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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인력수급의 질적 불균형

문서에서 : 경쟁사간 수평적 제휴를 중심으로 (페이지 148-154)

현재 한국의 대학교육은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능력을 가진 양질의 인재를 육성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우리는 자주 대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능력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조리있는 설명을 접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막연하게 생각하면 산업

현장에서 필요한 인력이란 취업과 동시에 바로 현장에 투입되어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근로자라고 생각하기 쉽다. 즉 “즉시” 사용가능한 “준비된” 졸업생을 양산할 수 있는 대학교육이 필요하다는 요구로 해석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다. 이는 기업이 원하는 직업교육의 의미를 지극히 좁게 해석한 것으로서 일부 정책 당국자들, 언론 그리고 대학 경영자들이 갖고 있는 인식이다. 이와 같은 해석은 사실상 잘못된 것이라 는 것을 곧 보이겠지만 일단 이 해석이 옳다고 가정해 보자.

대학교육이 즉시 사용 가능한 고급인력을 육성해 내는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 는 대학교육이 직업교육vocational education 중심으로 대폭 재편되어야 하며 대학의 조직 과 교육내용도 산업구조의 변화와 더불어 계속적으로 변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 대학교육을 직업교육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서는 일반교양교육liberal education을 강조하는 4년제 종합대학을 대폭 축소 내지 폐지하고 기능습득과 자격증취득을 위주 로 하는 전문대학 중심의 고등교육체제로 전환하는 일이 불가피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특정산업이 요구하는 인력을 효과적으로 공급하는 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는 사범대학, 경찰대학, 사관학교 등이 있는 것처럼, 금융산업대학, 자동차산업대학, 전자 /반도체산업대학, 컴퓨터 소프트웨어대학 등의 형태로 특정 산업 또는 관공서를 위한 맞춤식 교육을 하는 대학조직이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시행되고 있는 형태의 학부제로는 이와 같은 본질적인 대학개편작업을 이루어 낼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 자명한 것이다.

만약 고등교육기관이 기업활동에 즉시 사용될 수 있는 인력을 배출하고 기업이 이 들을 고용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실제로 크게 기여할 수 있다면 기업들 은 자금을 투자하여 필요한 인력을 양성시키는 교육기관을 직접 설립하거나 기존 교 육기관의 교육내용을 기업의 필요에 부합하는 맞춤식 교육으로 바꾸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부담할 의사가 있을 것이다. 포항공대와 한라공대와 같은 기업에 의한 교육기 관의 설립과 최근 경영, 공학, 디자인 등을 중심으로 대학원 과정에서 활성화되고 있 는 산학협력에 의한 교육과정개발이 그 좋은 예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시장 원리이다. 왜냐하면 기업에 의한 교육참여와 교육비용분담이 제도화되어야 비로소 기 업들의 맞춤식 고등교육에 대한 수요의 강도가 얼마나 되는지가 교육시장에 효과적으 로 반영되고, 따라서 자원배분의 효율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경제에서 기업들의 인력육성과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는 지극히 제한적으로 이루 어지고 있는 실정이며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앞으로 기업에 의한 교육투자와 산 학협력의 대폭적인 확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고급인력수급의 질적 불균형이 대학교육이 추가적인 훈련없이 즉시 사용 가능한 인력을 배출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는 해석은 기업의 단기적인 이윤추구동기와 맥 이 닿아 있지만 이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기업의 단기 적인 이윤추구의 동기의 배후에는 고급인력이 한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라는 인식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즉 대학에서 갓 졸업한 인력을 아무런 추가적인 교육이나 훈련없 이 일정기간 사용하다 기업환경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을 용도폐기(해고) 하고 새로운 대학졸업자로 대체하면 된다는 생각이 바탕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 와 같은 단기적인 안목에서의 인력관리는 교육투자의 수익성을 크게 떨어뜨리고 사회 보장비용을 가중시키는 부작용이 있을 뿐 아니라, 지식경영이 강조되는 현재의 기업 환경에서 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이와 같은 해석은 실제로 기업이 원하는 대학교육의 모습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은 수 없다. 강성원 외(2001)의 기업의 대학교육 만족도에 대한 설문 조사는 기업이나 산업이 요구하는 대학교육은 유연하고 창의적이며 자기 개발능력이 뛰어난 인력을 양성해서 노동시장에 공급해 주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들이 선정한 조사 대상기업은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등 대도시에 소재한 정보통신, 전기전자, 의상디자인 산업에 속해 있는 기업들을 산업별로 층화 추출한 것이다. 추출 된 기업은 총 301개인데 이 중 정보통신산업에 속한 기업은 171개, 전지전자산업에 속한 기업은 62개, 의상디자인산업에 속한 기업은 68개이다. 이들 추출된 기업들은 인사담당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였으며, 또한 동시에 경력 3년 미만의 대졸신입사원 들을 432명 추출하여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설문조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이 설문조사가 타겟으로 삼은 정보통신, 전기전자 및 의상디자인산업은 전문성이 어느 분야보다 요구되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설문대상자의 37.4%가 대학에서의 전 공과 직장에서 수행하는 업무간에 큰 관련이 없다고 응답하였다(<그림 6> 참조). 비전 공자들을 채용하는 이유로는 조사대상기업 인사담당자들의 25.6%가 인성과 기초능력 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답하였으며 48.4%는 일정기간의 훈련만 거치면 차이가

