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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와 한계

문서에서 농업회의소 성과평가 및 발전방안 (페이지 164-169)

6 결론

투입해 컨설팅, 농업회의소에 대한 안내, 농업인 교육 등의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동안의 설립 실적이 미흡한 수준이라고 평가하기 는 어렵다. 예컨대 지방정부 수준에서 농정 자문을 농업회의소 활동의 본령으로 삼는, 즉 ‘대의 기능’을 중시하는 프랑스의 경우 1924년에 농업회의소 설치법을 제정하고도 3년이 지난 1927년에야 법률에 따른 ‘보통선거’를 처음 실시하여 농 업회의소를 구성할 수 있었다(김수석, 2007). 사실은 1851년과 1919년, 두 차례 에 걸쳐 관련 법률이 제정되었지만 시행되지 못한 전사(前史)가 있었음도 고려해 야 한다. 유사하게 비교할 만한 사례로, 2013년부터 행정안전부가 주도하는 가 운데 전국 3,500여 읍·면·동에 주민자치회를 구성하는 노력을 기울였는데, 2021년 9월 기준으로 800여 개소가 설립되었다. 주민자치회는 시·군보다 한 단 계 낮은 행정구역 수준에서 추진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투입되는 정책적 지원 이 대상 집단의 규모로 보아 농업회의소 시범사업보다 더 많음에도, 그 설립 속도 가 농업회의소의 경우보다 크게 빠르지 않다. 주민자치회나 농업회의소처럼 ‘자 치적 성격을 지니는 민간 참여 공적 기구’를 형성하는 일은,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그리고 민주적인 과정을 따라 추진해야 하므로 단기간에 큰 성과 를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프랑스처럼 보통선거를 통해 농업회의소에 농업인 대 표자들을 두게 하는 법률도 없는, 아예 법률적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전국 각지의 농업회의소가 이 정도 설립된 것은 그 속도가 늦은 것이라 볼 수 없다.

2014년에 농업인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수행한 마상진 외(2014)의 연구 결과와 비교할 때 농업회의소 회원이 아닌 농업인들의 농업회의소에 대한 인지도 는 상당히 높아졌다. 마상진 외(2014: 73)에서는 농업회의소를 ‘대략 알고 있거 나 매우 잘 안다’고 응답한 농업인의 비율이 16.6%였는데, 이 연구에서 수행한 설문 조사에서는 그 비율이 29.3%였다<부표 2-35>. 농업회의소가 필요하다는 응답률은 2014년의 연구에서 85.1%, 이번 연구에서는 81.3%로 비슷한 수준이 었다. 그동안 꾸준히 농업회의소가 설립되었고, 몇몇 농업회의소의 활동사례들 이 알려지면서 인지도가 높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시범사업’을 계기로 농업회의소를 새로 설립하는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 행 정력의 결합이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지역에서 농업계의 합의와 준 비가 전제되지 않을 경우 설립 이후 운영상에 파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몇 몇 사례를 통해 학습했다는 것도 성과라면 성과라 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농업 회의소가 지방정치 무대에서, 특히 지방선거를 전후로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 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도 다수의 농업회의소 관계자들이 학습하게 되었다.

농업회의소의 구성 측면에서 개별 농업인과 지역의 농업인단체 및 농축협 같은 조직을 동시에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구조를 만들어낸 것도 한국 농촌의 맥락에서 나온 특별한 성과라 할 수 있다. 보통선거제가 도입되지 않은 한국에서는 현재로 서는 ‘자발적인 가입’ 방식으로 농업회의소를 구성할 수밖에 없는데, 농업인 개인 을 단위로 삼을 것인지 농업인단체 등 조직을 단위로 삼을 것인지의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현재 설립된 농업회의소들은 거의 대부분 농업인 개인과 관련 단체·조 직에게 회원 가입의 자격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조직되기에 이르렀다. 농업인단 체에 가입하지 않은 농업인이 다수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 상황에서는 다양한 위치에 처한 개별 농업인들을 포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지방농 정과 관련해 지역에서 공론을 형성하는 역할을 수행해 온 농업인단체 등의 역할 과 능력을 농업회의소에서 배제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개인’과 ‘조직’ 모두를 포 괄하는 농업회의소 구성 방식을 창출한 것 또한 의미 있는 성과라 할 수 있다.

