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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절 성장과 분배: 새로운 관점

문서에서 OECD 국가의 사회지출과 경제성장 (페이지 113-116)

지난 40년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률을 자랑해온 한국에서 성장지상주의 가 뿌리 깊게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른 다. 그런 배경 하에서 참여정부가 성장일변도의 정책을 탈피하여 분배도 꽤 중 요하다는 입장을 취한 것은 당연히 보수층의 비판의 표적이 되었다. 참여정부 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줄곧 언론으로부터 성장 대신 분배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비판받아 왔으며, 경제학자들도 심심찮게 그런 논조의 칼럼을 신문에 싣고 있 다. 아마도 이들 언론인과 학자들은 오래 전에 학교에서 배운 경제학을 그대로 진리라고 믿고 있는 모양이다. 대표적인 예로 상이한 계급간의 상이한 저축률 이 성장률의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는 Harrod-Domar 성장모델에 의하면 소 득분배가 불평등할수록 저축률이 높아지고, 따라서 성장률도 높아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이론을 믿게 되면 분배 개선은 성장에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고, 따라서 참여정부가 강조하는 분배개선론은 방향을 틀리 게 잡은 것으로 보일 수 있겠다.

그러나 경제학에는 다양한 이론들이 있으며, 분배와 성장 사이의 관계에 대 해서도 반드시 일방통행적 이론만 있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1970년대 세계은 행에서 나온 보고서는 재분배를 통한 성장을 강조하고 있었다(Chenery et al, 1974). 그들은 저개발국의 빈곤과 불평등이 성장을 저해한다는 점을 강조하였 고, 성장과 재분배의 동시 달성이 가능하다는 점을 주장하였다. 특히 토지, 인 적 자산, 신용에의 접근성 등 생산적 자산을 빈민들에게 유리하게 재분배하는 정책을 씀으로써 성장과 재분배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들 논점의 핵심이었고 그래서 그들의 책의 제목도 ‘재분배와 성장의 동시달성’이 었다. 이런 새로운 주장이 충분히 검증되지 못한 채 1980년대에 들어와 신자유 주의, 워싱턴 합의가 나타나면서 성장지상주의가 판세를 주도한 것은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다.

그리하여 경제학계에서 분배와 성장의 관계가 다시 조명을 받게 된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 이 시기에 분배와 성장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 출현하 였다. 이 견해는 불평등이 성장에 유해하다고 보는 점에서 새로운 관점이다. 이 새로운 관점은 세 개의 이론적 기둥 위에 서 있다. 첫째는 조세-재분배 경로다 (Alesina and Rodrik, 1994). 어떤 나라가 소득분배가 불평등할수록 다수의 가난 한 사람들이 있고, 이들은 정부에 대해 소득재분배 정책을 위해서 세금을 많이 거둘 것을 요구하게 된다. 이는 공공선택이론에서 나오는 중위투표자 모델 (median voter model)로 쉽게 설명된다. 과도한 세금, 과도한 재분배는 성장을 저해한다는 것이 이 이론이 함축하는 바이다.

둘째는 사회적, 정치적 불안정과 관련이 있다. 어떤 나라의 소득분배가 지나 치게 불평등하면 사회적, 정치적 불안정이 클 것이고, 그런 나라에서는 투자가 활발히 일어날 수가 없고, 그 결과 성장은 저해된다(Alesina and Perotti, 1996).

사회적 불안정은 직접적으로 기업가들로 하여금 투자를 꺼리게 만들 수도 있 고, 아니면 빈부격차가 심한 사회에서 발생하기 쉬운 범죄의 예방을 위해 과도 한 비용을 지출하도록 만들어 간접적으로 투자를 저해하게 되는데, 어느 경로 이든 결국 지나친 불평등이 성장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셋째, 신용시장이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지나친 불평 등은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교육투자를 위한 융자를 어렵게 만들고, 결국 빈 민들의 교육투자를 낮춤으로써 경제성장을 저해하게 된다(Persson and Tabellini, 1994: Birdsall and Londono, 1997). 가난한 집의 애들은 비록 똑똑하더라도 학자 금 마련이 어렵고, 따라서 적정 수준 이하의 인적자본 투자를 하게 된다는 것 이다.

최근 10여년 간 나온 많은 실증적 분석은 대체로 분배와 성장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지지해주고 있다. 그러나 아직 만장일치라고 할 수는 없고, 게 중에는 새로운 관점을 부정하는 연구(Forbes, 2000)도 있어서 좀 더 결과를 지켜볼 필 요가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이 문제를 보자면 지금까지 소위 복지국가의 ‘위기’ 혹은

‘소멸’에 대해서 수도 없이 많은 연구가 쏟아져 나왔지만 복지국가는 건재하다

고용

통한 재분배와 관대한 복지제도가 지나치게 나간 측면이 있고, 따라서 실패를 교정하기 위해서 복지국가를 수술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감세와 작은 정부를 향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정부에도 똑 같은 것을 요구한다면 이보다 더 불합리한 주장도 없을 것이다. 한국은 아직 소득수준에 비해 너무 낮은 복지제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해서 소 위 복지병이나 영국병을 걱정한다면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비유하자면 이제 막 등산을 시작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너무 높이 산에 올라갔다가 高山病을 만나서 하산하는 걸 보고, “아! 이게 대세로구나 우리도 내려가자” 이렇게 이야 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참여정부를 가리켜 분배주의, 좌파 운운하는 것도 사실 근거 없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문서에서 OECD 국가의 사회지출과 경제성장 (페이지 113-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