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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지표의 신뢰성 제고

제2장

1. 재정지표의 신뢰성 제고

1998년 공적자금 투입에 따른 국가채무 논쟁, 2004년 이후의 증세 대(對) 감세, 성 장 대(對) 복지 논쟁, 그리고 2006년의 재정규모 논쟁과 2009년의 국가채무 논쟁 등 은 모두 우리나라 재정지표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들이다. 이들 논쟁은 우 리나라 재정지표의 국제적 비교가능성을 두고 정부, 여당과 야당의 대립관계로 표현 될 수 있다. 지난 10여 년간 지속된 재정지표에 대한 논란은 점차 국가채무에 초점 을 맞추고 있는데, 많은 재정지표들 중에서 국가채무가 가장 핵심적인 지표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98년 이래로 행정부 재정당국(기획예산처와 기획재정부)은 한결같이 우리나라 재정지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한나라당의 이한구 의원을 제외한) 정치권은 여야 간의 입장이 바뀔 때마다 그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여당이 되 면 행정부 입장을 지지하고, 야당이 되면 행정부 입장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기획재정부의 한결같고 공식적인 입장은 우리나라 국가채무가 국제적인 비교지표 로서 아무런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정부회계에 발생주의, 복식부기가 완벽하 게 도입된다면 재정지표가 크게 개선될 것이고, 이 경우에도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 에 대한 현행 진단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반면 1997년부터 재정지표 의 문제점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옥동석(2009)은 우리나라의 국가채무가 국제적으 로 비교가능한 ‘일반정부 총금융부채’와 개념적으로 완전히 다른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논란은 발생주의, 복식부기와 무관하며 재정범위와 회계 또는 계 정범위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고 있다.26)

이제 여기서는 국가채무 논쟁과 관련된 주요 반론과 재반론들을 정리하며 이에 대한 입장들이 어떠한지 하나씩 살펴보기로 한다.27) 첫째, 우리나라의 재정범위가 국제기준과 달리 자금단위(즉, 일반회계, 특별회계, 기금 등)로 파악되고 있지만, 이러한 사정이 미국, 일본 등 선진국도 마찬가지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일본을 제외한 거의 모든 OECD 국가들은 재정범위를 제도단위로 파악하고 있으며, 또한 미국은 연방정부와 별도의 법인격을 갖는 ‘정부통제 공공기관’이 없기 때문에 제도단위 기준의 재정범위와 자금단위 기준의 재정범위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유럽연합에서는 유럽통계청(EUROSTAT)이 개별 회원국의 재정통계를 비교적 엄격하게 점검하기 때문에 국제기준을 적절히 준수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둘째, IMF 등 국제기구가 나름대로 조사하여 공표하는 재정통계 지표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만약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의 재정통계 지표들도 신뢰할 수 없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IMF 등 국제기구는 재정통계의 처리지침과 기준만을 제시할 뿐 개별 국가가 제출하는 재정통계의 신뢰성까지 담보 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IMF 등 국제기구가 개별 국가의 재정통계 시스템 전 반을 점검 조사하여 재정통계를 공표하는 것은 아니다.

셋째, 재정범위를 제도단위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들을 재정범위(또는 일반 정부)에 포함되는 준정부기관과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공기업들을 구분해야 하는데, 기획재정부도 ‘자체수입 비율’이라는 ‘시장성 기준’으로 체계적인 구분을 이미 하고 있다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만약 ‘자체수입 비율’을 기준으로 한다면 우리나라 공공기관들 대부분은 공기업이기 때문에 재정통계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 다. 그러나 ‘자체수입 비율’을 사용하여 준정부기관까지 망라한 재정통계는 아직 생 산된 적이 없으며, 더구나 준정부기관과 공기업의 구분은 ‘시장성 기준’이라는 단일

26) 국가채무와 ‘일반정부 총금융부채’의 차이는 국가와 일반정부라는 재정범위의 차이, 채무와 부채라는 회계 또는 계정범위의 차이로 요약될 수 있다.

27) 여기서 정리한 주요 의문들은 일반인과 기자들의 문의 내용, 각종 보도자료 및 해명의견, 비 공식적 토론 또는 의견교환 과정에서 제기된 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의 지표로써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IMF, UN 등의 국제기준에 의하면 공공기관의 전반적인 거버넌스와 사업내용을 복합적으로 감안하여 구분해야 한다. 또한 ‘시장성 기준’은 ‘매출수입 비율’을 지칭하는데 우리나라가 자의적으로 고 안한 ‘자체수입 비율’은 적절한 기준이라고 할 수 없다.

넷째, 우리나라에서 UN의 SNA지침에 따라 국민소득통계를 생산하는 한국은행은 기획재정부와 달리 제도단위로 재정통계를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은행의 재정 통계에는 문제가 없다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행의 재정범위(또는 일반정부)는 공공기관들을 극히 제한적으로 포함하고 있으며, 또 공공부문 전체를 망 라한 후 체계적 기준에 따라 재정범위를 파악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한국은행의 재 정통계도 국제적인 기준에 크게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다섯째, 각종 정책금융(금융성기금 포함) 기관들은 금융공기업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재정범위에서 제외한다면 재정지표는 현행에 비해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한다. 다시 말해 ‘매출수입 비율’을 기준으로 준정부기관/공기 업을 구분한다고 하더라도, 이들 기관의 사업은 시장이자율을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공기업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UN이 2008년에 발간한 SNA지침과 EU의 제반 지침에 의하면, 금융기관은 정부보증과 자기책임이 특히 중요한 판단기 준으로서 정책금융을 수행하는 대부분의 기관들(특히 부실채권정리 등을 수행하는 공공기 관)은 준정부기관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여섯째, 공기업은 재정범위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공기업의 채무 또한 재정지표에 서 완전 배제될 수 있다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IMF는 2001년에 공기업 이 수행하는 정책적 사업에 대해서는 ‘거래의 재분류’를 통해 재정범위에 포함할 것 을 요구하고 있다. 더구나 IMF는 2007년 ‘재정투명성 지침(Manual on Fiscal Transparency)’에서 준재정활동(Quasi-Fiscal Activities)을 재정통계에 포함할 것으로 명 시하고 있으며, 특히 2008년의 세계적 금융위기 이후에는 금융활동에 대한 준재정 활동에 대해 각별한 주의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28)

일곱째, ‘사회기반시설 민간투자사업’에 대한 미래의 정부지급금을 채무 또는 부채

28) IMF(2009), p.7 참조.

로 인식하는 것은 아직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기준이 아니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 다. 그러나 UN은 1993년 SNA지침에서 이미 대규모 시설물에 대한 리스를 금융리 스와 운영리스로 구분하여 전자에 대해서는 부채로 인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 회기반시설 민간투자사업’은 전 세계적으로도 1990년대 후반부터 활성화되었는데, 2000년대 후반부터 유럽연합은 이들에 대한 계약(즉, 실시협약)을 면밀히 분석하여 위 험의 상당 부분을 정부가 부담한다면 금융리스로 간주하여 부채로 인식할 것을 요 구하고 있다.

이러한 제반 논쟁들을 말끔히 해소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또한 각각의 쟁점 들에 대해 보다 객관적이고도 비정치적인 시각에서 전문가들의 합의된 입장을 정리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할 것이다. 또한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면 장기 와 단기 과제를 구분하여 순차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 거시재정운용에 대해 국 민적 신뢰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방법으로 재정총량지표가 생 산될 수 있도록 국회 내에서 여야 간의 합의와 공감대가 반드시 형성되어야 할 것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