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서구의 도시 발달과 아파트의 등장

현대 사회의 아파트와 같은 고층 집합주택의 기원은 고대 로마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로마의 소규모 집합주택은 이미 공화정 말기부터 건축되기 시작하였 으며, 제정 시기로 접어들면서 인구의 과밀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서민층을 위한 임대용 주택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손세관 2000: 82-86 참조). 특히 고대 로 마에는 ‘인슐라(insula)’라 불리는 4~5층 높이의 다층 집합주택이 있었는데, 오늘날 주상복합건물과 유사하게 ‘1층에 점포가 딸린 임대용 집합주택’(Homo 1951, 손세 관 2000: 85에서 재인용) 형태로 도시 지역에 널리 확산되었다. 이렇게 보급된 인슐 라는 수도 로마만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전체 인구 80만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무산 계급의 거주지로 활용되었는데 주거환경은 매우 열악한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네로 황제 시기인 A.D. 64년 발생한 대화재를 전후로 집합주택을 대상으로 한 건축규제 들이 시행되어 주거 환경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확대되는 도시 규모를 감 당할 수 없었던 탓에 도시 환경은 과밀하고 불결한 채로 남아 있었다.28)

이렇게 보급되었던 서구의 고층 집합주택은 로마제국 붕괴 이후 도시 인구가 급 격히 감소하며 명맥이 끊어졌다가 중세시대 말부터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다시 모습 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히 본 연구가 주목하는 아파트와 관련하여, 일본어의 ‘ア パート’를 거쳐 한국어의 ‘아파트’라는 단어의 어원이 된 영어 단어 ‘apartment’의 기원은 프랑스어의 ‘appartement’에서 찾을 수 있는데,29) 실제로 ‘아파트’라 불리 기 시작한 집합주택이 처음 등장한 것 역시 프랑스에서였다. 이후 아파트는 5, 6층 높이의 건물에 중산층과 서민층이 함께 거주하는 일반적인 주택 형태로 변화하였으 며, 1층에 위치한 상점가 위로 낮은 층에서 높은 층으로 올라갈수록 하층계급이 거 주하는 구조로 자리 잡게 되었다(손세관 2000: 208 참조). 이렇게 당시 프랑스에서 28) 제정 로마의 첫 번째 황제인 아우구스투스 시대(B.C. 27~A.D. 14)에 이미 잦은 인슐라 붕괴를 방

지하기 위해 주택 높이를 60피트(약 17.8미터)로 규제하는 법령이 제정되어 있었다. 뒤이어 전체 로 마 시내의 절반 이상이 소실된 대화재 이후 공표된 법령에서는 70피트 이하로 기존의 높이 제한을 완화하는 대신, 건물 사이의 공지(10피트) 확보 및 화재시 대피를 위한 발코니 설치의 의무화 등 새 로운 조항들을 추가하여 주거환경의 개선을 도모하고자 하였다(이현호 1997: 55; 손세관 2000:

107). 이러한 규제는 집합주택의 형식을 체계화하는 데에는 기여하였지만 주택의 양적 부족현상을 초래하였고, 그로 인한 불법건축의 난립을 막을 수는 없었다.

29) Wiktionary의 ‘apartment’ 항목(http://en.wiktionary.org/wiki/apartment) 참조. 서윤영(2007:

267)에 따르면, 18세기 프랑스의 궁전과 대저택은 기능에 따라 몇 개의 공간군(群)으로 나뉘어 있었 고 그 각각을 ‘아파르트망(appartement)’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오늘날 아파트라 불리는 건물의 어 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참고로, 일본에서 ‘アパート’는 다세대주택을 가리키는 용어이며, 한국에서의 아파트와 같은 건물은 ‘マンション’(mansion)이라 불린다.

아파트 건축이 성행하게 된 것과 관련하여 마커스(Marcus 1999: 21)는 아파트가 도시 생활이 지닌 기존의 공적인 성격을 유지·확대하는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하나의 가구가 거주하는 개별 단위로서의 아파트는 외부로 부터 격리된 자기 충족적(self-contained) 공간에 해당했지만, 전체 건물로서의 아 파트는 도시의 가로(街路)에 바로 접해 있는 형태로 건축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즉, 고립된 단지 형태로 건설되어 도시 생활과 분리되는 모습을 보인 훗날의 아파트 와 달리 19세기 초의 아파트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사이에 연속성을 부여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공공생활을 강조하는 서구 근대 도시의 문화적 담론과 큰 마찰 없이 독립적인 아파트 생활이 수용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입기를 거쳐 서구사회에서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저소득 노동자층의 주 거지로 정착된 것은 산업혁명의 영향 때문이었다. 19세기 본격화된 산업혁명으로 인해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도시의 인구밀도는 이전과 비 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고, 그에 따라 심각한 주택 부족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던 것이다. 이 같은 상황 아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단지로 아파트들이 공급되기 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 열악하고 과밀한 도시와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가지 개념들과 계획안들이 제시되었다. 특히 그 가운데 20 세기의 주거환경계획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개념들로 영국의 에버니저 하워드 (Ebenezer Howard)가 제안한 ‘전원도시(Garden city movement)’와, 프랑스의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로 대표되는 일련의 건축가들이 중심이 된 이른바 ‘모더 니즘 건축운동’을 들 수 있다.

