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2000년대 이후 국내 아파트의 고급화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변화는 브랜 드 아파트들의 ‘게이티드 커뮤니티화’ 현상이다. 앞서 Ⅰ장에서 소개한 것처럼 게이 티드 커뮤니티라 불리는 주거단지 형태의 급속한 확산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56) 부동산 뱅크 2005년 8월 25일 기사, “아파트 이름이 운명 바꾼다” 참조.
57) 이 절의 내용 중 일부는 졸고(2012: 47-54)를 통해 발표된 바 있다.
각지의 도시공간에서 일어난 주요 변화 중 하나였으며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한국에서 ‘게이티드 커뮤니티’라 했을 때 가장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는 주 거형태가 바로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이다(남영우·김정희 2007). 무엇보다 게이티드 커뮤니티의 주된 특징으로 꼽히는 빗장지르기를 통한 공간분리라는 측면에서 가장 잘 들어맞는 주거단지가 바로 이들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들이기 때문이다. 조은진 (2007)의 지적대로, 타워팰리스와 같은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의 방어적이면서 구심 적인 공간구성은 강한 배제의 이미지와 상징을 만들어낸다. 단지 중앙에 배치된 정 원 공간을 핵심으로 하여 단지 자체가 외부로부터 단절된 하나의 거대한 구조를 이 루고, 이러한 구조가 “열려 있되 닫힌 공간”이자 하나의 “자기충족적 삶의 공간”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조은진 2007: 125). 이 같은 공간배치뿐 아니라 전자출입시스 템과 입주민만을 위한 출입증, 경비원들의 신분확인 등 철저한 출입통제 시스템 역 시 이곳의 공간적 배제를 강화하는 요인들이다. 동시에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의 폐 쇄성은 입주민들로 하여금 “방어적 공간과 주민공용시설의 사적 공간화”(최정민 2008: 68)를 선호하도록 하였고, 단지 내의 다양한 부대시설은 그들만의 동질성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상호교류와 활발한 근린활동을 가능케 한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이경희·채혜원 2004).
이처럼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의 장점으로 부각된, 외부로부터 차단된 공간배치와 단지 내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부대시설들은 2000년대 지어진 브랜드 아파트 단 지들에도 대부분 적용되었다. 안전과 보안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며58) 외부차량과 외 부인의 진입 차단을 위한 전자출입시스템이 도입되어 일반화되었으며, 이는 그렇지 않아도 주변 도시공간으로부터 단절된 측면이 강했던 아파트 단지들의 배타적 폐쇄 성을 더욱 강화하였다. 또한 단지 구석구석마다 CCTV가 설치되어 24시간 동안 단 지 내부를 감시하게 되었고, 필요한 경우 신속히 관리상황실과 연결할 수 있는 전자 경비시스템 역시 구축되었다. 이렇듯 빗장지르기(gating)의 측면에서 볼 때, 한국에 서 주거단지의 폐쇄성은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에만 국한되지 않고 한국사회의 가장 일반적인 주거양식인 아파트 단지로 확대되어 온 것이 사실이었다. 김석경(2004)의 지적대로, ‘인텔리전트 아파트’라는 단어의 보급과 더불어 이루어진 각종 보안장치 들은 어느새 한국사회 전반에 게이티드 커뮤니티의 보급을 촉진시켜 온 것이다.
물론 앞선 절에서 지적한 것처럼, 과거 한국의 아파트들이 단지 단위의 폐쇄성을 구현하며 배타적 성격을 지녀온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정도는 2000년대 들어 더욱 심화되었다고 봐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국내 아파트 단지들의 물리적 폐쇄성을 다
58) 과거와 비교하여 범죄율이 특별히 더 높아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초·중반 한국사회 전반에서 안전과 보안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원인에 대해서는 더 세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서는 뒤의 Ⅳ장에서 다루게 될 것이다.
룬 김지은(2012: 44)의 연구를 보면, 물리적 차원에서의 출입통제가 시간이 갈수록 증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연대별로 살펴보면, 1970~80년대에 건축된 아파트 단지 들은 정문초소와 각 동의 출입구를 관리하는 경비원이 있긴 하지만 자동차와 도보 를 통한 단지 내부로의 출입은 비교적 자유로웠다. 그러다가 80년대 말 자동차 보 급이 늘어나면서 90년대 건설된 아파트들은 단지 입구에 정문초소와 바리게이트를 두고 외부 차량을 제한하기 시작했으며, 각 동 출입구에는 개별인식시스템을 설치하 여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59) 이어 2000년대에는 단지 전체에 통합경 비시스템이 적용되어 외부차량과 외부인의 출입이 더욱 철저히 관리되기에 이르렀 다는 것이다.
특히 2000년대 브랜드 아파트들이 보여준 폐쇄성의 면모는 별도의 물리적 영역성 구현과 그 내부에서의 배타적인 커뮤니티 활동에서 잘 드러난다. 이들 아파트들은 단지 외곽에 높은 담장을 설치하고, 차별화된 단지 내 조경을 시도하면서 주변 지역 과 구별되는 영역성 확보에 나서게 되었다. 우선 조경 측면에서 모든 주차장을 지하 에 건설하여 지상으로는 보행자만 다닐 수 있게 한 보차분리(步車分離) 시스템을 도 입한 아파트 단지들이 생겨났고, 그렇게 확보한 지상 공간에는 고급 수목을 심고 인 공 실개천이 흐르는 산책로를 배치하여 마치 공원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하 였다. 그리고 이렇게 마련한 물리적 공간에 의한 영역성은 그를 바탕으로 한 나름의 공동체 의식이 배태되는 환경조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국내 도심에 위치 한 상당수 브랜드 아파트 단지들에서는 헬스클럽이나 볼링 동호회, 노래교실 등 단 지 내 입주민들만을 위한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들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전상인 2009: 101-116 참조).
