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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금융위기와 재정논쟁 (1997~2007)

제2장

4. 외환․금융위기와 재정논쟁 (1997~2007)

1980~1996년 기간 중에는 긴축적 재정기조가 유지되었다 할 수 있지만 이러한 긴축은 강력한 지도와 통제에 의해 추진되었으며 재정제도를 합리적으로 운용한 결 과라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기간 중에는 건전재정기조라는 특징 이외에 재정제 도와 운용의 획기적 변화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다만 1990년대 초반에 이루어진 선 진국들의 다양한 정부개혁 및 재정개혁 경험들, 예컨대 뉴질랜드, 영국, 호주 등 OECD 국가들의 정부개혁이 1996년경부터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이에 대한 논의 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16) 이러한 논의는 1997년의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채택된 공공부문 개혁작업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이 기간 중 재정운용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으로는 한국은행 차입을 크게 줄이며 본원통화 증발에 대한 부담을 상당 부분 줄였다는 것이다. <표 A-1>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국은행 차입에 의한 보전재원은 1980년 2,640억 원, 1981년 4,530억 원 등 으로 크게 늘어났으나, 1982년 이후 한국은행 차입은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대신 국 채발행에 의한 보전차입이 크게 늘어나기 시작하며, 통화증발의 부작용을 수반하지 않으면서 국가채무를 증가시키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개선하는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1998년에 등장한 공적자금이라는 용어는 외환위기의 극복과정에서 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위하여 전통적인 재정의 영역 이외에서 정부가 조성한 자금을 말한다. 전통적으로 정부는 일반회계와 특별회 계 외에도 각종 국유재산과 기금 그리고 공공기관들을 통제하고 있었는데, 이들 중 에서 국회의 승인에 의해 집행되는 자금은 일반회계와 특별회계에 한정되었다. 결국 공적자금은 국회의 통제를 벗어나 행정부가 재량적으로 동원 집행할 수 있는, 일반 회계와 특별회계 이외의 제반 자금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형태의 자금이 포함된다. 첫째, 국유재산, 전대차관, 한국 은행 그리고 공공자금관리기금의 부담으로 조성된 자금을 들 수 있다. 둘째, 정부가 부실채권정리기금(자산관리공사 관리 운용)과 예금보험기금(예금보험공사 관리 운용)의 부 담으로 채권을 발행하여 조성한 채권발행자금을 들 수 있다. 정부는 이들 채권에 대 하여 국회의 동의를 받아 보증하였는데, 이들을 통상 공적자금으로 불렀기 때문에

‘협의의 공적자금’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영어 문헌에서 ‘Public Money’란 재정의 영역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공적자금이라고 번 역하며 국가 재정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것이다.17)

정부가 외환위기의 극복과정에서 사용한 공적자금에 대해 1999년 이후 야당에 의 해 본격적으로 문제가 제기되었다. 1999년 가을 국회 대표연설을 통해 제기되었던 국가채무 논쟁은 2000년 4월 13일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급속하게 다시 점화되었 다. 2000년 3월 8일 한나라당은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전면 광고를 통해 ‘200조 원이 넘는 나라 빚’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3월 13일에는 한나라당 이한구 선거대책위원 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채무를 총선의 쟁점으로 본격 부각시켰다. 공적자금 조성 을 위한 정부보증 채무뿐만 아니라 국민연금 관련 잠재채무 186조 원도 국가채무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국가채무에 대한 논쟁은 2000년 4월 총선이 끝난 후에도 공적자금에 대한 국회

17) 미국 헌법 제1조(Article Ⅰ) 제9절(Section 9)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다. “법률로 규정된 지출승인(appropriation)에 의하지 않고는 재정부(the Treasury)로부터 어떠한 금전도 인출 될 수 없으며, 모든 공적금전(public money)의 수입과 지출에 관한 정기적인 보고와 계정은 수시로 공표되어야 한다.”

논의가 이루어질 때면 계속 제기되었다. 2001년 5월 한나라당은 ‘국가부채 백서’를 발간하며 국가채무가 1,000조 원에 달한다고 정부 여당을 몰아붙였다. 이에 대하여 기획예산처는 공식적으로 공표되는 국가채무는 IMF 기준을 준수한 것으로서 정부 보증채무, 공적연금채무, 중앙은행 채무는 국가채무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반박하였 다.

공적자금과 국가채무 등과 같은 재정에 관한 이슈가 정치적 논쟁의 핵심으로 등 장하기 시작한 것은 재정정책의 시대적 중요성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 다. 특히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우리나라가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것이 올 바른 정책방향인가에 대해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진보적 가치의 실 현을 국정기조의 중요한 축으로 천명하였는데,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실질적 인 예산배분에서 성장보다 복지를 증액하는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기 시작하였다. 이 는 매년의 예산편성 과정에서 ‘성장 대(對) 복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재정의 분야별 배분을 조명해 본다면, 우리나라는 여타 선진국에 비해 경제사업의 비중이 대단히 높고 사회복지 분야의 지출이 매우 낮았다. OECD 주요국을 중심으 로 분야별 재정지출의 비중을 비교하면, 사회복지지출과 관련되는 정부기능, 즉 보 건, 사회보호에 대한 지출의 비율이 우리나라는 22.3%에 불과하였지만, OECD 국가 들의 평균은 51.2%에 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우리나라도 성장을 위 한 경제사업보다 복지분야의 지출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2003년 이후 본격 제기하였던 것이다.

