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역에서 출토된 도자기는 크게 청자와 분청사기, 백자, 흑유자 등으로 나뉘며, 여기에 서 시문수법에 따라 여러 종류로 세분된다.
1. 부산지역의 청자
부산지역에서 청자가 출토된 유적은 덕포동, 온천동, 반여동, 기장 신리 등의 가마유적과 망 미동, 기장 교리, 당감동 등에 위치한 동래고읍 성지, 기장고읍성지, 동평현성지 등의 성곽유 韓國의 陶磁器, 釜山의 陶磁器
8) 福岡市敎育委員會, 2001, 『博多 72』
적, 덕천동, 기장 교리, 명장동, 문현동 등지의 분묘유적, 기장 교리의 주거유적, 만덕사지로 대표되는 사찰유적 등이다.
출토된 청자의 종류는 우선 시문수법에 따라 소문청자, 압출양각청자, 음각청자, 상감청자, 퇴화청자, 철화청자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는 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역시 素 文청자계통이다.
부산지역 청자의 기종에는 비교적 보편적인 기종이라 할 수 있는 대접과 접시, 완, 보시기, 사발, 종지, 병, 항아리 등과 흔히 볼 수 없는 고급기종인 해무리굽완, 화형접시, 팔각접시, 뚜껑, 마상배, 매병, 잔받침대, 베개, 과형병 (혹은 과형주자), 향합, 유병 등이 있는데, 가장 흔한 기종은 대접과 접시이다.
고급기종의 경우 고려시대 부산지역의 행정 중심지인 동래고읍성지가 있던 망미동유적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었으나, 향합, 유병, 마상배 등은 낙동강 수계를 이용한 교역을 통해 경제력 을 갖춘 지방토호들의 분묘군으로 믿어지는 덕 천동유적에서 출토되기도 하였다. 그 외 동평현 의 읍성지였던 당감동성지에서도 국화문이 상 감된 마상배편 1점이 출토되었다.
청자의 품질 또한 부산지역의 가마에서 제작 된 것으로 보이는 조질청자와 전남 강진산으로 추정되는 양질청자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양 질청자의 경우 역시 앞서 언급한 두 유적에 거 의 집중되어 있다. 특히 망미동유적에서는 지역 내 다른 유적 출토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최고 급 匣器류가 다량 포함되어 있어 고려시대 부산 지역의 행정중심지로서의 높은 위상을 보여주 고 있다. 그 외 만덕사지 3차 조사시에는 대표 적 초기 양질청자로 분류되는 비색의 해무리굽 청자완 1점이 출토된 바 있다.
부산지역은 강진·부안 등 上品 청자가마가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지역과 원거리에 위치함
으로써 제작기술의 전파가 용이하지 못하였으 며, 따라서 자체 생산품의 품질은 대부분 中·
下品에 불과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망미동유적의 동래고읍성지나 덕천동 유적의 경우에서와 같이 정치력과 경제력을 갖춘 이 지역의 상류계층들은 질적으로 차별화된 당대 최고급 청자를 사용하였다는 사실을 여러 유적의 발굴조사 결과를 통해 알 수 있게 되었다.
2. 부산지역의 분청사기
부산지역에서 분청사기가 출토된 유적은 온 천동, 회동동, 반여동, 전포동, 남산동, 기장 신리·판곡·상장안 등의 가마유적과, 당감동, 복천동, 수영동, 기장 죽성리, 녹산동 등지에 위치한 동평현성지, 동래읍성지, 경상좌수영성 지, 죽성토성 및 두모포진성지, 금단곶보성지 등의 성곽유적, 이길봉수대로 대표되는 봉수대 유적, 덕천동, 기장 교리, 망미동, 남산동 등지 의 분묘유적, 기장 교리의 주거유적, 만덕사지 로 대표되는 사찰유적, 수안동 533·534번지, 수안동 231-2번지에 위치하는 동래읍성 관아 관련유적 등이다.
출토된 분청사기의 종류는 상감분청사기, 인 화분청사기(쇠퇴기의 인화귀얄기법 포함), 귀얄 분청사기, 덤벙분청사기 등인데,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종류는 인화분청사기와 귀얄분청사기 라고 할 수 있다.
