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SIWA 제31조는 배상(reparation)의 의무를 규정한다.
ARSIWA 제30조의 ‘중지’가 위반행위를 대상으로 하고 장래적 속성 을 지닌 것임에 반해 제31조에서 규정하는 ‘배상’ 의무는 피해 (injury)를 대상으로 하며 대개의 경우 소급적인 성격을 지닌다. 유 책국은 국제위법행위로 인한 피해(injury)에 대하여 완전한 배상(full reparation)의 의무를 지며, 피해는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국가의 국제위법행위로 인한 여하한 손해(any damage)를 포함한다.58) 다시 말해 유책국은 불법행위에 따른 모든 결과를 제거하고 그러한 행위 가 존재하지 않았을 경우 나타났을 법한 상황으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59) 완전한 배상을 위한 구체적인 배상의 방법은 ARSIWA 제2부 제2장 제35조 내지 제37조에 각기 원상회복, 금전
57) Shadikhodjaev, op cit., p.13.
58) ARSIWA, 제31조 (배상)
1. 책임국은 국제위법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 완전한 배상을 할 의무를 진다.
2. 손해는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국가의 국제위법행위로 인한 여하한 손해도 포 함한다.
59) ILC Commentary to Article 31, para.3.; 배상의 성격 및 요건에 관해 설명하 고 있는 대표 판례 즉, PCIJ의 Chorzów Factory 사건 판결문에도 이 같은 내용 이 포함되어 있다. 다음은 관련 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Reparation must, as far as possible, wipe out all the consequences of the illegal act and re-establish the situation which would, in all probability, have existed if that act had not been committed.” (Factory at Chorzów, Merits, PCIJ Series A, No. 17, 1928, 47)
배상 및 만족의 형태로 규정되어 있으며, 이들은 단독적 또는 결합 적으로 취해질 수 있다(제34조). 한편 제36조 내지 제37조의 문언상 원상회복, 금전배상 및 만족 사이에는 조치 순서상의 위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나 그러한 위계가 무조건적인(unqualified) 것은 아니 다.60)
(1) 원상회복
국제위법행위의 유책국은 위법행위가 실행되기 이전에 존재하던 상황을 복구할 의무 즉, 원상회복(restitution)의 의무를 부담한다(제 35조). 다만 반환되어야 할 재산이 완전히 파괴되었거나 가치를 거 의 상실한 경우와 같이 원상회복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경우이거 나 보상 대신 원상회복을 할 때 파생되는 이득에 비해 원상회복이 현저히 불균형적인 부담을 수반하는 경우에는 원상회복이 요구되지 아니한다.61)
한편 DSU에는 원상회복에 관한 규정이 존재하지 아니한다. 다만 일부 판정 결과가 원상회복이 인정된 판정의 사례로 주장되기도 하 는 바 소급적 구제에 관한 예외적 판정의 문제와 함께 제3절에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2) 금전배상
ARSIWA에 따르면 국제위법행위로 인한 피해가 원상회복에 의하
60) Crawford, State Responsibility, op cit., pp.507-508. 구체적으로 ARSIWA 제36조 및 제37조는 각각 ‘원상회복에 의하여 피해가 잘 회복되지 않는 경우 (insofar as such damage is not made good by restitution)’, ‘원상회복 또는 금전배상에 의하여 손해가 잘 회복되지 않는 경우(insofar as it cannot be made good by restitution or compensation)’라는 조건을 부가하고 있어 제35 조 내지 제37조의 조치 사이에 위계가 존재하며 단계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것 처럼 서술하고 있다.
61) ARSIWA 제35조 (a), (b); ILC Commentary to Article 35, paras.8-11.
여 잘 회복되지 않는 경우 유책국은 손해에 대한 배상의 의무(an obligation to compensate for the damage)를 진다(제36조 1항). 금 전배상(compensation)은 산출된 이익손실을 포함하여 재정적으로 평 가할 수 있는 여하한 손해(any financially assessable damage)를 감 당하여야 한다(제36조 2항). 이 때 ‘재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이 라는 요건을 부가한 것은 제37조에 규정하는 만족(satisfaction)의 대 상이 되는 국가에 대한 ‘도덕적 손해(moral damage)’, 가령 재산이 나 신체에 대한 실질적 손해(actual damage)를 동반하지 않는 손해 를 배제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다.62) 한편 여러 가지 배상의 유형 중 금전배상은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방안이며 유책국에 대한 처벌적 성격을 지니지는 아니 한다.63) ARSIWA 제38조에 의거 완 전한 배상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이자가 지급될 수도 있다.
한편 DSU에서도 compensation이라는 동일한 표현의 조치가 확인 된다. 그러나 이는 ARSIWA 제36조의 금전배상과는 엄연히 다른 조치이다.64) 우선 양자는 시간적 규율 범위에 차이가 있다.
ARSIWA상의 금전배상이 과거의 피해에 대한 보상을 그 내용으로 하는 것임에 반해 DSU 제3.7조의 보상은 위반조치의 철회를 유도하 기 위해 잠정적으로 취할 수 있는 조치 즉 위반 행위가 지속되는 것에 대한 보상을 규정한다.65) 패널 또는 항소기구로부터 문제가 된 조치를 대상협정에 합치시키도록 권고 받은 회원국은 즉각 또는 합 리적 이행 기간(resonable period of time, 이하 ‘RPT’) 내에 권고 및 판정을 이행해야 한다.66) RPT 내에 권고나 판정 이행이 불가능한
62) ILC Commentary to Article 36, para.1.
63) Ibid., para.4.
