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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은 한국사회에서 아파트가 유별난 인기를 얻어 온 이유 중 하나로 “아파트 단지가 제공하는 공간 환경에 대한 선호”(박인석 2013: 19)를 꼽는다. 1960년대 이 후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도시 공간 개선을 위한 투자가 도로나 전력시설 등과 같은 기반시설에 집중되고 공공공간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온 상황에서, 아파트 단지 건설이 높아지는 주거환경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를 채우는 대안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 이는 공공공간에 대한 투자 없이 아파트 단지라는 환경적으 로 ‘괜찮은 동네’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대단히 편리한 방안이었다. 결국 도시의 공 공공간이 녹지와 각종 편의시설을 제대로 제공해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개인들―정확 히는 일정 수준의 소득을 갖춘 중산층 이상―은 이를 사적으로 구입할 수밖에 없었 고, 그 수요에 부응한 것이 아파트 단지 개발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공공재의 투자 없이 취약한 도시기반시설을 확보 하기 위한 공간기획”(박철수 2013: 145)의 산물이자, “열악한 도시 공공공간 환경이 라는 사막 속에 자리 잡은 사설(私說) 오아시스”(박인석 2013: 24)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한국의 아파트 단지가 절대적인 기준에서 양질의 공간 환경 을 지니고 있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Ⅱ장에서 살펴보았듯이 1990년대 중·후반까 지 대다수의 아파트 단지들은 획일적인 계획 관행에 의해 보다 빠른 시간 내에 더 많은 주택 수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건설되었고, 특히 단지 내에서는 공용공간의 질을 높이는 것보다는 전용공간의 충실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126) 이는 곧 사적 공간의 확보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공공공간에 관해서는 무관심한, 전체 도시 공 간에 대한 한국사회 전반의 인식이 아파트 단지 내부로 그대로 이어진 결과이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에 큰 폭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 이른바 브랜드 아파트의 등장이었음 은 역시 앞서 Ⅱ장 후반부에서 논한 바와 같다. 주로 주차장으로 활용되어 왔던 기 존의 외부공간은 지하주차장의 전면 확대와 함께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경관으로 탈바꿈하였고, 단지 내 주민들 간의 교류가 강조되기 시작하면서 커뮤니티센터의 도 입으로 대표되는 각종 공동생활 시설들의 확충 또한 함께 진행되었다. 그런데 중요 한 것은 이와 같은 공용공간의 변화가 입주민들이 실질적으로 경험하는 생활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하 지만 아파트 단지를 지배하는 ‘무관심의 문화’는 단지 내 공유공간이 제대로 관리되 지 못한 채 방치되거나, 심지어 훼손되기까지 하는 양상을 야기한다.

이 같은 사례는 성일 노블하이츠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고급 아파트 를 표방하며 건설 단계에서 설치된 각종 시설물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거나 아예 철거되는 경우가 심심찮게 나타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단지 내 곳곳에 설치되 어 있던 쉼터의 철거였다. 입주 초만 하더라도 단지 안에 총 40여개나 있던 쉼터가 점차 철거되어 불과 2~3년 사이에 30개가량으로 줄어들고 말았던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쉼터의 철거는 애초에 설치된 위치 자체가 잘못된 탓일 수도 있다. 설계 당 126) 이 같은 경향을 낳은 가장 큰 원인은 전용면적과 공용면적을 합산하여 분양평형을 계산하는 한국 의 아파트 공급 제도에 기인한다. 이 제도 아래에서 여러 가구가 함께 사용하는 공용공간의 확대는 곧 개별 가구가 사용하는 전용공간의 축소를 뜻했으며, 이러한 시장 상황은 건설사들로 하여금 전용 면적 확대와 공용면적 축소를 계획적 과제로 삼게 하는 관행을 야기했다(박철수 2000: 89 참조).

시 사람들의 실제 동선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미관상의 고려에 의해 설치된 쉼 터는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금방 흉물스런 모양새로 변하고 말기 때문 이다. 그런 경우라면 보존보다는 철거가 더 나은 결정이 될 수 있지만, 문제는 엄연 히 사람들이 사용하던 쉼터가 철거되는 경우였다. 이와 관련하여 아파트 단지 북쪽 구역에 위치해 있던 쉼터가 철거된 사례는 철거 결정과 처리 과정에 나타난 실제 사용자들의 무관심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아파트 단지의 북문 근방에 위치한 이 쉼 터는 보행자 출입구와 가까워 평소에도 주민들의 이용이 제법 있는 편이었다. 그런 데 이곳에 사람들이 여럿 모여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불만을 가진 바로 근처 동의 동대표―임원진과 가까워 입주자대표회의 안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던―의 지시로 해 당 쉼터는 관리사무소에 의해 철거되고 말았다. 그런데 철거 작업이 일체의 공론화 없이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이 과정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고 철 거 이후에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전에 이 쉼터를 즐겨 이용한 주민들 역시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이라는 태도를 견지한 것이었다.