하워드는 1898년 출판된 『내일의 전원도시』(

Garden Cities of To-morrow

)에서 도시와 전원의 성격을 함께 지닌 인구 3만 가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한 소도시를 건 설하여 도시환경을 개선할 것을 주장했다(하워드 2006). 그의 제안은 곧바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불러 일으켜 1899년에는 전원도시협회(Garden City Association) 가 설립되었고, 1903년에는 전원도시주식회사가 창설되어 런던에서 35마일 떨어진 곳에 최초의 전원도시인 레치워스(Letchworth)가 건설되었다(김혜천 외 2002: 65).

1919년 1차대전 종전 후에는 또 다른 전원도시 웰윈(Welwyn)이 건설되었고, 1945 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는 유럽과 미국 각지에 다양한 형태로 변형·수용되어 세계 각지에 전원풍의 신도시가 건설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전원도시 모 델이 추구한 소도시 건설 중심의 해법으로는 점증하는 대도시로의 인구 집중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었다. 도시 주거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전원도시 모델이 제안한 녹지 중심의 환경친화적 개념을 유지하면서도, 제한된 대지에 최대한 많은 거주민을 수용할 수 있는 계획안이 필요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20세기 건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축가 중 하나인 르 코

르뷔지에는 1922년 발표한 “300만 인을 위한 현대도시”(Contemporary City for Three Million Inhabitants) 계획안과 뒤이은 일련의 저작들에서 ‘녹지 위의 고층 주거’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다분히 기능주의적이며, 기하학적 질서에 바탕 을 둔 건축을 추구한 그가 제안한 도시는 충분한 녹지공간과 공동시설에 수직적으 로 연결된 고층의 집합주택들로 구성되었다. 그의 주장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1928년에는 그의 주장을 지지하는 각국 건축가들에 의해 CIAM(Congrès Internationaux d’Architecture Modern)이 결성되어 95개조로 된 아테네 헌장 (1933년)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르 코르뷔지에는 도시의 네 가지 기능으로 주거·여가·근로·교통을 선정하여, 주거단위를 중핵에 두고 이들 기능의 상호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도시계획의 주된 역할이라 주장했다. 녹지와 태양, 공간을 이상도시 의 목표로 하는 CIAM의 주장은 이후 각국의 도시계획이나 주택지계획 속에 정착해 갔다(김혜천 외 2002: 65).

특히 1920년대 이후 새로 등장하기 시작한 일(一)자형 아파트는 CIAM을 위시한 모더니즘 건축운동을 주도하던 건축가들에게 가장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주거형식으 로 받아들여졌다.30) 건축가들은 일자형 아파트를 활용한 건물 사이의 간격 확보를 통해 하나의 단지 안에 녹지와 외부공간을 용이하게 마련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곧 유럽과 미국 도시 각지에 일자형 아파트들로 구성된 공공 주택단지가 대거 등장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르 코르뷔지에 역시 자신이 설계한 이상적 고층 집합주택인

‘위니테’(Unite d'Habitation)를 1952년 마르세유에 건설하면서 일자형 아파트를 채 택하여 이를 적극 지지하였다. 위니테는 높이 62미터, 길이 135미터, 폭 24미터의 거대한 일자형 아파트로, 1층은 필로티(piloti), 2층은 상점가, 옥상은 광장으로 구성 되었으며 나머지 층에 340가구 1,500~1,600명 정도가 생활하도록 설계되었다(김현 숙 2003: 62). 르 코르뷔지에는 이 같은 고층아파트 형식을 통해 일체의 공동체를 제공하는 새로운 도시주거 모델을 제시하고자 하였으며, 여러 개의 위니테가 모여 하나의 도시가 형성될 수 있다고 구상하였다.31)

그러나 이처럼 세계 각지로 확산되어 간 모더니즘 건축운동은 기계적인 기능주의 와 과도한 표준화에 입각하여 실제 도시생활의 복합적인 측면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무엇보다 모더니즘 건축운동의 구상은 “모든 사람은 동

30) 현대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냥갑 모양의 일자형 아파트는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도시 공간 획일 화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그것이 처음 등장했던 20세기 초에는 사정이 달랐다. 일자형 아파트는 가로와 광장, 중정(中庭) 등을 기본으로 하던 기존의 서구 도시 공간 개념에서 벗어나, 비용을 최소화한 공간의 효율적 배치를 가능케 하였으며, 이는 모더니즘 건축운동의 이상과도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더 자세한 일자형 아파트의 일반화 과정에 대해서는 손세관(2000: 301-311)을 참조하시오.

31)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이 같은 르 코르뷔지에의 구상은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아파트 단지 도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