64) 일반적으로 ARSIWA 제36조의 compensation은 ‘금전배상’으로, DSU 제3.7조 의 compensation은 ‘보상’으로 번역된다. 동일한 영어 표현에 대해 이 같은 번역 상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두 조치의 차이를 명확히 하는 것으로 타당하다고 생 각되며, 본 논문에서도 두 조치를 각기 금전배상 및 보상으로 구분하여 설명하도 록 한다.
65) 다만 GATT 제23조 제1항 (b)에 규정된 비위반제소에 대한 보상은 DSU 26.1(d) 에 규정된 것처럼 분쟁의 최종적인 해결로서의 상호 만족할 만한 조정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경우 위반국은 제소국의 요청에 따라 RPT 종료 전에 상호 수락할 수 있는 보상의 마련을 위해 협상을 개시하여야 하며, RPT 종료시 부터 20일 이내에 만족할 만한 보상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아 니하는 경우 제소국이 DSB에 보복에 대한 승인 요청을 할 수 있 다.67) 한편 보상은 권고의 이행을 목적으로 잠정적으로 취해지는 것 이기 때문에 권고가 이행되지 않는 경우 일반적으로 RPT 종료일을 기점으로 그 수준을 산정한다.68) 그런데 이 같은 구조 하에서는 어 떠한 경우에도 위반조치가 시행된 시점부터 위반을 판정하는 보고 서가 채택되는 시점까지, 그리고 만약 RPT가 부여되는 경우라면 위 반조치의 시행일부터 RPT 종료까지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구제방 안이 제공되지 아니한다. 따라서 과거의 피해에 대한 보상을 주요한 내용으로 하는 ARSIWA와 위반조치의 시행일부터 RPT까지의 피해 를 문제 삼지 않는 WTO 체제 사이에 소급적 구제 여부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보상의 수단에 있어서도 ARSIWA와 WTO 체제 사이에는 차이가 나타난다. 금전보상을 수단으로 하는 ARSIWA의 금전배상 과 달리 WTO 내에서 이루어지는 보상은 추가적인 무역 양해를 허 용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WTO에서 이야기하는 보상은 WTO 협정에 대한 일시적인 재협상에 불과한 것이다.69)
결국 ARSIWA와 DSU 모두 ‘compensation’이라는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은 각기 다른 목적을 지닌 서로 다른 조치를 규정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WTO상의 의무를 위반한 국가 에게 일반국제법을 근거로 배상 의무를 부과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상의 목적 또는 수준에 관한 논의로써 과거의 피해에 대한 보상을 내용으로
66) DSU 제22.1조.
67) DSU 제22.2조.
68) Pauwelyn, “Enforcement and Countermeasures in the WTO”, supra note 11, p.338; 보복조치를 취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RPT 종료일을 기점으로 이익 의 무효화 또는 침해에 상응하는 보복수준을 산정한다(DSU 제22.4조).
69) Pauwelyn, Conflict of Norms, op cit., pp.219, 222.
하는 소급적 구제가 허용될 것인지, 보상의 방법에 관한 논의로 그 러한 보상을 일반국제법의 경우와 같이 금전배상으로 행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3) 만족
원상회복이나 금전배상에 의해서도 위법행위로 인한 손해가 회복 되지 않는 경우 유책국은 만족(satisfaction)의 의무를 진다(제37조).
만족은 위반의 인정, 유감의 표명, 공식 사과 또는 그 밖의 적절한 방식으로 할 수 있으며, 손해와의 비례성을 벗어나거나 유책국에게 모욕을 입히는 형태는 허용되지 아니한다.70) 만족의 의무는 통상 금 전적으로 측정이 불가능한 피해에 대해 부과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피해는 때로 ‘비물질적 피해(non-material injury)’라고 표현 되며, 국기에 대한 모독, 국가원수나 외교관 혹은 정부 대표에 대한 고의적인 공격 또는 부당한 처우, 공관에 대한 위법 행위와 같이 상 징적인 성격을 지닌 경우가 많다.71) 과거에는 만족이라는 미명 하에 과도한 요구가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으나 오늘날 국가 주권 평등의 원칙에 어긋나는 방식의 과도한 요구를 부과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특히 만족은 처벌적인 성격을 지니거 나 징벌적 손해 배상 개념을 포괄하는 것이 아님을 유념해야 한 다.72)
GATT/WTO 체계상 만족을 실현하는 방법은 앞서 ARSIWA 제 30조와 관련해 다룬 바 있는 재발방지의 보증을 이용하는 방법과 유책국이 위반 사실을 인정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상 분쟁의 경우 위반 조치를 시행한 국가가 위반 사실의 인정을 통해 만족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분쟁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기 마련이다. 가령 US – Dairy Products 사건의 경우 미국은
70) ARSIWA 제37조 2,3항; ILC Commentary to Article 37, paras.5, 8.
71) Ibid., paras.3-4.
72) Ibid., para.8.
처음부터 자국의 행위가 GATT 상의 의무에 위반됨을 인정하였지 만 위반 조치를 철회하는 내용의 입법 조치가 취해지지 않자 몇몇 체약국들은 GATT 제23조를 문제 삼았고 네덜란드는 심지어 보복 권한을 얻어 내는데 성공하였다.73)
한편 Mavroidis는 DSU 제19.1조의 권고 의무가 굉장히 일반적인 용어(general term)로 기술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같은 표현 은 권고를 받은 국가에게 어느 정도의 구속력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낳는다는 것이다.74) 하지만 권고라는 것은 위반 사실을 공공 연하게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반드시 어떤 행위가 ‘행 해져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WTO 협정의 기초자 들이 일반국제법상 배상의 한 종류로 인정되어 온 만족의 독자적인 역할을 배제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