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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아파트의 건립과 시민아파트

국내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인 마포아파트는 1962년 12월, 같은 해 공포된 대한주 택공사법에 의해 대한주택영단에서 이름을 바꾼 대한주택공사가 건립하였다. 정부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에 따른 주택사업의 하나로 의욕적으로 추진 된 이 아파트는 여러 가지 면에서 국내 아파트 도입 역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 다. 원래 계획에 따르면 마포아파트는 10층 높이 건물에 엘리베이터와 중앙집중식 난방 등을 설치하여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시설을 갖춘 대규모의 공동주택단지 로 건설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전반적인 사회분위기는 이 같은 마포아파트의 계획안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언론에서는 열악한 전기 사정과 전반적인 자원 부족 상황을 감안할 때 엘리베이터와 중앙난방은 무리라며 반대의사를 표명하였고, 수세식 화장실에 대해서도 서울시 수도국에서 마실 물도 귀한 판에 무슨 수세식 화 장실이냐고 반대했다(대한주택공사 1992: 101). 결국 이 같은 여론의 반대에 당초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되었다. 건물 높이는 10층에서 6층으로 낮아졌고 엘리베이터 설치도 무산되었으며, 난방 역시 세대별 연탄보일러 시설로 변경되면서, 최종적으로 는 6층 높이의 10개동 642세대가 마포구 도화동에 건설되었다.37)

비록 당초 계획에는 미치지 못하는 상태로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건립된

37) 마포아파트는 두 차례에 걸쳐 건설되었는데, 우선 1차로 1962년 12월 Y자형 아파트 6개동이 450 가구 규모로 지어졌으며, 1964년 11월에는 2차로 판상형(일자형) 아파트가 4개동 192가구 규모로 건립되었다. 건물 높이가 6층으로 정해진 것은 엘리베이터 설치가 무산되면서, 당시 서구에서 엘리 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의 최고 높이가 6층이었던 점을 참고했기 때문이었다.

마포아파트는 다른 주거지들에 비해 시설과 규모 면에서 여전히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여론의 반대로 무산된 시설들과 달리 계획안대로 설치된 수세식 화 장실과 입식 부엌은 서구식 생활의 편리를 상징했으며, 단지 내에 따로 마련된 놀이 터와 넓은 잔디밭 조경 역시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또한 6층이라는 높 은 층수가 만드는 거대한 건물은 당시에는 상당히 파격적이었으며 Y자형으로 지어 진 독특한 외형은 상징성을 부각시키기에 적합했다(전남일 2010: 260). 이처럼 여러 모로 기존 주거지에 비해 차별화된 시설은 마포아파트가 다분히 중산층 이상을 겨 냥해 지어진, 이후 이른바 근대식 주거의 전파를 위한 일종의 모델 역할을 맡았던 주거단지였음을 보여준다.

마포아파트의 건축에는 20세기 중반까지 서구를 위시한 세계 각지의 도시계획을 지배한 모더니즘 건축운동이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마포아파트가 건설된 1962 년 당시 대한주택공사의 건설이사였던 건축가 홍사천의 기고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이러한 도시의 입체화는 도심지는 초고층을, 그 주위는 6층 정도의 <아파트>

를 그리고 불광동, 수유동쯤의 교외는 3층 정도로 하며, 정부의 융자로는 단층주택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불란서는 1952년에 <말쎄이유>에 <르, 꼴뷰줴>[르 코르뷔지에]의 제안에 의한 총면적 15,000평, 337세대가 입주할 수 있는 17층의 거대한 <아파트>를 건설했는데, 이것과 동일한 주택수를 단독주택으로 건설한다면, <아파트>의 약 100배 의 대지가 필요하다. 이 <아파트>의 대담성은 1,600인이라는 많은 인구를 한 집에 몰 아넣었다는 것이 아니고, 이 건물 안에 시장에서부터 유치원에 이르기까지 일체의 <코 뮤니티><쎈터>를 계획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말쎄이유>의 도심지가 아니라 교외에 건립되었다.

