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역기구의 설립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미국에 의해 처 음 제시되었으며 1944년 브레튼우즈 회의의 결과 국제통화기금 (International Monetary Fund, 이하 IMF), 국제부흥개발은행 (International Bank of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이하 IBRD), 그리고 국제무역기구(International Trade Organization, 이하 ITO)의 설립이 예정되었다. 그러나 1948년 3월 하바나 회의에서 합 의된 ITO헌장이 미국 의회 내에서 비준 동의를 얻는데 실패하면서 ITO 창설은 결국 무산되었다. 다만 1946년 2월 UN경제사회이사회 의 결의안 채택과 함께 구성된 ITO 창설 준비위원회에서 관세인하 협상이 지속되었고, 1947년 10월 30일 제네바회의에서 23개 국가들 의 합의로 GATT가 채택되었다. 특히 관련 국가들은 GATT상의 관 세인하 약속을 향후 ITO헌장에 부속시키겠다는 의도 하에 잠정적용 의정서(Protocol of Provisional Application)에 서명함으로서 GATT 상의 의무를 수락하였다. 다시 말해 GATT는 법인격을 가진 국제기 구로서가 아니라 단지 잠정적인 지위만을 가진 상태로 1948년 1월 1일 발효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GATT의 제도적 취약함은 교정 없 이 운용되었다.147)
147) Bliss, Julia Christine, “GATT Dispute Settlement Reform in the Uruguay Round: Problems and Prospects”, Stanford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1987), Vol.23, p.33. 한편 GATT에 서명한 국가들은 GATT상의 의무들이 궁극 적으로 ITO헌장에 따른 제3의 사법기제에 의해 집행될 것을 의도하고 있었기 때 문에 관세인하의 목적을 위해 ITO 설립 시까지 한시적으로만 독자적으로 존립하 게 될 GATT에 완벽한 분쟁해결절차를 마련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GATT 분쟁해결 절차의 취약함 및 모호함은 ITO헌장 비준 실패라는 적대적인 정
이렇게 탄생한 GATT는 외부 세계와 단절된 상태로 운용되었 고148) 그 운용자들 사이에는 자유 무역이라는 공통의 규범적 가치에 따른 제도적 야망이 형성되어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149) GATT 회원국들의 유사한 성격과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회원국 수는 GATT 업무의 관계자들 간 전형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되기에 유리 한 요인들로 작용하였다.150)
그러나 1950년대 중반 이후 세계는 신생독립국들의 개발 (development)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른바 남북문제 (North-South problems)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IMF나 IBRD, GATT는 원래 후진국의 경제개발을 위해 창설된 기구가 아니었기 때문에 남북문제에 대처하는 그들의 노력은 제3세계 국가들에게 여 전히 불충분한 것으로 간주되었다.151)
전후 기간 동안 이들 국가들(개발도상국들)은 GATT를 포함한 브레 튼 우즈 체제가 의사결정 절차상의 형평을 회복하고 발전의 명분을 고취하기 위해 다자적 협상을 통한 근본적인 개혁을 달성해야 한다 고 보았다. 그러한 목적 달성을 위한 노력들은 브레튼 우즈 체제와 달리 일반특혜관세제도(the Generalized System of Preferences or
치 현실 속에서 GATT를 눈에 띄지 않게 하여 계속 유지하기에 유리한 분위기를 만들었다(Hudec, Robert E., “The Role of the GATT Secretariat in the Evolution of the WTO Dispte Settlement Procedure”, in Bhagwati, Jagdish and Hirsch, Mathias (eds.), The Uruguay Round and Beyond: Essays in Honor of Arthur Dunkel, The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998), pp.102-103).
148) Weiler, J.H.H., “The Rule of Lawyers and the Ethos of Diplomats:
Reflections on the Internal and External Legitimacy of WTO Dispute Settlement”, Journal of World Trade (2001), Vol.35, No.2, p.681; Lindroos 와 Mehling에 따르면 GATT는 본질적으로 기술적인 문제들에 집중함으로서 외부 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체제가 정치 및 사회의 도처에 영 향을 미치게 되고 대중의 엄격한 감시 하에 놓이게 되면서 이러한 단절을 유지하 기가 어려워졌다(Lindroos, Anja and Mehling, Michael, “Dispelling the Chimera of ‘Self-Contained Regimes’ International Law and the WTO”, The Europea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2006), Vol. 16, No.5, p.859).