공유공간 문제와 관련한 또 다른 사례는 조명시설과 조경수 관리 미비였다. 단지 가 워낙 크다보니 조명시설이 제대로 완비되지 않은 사각지대가 존재하여 주민들의 불안과 불편을 초래했지만 이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또한 기존에 설치 된 조명시설도 관리 미비로 인해 엉뚱한 방향을 비추거나 아예 작동하지 않는 경우 까지 발생했으나 이런 문제의 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 역시 듣기 힘들었다. 이 같은 조명시설 미비가 아파트 단지의 밤을 어둡게 만들었다면 조경수 관리 문제는 아파 트 단지의 낮을 칙칙하게 만들었다. 성일 노블하이츠를 비롯한 고급 아파트 단지의 최근 경향은 지상공간에 고급 수종을 식재하여 ‘단지의 공원화’를 달성하는 데 있었 지만, 이렇게 애써 심은 나무들은 매년 수십 그루씩 죽어나갔다. 공유공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공간적 조건 자체의 한계와 역시 주민들의 무관심 탓이었다.

브랜드 아파트 등장 이후 공유공간이 많이 개선되었다 하나, 아파트 단지 내에서 공유공간은 여전히 사적공간에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다. ‘남향 아파트 선호’와 관련 한 이경훈(2011)의 지적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에 따르면 아파트 단지는 한국사회 의 유별난 남향 선호로 인해 건물이 햇볕을 최대한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된다. 그런 데 이렇게 낮에 아무도 없는 집에 해가 잘 들게 하기 위해 ‘마당’, 즉 공유공간은 하루 종일 그늘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공유공간의 희생을 대가로 사적 공간의 채 광을 주장하는 매우 이기적인 행태”(이경훈 2011: 178)인 남향 아파트의 선호 탓에 아무리 지상공간에 조경을 잘해 놓아도 그것이 장기간 유지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렇게 처음 시공사에 의해 식재된 나무들이 말라죽는 경우가 반복된다면, 입주민 들의 입장에서는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수종을 택하는 등의 다른 대안을 찾아 실행 에 옮기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공유공간에 무관심한 주민들이 절대 다수인 아파

트 단지에서 이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도리어 기존의 관행대로 소나무가 죽은 곳에 다시 소나무를 심는 무의미한 행위가 반복되는 것이 아파트 단지의 현실 이다. 일례로 성일 노블하이츠에서도 입주 당시 심은 소나무들이 불과 1~2년 만에 말라죽자 소나무 70여 그루를 다시 심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때 심은 소나무들 중 1년 뒤까지 살아남은 건 고작 여섯 그루에 불과했다. 아파트 단지 내 주요 현안 에 관한 의사결정기구인 입주자대표회의가 제대로 된 고민을 하고 주민들이 그를 감시한다면 이와 같은 예산 낭비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집단적 현안에 대 한 무관심이 보편적인 아파트 단지에서 이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양상의 주된 원인은 다른 주거 공간와 달리 아파트 단지에서는 “개인이 공공 서비스에 대한 책임은 별로 없이 지원만 받는 일방향 관계”(박인석 2013: 53) 가 성립되어 있다는 데 있다. 박인석(2013: 52-53)의 지적대로 아파트 입주민은 우 편물이나 택배를 받는 일에서부터 쓰레기 수거, 외부공간 청소, 겨울철 제설에 이르 기까지 각종 생활지원 서비스와 직접 접속할 일이 없다. 아파트 입주민들과 생활서 비스 사이에는 중간조직으로서 관리사무소가 존재하고 그를 중심으로 한 용역업체 가 모든 일을 알아서 해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파트 입주민들 사이에서는 “사유공 간만을 생활공간으로 간주하는 현상”(박철수 2000: 91)이 팽배해 있기에 공유공간에 대한 인식 자체를 갖기 어렵다. 그 어느 주거 형태의 거주자보다 ‘소비자’로서의 의 식이 강한 곳이 아파트 단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지불한 아파트 구매금액, 혹은 임대금액에 공유공간에 대한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아파트 생활이 가구 단위의 ‘개폐식 삶’(전상인 2009)을 넘어 보다 나 은 삶의 질을 확보하는 데 있어 공유공간의 적절한 활용이 필요하다는 판단은 차치 하고서라도 말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아파트 단지에서 나타나는 ‘무관심의 문화’로 인한 양상들을 성 일 노블하이츠의 사례와 함께 살펴보았다. 다른 많은 아파트 단지들과 마찬가지로 성일 노블하이츠에서도 이웃에 대한 무관심은 일반적이었고, 아파트 단지의 각종 현 안에 대해서도 주민들은 무관심했다. 이처럼 만연한 무관심 속에 입주자대표회의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 갔으며, 그들이 응당 책임져야 할 공유공간은 방치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물리적으로 같은 아파트 단지라는 집단에 속해 있으면서도 의식 의 차원에서는 개별적인 각각의 가구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결국 아파트 단지라는 하나의 집단 안에서 공적 영역과 관련한 의식과 실천이 부재하는 지역적 조건이 탄 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공공’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움직임이 있었다. 이 활동의 중심을 이룬 일부 주민들은

‘자율방범대’라는 아파트 단지 바깥의 집단 형식을 빌려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 있는 아파트’를 일구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