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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민속은 무엇이 있을까?

문서에서 2007년 초등교사역사교실 시간표 (페이지 89-92)

다음은 부산의 민속에 대해서 알아보자. 부산 의 민속이란 지역적으로 부산이란 공간에 한정 하여 전승되는 민속이다. 현재의 부산이란 행정 적 구역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문화적으로 구분한 범위는 아니다. 예컨대 부산의 음식과 김해의 음식은 같은 음식문화권으로 포함될 수 있다. 또한 행정구역상으로도 부산의 범위는 끊 임없이 변해왔다. 기장군, 강서구의 상당지역 이 부산으로 포함된 지가 얼마되지 않았다. 그 러므로 부산의 민속이라 하더라도 경남권의 민 속과 상당수 중첩될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부산의 민속은 매우 넓은 범주를 갖고 있으므 로 전체를 논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부산지역에서 특징적으로 알려진 몇가지 민속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민간신앙

중에서‘골매기제’, 세시풍속 중에서‘정월 대 보름의 줄다리기’, 민속연희 분야에서‘들놀 음’, 생업기술 중에서‘소금생산’을 다루고자 한다.

1. 부산의 마을신앙 -

골매기신을 모시는 동제(洞祭)

동제는 마을의 평안과 안녕을 위하여 마을신 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적으로 동제를 지내지 않는 마을이 없었다.

서울의 부군당제, 경기도의 도당제, 전라도의 당산제, 강원도의 성황제 등 동제는 전국적으로 행해졌다.

부산의 대표적 동제는 골매기제이다. 골매기 는 고을막이가 축약되어 골매기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다. 골매기신은 할매신이며, 마을에 따 라 할배신을 함께 모시는 곳도 있다. 제일(祭日) 은 매우 다양하나, 대체로 1월초에서 대보름 사 이에 하루를 잡아서 지낸다. 제관은 마을 어르 신들이 회의를 거치고 생기복덕을 가려서 뽑는 다. 제의는 무당을 불러서 하는 당굿도 있지만 대부분 유식(儒式)으로 조용히 진행된다.

동제의 순서는 마을에 따라 다양하다. 보통 마을에서 산신을 함께 모시고, 동네 어귀에 장 승(골대장군)과 솟대(거릿대) 등이 있을 경우,

<그림 1> 골매기당(경북 울진군 기성면)

산신제-골매기제-장승(솟대)제의 순서로 지낸 다. 마을의 주신인 골매기신은 대부분 마을의 입향조로서 한 성씨의 조상신이 마을신으로 좌 정한 예이다. 신을 할매, 할배라고 부르는 것도 조상의 관념과 맞물려 있다. 여러 성씨 골맥이 신을 함께 모시는 마을도 있다. 이런 마을은 여 러 성씨의 입향조가 함께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 셔지는 사례들이다.

2. 부산의 세시풍속 -

정월 대보름의 동래 줄다리기

세시풍속은 일상생활에서 계절에 따라 관습적 으로 되풀이되는 민속이다. 세시풍속이 가장 많 은 달은 음력 정월이다. 음력 정월은 한해가 시 작되는 달로서 그해의 평안을 기원하는 각종 행 사가 벌어졌다. 특히 정월 대보름은 달이 처음으 로 차는 상원(上元)으로서 많은 기풍(祈豊)행사 가 있다. 벼 재배 지역에서는 줄다리기가 대표적

정월대보름 세시행사이다. 줄은 풍우를 관장하 는 용사신(龍蛇神)을 상징하며, 암줄과 숫줄을 거는 행위는 남녀의 성관계를 의미한다. 남녀의 성관계는 출산(생산)으로 이어지므로, 줄다리기 를 통해 풍작을 염원하는 것이다. 편은 보통 동 서지역으로 혹은 남녀로 나눈다. 대개 서쪽지역 이 혹은 여성편이 이기도록 하는데 여성(서쪽)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부산지역에서도 줄다리기가 성행하였다.

1920년대「동아일보」의 보도에 의하면 부산진 줄다리기에 참여한 인원이 무려 2만 명에 달한 다고 한다. 동래의 줄다리기는 1740년에 편찬 된『동래부지(東萊府誌)』에 소개되고 있으며, 하단 출신의 민속학자 손진태에 의해서도 1930 년대의 동래줄다리가 보고된 바 있다. 구(舊) 대 동병원의 자리에 수만 명의 남녀가 모여서 줄을 당기면서 3일간 놀았다고 한다. 일반관념과 달 리 동부지역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설(俗 說)도 있었다. 동래는 동부지역에 농토가 많았 부산의 민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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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동래줄다리기(일제시기)

기 때문이었다. 줄을 당기기 전에는 민요(쾌지 나 칭칭나네)를 부르며 논다. 또한 서부에서는

‘부았네 부았네 동부연장이 부았네’라 부르면 동부에서는‘달았네 달았네 서부합자가 달았 네’라고 답하면서 서로를 희롱하기도 한다.