농업회의소 시범사업을 추진하던 초기에는 농업회의소 설립 및 초기 운영을 돕 는 외부 행위자들이 몇몇 농민운동가나 단체뿐이었다. 이들이 농업회의소를 직 접 설립하거나 운영한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관련된 연구 자료나 외국 사례에 근 거하여 컨설팅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당한 수준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는 농업회의소들이 몇 곳 출현했고, 여러 해 동안의 운영 경험을 지닌 농업 회의소들이 ‘농어업회의소전국회의’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즉, 실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새로 시작하는 농업회의소들의 설립 및 운영 과정에 조력할 단위가 있는 것이다.

그동안 진행된 농업회의소 운영의 가장 큰 성과는 독특한 방식의 공론화 절차 를 형성해냈다는 점이다. 4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농업회의소들은 농업인의 정책 제안을 지방자치단체나 지방의회에 전달할 수 있는 의사소통의 경로를 다양하게 모색·형성하였다. 그중에서도 ‘읍·면간담회-분과위원회-농정협의회’의 경로는 농업인 개인들이 직접 의견을 제시하고 농업회의소 내부에서 숙의하는 과정을 체 계화함으로써, 직접 민주주의와 토의 민주주의의 형식을 한국의 농업회의소 내 부에 도입한 중요한 성과다.

일부 사례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현행 법규에서 공식적인 지방농정 관련 심의 기구인 ‘지방농정심의회’가 당면한 대표성 미흡, 토론 미흡 등의 문제에 농업회 의소가 관여할 통로를 만들어낸 것도 높게 평가할 수 있다. YB군에서처럼 지방 자치단체 조례를 만들어 지방농정 사안에 대한 공식적 심의 과정에 농업회의소 의 참여를 보장케 하거나, 조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적으로 농업회의소의 대의원이나 임원이 지방농정심의회에 참여하는 관행을 확립하게 함으로써 농업 회의소가 당초에 지향했던 ‘공적 대의기구’라는 목표에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1.2. 한계

농업회의소들 다수가 공론장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갖추려 노력 했음에도, 상위 수준의 법률이 없는 상태에서는 지방자치단체와의 공식적 파트 너십 관계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음이 드러났다. 농업회의소를 매개로 지역의 농 업인들이 지방농정과 관련된 여론을 형성하고 정책 제안을 마련하더라도, 지방 자치단체가 그것을 검토하거나 수용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 체로부터 반응이 없는 문제 제기나 정책 제안’이라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농업회 의소 활동을 지속할 동력을 잃기 시작한 곳도 일부 나타났다.

농업회의소들 중에는 농업인이나 농업인단체 다수의 지지와 동의를 충분히 확 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방정치의 현실에서 파당적 이해관계에 휩쓸리거나 오 인되어 제 기능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진 곳도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단순히 다 수의 지지와 동의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농업회의소 설립 과 운영을 주도하는 농업인들이 지방자치단체장과의 관계 측면이나 지역 내 농업 인단체들 사이의 기성 관계 구도 안에서 스스로 파당적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활 동의 잠재력을 부분적으로 상실하기도 하였다. 좁은 의미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원칙이 농업회의소 설립 및 운영에서 매우 중요하다.

농업회의소 시범사업에도 불구하고, 농업회의소가 민주주의적 지방농정을 구 현하려는 ‘대의 기구’라는 정체성을 핵심으로 한다는 점이 농업인이나 농업인단 체 일반에게 이해되지 못함으로써 설립과 운영에 있어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 경우들도 있었다.

농업회의소 제도가 종국에는 ‘좁은 의미의 대의 제도’ 성격을 갖는 방향으로 발 전해야 한다는 점을 전제한다면, 보통선거로 농업회의소 대의원을 선출하는 절 차를 마련하게 될 수밖에 없다. 가령, 독일에서 농업회의소들은 농업인들 개인이 대의원을 보통선거로 선출하므로 ‘개인들의 구성’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오스트 리아에서는 정당별로 농업회의소 대의원 후보자를 내어 선출한다. 프랑스에서는 보통선거를 실시하되 농업·농촌 관련 직능단체, 소비자단체, 농산물 가공업체 등 농업계 전체를 망라한 조직들을 대상으로 투표하는 ‘비례대표제’와 유사한 방식 으로 위원을 선출한다(김수석 외, 2010: 86-89). 현재로서는 한국의 농업회의소 들이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자발적 결사체 성격을 지니지만, 공적인 대의 제도 의 모습을 갖추게 될 때 대의원 피선거권자의 자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의 문 제, 가령 개인이라면 누구나 입후보하게 할 것인지 지역의 농업인단체 등을 대표 하는 후보자를 내도록 하게 할 것인지 정당 선거의 모양새를 갖추어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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