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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주공아파트와 ‘장소’의 해체

그를 바탕으로 각각의 공간성들을 제시한 바 있다. 그 가운데 ‘유체’의 은유로 표시 되는 공간은 공간의 각종 구성요소들이 기존에 유지하고 있던 안정적인 배열관계가 해체되면서 유동적인 변이 형태를 보인다. 그와 함께 공간요소들의 새로운 배치가 진행된 이후에는 새로운 공간이 생겨날 수 있는데, 바로 이 지점에 연구자는 주목한 다. 자연과학적 의미에서 ‘결정’은 유체 상태의 용액으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인 ‘결정화(crystallization)’를 통해 생성된다. 마치 용액으로부터 결 정핵(crystal nucleus)을 중심으로 일정한 방향성에 따라 몇 가지 구성물질이 결정 을 이루어내듯이, 유체 상태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욕망들로 구성된 아파트 재건축이 라는 무대의 용액에서 특정한 형태의 ‘결정’―아파트 단지의 모습을 취한―이 형성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결정화 작용을 유도하는 몇 가지 매개체들은 ‘결정 핵’에 해당한다.

이어지는 논의에서는 이 같은 관점을 채택하여 성일주공아파트 재건축 과정 전반 을 아파트를 둘러싼 ‘욕망의 결정화’ 과정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아파트 단지의 비 가역적인 공간적 특징을 감안할 때,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 과정을 ‘결정화’라는 은 유를 통해 파악하는 것은 분명한 이점을 지닌다. 박철수(2013: 148-149)의 지적대 로 아파트 단지에는 공간으로서의 ‘가역성(可逆性)’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 전반의 변화에 맞춰 토지이용이나 건축물의 기능이 유연하고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소규모 필지와 달리, 아파트 단지의 건축은 수년 동안의 집중적인 건설과정에 의해 진행된 뒤로는 물리적 형태가 굳어지게 된다. 따라서 재건축 과정을 ‘결정화’로, 아 파트 단지를 ‘결정’이라는 은유로 보는 것은 무리한 비유가 아니다. 이를 통해 재건 축으로 해체된 성일주공아파트라는 기존의 장소가 어떤 결정핵들의 어떠한 작용에 의해 재건축에 개입한 관계자들의 욕망을 구체적인 공간 형태로 구현해내게 되었는 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 3-1> 1980년대 초 성일주공아파트 단지 건립 초기의 모습.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건립 초만 하더라도 이 단지는 규모에서 주변 지역을 압도하는 주거공간이었다.

그 같은 상황에서 재건축 추진 소식과 함께 아파트 가격이 꿈틀대기 시작하면서 5천여 가구에 달하는 기존의 성일주공 입주민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아 파트 재건축이 진행되어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들로 단지가 탈바꿈하면 기존 입주 민들, 즉 재건축 조합원들은 미리 산정된 무상지분율을 바탕으로 확보된 평수에 더 해 어느 정도 추가분담금을 지불하면 새로 지어진 아파트에 그대로 입주가 가능하 다. 여기서 문제는 기존 입주민들 가운데 신규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던 경우가 별로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기존 아파트 단지의 평형별 세대수와 새로 지어지는 단지의 평형별 세대수가 갖는 차이 때문이었다.

이 차이가 갖는 의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선, 재건축이 진행되어 기 존 조합원들이 인정받게 되는 무상지분율은 다음과 같은 공식에 의해 결정된다.

- 무상지분율 = (총수입 - 총지출) ÷ 평균분양가 ÷ 대지면적 × 100

(총수입 = 대지면적 × 용적률 × 평균분양가, 총지출 = 공사비 + 부가가치세 + 제경비)

공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무상지분율은 용적률과 평균분양가, 지출비용 등에 의해 결정되는데, 100~170% 사이로 책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조합원이 받을 수 있는 무상지분은 기존 대지지분에 무상지분율을 곱한 값이 된다. 만약 무상 지분율이 150%로 정해졌다면, 20평의 대지지분82)을 소유한 조합원은 30평의 면적 을 무상으로 보장받게 된다는 것이다. 성일주공아파트의 경우 보통 18~21평 정도의

82) 대지지분은 아파트 단지 전체의 대지면적을 세대수로 나누어 등기부에 표시되는 면적을 가리킨다.

