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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이 농업회의소를 설립하려는 곳에서, YB군에서 했던 것처럼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수단 삼아 지방농정심의회에 농업회의소의 참여를 보장하는 방안을 농업 회의소가 운영되는 시·군에서 마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2.2. 지역 농업인들의 공론장이라는 정체성 확립

농업회의소의 정체성은 두 가지 각도에서 설명된다. 첫째는 지역에서 토의 민주 주의 절차를 따르는 가운데 농업인들의 의견을 형성해 지방자치단체나 지방의회 등에 제안하는 통로, 즉 공론장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농업인들의 영농활 동이나 일상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농업·농촌 정책의 집행 과정에 참여함으 로써 정책 효과를 제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농정 사무를 위임 또는 위탁받아 수행하는 형식을 취할 수도 있다. 공론장 기능과 정책 사업 집행 기능, 둘 중에 어떤 것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에 대해서는 현존하는 농 업회의소들 사이에서도 통일된 입장은 없다.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 농정 담당 공무원이나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의견들이 명확하지 않거나 엇갈리는 듯하다.

그런데 아직은 농업회의소가 전국적으로 많이 설립되어 있지도 않고, 농업과 관련된 다양한 직능 기관·단체들과의 역할 중복이 논란거리가 될 소지가 있으므 로, ‘공론장 기능’을 확립하는 데 초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설문 조사 결과에 서도 확인했듯이, 농업인들이 지방자치단체의 농정 관련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에 대한 요구가 높다. 농업회의소 운영 사례들을 검토한 결 과를 미루어 보더라도, 공론장 기능을 충실하고 안정되게 수행하는 농업회의소 가 오히려 특정 정책 사업 전체 또는 집행 과정의 일부를 수탁해 수행할 때 성과를 거둘 개연성이 높다.

공론장 기능과 정책 사업 집행 기능 가운에 어느 것 하나만을 수행하는 것으로는 농업회의소의 정체성을 온전하게 정립하기는 어렵다. 둘 다 필요하다. 그러나 공

론장 기능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새로이 농업회의소를 설립하 려는 지역에서, 이미 설립된 농업회의소들에게도, 지방자치단체들에 대해서도 그 같은 ‘우선순위 문제’를 명확하게 인지할 것을 안내하고 촉구하는 노력이 필요 하다. 학습이나 토론 같은 계기가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존하는 농업회의소들이 ‘공론화 절차’를 견고하게 형성하는 일이다.

2.3. 농업회의소 실무 역량 강화를 위한 학습과 지원

그동안 농업회의소 시범사업을 통해 제공된 역량강화 측면의 지원은 최소한의 수준이었다. 연중 몇 번의 집체 교육, 워크숍, 컨설팅 정도의 지원이 있었을 뿐이 다. 농업회의소 실무자 및 회원, 지역의 농업인 일반,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등이 농업회의소를 정확히 그리고 충분히 이해하도록 돕는 지식·정보 측면의 지원을 현재 수준보다 아주 크게 늘려야 한다.

농업회의소 운영의 성과는, 최종적으로는 지방농정의 긍정적 변화를 지역의 농업인들이 얼마나 체감하느냐로 평가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농업회의소가 해 야 하는 일은 공론장을 형성해 합리적이고 의미 있는 정책 제안을 만들고 지방농 정 당국과 협의하고 사업이나 제도로 성립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농업회의 소 사무국의 실무 역량이 아주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사무국은 한 해 동안에도 아주 많은 횟수의 토론을 조직해야 하며, 토론 결과를 바탕으로 정책 제안을 하기까지 각종 문서를 직접 작성하거나 문서 작성에 필요 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지방의회뿐만 아니라 농축협, 농업인단 체, 개별 농업인들과 소통하며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농업회의소가 특정한 농정 사업을 수탁해 실행하는 경우에는, 해당 사업의 기획과 실행에 필요한 구체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농업·농촌 정책에 관한 상당한 수준의 전문성이 요청된다.

문제는, 외부로부터 지식을 얻어 주입하는 간단한 방식으로 ‘농업회의소 사무

국의 전문적·실무적 역량’을 신장시킬 수는 없다는 데 있다. 즉, 교과서가 없는 것 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경험으로 축적된 지식과 능력’이 중요해진다. 유의미한 결과를 내는 농업회의소의 경험을 다른 농업회의소 사무국과 공유하는 방식의 학 습이 거의 유일하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설립한 지 8년이 넘은 농업 회의소들도 있다. 그리고 ‘농어업회의소전국회의’라는 이름으로 농업회의소들 의 협의체도 결성되어 있다. 시행착오를 먼저 겪은 농업회의소들의 경험이 새로 이 설립되는 농업회의소들에게 상세하게 공유될 수 있도록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2.4. 고유사업으로서 국가 위탁사무 시범 추진

공론장 기능 외에 농업회의소가 정책 사업 실행 과정에서 직접 역할을 담당하 는 일은 피할 수 없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종류의 ‘사업’을 실행하는 것이 농 업회의소의 위상을 정립하고 인정받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연구에서 조 사한 16개 농업회의소 중 그런 ‘사업’을 실행하지 않는 곳은 한 곳뿐이었다. 그곳 도 2022년에는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지방자치단체 보조사업 두 건의 실행 과정 에 직접 관여할 예정이다.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의 농업회의소들도 단순히 대의기능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농정 사무를 위탁받아 시행한다.