청자와는 달리 분청사기의 기종은 매우 제한 적이어서 대부분 반상기류의 기본이라 할 수 있 는 대접과 접시류에 국한되어 출토되는 경향이 있으며, 드물게 보시기, 항아리 등이 출토된 바 있다.
부산지역의 유적에서 출토된 분청사기 가운 데 명문이 새겨진 예는 지금까지 모두 10점이 확인되었으며, 각각의 출토지와 명문내용, 종 - 128 -
류는 다음과 같다.
수안동 533·534번지유적에서는 각각“東萊 仁壽府”, “東萊仁(?)”, “慶(?)~長興”명이 새겨 진 인화분청사기편 3점, 복천동 304번지유적 에서는“慶州 興庫”명 인화분청사기편 1점, 당감동성지에서는“東 仁壽”, “仁壽”명 인화 분청사기편 2점, 기장 죽성토성에서는“長”명 인화분청사기편 1점, 만덕사지에서는“梁(?)山 長興庫”명 인화분청사기편 1점, 기장 상장안 오 그랑 텃골요지에서는“蔚山長興庫”명 인화분청 사기접시 1점과 "耕負祭”명 귀얄분청사기접시 1점이 출토되었다.
또 부산대학교박물관에 소장, 전시되어 있는
“東萊長興庫”명 인화분청사기대접의 경우는 비 록 유적 출토품은 아니지만 부산지역에서 생산 된 것임이 분명하므로, 부산지역 명문분청사기 현황에 포함시켜도 무방할 것으로 생각된다.
부산대학교박물관 소장품 1점까지 포함시키 면 부산지역의 명문분청사기는 지금까지 모두 11점이 확인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중 10점 은 인화분청사기이고, 기장 상장안 오그랑 텃골 요지에서 채집된 것으로 전하는“耕負祭”명접 시 1점만이 유일하게 귀얄분청사기이다. 이 유 물은 명문의 내용으로 볼 때도 다른 유물들과 차별화되는데, 즉 다른 명문들은 모두‘지명+
관청명’의 형식, 혹은 '관청명'의 형식을 가지는 데 반해 이 유물만이 제사와 관련된 듯한 내용 의 명문을 새겨넣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화분청사기의 경우 상기한 바 와 같이 생산지명과 납품대상인 관청명을 함께 표기한 예가 많은데, 그것은 인화분청사기 전성 기인 15세기 전반에서 경기도 광주 분원 설치시 기인 1470년경까지는 전국 각지의 자기소에서 생산된 그릇을 중앙에 공납하는 방식으로 중앙 관청과 왕실 소용 그릇을 충당하였고, 그 과정 에서 불량제품에 대한 책임을 묻거나 각사의 그
릇이 분실, 혼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취해진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귀얄분청사기의 경우는 인화분청사기가 쇠퇴 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종류로서, 대체로 15세 기 말부터 16세기에 걸쳐 유행하였던 것으로 생 각되어, 대체로 중앙 소용의 그릇 생산을 광주 분원에서 전담하던 시기의 제품으로 볼 수 있 다. 따라서“耕負祭”명 귀얄분청사기접시도 중 앙 공납자기로서 생산된 것이 아니었을 가능성 이 높아, 이와 같이 여타 분청사기 명문의 형식 과는 다른 형식의 명문을 새길 수 있었을 것으 로 생각된다.
지금까지 확인된 부산지역 명문분청사기에 나타나는 지명은“東萊”(4점), “蔚山”(1점),
“慶州”(2점), “梁山”(1점)의 4개 지명이다. 그 중“東萊”명과“蔚山”명은 지금의 광역화된 부 산지역의 각 지역들이 조선시대의 그릇 제작 당 시 소속되어 있던 군현의 명칭을 따서 붙인 것 이며, “慶州”명과“梁山”명은 타 지역에서 제작 된 완제품이 여러 가지 이유로 부산지역에 유입 되어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관청명은“長興庫”명(6점)과“仁壽府”명(4점) 만 나타나는데, 경상도 내 다른 지역의 경우도 대부분 마찬가지므로 이것은 경상도지역 명문 분청사기의 한 특징으로 볼 수 있다.
