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토기의 출현
토기는 인간이 화학적 변화를 깨닫고 이용한 최초의 발명품이다. 신석기인들은 우연한 기회 에 흙을 불에 구우면, 돌처럼 단단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사람들은 흙으로 그 릇모양을 빚고 겉면에는 여러 가지 무늬를 새긴 후 불에 구워 만든 토기를 사용하였다.
토기는 식량의 저장과 운반뿐만 아니라 음식 의 조리에도 이용된 당시의 가장 훌륭한 도구였 다. 토기 발명 이전에 그릇으로 사용되었던 가 죽주머니나 식물줄기로 엮은 바구니는 식량을 저장하고 운반하는 데는 유용하였지만, 물을 저 장하거나 불을 이용한 음식조리에는 한계가 있 었다. 그러나 새로이 만들어진 토기는 물을 저 장하거나 불에 직접 닿아도 변형이 이루어지지 않아, 액체를 저장하고 음식을 조리하는 데 적 합하였다. 토기를 음식의 조리에 이용하게 됨에 따라, 이전에는 날로 먹거나 불에 구워야만 먹 을 수 있었던 음식을 삶거나 쪄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날로 먹으면 질기거나 인체에 유 해한 성분이 있어 먹기 어려웠던 식물자원도 먹 을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그대로는 떫어서 먹을 수 없는 도토리는 토기에 채운 물 속에 담아 우 려내거나 삶으면 귀중한 식량이 되었다. 불확실 한 사냥 대신에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식 물자원을 식량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식생활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식생활의 안 정으로 사람들은 한 곳에서 비교적 오랫동안 머 물면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토기를 신석기시대의 지표로 보아 토기의 출현 시점을 신석기시대의 시작으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토기는 제주도 고산리 유적 에서 확인된 무늬가 없는 갈색토기이다. 이 토
기는 한결같이 조각으로 출토되어 구체적인 내 용은 알 수 없으나, 토기를 빚을 때 바탕흙[胎 土]에 풀 같은 유기물을 첨가하였던 흔적이 남 아 있다. 이들 토기조각은 눌러떼기 기법으로 제작된 소형 화살촉과 함께 출토되었는데, 이는 한반도 본토에서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던 문 화양상이다. 즉 구석기시대의 석기제작기술과 신석기시대의 토기제작기술이 공반하는 양상으 로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의 전이과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유적의 형성연대도 지 금까지 신석기시대 시작연대로 알려진 기원전 6,000년 무렵 보다 앞선 기원전 8,000년경으 로 추정됨에 따라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시작연 대도 앞당겨지게 되었다.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토기는 모양을 만들거 나 무늬를 베푸는 방법에 따라 덧무늬토기[隆起 文土器], 누른무늬토기[押文土器], 빗살무늬토 기[櫛文土器]로 나눌 수 있다. 이 밖에도 겉면에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무문양토기가 있다.
덧무늬토기는 토기 겉면에 진흙 띠를 덧붙이 거나 겉면을 손끝으로 집어 눌러 돋게 하여 여 러 가지 덧무늬를 장식한 토기이다. 기원전 6,000년 기원전 4,000년 무렵에 사용된 이 토 기는 제주도 고산리 유적의 무늬없는 갈색토기 가 발견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토 기로 인식되어 왔다. 주로 부산 김해를 중심으 로 하는 동 남해안에서 출토되고 있지만, 동해 안지역에서 강원 고성 문암리, 양양 오산리 등 에서 출토되고, 충북 단양 상시 바위그늘 등 내 륙지역에서도 출토되는 등 그 분포범위가 넓어 지고 있어, 조사가 진행되면 범위가 더 넓어질 가능성도 있다. 부산 동삼동, 경남 통영 상노대 도 조개무지 등에서 빗살무늬토기 출토층(出土
層)보다 아래층에서 출토되어 빗살무늬토기보 다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누른무늬토기는 토기 아가리[口緣部] 주변에 만 무늬새기개[施文具]로 누르거나 찔러서[押 引· 押捺] 무늬를 돌린 토기이다. 무늬는 손톱 무늬[爪文], 붓두껍무늬[竹管文], 짧은 빗금무 늬[短斜線文] 등과 이들 무늬들이 복합된 무늬 가 있다. 덧무늬토기와 비슷한 분포양상을 보이 는데, 동남지방은 둥근바닥이, 강원도와 동북 지방은 납작바닥이 주류를 이룬다. 기원전 5,000 기원전 4,000 경에 제작·사용되었다.
빗살무늬토기는 기원전 5,000년경 중서부지 방을 중심으로 나타난 새로운 양식의 토기로, 형태는 대체로 바닥이 뾰족한 포탄모양이다. 토 기 겉면은 점과 선으로 구성된 기하학적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이른 시기에 제작된 빗살무늬토 기는 겉면을 세 부위로 나누고, 각기 짧은 빗금 무늬[短斜線文], 생선뼈무늬[魚骨文], 빗금무늬 [斜線文]로 장식하는 규칙성을 보인다. 중서부 지방의 빗살무늬토기는 기원전 3,500~3,000 년 무렵 한반도 전 지역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 다. 이전의 덧무늬토기와 누른무늬토기에 비해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되고 있 어 우리나라 신석기문화를 빗살무늬토기문화라 고 부르기도 한다.1)
2. 빗살무늬토기의 지역성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된 빗살무늬토기는 시 간과 지역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그릇 생김새와 장식무늬에 따라 크게 중서부지 방, 남부지방, 동북지방, 서북지방 등 4개의 지 역군으로 나눌 수 있다. 각 지역에서도 시대에 신석기의 문화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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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빗살무늬토기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넓은 의미로는 덧무늬토기를 포함하여 신석기시대 토기를 총칭하고, 좁은 의미로는 포탄모양의 형태에 토기 겉면에 침선(沈線)으로 기하학적 무늬를 새긴 토기를 일컫는다. 여기서는 좁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따라 무늬의 종류와 장식방법에 차이가 있다.