3. 부산의 민속연희 - 수영·동래의 들놀음

탈춤은 양반을 풍자하고 조선의 양반사회를 꼬집는 대목이 많다. 이 때문에 대표적인 민중 문화로서 인식되었다. 탈춤은 크게 황해도 지역 의 해서탈춤, 서울·경기 지역의 산대놀이, 영 남지역의 오광대·들놀음으로 구분된다. 경남 지역의 오광대놀이와 부산지역의 들놀음은 춤 과 과장 등 각종 요소로 보았을 때 같은 계통으 로 확인된다. 현존하는 오광대와 들놀음이 초계 밤마리(현 경남 합천군 덕곡면)의 산대도감 계 통 가면극이 낙동강을 따라서 전파되었다는 설 이 있다. 그러나 삼국시대, 고려시대에서도 가

면극이 전승되어 왔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할 것 같다.

들놀음은 낙동강 동편에서만 전승되며 야류 (野遊)라 부르기도 한다. 들놀음은 넓은 들에서 노는 놀음으로서 농경문화의 흔적이 남아있는 용어로 본다. 부산지역에서는 부산진, 동래, 수 영 등에서 전래되어 왔지만 현재 부산진의 들놀 음은 전승이 중단되었다. 동래들놀음은 길놀 이-탈놀이(문둥이-양반-영노-할미·영감과 장)순으로 진행되며, 수영들놀음은 탈제(假面 祭)-길놀이-탈놀이(양반-영노-할미·영감- 사자무)순으로 진행된다. 들놀음의 백미는 양반 과장이며 주연배우는 말뚝이이다. 말뚝이는 퉁 방울 눈에 험악한 상으로서 탈의 크기도 양반탈 과 달리 매우 크다. 말뚝이는 양반들을 각종 금 수(禽獸)로 부르며 조롱하다가 대부인(大夫人) 마누라와 상관하였다는 험담으로 양반사회를 비웃는다.

<그림 3> 동래들놀음 중 양반과장

4. 부산의 생업기술 - 명지도(鳴旨島)의 소금생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은 고대로부터 해염을 생산하였다. 해염은 생산방식에 따라서 천일염(天日鹽)과 자염(煮鹽)으로 구분된다. 천 일염은 바닷물을 바람과 햇볕에 의해서 건조시 켜 소금을 생산하는 방법이다. 자염은 염도(鹽 度)를 높인 함수(鹹水)를 끓여서 생산하는 방식 이다. 한국은 고대부터 20세기 초까지 자염생 산방식에 의해서 소금을 생산했으며, 천일염업 은 20세기 초반 청나라의 방식을 도입한 것이 다. 부산지역의 대표적 소금생산지는 강서구의 명지이다. 조선후기에 이곳은 관염(官鹽) 생산 지로 지정되어 소금을 생산하였다. 명지는 낙동 강과 바다가 접하는 수로교통의 요지이며, 주변 에 갈대밭이 많아서 연료취득이 쉬운 이점을 갖 고 있다. 자염생산은 먼저 해수를 뿌린 모래를 갈아서 소금을 결정시킨다. 다음은 이 모래를 한곳에 모아두고 해수를 흘리면 모래 속에 결정 된 소금이 해수와 함께 흘러나와서 염도 높은 함수가 생성된다. 이 함수를 염부(鹽釜)에 담아 서 끓이면 소금이 생성된다. 남해안 명지도의

자염은 서해안과 달리 제방이 있는 유제염전(有 堤鹽田)방식이었다.

강서구의 명지이외에도 부산의 많은 곳에서 자염이 생산되었다. 19세기에 편찬된『동래부 읍지』를 보면 동면(東面)에 23좌(座), 남촌면 (南村面)에 38좌, 부산면(釜山面)에 4좌, 사하 면(沙下面)에 7좌로 총 72좌의 염분(鹽盆)이 부 산지역에 있었다고 한다. 일제시기를 거치면서 한국의 전통 자염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부산지역에서도 남구 용호동에 일본식 전오염 (煎熬鹽) 시험장이 설치되었으며, 해방 후에도 이곳에서 소금을 생산하였다. 강서구 명지에서 는 사라 태풍으로 염전이 붕괴되는 1950년대 후반까지 소금을 생산하였다.

Ⅳ. 초등학생의 민속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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