3. 부산지역의 백자
소문백자, 철화백자, 청화백자(대접, 접시, 병, 항아리, 뚜껑)
부산지역에서 백자가 출토된 유적은 기장 신 리·판곡·병산리·용소리·상장안·두명리, 광복동 등의 가마유적과 망미동, 당감동, 복천 동, 수영동, 기장 죽성리, 녹산동 등지에 위치 한 동평현성지, 동래읍성지, 경상좌수영성지, 죽성토성 및 두모포진성지, 금단곶보성지 등의 韓國의 陶磁器, 釜山의 陶磁器
성곽유적, 이길봉수대로 대표되는 봉수대유적, 덕천동, 기장 교리, 해운대 좌동, 망미동 등지 의 분묘유적, 기장 교리의 주거유적, 수안동 533·534번지, 수안동 231-2번지에 위치하 는 동래읍성 관아관련유적 등이다.
출토된 백자의 종류는 대부분 특별한 장식이 없는 소문백자계통이며, 철화백자나 청화백자 가 출토된 경우도 있으나 소량에 불과하다.
기종 또한 분청사기와 마찬가지로 매우 제한 적이어서 대부분 반상기류의 기본인 대접과 접 시, 사발에 국한되어 출토되는 경향이 있으며, 간혹 병, 항아리 등이 포함되어 나타나는데, 해 운대 좌동의 분묘유적에서는 드물게 소형의 명 기세트가 출토된 바 있다.
경기도 광주 분원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해 볼만한 최고급 匣器류는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 았으며, 대부분 인근의 지방가마에서 제작된 중 하품의 지방백자류라고 생각되는데, 대체로 유 백색의 연질백자 계통과 회청색의 경질백자 계 통으로 나뉘어진다.
부산지역의 유적에서 출토된 백자 가운데 명 문이 새겨진 예는 지금까지 모두 5점이 확인되 었는데, 동래읍성 관아관련유적으로 추정되는 수안동 533·534번지유적에서는 각각“東”,
“典”명을 그릇 바닥 중앙에 인각, 또는 음각한 백자편 3점, 동래고읍성지로 볼 수 있는 망미동 유적에서는“公”, “ ”명을 각각 바닥에 음각, 흑상감한 백자편 2점이 출토되었다.
한편, 부산지역에서 생산된 백자로서 국내 수 요를 위한 것이 아닌 해외 수출을 위해서만 제
작된 종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광복동요지, 즉“부산요”생산품들이다.
부산요 생산품들은 일본측의 요청에 따라 주 문 생산된 제품들이므로 국내 여타 백자들과는 그 기형이나 문양 등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조선의 재료와 기술로 만든 제품이라 기본적으로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고 할 수 있다.
부산요에 대한 연구는 일본에서 오히려 활발 히 이루어져왔으며, 국내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지금까지 거의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다만 현재까지도 일본 내에 존재하는 고려다완 재현품에 대한 커다란 수요 때문에 고려다완의 재현과 일본 내 전시회를 통한 판매에 매진하는 일부 국내 도예가, 혹은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소설가 등에 의해 이에 대한 부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간 국내 연구자들이 경기도 광주 분원출토 품에만 치중하여 백자연구를 진행해옴으로써 지방가마나 지방백자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루 어지지 못한데다, 현재 해당 가마터가 거의 파 괴된 상황이며, 현존하는 부산요 생산품들 또한 거의 모두 국내가 아닌 일본 각지에 흩어져 傳 世되어 내려오고 있어 연구 여건이 좋지 못하다 는 점도 이러한 현상에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 도자사와 부산 지역사의 균형 있 는 발전을 위해서는 이 부산요의 운영체제와 생 산품의 성격 등에 대한 규명이 필수적이므로, 앞 으로 국내 도자사학계에서도 보다 관심을 갖고 체계적으로 연구해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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