[...]

교외에 <아파트>를 건설함으로써, 자기의 뜰은 가질 수 없으나, 좀더 넓고 좋은 뜰 을 공동으로 소유할 수 있을 것이다. 마포<아파트>의 좋은 환경을 보면 수긍이 갈 것 이다. 또한 온수, 난방, 수세식 변소 등의 향상된 시설은 단독주택으로는 값이 비싸므 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 교외에 <아파트>로 고층화시키므로서, 대지를 절약 하고, 좋은 환경에 향상된 시설을 가진 생활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홍사천, 「住宅問題雜感」, 『건축』 8권 1호(1964년) 10쪽)

1964년 대한건축학회지인 『건축』에 기고된 이 글에서 홍사천은 인구의 도시 집중 으로 인한 교통난과 주택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도시의 입체화, 즉 고층화를 주장한 다. 그 준거로 들고 있는 것이 바로 르 코르뷔지에가 1952년 마르세유에 건설한

‘위니테’―앞서 서구 도시의 발달 과정에서도 언급했던―인데, 여기서 위니테는 토지

<사진 2-4> 마포아파트 단지 준공 당시의 모습

※ 사진 출처: 국가기록원, CET0035584

절약과 공동생활의 편의성이라는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주장은 위 니테에서 실현된 르 코르뷔지에의 계획안―‘녹지 위의 고층주거’ 개념으로 대표되는

―을 국내에도 적용하여 단독주택 건설을 지양하고 적극적인 아파트 건설의 추진을 통해 공간 이용의 효율성이 극대화된 공동주거단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동 시에 이는 곧 아파트 건설을 통해 주택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당시 대한주택공사의 계획 방향과 의지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이와 같은 대한주택공사의 정책은 당시 집권층의 생각 및 기본적인 정책 추 진방향과 그대로 맞물리는 것이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산업화와 근대화를 기치로 삼아 사회 전반에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왔는데, 주거 분야에서 이 변화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공간의 재조직을 통해 생활 전반의 근대화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마포아파트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치사(致辭)는 마포아파트, 더 나아가 아파트 전반에 대해 당시 집권층이 어떤 관점을 갖고 접근했는지 드러내주고 있다.

오늘 이처럼 웅장하고 모든 최신 시설을 갖춘 마포아파트의 준공식에 임하여 본인 은 수도 서울의 발전과 이 나라 건축업계의 전도를 충심으로 경하하여 마지않습니다.

도시(都是) 5·16혁명은 우리 한국 국민도 선진국의 국민처럼 잘 살아 보겠다는 데 그 궁극적인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루라도 속히 빈곤으로부터 벗어나서 잘 입고 잘 먹고 좋은 집에서 잘 살기 위해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수립하였고 현재 성 공리에 진행 중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시책도 국민의 협조 없이는 도저히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는 것이며 이제까지 우리나라 의식주생활은 너무나도 비경제적이고 비합리적인 면 이 많았음은 세인이 주지하는 바입니다. 여기에 생활혁명이 절실히 요청되는 소이(所 以)가 있으며 현대적 시설을 완전히 갖춘 마포아파트의 준공은 이러한 생활혁명을 가 져오는 데 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커다란 의의라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나라 구래(舊來)의 고식적이고 봉건적인 생활양식에서 탈피하여 현대적인 집 단공동생활양식을 취함으로써 경제적인 면으로나 시간적인 면으로 대다한 절감을 가 져와 국민생활과 문화의 향상을 이룩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인구의 과도한 도시집중화는 주택난과 더불어 택지가격의 앙등을 초래하는 것이 오늘의 필연적인 추세인 만큼 이의 해결을 위해선 앞으로 공간을 이용하는 이러 한 고층 아파트 주택의 건립이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바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각광을 받고 건립된 본 아파트가 장차 입주자들의 낙원을 이 룸으로써 혁명한국의 한 상징이 되기를 빌어 마지않으며 끝으로 이 사업을 성공적으 로 완수시킨 대한주택공사 총재 이하 전임직원과 기술자 여러분의 노고를 높이 치하 하는 동시 이 자리에 입주할 문화시민 여러분의 행복을 길이 빌어 마지않습니다. 감사 합니다.

