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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회의소의 공론장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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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절차들이 형성되고 운영되는 동시에, 먼저 성립된 농 업회의소의 공론화 절차가 타 지역 농업회의소에 전파되기도 했다. 다양한 형식 의 ‘공론화 절차’가 있는데, 어떤 것이든 ‘농업인의 의견을 수렴해 지방자치단체 등 관계 기관에 건의한다’는 형식을 지니는 것은 똑같다.

농업회의소의 공론화 절차는 우선 ‘의견 수렴-건의’로 구성된 2단계의 의사소 통 과정이라고 개념화할 수 있다. 그런 의사소통 과정에서 메시지(message)는 지방자치단체의 농업·농촌 정책과 관련된 ‘정책 건의 내용’이다. 1단계 의견 수렴 과정에서 메시지의 발신자는 지역의 농업인 및 농업인단체이며, 수신자는 농업 회의소다. 2단계 건의 단계에서는 농업회의소가 메시지의 발신자가 되며, 지방자 치단체나 지방의회 등 지방농정의 의사결정 책임을 지니는 행위자(조직)가 수신 자다. ‘의견 수렴’과 ‘건의’ 단계 모두에서 여러 형태의 매체와 경로가 작동한다.

농업인의 의사를 대의하는 공적 기구로서 농업회의소를 규정하는 법률이 있다 면, ‘의사를 대의하는 공론화 절차’까지도 그 법률에서 일정 정도 규정할 수 있을 테다. 그러나 법제가 미비하므로 농업회의소들이 설립되고 활동하면서 ‘의사를 대의하는 공론화 절차’를 지방농정 현장에서 스스로 기획하고 운용할 수밖에 없 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러 갈래의 ‘절차’들이 현존한다. 그중 바람직한 공 론화 절차의 형식을 식별할 수 있다면, 농업회의소의 대의 모델을 구성하는 데 도 움이 될 것이다.

바람직한 공론화 절차란 무엇을 뜻하는가? “공중의 정치적 영향력은 민주적 의 지형성과 의견형성의 제도화된 절차라는 필터를 통과할 때 비로소 의사소통적 권 력으로 전환되고, 정당한 법제정에 동참하게 된다.”(위르겐 하버마스, 2006:

493). 농업회의소가 구성해야 할 ‘바람직한 공론 절차’란 바로 ‘민주적 의지형성 과 의견형성의 제도화된 절차’를 말한다. 이는 사적 영역에 있던 문제를 공론장에 서 재점화하는 것으로, 농업인의 의견을 수렴해 토론에 부치는 과정을 뜻한다. 그 런 식으로 행위자들 간의 욕구 조정은 농업회의소 내부의 토론 그리고 농업회의 소와 지방자치단체 또는 지방의회 사이의 의사소통에서 이루어진다.

‘바람직한 공론화 절차’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 야 할 듯하다. 첫째, 의견 수렴 과정에서는 최대한 많은 농업인들이 최소의 제약 조건하에서 발화(發話)하면서 의견을 표명할 수 있어야 한다(포괄성). 가령, CP 군 농업회의소 사무국장은 ‘포괄성’이 농업회의소의 공론화 절차에서 중요한 요 소라는 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농업회의소의 설립 취지와 관련해서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기존에는 농민들 이 정책 과정에 참여하지 않거나 소수만 참여하거나 형식적인 경우가 많았지요. 소수 만 참여했을 때, 소수의 이야기들이 주류의 이야기인 것처럼 포장되어서 실제로 정책 화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 것은 농업회의소가 없어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는 이야 기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런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이고요. 그러 니까 최대한 많은 분들의 목소리를 들어서, 특정 단체나 특정 개인이 주도하는 농정이 되지 않도록 역할하는 게 농업회의소라고 봅니다. (CP).

둘째, 발화되고 토의된 내용을 지방자치단체나 지방의회에 전달하고 건의할 때 최대한 공개된 자리에서 최대한 명확한 메시지로 주고받아야 한다(공식성).

‘공식성’이 농업회의소 공론화 절차의 중요한 요소여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CP군 농업회의소 사무국장은 이렇게 말한다.

특정 단체나 개인이 요구를 관철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내가 뭐 군수랑 친하다거나,

무슨 무슨 단체장이니까’라는 입장을 활용해 군수를 직접 만나는 것입니다. 군수는 선

출직이기 때문에 면전에서 노골적으로 ‘안 된다’고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을 이용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군수가 ‘저 무슨무슨 단체장이 부탁한 사항을 실행가능한 쪽으

로 검토해 보시오’라고 농정 담당 공무원에게 지시하면, 환장할 노릇인 거죠. 그래서

저는 농업회의소라면 절차적인 정당성도 확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공직사회로부터

도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농업회의소에서 하는 농정 참여 활동은 최대한 합리

적이려고 애쓰는 활동이다’라는 평판으로 공무원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협치 조직으

로 그리고 나중에는 지방자치단체 행정과 대등한 입장에서 저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

게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우리가 생산해 낸 이야기가 특정 단체들에 관한 이야기

고, 특정 지역에 관한 이야기고, 게다가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지방자치단체 관계 공무

원들 본인들과 논의하는 절차적인 것을 챙기지 않고서, 거꾸로 올라가서 군수를 만나

서 뭔가를 추진한다? 제가 공무원이라면, 손 잡고 협력하고 싶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

러니까 행정에서 손을 잡을 수 있도록, 기존의 것과는 완전이 차원이 다른 농정 활동을

하는 것으로 발판을 다져야 합니다. (CP).

포괄성과 공식성이라는 두 가지 특징을 기준으로 농업회의소들이 수립한 공론 화 절차들을 유형화할 수 있다. <그림 4-1>에 보인 좌표평면에서 오른쪽 윗 부분 (영역 A)에 근접할수록 더 바람직한 공론화 절차라고 볼 수 있다.

포괄성 공식성

A B

C D

<그림 4-1> 농업회의소의 정책 공론화(의견수렴-건의) 절차 유형화의 틀

자료: 저자 작성.

문서에서 농업회의소 성과평가 및 발전방안 (페이지 106-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