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범어사의 역사
범어사는 (華嚴宗) 10찰(刹)의 하나이며, 일 제강점기에는 31교구 본산의 하나였다. 창건에 대하여는 두 가지 설이 있으나 그 중 삼국유사 의 678년(문무왕 18)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는 설이 타당한 것 같다. 《범어사창건사적(創建 事蹟)》에 보면, 당시 가람(伽藍) 배치는 미륵 전·대장전(大藏殿)·비로전(毘盧殿)·천주신 전(天主神殿)·유성전(流星殿)·종루(鍾樓)·강 전(講殿)·식당·목욕원·철당(鐵幢) 등이 별처 럼 늘어서고 360요사(寮舍)가 양쪽 계곡에 꽉 찼으며, 사원에 딸린 토지가 360결(結)이고 소 속된 노비(奴婢)가 100여 호에 이르는 대명찰 (大名刹)이라 하였는데, 이 많은 것이 창건 당시 한꺼번에 갖추어졌다고 믿기는 어려우며 상당 기간에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 후 임진 왜란 때 모두 불타버려 10여 년을 폐허로 있다 가 1602년(선조 35) 중건하였으나 또다시 화재 를 당하였고, 1613년(광해군 5) 여러 고승들의 협력으로 중창하여 법당·요전(寮殿), 불상과 시왕상(十王像), 그리고 필요한 모든 집기(什器) 를 갖추었다. 현재 보물 제434호로 지정된 대 웅전을 비롯하여 3층석탑(보물 250호), 당간지 주(幢竿支柱), 일주문(一柱門), 석등(石燈), 동·서 3층석탑 등의 지방문화재가 있으며 이 밖에 많은 전각(殿閣)·요사·암자(庵子)·누
(樓)·문 등이 있다. 옛날부터 많은 고승들이 이 곳을 거쳤으며, 중요한 인물만도 의상을 비롯하 여 그의 고제(高弟)·표훈(表訓)·낙안(樂安)·
영원(靈源) 등이 있다. 《선찰대본산 범어사안내 (禪刹大本山梵魚寺案內)》에는 역대 주지(住 持)·승통(僧統)·총섭(摠攝)·섭리(攝理) 등으 로 구분하여 수백 명이 기록되어 있다.
2. 가람배치伽藍配置
범어사의 옛모습을 알게 해 주는 기록은 흔치 않다. 가람은 오랜시간이 경과한 뒤 에야 정비 되었다. 범어사는 창사 이후 조선시대까지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오늘날까지 대가람의 면모를 유지해 온 것으로 여겨진다. 임진왜란으로 엄청 난 피해를 보았다가 10년이 지난 뒤에 재건을 보았지만 화재로 다시 피폐되었다. 범어사는 이 처럼 1300여년이란 긴 세월의 역정만큼이나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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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범어사 가람배치도
뚝한 탈속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사역은 두 산세가 맞부딪치며 이루는 Y자형 계류 사이에 위치하며, 계류가 하나로 합쳐지는 곳은 세속과 처음으로 분리되는 역이자 문지방에 해당한다.
높은 대지상의 사역은 그 아래 모든 세속이 중 심이며 계류는 주변 세계와 가람을 분리하는 가 장 적극적인 장치로서 작용한다.
1) 상단건물
① 대웅전
대웅이란 대웅세존大雄世尊이란 부처의 덕호 에서 유래된 말이다. 범어사 대웅전은 본존불인 석가여래를 비롯하여 좌협시인 미륵 보살과 우 협시인 가라보살로 삼존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 전의 건립년대는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 때 불 타 1603년(선조35) 에 관선사가 재건하였다하 며, 이것도 얼마 후 다시 불타버렸다고 한다.
현존하는 건물은 1614년(광해군 6)에 묘전화상 이 건립한 것으로 1713년(숙종 39)홍보화상이 중수한 것이다. 내부의 불단과 닷집, 삼존불상 은 묘전화상이 중건 때 조성된 것이며, 불상 개 금은 1864년(순조 24)경 해민대사가 하였다고 전한다.