매년 예산편성 과정에서 정부의 이러한 입장에 대해 반론은 주로 두 가지 측면에 서 제기되었다. 하나는, 복지분야의 지출은 실질적으로 의무적 지출이 많아 현행 제 도하에서도 고령화 진전에 따라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측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 행 제도하에서도 복지분야에 대한 정부지출 비율이 현행 OECD 평균에 가까울 것 으로 전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조세부담과 국민부담을 제고하여 사 회복지지출을 증가시키는 것은 경제발전 정도, 국가규모, 인구구성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우리나라가 일반적인 선진국보다 다소 이른 감이 있다는 지적을 하였다 [이영(2007) 참조].

또 다른 반론은, 우리나라의 재정규모 등을 보여주는 통계가 국제적 기준과 다르 기 때문에 이에 기초한 판단은 착시현상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재정규모, 정 부부채, 조세부담 등이 OECD 선진국보다 낮은 것은 재정규모 통계를 산정하는 재 정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하고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를 세계 최고의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국가 중 하나로 간주하거나, 재정규 모가 작아 국가가 충분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는 인식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 적하였다.

특히 이 후자의 지적은 우리나라가 큰 정부인가 아니면 작은 정부인가를 논쟁할 때 핵심적인 이슈로 등장하였다. 2006년 4월 5일 중앙일보는 ‘대한민국 정부는 큰 정부? 작은 정부?’라는 탐사기획보도에서 우리나라의 GDP 대비 재정규모가 정부통 계처럼 28.1%가 아니라 국제기준으로 37.9%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당시 기획 예산처 장관은 ‘국가 기본질서 왜곡’ ’통계조작’ ‘악의적이고 정치적 의도’라고 즉각 반발하며 상당 기간 동안 재정범위에 대한 논쟁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이와 같이 국가채무, 재정규모, 복지지출 등 재정문제가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되 었는데, 1997년 외환위기 직후에는 정부 및 재정제도의 문제점을 본격 인식하며 이 에 대한 개혁작업이 전방위적으로 추진되었다. 특히 1998년 정부는 경제위기 극복 을 위해 금융, 기업, 노동, 정부 등 4대 부문 개혁을 추진하였는데, 이들 개혁의 핵심 은 시장 메커니즘의 회복을 통한 효율성 제고에 있었다. 민간주도, 시장경제, 기업가 적 경영, 경쟁과 개방 등이 당시 개혁의 화두였던 용어들로서 개혁의 방향을 시사하 였다. 이러한 방향은 1980년대 이후 미국, 영국, 뉴질랜드 등 선진국들이 추진한 정 부개혁의 방향과 일치하는 것인데, 학계에서는 신공공관리론(NPM, New Public Management)으로 지칭되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작지만 효율적으로 봉사하는 정부 구현’을 공공개혁의 모토 로 삼았다. 경제위기 직후 정부가 추진한 공공개혁의 핵심적 특징으로는 공공개혁을 전담하는 기구를 정식 정부기구로 설치한 것이다. 과거 정부에서는 외부전문가들을 위원으로 하는 위원회 형태의 임시적 자문조직을 구성하고, 이들이 공공개혁에 관한 각종 아이디어를 정리하여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에 보고하면,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가 이를 관련 부처가 추진하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1998년 정부는 이 런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공개혁을 전담하는 기구로서 정부개혁실을 정식 정부조직으로 출범시키고 여기에 다수의 외부전문가들을 영입하였던 것이다. 이러 한 추진체계가 채택되었던 이유는, 공공부문의 속성으로 인해 공무원들에 의한 자율 적 개혁을 추진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림 2> 공공부문개혁 추진방향(1998~2002)

자료: 기획예산처, 「국민의 정부, 공공개혁백서」, 2002년 12월, p.7 참조.

작지만 효율적으로 봉사하는 정부 구현

구조조정 (작은 정부)

운영시스템 혁신 (효율적인 정부)

대국민서비스 개선 (봉사하는 정부)

인력감축 공기업 민영화

자회사 정리 방만경영 쇄신

․산하기관 폐지・통폐합

․외부위탁

․자산매각

․퇴직금누진제 개선

자율․경쟁․성과원리 도입

․책임운영기관제

․개방형 직위제

․성과연봉․상여금제 재정운영의 효율화

․기금제도 정비

․준조세 정비

․예산절약 인센티브제도

․성과주의예산제도

․복식부기회계제도

전자정부 구현 행정서비스헌장

민원업무 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