149) Weiler, ibid.
150) Ibid.
151) 김대순·김민서, WTO法論 (삼영사, 2006), p.5.
GSP), UNCTAD와 UNIDO 등의 기구들, 개도국에 대한 특별하고 차별적인 대우의 원칙이나 UN과 UNCTAD의 주요 원칙 선언과 같 은 개념적 성격의 성과를 거두었다.152)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GATT 체제 내 개발도상국들의 수는 크 게 증가했으며, 1960년대 중반에는 개도국과 선진국의 비율이 2:1을 넘어서게 되었다.153) 개도국들은 블록을 형성하여 수적 우위를 바탕 으로 처우 개선에 대한 요구사항들을 제시하였고, 이러한 요구사항 들은 주로 개도국들의 시장접근을 저해하고 있던 선진국들의 위법 한 무역 장벽에 대한 법적 의무 강화에 관계되었다.154) 우루과이 라 운드 이후 새로 출범한 WTO 체제가 실효성 있는 이행강제 및 분 쟁해결절차를 도입하고 법의 지배를 강화하게 된 것도 다소간 개도 국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1994년 4월 15일 모로코 마라 케시에서 최종의정서에 서명하기까지 대략 8년의 기간이 소요된 GATT 제8차 다자간무역협상 즉, 우루과이 라운드(이하 UR 협상) 는 특정 주제에 관해 동일한 목적을 가진 개도국들 간 동맹을 형성 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제공하여 개도국들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 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155)
한편 소급적 구제를 기초로 하는 금전보상의 도입 문제는 개도국 들이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GATT/WTO 개혁 과제 중 하나였다.
개도국들은 GATT의 위법한 무역 제한들이 취약한 개도국들의 경 제에 심각한 피해(serious harm)를 야기하며 그것이 개도국들의 개 발 과정에 지연 효과(retarding effect)를 유발하여 피해를 배가시킨 다고 여겼다.156) 특히나 GATT의 미래지향적 구제방안은 개도국들
152) Ricupero, Rubens, “Integration of Developing Countries into the Multilateral Trading System”, in The Uruguay Round and Beyond: Essays in Honor of Arthur Dunkel, op cit., p.11.
153) Hudec, supra note 147, p.109.
154) Ibid.
155) Ricupero, supra note 152, p.33.
156) Hudec, Robert E., “The Adequacy of WTO Dispute Settlement Remedies: A Developing Contry Perspective”, in Mavroidis, Petros C. and
이 이미 입은 손해를 보전하기에 충분하지 아니하다는 이유로 금전 보상 형태의 소급적 구제를 허용하는 방안을 제안하였던 것이다.157) 1965년의 제안에서 브라질은 GATT 제23조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 하면서 ‘이익의 무효화 또는 침해’ 산정에 있어 저개발 국가들의 입 장을 고려해야 하며 동조에 담긴 문제는 법적(de jure) 평등을 확보 하기 위한 문제라기보다는 실질적 평등에 관련된 문제임을 지적하 였다.158) 또한 패널의 권고가 위반조치의 철회, 적절한 보상, 마지막 으로 보복조치에 대한 권한 부여로 이어지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애 초의 손해(the initial damage)에 상응하는 금전보상의 부과 가능성 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음을 제안하였다.159)
개도국들은 1965년의 일련의 위원회 회의에서 금전보상(monetary damages)에 관한 제안을 맹렬하게 주장하였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단순히 그것이 가능한 범주 내에 있지 않다고 주장하며 개도국들의 주장에 강하게 맞섰다. 선진국들에 따르면 GATT는 금전보상의 문 제를 심각하게 다루고자 기획된 것이 아니었다. 개도국들의 제안은 채택되지 않았다.160)
이후 1985년에서 1995년의 기간 동안 GATT 패널의 결정을 통해 몇 차례 GATT상의 규칙을 위반하여 부과된 관세나 세금의 반환 결정이 내려지긴 했으나 UR 협상 과정에서도 금전보상을 통한 소 급적 구제를 명시적으로 입법화 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가령 1988년 4월 멕시코는 개도국이 패널 권고를 불이행하게 된 경우 자국의 무 역적, 재정적, 개발상의 필요를 고려하여 보상 방식을 결정할 수 있
Sykes, A.O. (eds.), The WTO and International Trade Law/Dispute Settlement, Edward Elgar Pub (2005), p.339.