중서부지방에서는 곧추선 아가리에 뾰족바닥 [尖底]의 포탄모양으로 입지름에 비해 높이가 긴 길쭉한 형태를 띤 토기가 특징이다. 무늬구 성은 시기적인 차이를 보인다. 토기 겉면을 세 부위로 나누고, 각기 다른 무늬로 채웠던 전기 양식은 점차 무늬가 생략되거나 단일화되는 경 향이 두드러져 토기의 바닥[底部]과 몸통[器腹 部] 무늬는 사라지고 아가리에만 무늬가 남게 되거나, 생선뼈무늬나 빗금무늬 등 하나의 무늬 만으로 토기 전면을 장식하는 토기도 나타난다.
남부지방의 빗살무늬토기는 둥근바닥[丸底]
의 반란형토기(半卵形土器)로 높이에 비해 입지 름이 넓어 육중한 형태를 띠고 있다. 처음에는 중서부지방과 마찬가지로 토기 겉면을 세 부위 로 나누고 각기 다른 무늬를 베풀었으나, 점차 아가리에 세모꼴 마름모꼴 등의 집선무늬[集線 文]와 문살무늬[格子門] 등이 베풀어지고 몸통 이하의 무늬는 생략된다. 말기에는 아무 무늬도 장식하지 않고 아가리를 밖으로 접어 붙인 겹아 가리토기[二重口緣土器]가 만들어진다. 남부지 방의 빗살무늬토기는 중서부지방의 것과 유사한 점도 많지만, 목항아리[長頸壺], 붉은칠토기[朱 漆土器]가 만들어지고, 이전 시기의 덧무늬토기 에서 많이 보이는 집선무늬가 성행하는 등 이 지 역만이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동북지방의 빗살무늬토기는 납작바닥의 깊은 바리모양[深鉢形]이 주류이나, 대접·사발·잔 등 그릇의 종류가 다른 지역에 비해 다양한 편이 다. 초기의 누른무늬토기 이후, 중서부지방 빗 살무늬토기의 영향을 받아 아가리에 짧은 빗금 무늬나 점줄무늬[點列文]를, 몸통에 생선뼈무늬 를 새긴 토기가 등장한다. 그 이후에는 아가리 중간에서 몸통까지 생선뼈무늬·짧은 빗금무늬 등이 베풀어졌으며, 새로이 타래무늬[渦文]가 등 장한다. 또한 아가리가 밖으로 약간 벌어진다.
후기에는 번개무늬토기[雷文土器]·붉은칠토기 와 함께 민무늬토기의 비율이 증가한다.
서북지방 역시 동북지방과 같이 납작바닥토기 로, 초기에는 랴오허강[遼河]유역에서 보이는 지 그재그무늬[之字文]의 토기문화와 관련이 있다.
토기의 종류는 바닥에 짧은 굽이 달려 있거나 목 이 긴 것이 특징이며, 겉면에는 번개무늬·단추 무늬·빗살무늬 등이 베풀어진다. 이른 시기의 유적으로는 평북 의주 미송리(美松里) 동굴유적 이 유일하고, 그 밖의 유적은 대부분 후기에 해 당한다. 후기가 되면, 두만강과 압록강을 따라 내려온 동북지방의 번개무늬토기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지역적 특성을 갖는 문화로 발전된다.
이밖에 최근에 발굴조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동해중부지방은 동북지방·남부지방·중 서부지방의 토기문화가 교차하는 양상을 보이 고 있어 주목된다. 이 지역 이른 시기의 덧무늬 토기와 누른무늬토기는 각각 남부지방과 동북 지방의 토기문화와 관련 있으며, 이후의 빗살무 늬토기는 중서부지방과 남부지방의 토기문화와 연관이 있다.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보이는 빗 살무늬토기의 생김새와 무늬 모양은 기본적으 로 중서부지방의 것과 큰 차이는 없으나, 토기 의 몸통을 장식하던 세로로 난 생선뼈무늬[縱走 魚骨文]의 장식면적이 축소되고, 가로로 난 생 선뼈무늬[橫走魚骨文]가 확대되는 등 지역적 특 성을 보인다. 이후 토기의 형태가 높이에 비해 입지름이 길어지고, 문살무늬 지그재그무늬 등 이 나타나는 등 남부지방의 요소가 강해진다.
이는 동해중부지역의 지리적 특성에 기인한 것 으로, 동북지방·남부지방·중서부지방과 관계 속에서 일종의 문화적 점이지대가 형성된 것으 로 여겨진다.
이처럼 빗살무늬토기는 지역적으로 다른 특 징을 띠고 있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늬가 점차 간략해지고 장식면적이 줄어드는 공통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