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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한국의 아파트 단지 발달 과정 전반을 파악하기 위한 문헌조사와 사례 연구를 위한 특정 아파트 단지에서의 현장연구(fieldwork)19)라는 두 가지 연구방법

19) 다른 인류학 용어들처럼 ‘fieldwork’라는 단어 역시 여러 번역어가 존재한다. 한국 인류학계에서 흔히 사용하는 ‘현지조사’를 비롯해 ‘현장조사’, ‘현장연구’, ‘당지(當地)연구’ 등 ‘fieldwork’를 가리 키는 용어는 다양하다. 본 연구가 채택한 번역어는 ‘현장연구’로, 이는 연구자가 최근 출간된 방법론

에 기초하여 진행되었다. 우선 연구자는 문헌조사를 통해 아파트 단지가 어떤 역사 적 과정을 거쳐 한국의 도시환경에 뿌리내리게 되었는지 살피고자 했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발표된 아파트 관련 단행본 및 논문, 정부기관의 발표자료 등을 검토했으 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국내 아파트의 도입사(導入史)를 재구성하였다. 특히 2000 년대 이후 국내 건축학계를 중심으로 현대 한국의 도시화 전반과 주거공간의 역사 적 변천을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한 결과물들이 다수 등장하였는데, 이들의 존재는 연구자의 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 문헌조사 과정에서 연구자가 주안점을 둔 것은, 서구사회에서 처음 등장하여 주목받던 시기만 하더라도 저소득층 주거지로 여겨졌 던 아파트 단지가 한국에서는 어떠한 사회적 배경과 맥락을 통해 지금의 고급 브랜 드 아파트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되짚어보는 작업이었다. 아파트 단지와 관련한 물리 적 형태의 변화 과정을 살피는 작업과 함께 부동산 시장 전반의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정부기관과 언론사, 은행 등이 발표한 각종 통계자료들도 수집하여 분석하였 다. 이와 같은 작업을 거쳐 도출된 결과물들은 본문 Ⅱ장의 주요 내용을 이루는 한 편, 다른 장들에서도 전반적인 사회적 상황을 전달하기 위한 배경자료로 활용되었 다.

문헌조사와 더불어 본 연구에서 활용된 핵심적인 자료들은 2011년 초부터 2013 년 초까지 2년 가까이 진행한 현장연구를 통해 얻게 되었다. 연구를 위해 선정한 단 지는 서울에 인접한 수도권 소재 도시인 ‘연주시 강산구 성일동’20)에 위치한 ‘성일 노블하이츠’이다. 이 단지는 과거 5천여 가구로 이루어진 ‘성일주공아파트’가 있던 10만여 평의 부지 가운데 약 60%를 차지하는 부분에 위치해 있다. 해당 부지에서 2003년 시행된 재건축사업으로 성일주공아파트 단지는 ‘성일 노블하이츠’와 ‘성일 로열카운티’라는 두 개의 단지―모두 합치면 90여개 동 약 9천 가구에 달하는―로 분리되었고, 본 연구는 이 중 하나인 성일 노블하이츠를 연구대상 단지로 삼았다.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대규모 재건축사업 중 하나였던 당시의 재건축은 국내 굴지의 건설사들인 ‘스타건설’과 ‘로열건설’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수주하여 진행하였고, 2007년 완공되어 같은 해 8월 입주가 시작되었다.

교과서인 『인류학 민족지 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이용숙 외 2012)에서 제기한 입장에 공감하기 때 문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현장’이라는 용어는 현대 복합사회의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상황들 을 지칭하기 수월하고, ‘연구’라는 표현 역시 기존의 ‘조사’라는 표현이 지닌 부정적 뉘앙스로부터 자유롭다는 장점을 지닌다(이용숙 외 2012: 22-23).

20) 대부분의 인류학 현장연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만, 연구자 자신이 자문화(自文化)를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경우, 특히 본 연구처럼 재산권 보호가 민감한 경우에 대해서는 최대한의 사생활 보호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본 논문에 등장하는 모든 지명과 브랜드명, 인명을 100% 가명으로 처리하였으며, 각종 수치 정보들도 정확한 값이 불필요한 경우에 대해서는 근사치 값만을 제공하거나 사실과 조금 다른 값으로 바꿔 표시하였다. 또한 연구대상 아파트 단지와 관련한 기본 정보 중 몇 가지 사항에 대해서도 정보보호 차원에서 사실과 다르게 기술하였음을 밝혀둔다.

성일 노블하이츠는 약 60개동 5천여 세대로 이루어졌으며, 최저 17층, 최고 37층 건물로 구성된 초고층 대단지이다. 단지 외곽을 두른 약 10미터 높이의 방음벽과 단지 내부로 향하는 차량 출입구마다 설치된 게이트, 1천여 개에 달하는 CCTV 등 의 존재는 물리적 측면에서 이 단지의 공간적 폐쇄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성일 노블하이츠는 지상 전체를 공원과 같은 조경공간으로 조성하고 모든 주 차장을 지하에 건설하여 연주시 일대에서는 최초로, 국내 전체를 통틀어서도 꽤 이 른 시기에21) 소위 ‘차 없는 단지’를 실현한 곳이기도 하다. 이 같은 공간 형태는 2000년대 중반 이후 건설된 대부분의 브랜드 아파트 단지에 적용되어 왔으며 따라 서 물리적 구조의 측면에서 성일 노블하이츠는 최근 한국의 아파트 단지를 살피기 위한 연구대상으로 충분한 조건을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사회적 측면에서 이 단지는 서울이 아닌 수도권 도시의 중심부에 소재한 1천 세 대 이상의 대단지가 지닌 특징들을 공유한다.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경기·인천 지역 의 아파트 단지는 한국사회에서 아파트 단지를 평가하는 주요 지표인 부동산 가격 에서 서울 중심부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각 도시마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중심지에 해당하는 지역이 존재하고 이곳의 아파트 단지들에는 해당 도 시의 중산층 이상 계급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거주한다. 이는 해당 단지들로 하여금 도시 내 주거의 상징적 위계에서 우위를 차지하도록 하며, 특히 대단지의 경우 이른 바 그 도시의 ‘랜드마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이 점에서 성일 노블하이 츠는 연주시를 대표하는 대단지 중 하나로 연주시 전체에 알려져 있다. 서울 강남의 유명 단지들을 정점에 둔 한국의 아파트 위계에서 최상층은 아니지만, 수도권의 연 주시에서는 규모와 상징성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단지가 바로 성일 노블하 이츠인 것이다.