② 관음전
대웅전의 오른 쪽에 있는 관음전은 불교의 자 비 사상을 상징하는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이 다. 경중 2년(1722) 존각이 쓴‘범어사 비로삼 존 중수개금 겸금상관음신조기’에 의하면 관음 상은 해민의 제자 언총이 이 해에 조상하여다하 며 관음 후불 탱화는 고종 이후에 그려진 듯 하 다. 본래 관세음보살은 자비의 상징으로서 현세 의 일체 중생을 사랑으로 감싸주는 보살이므로 반대쪽의 지장전과 함께 대웅전을 협시하는 식 으로 세워진 것이다.
범어사와 통도사
<그림 2> 범어사 대웅전, 보물 제434호
③ 팔상 독성 나한전
지상전 뒤쪽에는 왼쪽부터 팔상, 독성, 나한 전의 건물이 한 채로 연이어 있는 것이 특이하 다. 중앙의 독성전 문의 모습은 반원형 재목으 로 아치형 건축수법도 눈길을 끌고 있으며 기록 에는 1613년 묘전 화상이 나한전을 창건하고 1705년 명학 스님이 팔상전을 중건했다고 나와 있다. 팔상전에는 삼존소상과 팔상탱을 봉안했 고 독성전에는 나반존자를 나한전에는 석가삼 존과 16나한을 안치하였다. 나한이란 남방 소 승 불교에서는 탐(탐심), 진(노여움), 치(어리석 음) 삼독을 완전히 벗어난 사람을 가리킨다.
④ 지장전
대웅전 왼쪽에 있는 지장전은 저승의 세계를 상징하는 법당이며 초창기 때의 당호는 지장전 이었으나 그 뒤 같은 뜻의 명부전으로 바뀌었다 가 최근에 다시 지장전이라 한다. 이 법당의 주 존은 지옥중생을 마지막 한 사람까지도 구제를 서원한 지장보살이며, 지장보살은 민간 신앙 속 에서도 뿌리깊이 작용하여 우리의 생활과 밀착 되었있다. 불교에서는 지옥과 극락을 따로 말하 지 않고 일심의 작용에 따라 극락도 될 수 있고 지옥도 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사후에만 대 두되는 영혼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는 현세에서 극락과 지옥을 바로 분별해서 생활하 라는 교훈으로 생각해야 한다. 근래에 화재로 소실되어 1990년에 새롭게 중건하였다.
2) 중단건물
① 보제루 널리 중생을 제도 한다는 듯을 지 닌 보제루는 범어사 경내에서 가장 큰 건물로서 각종 법회가 열리며 본래는 2층 누각일 것이나 지금은 일자형의 단층 팔작집이다. 숙종 15년 (1699)에 자수 스님의 주관하에 창건되었다.
② 미륵전
보제루 오른쪽에 있는 미륵전은 비로전과 청
풍당으로 들어가는 대문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 다. 미륵전 안에는 목조 이ㅁ 좌상이 오른 쪽 벽 면을 등지고 앉아 있는데 이는 대웅전 쪽을 피 하기 위한 조치이다. 미륵불은 미래불로서 석가 모니 부처님 뒤를 이어 현세의 중생제도를 위해 이 세상에 오신다고 한다.
③ 비로전
보제루의 오른쪽에 잇는 비로전은 비로자나 불을 모시고 있는 건물이다. 비로자나불은 법신 불로서 진리 그 자체이며 그 빛을 우주 삼라만 상과 평등하게 비추고 있다고 하며, 숙종 9년 (1683)에 해민 스님이 처음 건립했다고 하는데 그 뒤로도 몇 차례의 중수가 있었다.
④ 종루
보제루가 있는 범어사의 중앙 큰 마당에서 오 른 쪽에 있는 사방 3칸의 종루는 2층 누각 건물 로서 팔작 지붕이다. 1층은 각종 불교용품을 판 매하고 있으며 1층에서 좁은 나무 계단을 몇 칸 오르면 2층에 들어서게 되며, 2층에는 청동종, 법고, 목어, 운판 등이 걸려져 있다. 청동종은 조선 시대 종에서 보여지는 공통점인 보시자와 종의 조성 연대를 새긴 명문이 있으며 명문이 의하면 그 연대가 영조 4년(1728) 11월임을 알 수 있다.