157) Ibid.
158) Statement by the Representative of Brazil on Article ⅩⅩⅢ in Proposals for Amendments to the General Agreement, 27 April 1965, GATT Doc. Com.TD/F/W.1, p.15.
159) Ibid., p.17.
160) Hudec, supra note 156, p.340.
도록 잠정적 해결책(interim solution)으로서 보복보다는 보상을 선 택하도록 하고, 반대로 불이행국이 선진국인 경우에는 보상을 하되 분쟁의 대상이 된 조치가 발효된 시점부터 산정하여 보상하도록 한 다는 제안을 내놓았다.161) 이 같은 의견은 1989년 9월 회의에서도 제기되었다. 즉 대규모의 무역 상대국들과 비교할 때 보복 역량이 상대적으로 약한 소규모 체약국들에게는 보상이 더 유리할 수 있다 는 의견이 제기되었으며, 규정에 위반하는 무역조치가 제거되더라도 위반조치에 따른 결과적 손해(consequential prejudice and harm)를 구제하기 위해 보상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162) 특 히 결과적 손해는 민간 부문(private sector)에서 현저하게 나타나기 에 GATT가 이러한 유형의 손해 배상에 관한 절차를 공식화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으나 GATT는 체약국들의 관계를 다루는 장이지 민간 부문의 손해 문제를 다루기에는 적절한 포럼이 아니라 는 것이 대다수의 반응이었다.163)
WTO 체제에 들어선 이후에도 이 같은 개도국들의 노력은 계속 되었다. 파키스탄은 DSU 제22조에 ‘금전보상(monetary compensation)’이라는 문구의 삽입을 제안하였으며,164) 2011년 4월 21일 발표된 Ronald Saborío Soto 무역협상위원회(Trade Negotiations Committee) 의장의 분쟁해결기구 특별 세션(Special Session of the Dispte Settlement Body) 보고서에도 “개도 회원국 에 대한 보상은 달리 협의하지 않는 한 금전으로 한다.”라는 내용을 DSU 제22조에 추가하는 것에 관한 논의가 담겨 있다.165)
161) Communication from Mexico, 23 June 1988, GATT Doc. No.
MTN.GNG/NG13/W/26, p.8.
162) Meeting of 28 September 1989, Note by the Secretariat, GATT Doc.
No. MTN.GNG/NG13/16, pp.3-4, paras.12-13.
163) Ibid., p.4, para.13.
164) Preparations for the 1999 Ministerial Conference, The Dispute Settlement Understanding (DSU), Communication from Pakistan, 1 April 1999 (WT/GC/W/162).
165) Special Session of the Dispute Settlement Body, Report by the Chairman, Ambassador Ronald Saborio Soto, to the Trade Negotiations
어찌 보면 GATT/WTO 체제 내에서의 소급적 구제에 관한 논의 는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지난한 줄다리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개 도국들은 선진국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적 틀 내에서 실질적인 형평 을 달성하기 위해 투쟁해온 것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이는 경 제 현실과 GATT/WTO의 명분에 대한 싸움이기도 하다. 소급적 구 제의 부재로 인해 결과적으로 손해가 존재하는 엄연한 현실에도 불 구하고 GATT/WTO의 설립 취지가 손해보전을 위한 것이 아니었 다는 명분으로 현실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급적 구제 의 문제에 관한 개도국과 선진국의 명분 싸움 끝에는 소급적 구제 의 부재에 따른 불합리한 결과가 놓여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앞 장에서 살펴본 손해 배상에 관한 예외적 판정들은 어 쩌면 불합리한 현실을 시정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