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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투융자의 확충 (1961~1979)

제2장

2. 재정투융자의 확충 (1961~1979)

1961년부터 약 20년간 지속된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기에서 경제정책의 가장 핵 심적인 특징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수립과 집행이라 할 수 있다. ‘경제개발 5개년

9) 정부대행기관은 생산․구매․판매 또는 배급에 있어서 정부를 위하여 공공의 사업 또는 기능 을 수행하는 법인인데(한국은행법 제77조), 1950년대 초에는 17개 기관(석탄공사, 해운공사, 광업진흥공사, 조선운수 등)이 있었으나 2010년 현재에는 비료업무를 취급하는 농협중앙회와 한국자산관리공사의 부실채권정리기금 두 개가 해당된다.

10) UN군 대여금이란 한국은행이 UN 참전국들의 물자, 용역 구입 및 수송에 필요한 원화경비를 대여하고 차후 달러로 상환받는 금액을 말한다.

계획’은 국민경제 전반의 자원제약하에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기 위해 달성해 야 할 제반 총량지표의 계획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국민총생산과 성장률의 목표치 를 설정하고, 국민경제의 거시모형 내에서 이러한 목표를 실현가능하도록 하는 제반 총량변수들의 값을 관리하는 것이다. 계획에 포함되는 총량변수들로는 1차․2차․3 차 산업구조의 비중, 소비지출, 투자지출, 국민저축률(민간 및 정부), 해외저축률, 수 출, 수입, 경상수지, 환율, 물가 등이 있다.

이와 같이 경제개발계획은 국민경제 내의 ‘총자원 예산(Overall Resource Budget)’을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부문의 세입과 세출을 관리하는 재정운용 이상의 의미 를 가진다. 국민경제는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으로 대별될 수 있는데 정부는 공공부문 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의 소비 및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지도하고 관리하였던 것 이다. 따라서 이 기간 중 재정정책은 통화, 금융, 환율, 외환수급, 수출, 수입, 물가관 리 등 여타의 정책수단과 함께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는 보조적인 수단으로서 인식 되었다 할 수 있다. 더구나 조세부담률과 재정규모 비율이 매우 낮았기 때문에 재정 정책을 통해 국민경제의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상당한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부록의

<표 A-1> 참조).

이 기간 중 시행되었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의의와 특징은 크게 세 가지를 지 적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국민경제의 총량지표와 40여 개를 넘는 하위부문들이 체계적으로 정렬되었기 때문에, 정부는 국민경제 전반의 자원제약하에서 실행가능 한(또는 지속가능한) 계획을 수립하였다. 둘째, 정부는 5개년을 단위기간으로 하여 달 성가능한 목표, 개발전략(정책과제), 그리고 주요 프로젝트들을 선택하였다. 물론 이 당시 제안된 많은 투자사업들은 객관적으로 검증가능한 수요예측 자료에 근거하지 않았지만 선정과정에서 우선순위가 설정되고 실행가능한 투자계획이 수립되었다.

셋째, 경제개발계획 수립과정에서는 부문별로 다양한 기술자, 기업가, 경제학자, 정 책전문가, 관료 들이 포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많은 국민의 합의와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이 기간 중에는 경제개발을 위한 국내의 가용재원을 극대화하기 위해 민간저축을 장려함과 동시에 정부저축을 확대하기 위하여 세제를 지속적으로 개편하였다. 그리

고 재정부문에서 이루어진 실물자본 형성을 위한 각종의 투자 및 출자는 모두 재정 투융자라는 개념으로 구분 계리하였다. 재정투융자란 자본축적을 위한 재정의 기능 을 의미하는데, 재정투융자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재정지출의 주안점을 자본축적 에 두는 지출구조 개편을 유도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경제개발을 위해 재정정책의 핵심이 자본축적에 있어야 한다는 인식은, 다음의 인용문에 잘 표현되어 있다.11)

“후진국에 있어서 경제개발을 이룩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자본축적 의 증대이다. 초기자본주의와 현대공산주의는 저임금, 격심한 소득의 불공평 또 는 소비재 생산의 억제를 통하여 국민생활을 낮은 수준에 머무르게 함으로써 높은 저축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느 방법도 오늘날 민주정치 를 지향하는 후진국에서는 적용될 수 없다. 때문에 유일한 타개책으로는 소비 억제에 의한 민간저축의 증대와 더불어 정부투자로의 확대전환이 긴요하게 되 었으며 조세는 경제성장의 결정요인인 한계저축률을 높이는 가장 좋은 정책수 단이 된다. … (중략)

후진국에 있어서의 재정정책의 특색은 선진국에서 발전한 이론이 그대로 적 용될 수 없다는 제약을 가지면서, 첫째 정책의 기본목표는 경제의 성장에 있으 며, 둘째 이를 위하여는 무엇보다 먼저 자본축적과 투자증대가 급선무이며, 셋 째 정부의 경제통제는 직접통제보다는 재정 및 금융정책을 통한 간접통제와 유 도의 방법이 되어야 하며, 넷째 왜곡된 기존 투자 패턴을 적정 투자패턴으로 인 도하여야 한다.”

특히 재정융자는 1961년 예산회계법이 제정될 때 기금제도가 도입되면서 한층 더 강화되었다. 기금은 세입세출예산 외로 운용되기 때문에 일반회계, 특별회계와 달리 국회의 승인을 받지 않고 각 정부부처의 장이 설치 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기금 제도 도입과 함께 공무원연금기금, 군인연금기금이 신설된 후 1980년도에 이르기까 지 약 30여 개의 기금이 설치되었다. 이들 기금 중에서는 융자를 목적으로 하는 기

11) 경제기획원, 「재정투융자 해설」, 1964, p.2에서 인용.

금들이 다수 설치되었는데, 1981년 말 현재 국민투자기금, 산림개발기금, 기계공업 진흥기금, 농업기계화촉진기금, 관광진흥개발기금, 국민주택기금, 농수산물가격안정 기금 등 13개 기금이 여기에 해당된다.

정부는 경제개발계획의 목표 총량을 달성하기 위하여 조세 및 재정정책뿐만 아니 라 통화․금융, 외환, 물가, 무역․관세, 산업, 노동 등 모든 정책수단들을 동원하였 다. 우선 한국은행은 1962년 2월 ‘금융부문자금운용규정’을 제정하여, 금융부문의 자금운용에 대해 양적 그리고 질적 통제를 강화하여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 을 크게 강화시켰다. 또한 농수산업, 중소기업, 서민금융 등에 특화하는 정부소유 및 정부통제하의 각종 특수은행들을 다수 설립 개편하였으며, 장기산업자금의 공급과 장기금융기능의 확대를 위하여 기존의 한국산업은행 기능을 크게 확대하였다. 통 화․금융정책뿐만 아니라 환율 및 가격결정에서도 적극적인 통제를 가하였는데, 1961년 12월 말 외국환관리법을 제정하여 매각집중제로 수집된 외국환의 수급계획 심의, 정부외환사용계획의 집행 및 그 결과의 심사분석 등을 재부무 소관의 외국환 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