<그림 6> 대졸신입사원의 전공과 직무의 일치도

26

36.7

12.9 14.5

10

0 5 10 15 20 25 30 35 40

%

매우 관련있다

대체로 관련있다

그저 그렇다

별로 관련없다

전혀 관련없다

구분

자료 : 강성원 외(2001), 「기업의 대학교육 만족도 조사연구」에서 인용

<표 7> 비전공자를 채용하는 이유

(단위 : 빈도(%))

구 분 의상디자인 전기전자 정보통신 계

업무에 관련된 전공자를 구하기

어려우므로 7( 10.6) 6( 10.9) 24( 15.2) 37( 13.3) 전공자도 회사의 고유한 업무수행에

대해 학교에서 배우지 않으므로 5( 7.6) 10( 18.2) 12( 7.6) 27( 9.7) 전공능력보다는 인성과 기초능력이 더

중요하므로 20( 30.3) 13( 23.6) 41( 25.9) 74( 26.5) 일정기간의 훈련만 거치면 업무를 수

행하는 데 지장이 없으므로 34( 51.5) 25( 45.5) 76( 48.1) 135( 48.4) 기 타 - 1( 1.8) 5( 3.1) 6( 2.2) 계 66(100.0) 55(100.0) 158(100.0) 279(100.0) 자료 : 강성원 외(2001), 「기업의 대학교육 만족도 조사연구」에서 인용

없기 때문이라고 답하였다(<표 7> 참조). 또한 실제로 조사에 참여한 기업들에서 추출 된 432명의 사원들 중 72%의 사원들이 비전공자의 직무수행 능력이 전공자와 별 차이 가 없다고 응답하였으며, 23%의 사원들만이 전공자에 비해 직무수행 능력이 떨어진다 고 응답하였다.10) 대졸 신입사원의 92.1%가 인성과 태도가 직장생활에 중요하거나 매 우 중요한 요소라고 응답하였으며, 88.9%가 기초능력 및 지식이 직장생활에 중요하거 나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응답하였고, 88%가 전공지식이 직장생활에 중요하거나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응답하였다(<표 8> 참조). 조사대상 산업이 전문지식이 매우 강하게 요구되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인성 및 태도, 그리고 기초적인 능력과 지식이 유용하 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오히려 많았다는 점은 앞의 <표 3>에 인용된 미국 상무성의 21세기가 요구하는 근로자의 자질에 대한 보고서와도 일맥상통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 요가 있다.