평형 세대수 비율

19평형 약 200세대 2.2%

26평형 약 600세대 6.7%

30평형대 약 6,000세대 66.7%

40평형대 약 1,800세대 20.0%

50평형 약 400세대 4.4%

합계 약 9,000세대 100.0%

<표 3-1> 성일주공아파트 재건축 이후 평형별 세대수

대지지분을 소유하고 있었고, 재건축 사업승인 당시 건설사가 제시한 무상지분율은 약 110%였다. 따라서 성일주공 조합원들이 확보할 수 있는 무상지분은 20평에서 23평 정도가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표 3-1>83)에서 볼 수 있다시피, 재건축 이후 지어진 성일 노블하이츠와 로열카운티의 평형별 세대수에서 30평 미만은 약 800세대에 불과했다. 결국 약 5천 세대에 달하는 기존 성일주공아파트 입주민들 가운데 무상지분만으로 입주할 수 있 었던 이들은 소수였고, 나머지 입주민들은 적지 않은 추가분담금을 지불해야만 입주 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새로 지어진 아파트의 대다수를 차지한 30평형대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대략 6천에서 7천만원 가량의 추가분담금을 내야만 했는데, 기 존 입주민들 가운데 이 정도 비용을 추가로 부담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 다.84) 결국 그들의 조합원 지분은 시세차익을 노린 서울과 연주 일대의 중산층 일 원의 몫으로 돌아갔다. 일반분양 이후 조합원 지분을 매수하여 입주에 성공한 한 입 주민의 아래 인터뷰 내용은 조합원 지분 변화를 둘러싼 제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일반분양 때, 그러니까 재건축하면서 추가적으로 한 3천 세대를 더 짓고 원 조 합원들은 선택을 미리 했어요. 조합원 5천명이 먼저 선택을 하시고, 옛날 아파트 가 십 몇 평형대였는데 그분들이 일단은 거기서 토지보상비를 받고, 거기서 내가 34평을 가든지, 25평을 가든지에 따라 추가분담금이 다르기 때문에 선택을 하고 고르는 거죠. 그래서 거기서 다 빼고 남은 3천 세대 정도를 갖고 일반분양을 하 는 거예요. 그때 일반분양자들은 선택에 제한이 있었어요. 이미 조합원들이 좋은

83) 다른 수치 정보들과 마찬가지로, 아파트 단지의 정보 보호를 위해 정확한 평형별 세대수는 표기하 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84) 이처럼 재건축 이후 재입주 가능성이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재건축 추진이 가능했던 것은 기존 입주민들의 입장에서도 얻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특정한 아파트 단지에서 재건축 사업이 추진된다 는 소문이 퍼지면 재건축 이후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 수요로 인해 아파트 가격은 상승하게 된다.

이는 추가분담금을 지불하기 어려운 형편의 입주민들이 기존 시세보다 비싼 값에 집을 팔 수 있는 기회이며, 이들로부터 아파트를 구입한 외부인들은 주로 전세를 놓는 방식으로 소유권과 조합원 자 격을 유지한다.

층과 좋은 동은 다 가진 상태에서, 저층이랑 시끄러운 도로변 쪽 거기만 일반분 양을 한 거죠. [...] 당시는 부동산이 호황이었어요. 그래서 일반분양을 하자마 자 P(프리미엄)가 3천만원 정도 붙었죠. P가 3천, 많은 건 5천, 7천까지도 갔어 요. 저희 같은 경우도 먼저 일반분양을 노렸었는데 결국은 안 했어요. [...] 그 런데 바로 조금 지나서 부동산이 침체가 되면서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분 양가보다도 더, 그때 부동산 규제가 확 되면서 쭉쭉 떨어지기 시작했죠. 2004년 말, 2005년 초 그 즈음이었어요.

처음에 일반분양 때 모델하우스 보니까 여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34평형 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지금은 부동산이 호황이니 조금만 기다리 자, 겨울에 비수기가 올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일반분양 받아서 안 좋은 층 살 바 에는 기다렸다가 조합원분을 매수하자,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해 겨울 이 와서 부동산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일반분양은 전매가 안됐으니 제외하고 일반분양 받으면 그걸로 끝이에요. 그 사람들은 그대로 입주를 해야 해요. 그런 데 조합원은 전매가 가능했죠. 그래서 조합원 거를 노렸어요. 조합원 중에서 동 호수를 선택하는 게 제일 중요했어요. 그때만 해도 전매가 한 번이었거든요. 그 런데 일반분양했을 때, 그러니까 2004년 여름에, 그때는 부동산이 호황이었으니 까 P가 막 붙고 서로 너도나도 사고해서 많이 리사이클이 됐죠. 5천 세대 원 조 합원 중에서 60% 정도가 그때 리사이클이 됐던 거 같아요. 저희는 좀 지난 상태 에서 겨울 되니까 비수기 되고 이런저런 규제되기 시작해서 가격 떨어지고 손해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할 때였어요. 그래서 저희는 겨울에 다니면서 부동 산을 돌았죠. 보니까 이미 조합원들 빠질 거 다 빠졌다, 남은 거 별로 없다 했는 데 원 조합원 한 분이 내놓은 걸 저희가 사게 되었어요. 우리가 운이 좋았던 게 그 분이 할아버지셨는데, 딸들이 내놓지 말라는 걸 할아버지가 내놓았던 거거든 요. 부동산 규제 시작되고 프리미엄이 떨어지기 시작하니까 두려우셨던 거죠. 더 떨어질까봐. 그럴 바에야 프리미엄이라도 약간 있을 때 팔자, 일반분양보다 5백 정도 더 받고. 저는 그런 분들 나올 거라 예측을 했고, 그걸 노렸던 거죠. 그래서 여기 분양권을 사게 됐어요. (박용진, 남, 30대, 2007년 입주)

앞서 Ⅲ장 1절 말미에서 언급한 것처럼, 2004년 여름 진행된 성일주공 재건축

‘베스트시티’ 동시분양은 시세상승에 대한 기대감 속에 성황리에 마감되었다. 그러 자 전매가 금지된 일반분양권 외에 조합원 분양권들이 이른바 ‘프리미엄’ 혹은 ‘P’

라고 불리는 웃돈 수천만원이 더해진 채 거래되기 시작하였다. 6~7천만원에 달하는 추가분담금을 지불할 수 없었던 기존 조합원 입장에서 이는 좋은 기회였고, 당시 부 동산 호황 속에 1억 이상의 시세차익을 기대하고 있었던 수요자 입장에서도 이는 합리적인 투자기회였다. 결국 일찌감치 재건축 추진 소식을 접하고 2000년 전후부 터 성일주공아파트를 구매한 ‘외부인’들과 함께, 재건축 분양 과정에서 프리미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