이렇게 선정한 연구대상 단지가 한국의 아파트를 대표하는 서울 강남 한복판의 유명 단지―반포 자이, 반포 래미안 등과 같은―가 아니라는 사실로 인해 본 연구의 대표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는 본 연구가 갖는 중 요한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아무리 한국이 이른바 ‘아파트 공화국’(줄레조 2007)이라 불릴 정도로 아파트 단지로 뒤덮인 도시환경을 자랑한다 한들, 엄밀히 말 해 강남의 아파트 단지와 비(非)강남의 아파트 단지는 다르다. 1960년대 이후 근대 화 과정에서 “한국사회의 돈과 권력이 집중된”(강준만 2006: 9) ‘강남’이라는 지역 성 자체가 강남의 아파트 단지들에 어느 정도 ‘부동산 가격의 하방경직성(下方硬直 性)’을 담보해주는 것과 달리, 강남 이외 지역의 아파트 단지들에서는 주택가격을 좌우하는 요인들이 다종다양하다. 경제적·사회적 자원과 학력자본에서 강남이 최상 21) 참고로, 국내에서 이 같은 형태의 브랜드 아파트 단지를 대표하는 ‘반포 자이’(서울시 강남구)의 입

주는 성일 노블하이츠보다 1년여가 늦은 2008년 12월부터였다.

위에 놓여 있는 현실에서, 강남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들이 한국의 주류사회를 지배 하는 ‘위세경쟁’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강남을 향한 모방 기제(짐멜 2005b) 에 충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만약 강남이라면 강남의 지역성 자체가 해결해주었을 아파트의 ‘가치 상승’ 요인들을 다른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만들 어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22) 또한 이는 아파트 단지에서 특유의 집단성 을 만들어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양영균의 지적대로 한국인들의 자산의 주요 부분 이 주택인 상황에서 아파트 가격은 매우 민감한 문제이며, 따라서 “같은 단지 거주 자들은 아파트 가격을 유지, 인상시키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를 갖고 이를 위해 공동 의 노력을 아끼지 않기”(양영균 2012: 41)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놓인 이들 이 펼치는 다채로운 활동양상과 삶의 궤적은 본 연구가 주목하는 지점들이 되었다.

한편 연구자가 성일 노블하이츠를 연구대상으로 선정하게 된 데에는 연구를 위한 접근성 확보라는 측면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먼저, 연구주 제 선정 및 연구과정과 관련한 연구자의 경험을 언급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2000 년대 중반 이후 수도권 각지에 들어서기 시작한 브랜드 아파트23)들을 밖에서 바라 보며 현대 한국사회의 공간분리를 상징하는 징후를 떠올렸던 연구자는, 2009년경 우연히 성일 노블하이츠에서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였다. 이 과 정에서 처음 브랜드 아파트 단지 내부에 들어가 보게 된 연구자는 브랜드 아파트 특유의 배제적인 공간구조가 주는 묘한 이질감을 ‘체험’하는 한편으로, 이 같은 공 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자체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는 곧바로 2000년대 한국사회가 낳은 고유의 산물인 브랜드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 로 한 본격적인 연구에 대한 구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연구자 본인이 브랜드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지 않는 상황에서 주로 중·상 류층이 살고 있는 브랜드 아파트에서의 현장연구를 위해 연구허가를 얻어내기는 쉽 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연구대상을 물색하던 과정에서 다행히 개인적 인맥을 통해 성일 노블하이츠 부녀회 임원진과 매우 가까운 사이의 주민을 만날 수 있었고, 이는 기존의 아르바이트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익숙해 있던 성일 노블하이츠를 구체적 인 연구대상으로 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연구자는 그를 통해 부녀회 임원 및 22) 물론 그렇다 하여 강남의 입주민들이 아파트의 경제적 가치 상승을 위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

는다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언론보도들이 보여주듯 강남의 아파트 단지들 역시 부녀회를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방어를 위한 여러 집합적 행동을 취한다. 여기서 연구자의 논지는 강남 입주민들이 ‘행 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강남 이외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강남이라면 하지 않을 집단 차원의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23) 뒤의 본문에서 더 상세히 다루겠지만, 아파트의 ‘브랜드화(化)’는 2000년대 한국의 아파트가 겪은 다양한 변화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이다(본 논문의 Ⅱ장 3절 참조). 특히 여기서 연구자가 언급 한 ‘브랜드 아파트’는 앞서 연구의 배경을 소개하며 언급한 것과 같은, 각종 출입통제 시스템과 지 상공간의 공원화를 통해 주변 지역과 구별되는 특유의 영역성을 확보한 아파트 단지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