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지변화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매 축이었다. 부산항 매축 가운데 북항매축, 영선 산착평공사, 남항매축공사, 부산진매축공사 등 은 부산시가지 변화에서 아주 중요하였다. 부산 항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은 북항매축이었 다. 조선시대 초량왜관에는 쓰시마(對馬島) 사 람들만 머물수 있었다. 개항은 일본인들이 부산 에 쉽게 정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자연 히 약 10만평의 거류지로는 공간이 부족했다.
북항매축은 공간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었다. 한편 북항에는 일본인 선박이 왕래하던 조그마한 선창이 있었다. 개항 후 조선과 일본
<그림 2> 앵천
<그림 1> 포산항견취도
을 넘나드는 사람과 무역품이 급격히 증가하고, 왕래하는 선박도 점차 대형화되면서 근대시설 로 변화가 필요하였다. 무엇보다 일제의 조선지 배가 현실화되면서 북항에 경부선과 관부연락 선의 연결을 위한 육로와 해로의 교통시설이 필 요하였다.
북항매축은 오쿠라(大倉喜八郞)가 중심이 된 부산매축주식회사가 담당하고, 시공은 그의 회 사였던 대창조(大倉組)가 맡았다. 매축은 1902 년~1905년, 1907년~1908년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매축에 필요한 흙은 적기와 복병산 에서 가져왔다. 매축지 면적은 약 4만평이었다.
매축지에는 1905년 경부정(京釜町), 고도정(高 島町), 안본정(岸本町), 중정(中町), 대창정(大 倉町), 매립신정(埋立新町), 지정(池町), 좌등정 (佐藤町) 등 행정구역을 지정하였다. 매축지는 1927년 7월 1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부분 대창정(大倉町)으로 통합되었다. 이곳에는 공공 시설로 부산역, 세관, 잔교, 우체국 등이, 상업 시설로는 해운회사, 운송회사, 창고 등 항만의 역할과 관련한 시설이 등장했다. 매축지는 이웃 한 조선인 마을과 교통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도로, 전차 등이 부설되었다. 이곳 도로는 매축 당시에는 부산역전에서 부산우체국 방향으로 통과하였으나, 1934년 부산역전과 영도대교 앞까지 27m 폭의 간선도로가 완공되었다.
1915년에는 전차가 운행하면서 근대도시로 발 달한 일본인 중심지와 조선인 마을을 더욱 가깝 게 만들었다.
영선산착평공사는 부산 북항과 초량 사이를 가로막는 두 산을 깎아 앞바다를 메우는 작업이 었다. 이 공사는 도로교통을 편리하게 하였는 데, 특히 경부선의 연장을 가능하게 하였다. 공 사는 1909년 착공해 1912년 완공되었다.
부산진매축공사는 부산의 공업지역 개발에 부산의 근대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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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매축전 북항모습
<그림 4> 매축중인 북항모습 <그림 5> 매축예정지를 표시한 북항모습
필요한 부지확보를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일본 나고야지역 자본가들이 조직한 조선기업주식회 사가 담당했다. 매축 허가면적은 총35만 여평 이었으나, 1913년 6월 1차로 14만 여평 매축 을 시작해 1918년 준공하였다. 하지만 이후 이 회사는 매축공사를 진행하지 않고, 권리를 포기 하자, 일본 코베의 나카무라(中村)란 자를 중심 으로 부산의 자본가들이 참여하여 부산진매축 주식회사를 새로 조직했다. 이 공사는 개항 50 주년을 맞이한 부산의 일본인들이 대부산건설 을 내걸고 진행하였다. 1926년 11월 4일 사이 토(齋藤)총독이 참석한 기공식은 이 사업의 위 상을 짐작케 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공사가 지연되다가 1927년 7월 1일 착공해 1938년 마무리되었다.
남항매축공사는 부산 서남부시가지 형성, 연 안 무역항 건설을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케다 (池田佐忠) 등이 부산축항합자회사를 조직해, 1929년 2월 기공해 1932년 1차 준공하고, 1940년 2차 준공하였다. 2차 공사로 송도와 교 통을 편리하게 할 수 있었다.
부산부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시가지 계획과 도로망을 정비해야 했다. 도로망 정비는 조선인 들이 주로 살던 초량과 부신진 일대에서 진행되 었다. 시가지 정비사업 가운데 주목해야할 것은 1931년 대부산건설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된‘부 산간선도로(도진교) 및 선류(船溜)정리공사’로 부산역전, 대창정(大倉町), 장수통(長手通), 남 빈정(南濱町) 일대의 도로망이 변화하였다. 기존 부산역 앞 도로는 부산우편국 앞으로 꺾여 부산 시내로 들어갔으나, 이 공사로 부산역전에서 곧 바로 부산대교 앞으로 연결되었다. 이 도로 부지 를 얻기 위해 북항매축지의 凹부분과 어항을 매 축하고 주변 부지를 매입해 폭 27미터, 총 길이 1,523미터의 간선도로, 선류장 등 부대시설을 조성하였다. 이 도로망은 1934년 11월 23일 부
<그림 6> 초량의 옛모습
<그림 7> 정발장군 동상 <그림 8> 송도해수욕장
산대교 준공식과 함께 완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