일부 정책 당국자들, 언론 그리고 대학 경영자들이 갖고 있는 잘못된 인식에 따라

<표 8> 대졸 신입사원의 직장생활에 중요한 요소

(단위 : 빈도(%))

구 분 전혀

중요치 않음

중요치

않음 보 통 중요함 매우

중요함 합 계

기본적인 인성

및 태도 3(0.7) 4(1.0) 26( 6.2) 154(36.9) 230(55.2) 417(100.0) 기초적인 능력

및 지식 1(0.2) 3(0.7) 42(10.0) 226(54.3) 144(34.6) 416(100.0) 전문지식과 능력 2(0.5) 3(0.7) 45(10.8) 173(41.5) 194(46.5) 417(100.0) 자료 : 강성원 외(2001), 「기업의 대학교육 만족도 조사연구」에서 인용

10) 강성원 외(2001)의 기술책임자에 대한 면접조사에 따르면 “업종에 따라 전공자 선호도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전공자가 더 낫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비전공자라도 추가적인 교육과 개인적 노력에 따라 단시간에 업무수행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반면 전기전자 분야는 이 분야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전기 전자관련 기술업무를 수행하기는 불가능하며 비정규교육이나 개인적 노력을 통해서 이 분야의 업무능력을 신장시키기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에 전공자 선호경향이 높다고 한다. 다른 한편, 의상디자인 분야는 대학의 의류학과에서 가르치는 내 용이 실무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고 소위 “끼”와 경험, OJT가 중요하므로 비전공자, 특히 미대 출신 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였다.”

대학교육이 개별기업의 특수한 요구에 대한 맞춤식교육이 되는 것은 기술적인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비용측면에서도 효율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대학교육은 기초능력과 지식이 튼튼하고 조화로운 인성과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태도를 갖춘 고급인력을 배출 함으로써 기업들이 훈련기간과 훈련비용을 줄이고 교육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된다. 기초가 튼튼한 인력은 변화하는 기업환경 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고 재교육에 소요되는 기간과 비용도 절감하는 효과가 있으 므로 장기적인 기업경쟁력 제고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학부제가 대학교육의 내용을 이와 같은 방향으로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제도인가? 제3장에서 논의하였듯이 학부제 도입이 야기한 가장 큰 변화는 기 초학문의 위축과 이에 따른 위기의식이다.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을 함께 가지고 있지만 부정적인 측면이 너무 강하다고 판단된다. 우선 긍정적인 면을 보면, 전공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학생수가 줄어든 일부 기초학문관련 전공들은 생존 을 위해 교과과정과 교육내용을 학생들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바꾸어 나 가고 있다. 다양한 교육방법이 시도되고 있으며 시의성 있는 내용으로 교육과정을 수 정하려는 노력이 일고 있다는 점은 학부제가 정체된 대학가를 깨우는 자극제의 역할 을 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 일단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조금 깊이 생각해 보면 이러한 생존을 위한 변화의 노력들이 대학교육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지 않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 기초학문의 지나친 위축 자체도 문제이지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취하고 있는 기초학문과련 전공들의 교과과정 개편은 학생의 거부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쉬운 과목과 쉬운 교육내용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기업과 산업이 원하는 것은 하드 트레이닝을 통해 탄탄한 기초지식과 바람직한 인성과 태도 를 갖춘 고급인력인 데 반해 현재 대학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바람은 기초가 부실하고 대충 쉽게 사는 데 익숙해진 졸업자들을 양산하는 체제로 대학교육을 몰아가고 있다.

둘째, 지식의 라이프사이클이 기초학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아서 시의성 있는 교육 이 매우 중요한 응용학문관련 전공들은 계속적으로 교과과정과 교육내용을 업데이트 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학부제하에서 소위 인기전공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가만 히 있어도 학생들이 넘치기 때문에 교과과정을 업데이트하기 위해 노력할 인센티브를 오히려 상실하고 있다. 종합해 볼 때, 산업수요에 유연하게 대처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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