3) 하단건물
① 일주문
일주문은 범어사 성역으로 들어가는 첫 번재 문이며 범어사의 본당인 대웅전까지는 곧게 뻗 은 가파른 비탈길을 계속해서 올라가야 한다. 범 어사의 일주문은 여는 사찰의 그것과는 다르게 투박한 원형돌기둥 위에 짧은 목주를 세우고 그 위에 팔작지붕을 세운 형태인데 이 문의 상단 좌 우에는‘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금정산범어 사(金井山梵魚寺)’그리고 중앙에는 작은 글씨로
‘조계문(曹溪門)’이라는 현판인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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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천왕문
일주문을 지나 좀더 비탈길을 오르다 보면 범 어사의 두 번째 문인 천왕문이 13단 의 높은 계 단 위에 우뚝 서 있다. 천왕문에는 4구의 사천 왕상이 모셔져 있다. 전에는 사천왕탱화가 네 폭이 걸려 있었는데 지금은 목조 사천왕상으로 바뀌었다. 숙종 25년(1699)에 자수 스님이 처 음 건립했다고 하는데 그 뒤로 몇 차례의 중수 가 있었지만 확인되지 않고 있다.
③ 불이문
범어사 성역에 이르는 세 번째요. 마지막인 이 문을 통과 하면 비로소 정토의 향기가 그윽 한 그윽한 여러 불 보살이 모셔진 세계로 바로 안내된다고 한다. 불이란 진리는 시비, 진속, 색공 등의 차별적 대립을 떠난 원융회통의 뜻이 다. 불이문은 숙종 25년(1699)에 자수 스님이 천왕문과 함께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④ 3층 석탑
미륵전 앞에 있는 이 탑은 높이가 4미터에 이 르는 3층탑으로서 보물 제250호로 지정되었으 며, 상층기단이 높게 마련된 2층 기단 위에 세 워진 방형탑으로 9세기의 전향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상, 하층 기단의 면석에는 탱주 대신 안상을 마련하고 있는데 이것은 9세기 탑에서 보이는 장식적인 요소가 아닌가 한다. 각 층의 옥개석과 옥신은 각각 한돌로 이루어졌는데 옥 개석은 받침이 4단으로 얇아졌고 반전을 강조 하여 경쾌하지만 2층 이상의 탑신 높이나 폭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고준하기 때문에 안정감이 결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상륜부는 모두 소 실되어 버리고 지금은 노반과 보주만이 남아 있 는데 이 가운데 보주는 후대에 만든 것이고 노 반 또한 거꾸로 놓여져 있다. 그리고 기단부 아 범어사와 통도사
<그림 3> 범어사 조계문, 보물 제1461호
래의 석단과 주위 돌 난간은 후대에 보수할 때 설치한 것이라 한다. 이 탑에서 보이는 여러가 지 양식적 특징들은 신라 9세기 탑에서 보이는 전형 양식들로서 조성 시기 또한 이 시기로 추 정할 수 있다.
⑤ 범어사 석등
심검당 앞에 세워져 있는 높이 262센티미터 의 이 석등은 부산직할시 유형 문화재 제 16호 로 지정되어 있다. 하대석 위에 8각의 간주석을 끼우고 상대를 마련하여 화사석과 옥개석을 얹 고 있는 전형 양식으로 각 부재의 평면이 8각을 이루고 있다. 지대석 없이 놓여 있는 하대석은 8판복엽의 복련으로 간주를 받고 있다. 상대석 역시 연화대로서 화사석을 떠받고 있다. 화사석 네 곳에는 화창이 있는데 주위에 음각선의 틀이 마련되고 적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으로 보아 화창을 달았었음을 알 수 있다. 낙수면의 합각 이 뚜렷한 옥개석은 경쾌하게 네 귀를 반전시켰 으며 상륜부는 노면의 합각이 뚜렷한 옥개석은 경쾌하게 네 귀를 반전시켰으며 상륜부는 노반 과 연꽃봉오리 형태의 보주만이 남아 있지만 이 것 또한 제 짝이 아닌 듯 조화롭지 않다. 이 석 등은 원래 용화전 앞에 있었던 것을 일제 때 종 루가 있던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전하 는 말에 의하면 의상 대사가 보물 제 250 호 탑 을 세운지 3년 뒤 이 석등을 조성하였다고 하나 앞에서 살펴본 여러 특징들로 미루어 보아 고려 말 또는 조선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