아래의 내용에서는 최근 브랜드 아파트 단지에서 관찰되는 ‘게이티드 커뮤니티화’
의 구체적인 양상을 살펴보기 위해 본 연구의 연구대상 단지인 성일 노블하이츠의 물리적 특징 및 입주민 활동을 개관하고자 한다. 연구자가 현장연구를 수행한 ‘성일 노블하이츠’는 수도권 소재 도시인 연주시 성일동에 위치해 있던 ‘성일주공아파트’
를 재건축하여 지어진 단지로, 2003년부터 공사에 들어가 2007년 완공되었다. ‘노 블하이츠’는 대한건설협회가 매년 발표하는 국내 건설사 시공능력평가 순위에서 최 상위권에 위치해 온 스타건설이 2000년대에 런칭한 브랜드이며, 다른 유명 건설사 59) 아파트 경비와 관련하여 신문기사 검색을 해보면, 아파트 경비원의 경우 이미 국내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인 마포아파트에서부터 두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동아일보 1968년 4월 29일 기사, “마 포아파트서 殺人” 참조). 하지만 외국인 연구자의 시선에서 한국의 아파트를 바라 본 줄레조(2007) 와 렛(Lett 1998)도 지적하고 있듯이, 아파트 경비원들의 주 업무는 출입통제였다기보다는 입주민들 의 생활편의 지원 쪽에 가까웠다. 그러던 국내 아파트 단지들에 무인경비시스템이 처음 도입된 것은 대략 1992년에서 1993년 사이의 일로(매일경제 1992년 4월 16일 기사, “無人 경비시스팀 도입”;
동아일보 1993년 8월 11일 기사, “아파트 無人경비장치 첫선”), 경비실을 없애는 대신 비밀번호와 출입카드 등을 이용해 입주민들만 주동에 출입할 수 있도록 했다.
들의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톱스타 모델을 활용한 적극적인 광고전략으로 인지도를 높여 왔다. 비록 성일 노블하이츠가 서울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유명 아파트 단지―
‘반포 자이’나 ‘반포 래미안’과 같은―는 아니라 하더라도, 기본적인 공간배치와 관 련한 특성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으므로 2000년대 초중반 이후 국내 브랜 드 아파트 단지의 대략적인 현황을 보여주는 데에는 충분할 것이다.
성일 노블하이츠가 위치한 성일동은 연주시 전체를 통틀어 입지가 가장 좋은 곳 에 해당한다. 도보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시청과 시립도서관, 예술회관 등 주요 공공 시설이 위치해 있고,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쇼핑시설과 근린공원, 멀티플렉스 극장, 종합버스터미널, 각종 금융기관, 대형병원 등 각종 편의시설 역시 단지 주변에 밀집 해 있어 이 지역은 이른바 ‘연주의 강남’으로 불리기도 한다. 교통 측면에서도 서울 로 향하는 지하철 역사가 근접해 있으며, 주요 고속도로에도 쉽게 진입이 가능한 지 역이어서 자가용이나 광역시외버스를 이용하여 서울로 쉽게 오갈 수 있는 편의성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브랜드 아파트 단지가 도시 중심부의 가장 ‘노른자위 땅’에 들 어서는 경향은 연주시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의 도시들에서 관찰되는 사실로, 주로 교외에 고급 주택단지가 위치한 미국이나 영국과는 대조적인 양상을 보여준다.60) 이 는 도심 개발 과정에서 행정, 소비, 교통, 주거, 교육 등과 관련한 자원이 특정 지역 에 편중되어 온 한국의 도시화가 낳은 결과이며, 한국사회의 전형적인 ‘중심에 대한 욕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같은 좋은 입지에 더해, 게이티드 커뮤니티로서의 브랜드 아파트 단지가 지니 는 특징은 무엇보다도 도시 주변 지역으로부터 시각적으로 차별화된 영역성의 확보 라 할 수 있다. 다른 많은 브랜드 아파트 단지들과 마찬가지로 성일 노블하이츠 역 시 단지 외곽에서 바라보았을 때 이 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성일 노블하이츠는 약 20만 제곱미터의 부지에 최저 17층, 최고 37층의 아파트 약 60동―약 5천여 세대가 입주 가능한―으로 구성된 초고층 대단지 아파트로, 높이와 넓이에서 주위를 압도하 는 경관을 과시한다. 또한 대로에 인접한 단지 외곽에는 약 10미터 높이의 방음벽 이 단지를 둘러싸고 있어서 가시적·상징적 장벽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61) 또한 단지 로 들어오는 3개의 차량 출입구마다 게이트를 설치하여 차량 출입을 제어하고 있으 60)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본고의 Ⅳ장 1절을 참조하시오.
61) 다수의 국내 아파트 단지들, 특히 2000년대 이후 지어진 브랜드 아파트 단지들의 경우 도로와 인 접한 단지 외곽에 높은 방음벽을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임을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방음벽은 일 차적으로 소음 차단을 위한 기능적 목적에 의해 설치되지만, 그 높이와 규모가 주는 위압감은 아파 트 단지를 주위로부터 물리적·심리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지니기에 충분하다. 이와 관련하여 이경 훈(2011)은 국내 아파트 단지들의 방음벽을 타인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도시 생활에 대한 막연한 두 려움에 기인한, 자발적 게토의 징표로 해석한다. 소음뿐 아니라 사람과 풍경을 모두 막아서는 거대 한 방음벽은 도시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사적인 공간만은 자연의 고요함을 간직하길 바라는, 이기적 이며 모순적인 ‘한국형 쾌적함’의 표상이라는 것이다(이경훈 2011: 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