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였던 금관국의 모습을 역역히 보여주고 있다.
이후 4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단행된 고구려의 대대적인 남정에 의해 금관국의 세력이 크게 꺽 이게 되었고 5세기 중엽경이 되면 김해를 중심 으로 한 금관국에서 수장층의 중심고분이 사라 지게 된다. 이는 대성동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 에서 확인된 사실로서 5세기 전반경으로 편년되 는 대성동 1호와 대성동13호를 마지막으로 하여 대형 무덤은 더 이상 조성되지 않는 것이다. 결 국, 이러한 현상은 실질적인 금관국의 쇠퇴를 의 미하며 이후부터 김해지역에서 급격하게 증가하 는 신라식토기와 각종 신라문화의 출현은 김해 지역이 신라의 간접적인 영향력 아래로 들어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문헌기록과는 달리 고 고학자료를 중심으로 하여 볼 때, 5세기 전반이 후 금관국은 실질적으로는 신라에 동화된 상태 이며 점차로 정치세력이 독자성을 잃고 축소되 는 쇠퇴과정을 거쳐 결국, 532년에 이르러 신라 에 완전한 복속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대가야大加耶는 고령지역을 기반으로 한 반 로국半路國이 성장하여 이룬 가야의 하나이다.
대가야라는 명칭 역시 후대에 붙여진 이름으로 생각되며 당대의 이름은 반로국半路國 또는 가 라국加羅國이었을 것이라는 것이 오늘날 학계 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대가야는 5세기 이전까 지 고령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 작은 정치체에 불과하였으나 5세기전반대에 들어 금관국의 세 력이 약해지면서 가야세력의 맹주적인 주도권 을 잃게 되자 이를 기회로 급성장 하였다. 고고 학적으로 대가야 성립의 출현을 알리는 대표적 인 유적으로서는 쾌빈동快賓洞 목곽묘를 들 수 있다. 즉 쾌빈동 유적에서는 계층의 분화를 알 려주는 대형 목곽묘가 발견되었고, 여기에서 출 토된 고배형기대와 장경호 등은 형식학적으로 보아 김해 대성동고분군의 뒤를 있고 있다. 전 체적으로 쾌빈동고분군은 대가야의 중심고분군
인 지산동고분군이 본격적으로 조영되기 바로 이전 단계의 것이어서 대가야 세력의 실질적인 성립과 가야사내로의 출현과 관련된 중요한 유 적이다.
대가야의 성장 동력은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 다. 비옥한 곡간지대谷間地帶의 경작지를 활용 한 농업생산력과 합천 야로지역의 철이 그것이 다. 특히 대가야는 야로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철광산을 일찍이 세력권안에 포함시키고 나서 부터 급격하게 세력을 팽창하게 된다. 대가야 세력의 확장과정은 먼저 고령을 중심으로 하여 서진하여 합천과 함양으로 이어지며 이후에는 지리산을 넘어 전라도 남원지역까지 진출한다.
그 뒤 다시 남쪽으로 진행하여 남강수계는 물론 이고 장수, 하동 등 섬진강수계로 연결되는 지 역에 주요 거점을 마련하게 된다. 그리하여 AD.479년에 당시 중국에 있던 남제에 가야제 국을 대표하는 사신을 파견하여 남제南齊로부 터 '보국장군본국가라왕輔國將軍本國加羅王'이 라는 작호를 받기도 한다. 이는 대가야가 독자 적으로 중국에 외교사절을 보낼 만큼 강력한 정 치체로 성장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체계화된 집권국가의 기틀은 다졌지 만 낙동강 주변에 흩어져 있던 다른 가야 세력 을 하나로 모아 통일된 단일국가체를 이루지 못 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대가야 최전성기 때의 영역은 고령식高靈式 또는 대가야식大加耶式이라고 하는 고령을 중 심으로 하여 출토되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토기 와 무덤에서 제사의례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축소모형철제품의 분포 등을 근거로 대가야세 력의 직간접적인 영역권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유사한 토기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일정한 제의 행위가 공동으로 이루어진 지역을 대가야권역 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대가야문화권의 동질 성은 무덤양식과 부장유물에 잘 나타나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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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형태를 한 띠장식이 붙은 원통형기대는 대 가야의 수장이 예하 지방의 유력세력에게 하사 한 위세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몇몇 토 기에서 보이는 "대왕大王" 또는 "하부사리리下 部思利利" 와 같은 명문은 대가야가 국가체로서 완성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대가야의 대표적인 고분으로는 고령 지산동고 분군과 본관동고분군을 비롯하여 고령군내에 분 포한 여러 단위의 고분군 이외에 합천 옥전고분 군, 반계제고분군. 함양 백천리고분군. 남원 월 산리고분군ㆍ두락리고분군 등을 꼽을 수 있다.
