시되는 한편, 대회에 참가한 어린이와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각종 부대행사들도 함께 열린다.

※ 사진 출처: 성일 노블하이츠 입주민 카페 (포털사이트 Z사)

경까지 접수되어 오후 5시 시상식을 마지막으로 행사는 종료된다. 가족들이 함께 즐 길 거리가 많이 있고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되는 행사이기 때문에 그림그리기 대회 는 특히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을 중심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이러한 아파트 단지의 이웃관계 및 공동 활동에서 중요한 결절지점으로 작 용하는 것은 입주민 카페로 대표되는 온라인 커뮤니티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구성 원과 오프라인 집단의 성원이 중첩될 수밖에 없는 아파트 단지에서 온라인 커뮤니 티는 공동체성의 형성에 있어 보완적 매개체가 된다(홍성구 2009 참조). 이미 본 논 문의 Ⅲ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재건축 단계에서부터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입주(예정) 자 카페는 각종 의제를 이슈화하고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있어 중요한 역 할을 수행했다. 입주 이전 아파트의 상품가치가 이슈로 부각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 가 상당히 활성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활발한 상호교류가 발생하며 주민들 사이에 나름의 공동체적 관계가 형성되는 데 기여했던 것이다. 이렇듯 아파트 단지에서의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은 홍성구(2009: 254)의 지적대로 공동체적 관계가 반드시 물 리적이고 대면적인 상호작용의 축적에 의해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 러나 시간이 흐르며 아파트 입주민 카페의 활동은 이전에 비해 점차 약화되는 경향

을 보이게 되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입주 이후 아파트 단지 내 물리 적 공간을 통해 주민들 간의 관계가 형성되면서 온라인을 매개로 한 상호작용의 빈 도가 줄어드는 동시에, 입주 초 입주민 카페의 주요 이슈가 된 문제들도 어느 정도 해결되거나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 때문이다(홍성구 2009: 247 참조). 하지만 입주민 카페는 주민들의 공동 대응을 요하는 특별한 사건들이 발생할 경우 언제든지 다시 활성화될 잠재력을 품고 있다.120)

입주 이후 일상의 차원에서 입주민 카페가 제공하는 주요 기능 중 하나는 각종 취미 동호회 활동이다. 성일 노블하이츠에는 주민들이 직접 조직한 골프동호회, 헬 스동호회, 볼링클럽, 축구클럽, 디지털카메라동호회, 등산동호회 등 다수의 친목모임 이 활동 중이다. 이 가운데 특히 등산동호회와 볼링클럽, 그리고 축구클럽은 격주 혹은 매달 정기모임을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동호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적게는 15명 내외, 많게는 30여명 이상의 회원들을 보유한 이들 동호회들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입주민들 가운데 비슷한 취미를 공유한 이들 사이에 친목을 도 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단지 전체의 규모를 감안할 때, 이 같은 동호회 모임들이 아주 활발하게 활동 중인 것으로 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입주 초 결성된 모임의 초창기 멤버로 합류한 회원들 외에 신규 회원을 찾기 힘든 것도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모습이다. 이러한 양상의 원인에 대해서는 40대 입주민들, 특히 여성들과 의 대화를 통해 단초를 찾아볼 수 있다.

저처럼 직장 다니는 사람이 편하게 가입하고 싶은 동호회가 없어요. 정말 없어 요. 저도 몇 개 기웃거려 봤는데 제 나이에 맞는 것도 없고, 저도 나이가 40대니 까. 게다가 사고가 이렇게 좀 건전하게, 그게 아니고, 좀 그렇더라고요. 그런 게 좀 불만이죠. 별로 끌리는 동호회가 없어요.

한 번은 XX동호회에 기웃거려 본 적도 있는데 나이대가 안 맞더라고요. 전부 부부들이나 집에 계신 분들만 어울리다보니까 주로 50대, 60대도 계시고. 또 시간 많은 분들 위주니까 끝나고 약주하시고, 몰려서. 한 번 나갔다가 기절하는 줄 알았 잖아요. 글쎄 운동시간보다 뒤풀이가 더 길어요. 술 마시고, 음담패설하고. 신선한 이미지가 없더라고요. 또 OO동호회에 기웃거려 보려고 전화를 드렸더니, 아유, 문 제가 좀 있더라고요. 주변에서 OO동호회는 말리더라고요, 같은 의미로.

주변에서도 아직은 제가, 저 같은 경우는 직장 다니다 보니까 동호회 함부로 가 입할 나이는 아니라고 그러더라고요. (김주희, 여, 40대, 2007년 입주)

120) 뒤에서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성일 노블하이츠에서 집단적 대응을 요하는 여러 사건들이 있을 때 마다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 역시 온라인 입주민 카페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