문제는 어떤 종류의 ‘사업’을 실행하는 것이 바람직할지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농업회의소들이 실행하는 ‘사업’들 가운데 영속적으로 또는 10년 이상 계속 수행해야 하는 것은 없다. 중앙정부가 시행하는 보조사업(농촌 고용인력지원사업) 시행자가 되어 참여하는 경우가 몇 곳 있지만, 그 보조사업 은 1년을 기한으로 시행하되 매년 갱신 절차를 받아 계속할 수 있다. 게다가 농업 회의소의 고유사업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 농업회의소, 사회적

협동조합, 농업인단체, 농업법인, 농협, 조합공동사업법인, 「직업안정법」에 따른 사업자 등 다양한 기관‧단체가 참여할 수 있는데, 이 정책 사업이 지역 농업인들에 게는 아주 중요한 농업 고용 노동력 확보를 지원하려는 것이어서 몇몇 농업회의 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 보조사업 외에, 농업회의소들이 현재 시행하는 ‘사업’들은 지방자치단체가 맡기는 간단한 교육프로그램 운영이나 로 컬푸드 직매장 운영 같은 종류의 것이다. 즉, 영속성도 없고 지역 내 다른 직능 기 관·단체가 하는 일과 중복될 소지가 있다.

농업회의소가 정책의 집행에 직접 참여하려고 할 때에는, 영속적인 또는 장기적 으로 지속되는 국가 농정 사무를 위탁받아 시행하되 그것을 ‘고유사업’으로 정착 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할 때에야 농업회의소의 정체성에 부합할 것이 다. 그 위탁사무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할 것이다. 첫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한 없이 계속해야 하는 일이어야 한다. 둘째, 특정 농촌 지역에 서만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사무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추진하는 사무 여야 한다. 셋째, 행정 공무원이 아니라 농업회의소 및 그 회원 농업인들이 직접 집 행에 참여함으로써 사무의 효율이나 성과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 넷째, 가장 중요 하게는 사무의 성격이 농업인 다수의 공익과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공공적 성격 의 사무여야 농업회의소가 집행에 참여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조건을 놓고 볼 때, 농업회의소들이 위탁받아 시행할 만한 농정 사무 (제도 운영, 보조금 사업 등)가 당장 눈에 띄는 것은 별로 없다. 다만, 농업경영체 등록제도나 공익직불제와 관련된 사무를 검토해 볼 만하다. 그밖에도, 「농지법」

이 여러 측면에서 개정될 전망이고, 앞으로도 농지제도가 큰 폭으로 변화를 맞이 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게 된다는 전제하에 지역에서 정보 측면에서의 농지관 리와 관련된 사무를 농업회의소에 위탁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농업경영 체등록 제도, 공익직불제, 농지관리 업무 등은 앞에서 언급한 여러 조건들을 비교 적 충족한다. 거의 영속적인 농정 사무이며, 공간적으로도 특수한 지역에서만 하는 일이 아니라 전국 모든 농촌 지역에서 시행해야 하는 일이며, 농업인 다수의 공익

과 직결되는 일이다. 다만, 농업회의소 및 그 회원 농업인들이 직접 집행에 참여 함으로써 효율이나 성과를 높일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분별해내는 일이 필요하다.

가령, 공익직불제 중 기본형 직불제 시행과정은 아주 복잡한 절차로 구성되는 데 그중에는 직불금 수령 대상 농업인과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농업인들이 관여 할 때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업무수행상 단계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직불금 신 청 및 등록 과정에서는 경작사실확인서나 임대차계약서를 근거로 농업경영체로 등록해야 하는 절차가 있다. 이때, 원칙적으로는 경작사실확인서나 임대차계약 서에 적시된 내용이 사실에 부합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관외 경작자가 경작하고 있거나, 부재지주 소유의 농지이거나, 상속 및 증여 농지 등인지 아닌지를 점검해 야 하는 것이다. 직불제 이행점검과 관련해서도 농업인이 직접 관여할 때 효과적 인 업무들이 있다. 몇 가지 준수사항의 이행 여부를 점검해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농업농촌 공익증진 교육 이수 여부나 농지 형상 및 기능유지 등과 같은 사항을 점 검하는 데에는 현지의 농업인들이 유리한 점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지역 외부로 부터 조사원을 고용해서 진행해야 하는데, 그 비용을 농업회의소에 제공하고 업 무를 위탁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테다.

농업회의소의 고유사업이자 국가 농정 사무로 추진할 만한 것이 있다 하더라 도, 현재로서는 시·군 농업회의소가 20개소 정도에 불과하며, 그중에서 조직과 업무 절차가 안정되지 못한 곳도 많다. 특히, 농업회의소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인

‘공론장 기능’을 견고한 절차로 형성한 곳은 절반도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국가 농정 사무 중 어떤 것을 농업회의소에 위임하여 시행하려 한다면, 우선은 시범사 업 형태로 추진해야 할 터이다. 공론화 절차를 확립하였고, 회원 등 조직 관리가 안정되었으며, 지역의 여러 농업인단체나 농업인들로부터 확실하게 지지받는 농업회의소 1~3개소를 골라 시범적으로 추진할 만하다. 이러한 구상을 실제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업회의소들 사이의 긴밀한 논 의가 전제되어야 할 터이다.

문서에서 농업회의소 성과평가 및 발전방안 (페이지 169-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