(‘마포아파트 준공식 치사’, 대한주택공사 1979: 237-238에서 인용)

이 치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국의 기존 생활양식을 “너무나도 비경제적이 고 비합리적인”, “고식적이고 봉건적인 생활양식”이라 진단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 한 ‘생활혁명’의 계기로 마포아파트의 준공을 평가하고 있다. 이 지점에 이르러 드 디어 한국의 아파트는 처음 아파트가 탄생했던 서구에서와 다른 역할을 부여받게 된 셈이다. 서구의 아파트 단지가 주로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대책으로 제공되었다 면,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단순히 주택난 해결의 역할을 넘어 근본적인 생활양식의 변혁을 주도해야 하는 매개체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마포아파트는 단순히 한 국에서 처음 지어진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소위 조국 근대화의 상징이자 생활혁명 의 시금석이었으며 전 국민의 문화시민화(文化市民化)를 추동하기 위한 생활혁명의 전시장”(박철수 2006: 10)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니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최고권력자의 확고한 의지 표명을 바탕으로 한 정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아파트 생활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고층주택 에 대한 불안 등으로 여전히 아파트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좋지 않았고, 결국 마포 아파트의 준공 직후 입주자는 전체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 상 황에서 뜻하지 않게 마포아파트에서 연탄가스 문제가 발생하였고, 이것이 아파트에 대한 불신과 결합하며 ‘아파트에서의 인체실험’이라는 에피소드를 탄생시키기도 했 다.

그 해 겨울 날씨가 유난히 추웠는데 이와 같이 아파트가 거의 대부분이 빈집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빈집을 통과하는 파이프가 동파되기 시작했고, 마포아파트에서 처음으 로 연탄가스 문제가 발생하였다. 즉 모든 세대의 입주가 완료되었다면 배기가 잘 될 터인데 드문드문 입주를 했기 때문에 연탄가스 배출이 잘 안되어 입주자들이 불안해 하였다. 공사에서는 인체 기능과 가장 비슷하다는 모르모트 6마리를 구하여 여러 방에 가둬놓고 실험을 했는데 가스 중독은 없었다. 그러나 입주자들이 인간과 모르모트는 다르다고 주장하므로 드디어는 인체실험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때의 현장소장 등 직원들은 밤새 돌아다니면서 입주자들의 안부를 점검했고 야밤 중인 2시, 3시에도 입주자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

이러한 사태로 현장소장은 신경쇠약증에 걸렸고 건축부장은 시달리다 못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인체실험을 하겠다 하여 술을 마시고 가장 가스가 많이 샌다는 방에 하룻밤 투숙을 했으나 이상은 없었다.

(대한주택공사 1992: 101-102)

결국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연탄가스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해소되고 대한주택공 사 측의 홍보가 효과를 거두면서 차츰 아파트에 대한 인식은 높아지게 되었다(장성 수 1996: 93). 게다가 당시로선 보기 드문 현대적인 조경 요소와 서구적인 이미지로 인해 마포아파트는 많은 영화촬영 무대로 활용되었으며, 이는 마포아파트의 상징적 가치를 더욱 제고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처럼 여러 가지 면에서 “근대적 주거가 가져올 상징적 의미, 그리고 이를 확산시키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를 대변”(전남일 외 2008: 195)했던 마포아파트는 본 연구의 문제의식인 ‘게이티드 커뮤니티로서의 아파트 단지’라는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국내 최초의 단지 형 아파트인 마포아파트는 동시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주변에 담장을 설치한 아파트 단지이기도 했으며, 단지 내부의 각종 근린시설 역시 외부인에게 차단되어 있었던 것이다(김지은 2012: 10-11; 박철수 2006: 74 참조). 즉,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그 출발에서부터 단지 외곽에 담장을 치고 외부인을 배제하는 것을 관행으로 삼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