변한의 안야국安邪國이 성장 발전한 아라가 야는 금관국 및 대가야와 함께 가야지역에서 가 장 유력한 세력을 형성한 정치체이다. 안야국은 지금의 경상남도 중남부에 위치한 함안군 지역 을 중심으로 세력을 성장시켰는데, 낙동강과 남 강이 합류하는 교통상의 이점과 주변지역의 낮 은 구릉성 산지 사이에 형성된 많은 곡간평야가 성장의 기반이 되었다.
함안지역에서 청동기시대 이후 작은 세력을
형성하여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었던 이 지역의 정치집단은 AD3세기 무렵에 안야국으로 발전 하였고, 4세기 이후 한층 더 규모 있는 발전을 이루어 안라국安羅國으로 성립하였다. 아라가 야는 5세기 중엽부터 급격한 성장을 이루며 약 100년에 가까운 전성시기를 누리는데 이러한 변화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함안군 도항 리와 말산리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대형고분군 이다. 6세기대 접어들어 날로 세력을 확장해 가 는 신라와 백제의 틈 사이에서 가야의 부흥을 위한 외교적 각축전을 벌이다 560년무렵에 고 구려의 남침에 대비 하여 백제와 우호관계를 유 지하고 있던 신라에 의해 멸망하게 되었다.
안라국의 유적으로는 도항리와 말산리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 크고 작은 고분과 인근에 위치한 남문외고분군과 선왕동고분군을 들 수 있다. 그 외, 아라왕궁지로 전해오는 가야동유적지와 봉 산성은 향후 학술조사가 기대되는 곳이다.
삼국유사에는 고성지역에 있던 가야의 정치 세력을 小加耶라고 칭하고 있으나 다른 문헌기 가야의 고분문화
<그림 1> 경남 함안 도항리고분군(사적 제84호)
록에는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위서동이전한 조), 고자국古自國(삼국사기), 구차국久嗟國·
고차국古嵯國(일본서기)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보면 고성지역에 있었 던 당시 가야의 이름은 고자국古自國이었을 가 능성이 가장 높다. 고성군은 경남 남부해안지역 에 위치한 곳으로 동으로는 마산, 서는 사천, 북은 함안과 서로접하고 있고 지리적으로 바다 를 쉽게 이용할 수 있으며 내륙으로 연결되는 비교적 넓은 경작지도 갖추고 있다. 따라서 고 자국 발전의 원동력은 경작지에서 생산되는 물 품을 해로海路를 이용하여 주변의 여러 지역으 로 나누어 공급하였던 활발한 교역일 것으로 보 인다.
고성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확인되고 고자국 시대의 유적으로는 고성 동외동 패총유적의 주 거지 및 제사유적, 송학동, 내산리, 율대리, 연 당리 등의 중대형고분군 등이 있다. 분묘는 대 부분이 지상식의 수혈식석곽묘로서 하나의 봉 토에 여러 기의 석곽이 안치되는 다곽식이다.
이들 유적에서 공통적으로 출토되는 삼각투창 및 일단투창고배, 수평구연호, 발형기대 등은 함안, 고령 등지의 토기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적인 토기로서 사천·고성식, 진주식, 소 가야식토기라고 불리고 있다. 이들 토기의 분포 범위는 사천, 진주, 산청, 의령 등지로 넓은 분 포권을 가지고 있는데 고자국은 이들 지역과 활 발한 교류를 통하여 소가야연맹체를 형성하였 던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특히, 고성 송학 동고분군과 내산리고분군에서는 신라, 대가야.
및 왜의 유물이 빈번하게 발견되고 있어 소가야 의 대외 교섭 및 가야세력권의 변화추이를 파악 할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