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는 이분화된 세계를 상정한다. 하지만 야콥 폰 군텐에 등장하는 기적은 이와 같이 이분법적으로 구별되는 두 세계를 전제하지 않는다. 이 작품에 등장 하는 기적 역시 세계의 변화가능성이자 역동성을 가리키는 이미지로 출현하기 는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는 오로지 이 세계에 이미 속해 있는 하인을 통해서만 연출된다. 다시 말해 야콥 폰 군텐의 하인은 자신이 속한 세계에 벌써 들어와 있으며, 외부의 전지전능한 은총에 힘입지 않고 자신을 비우는 수동성의 능력을 통해 기적을 행한다. 이렇듯 하인의 섬김은 세계 안에서의 약간의 조정을 통 해267) 세계의 또 다른 국면이 도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한 기적이 ‘향기 Duft’와 같이 전혀 가시적이지 않은 차원으로 일어난다 할지라도 말이다.
어버린 듯 보인다. 게다가 그나마 갖추어져 있던 학교의 정원 역시도 벌써 오래 전부터 버려진 채로 방치되어 있을 뿐이다. “우리 기숙사 뒤편에는 오래되고 버 려진 정원이 있다. 이른 아침 교무실 창문으로 그 정원을 내려다볼 때면 (나와 크라우스는 이틀에 한 번꼴로 아침마다 교무실을 청소해야 한다) 아무런 보살 핌도 받지 못한 채 버려져 있는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정원을 볼 때마다 매번 아래로 내려가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269) 이처럼 벤야멘타 하인학 교에게 있어 ‘자연’은 철저히 거부되거나 부정되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는 듯 보 인다.
그런데 생도들에게서 완전히 박탈된 자연의 모습은 어느덧 그들의 규율과 내 면으로 자리를 옮겨와 있다. 야콥 폰 군텐에서 ‘규정’들은 다름 아닌 ‘우박, 번 개, 눈과 비’와 같은 자연현상들로 묘사되고 있으며, 이러한 학교의 원칙들을 잘 따르는 생도 주위에는 ‘향기’―“보잘것없지만, 용맹스럽게 싸워 쟁취한 칭찬의 달콤한 향기 der süße Duft des bescheidenen, aber wacker erkämpften Lobes”(JvG 84)―가 난다고 언급된다.270) 또한 이들에게는 실제 정원보다 더 아름다운 ‘내면의 정원’이 존재한다.
우리 벤야멘타 학교에는 그와는 전혀 다른 정원들이 있다. 실제 정원 안으로 들 어가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어떤 학생도 그 정원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도대체 왜 못 들어가게 하는지 그 이유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이미 말한 것처럼 우리 는 실제의 정원과는 다른, 어쩌면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는 정원을 가지고 있 다. 벤야멘타 소년 학교가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라는 우리들의 교과서 속에.
그 책의 8쪽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다. ‘올바른 행실은 꽃이 만개한 정원 이다.’ 그러니까 정신적이고 섬세한 감정이 있는 그런 정원들 안에서는 우리 학 생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녀도 되는 것이다.
Es gibt bei uns im Institut Benjamenta noch ganz andre Gärten. In den wirklichen Garten zu gehen, ist verboten. Kein Zögling darf ihn betreten, warum eigentlich, weiß ich nicht. Aber wie gesagt, wir haben einen andern,
269) “Hinter unserm Haus liegt ein alter, verwahrloster Garten. Wenn ich ihn morgens früh vom Bureaufenster aus sehe (Ich muß mit Kraus zusammen jeden zweiten Morgen aufräumen), tut er mir leid, daß er so unbesorgt daliegen muß, und ich hätte jedesmal Lust, hinunterzugehen und ihn zu pflegen.” (JvG 83)
270) Vgl. JvG 84: “Darf ein Schüler des Institutes Benjamenta zufrieden mit sich sein, was selten vorkommt, da es bei uns von Vorschriften hagelt, blitzt, schneit und regnet, so duftet es um ihn herum, […]. 벤야멘타 학교의 우리 생도들이 자기 자신에게 만족해도 좋은 경우는 거의 없다. 규정이란 우박, 번개, 눈과 비가 늘 우리에게 쏟아지기 때문이다. 하지 만 그래도 만약 그런 경우가 생긴다면, 그 훈련생의 주위에는 향기가 난다.”
vielleicht schöneren Garten als der tatsächliche ist. In unserem Lehrbuch:
«Was bezweckt die Knabenschule» heißt es auf Seite acht: «Das gute Betragen ist ein blühender Garten.» - Also in solchen, in geistigen und empfindlichen Gärten, dürfen wir Schüler herumspringen. (JvG 83) (인용자 강 조)
이렇듯 ‘착한’ 행동을 한 생도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울창하고 아름다운 내면의 숲속에서 산책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반면 ‘잘못된’ 행동 을 한 학생들은 제 발로 ‘혐오스럽고 어두운 지옥’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된 다.271) 그런데 인용된 구절들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점은 섬김의 행위가 다름 아닌 ‘향기 Duft’라는 흔적을 수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향기 모 티브는 하인의 실존적 조건들과 결부되어 작품 곳곳에서 매우 여러 차례 등장 한다. 우선 야콥은 생도들 가운데 ‘가장 정직하고 유능한’ 크라우스에게서 “선하 고 올곧은 사람의 향기 Geruch des Guten und Rechtschaffenen”(JvG 25)를 맡 는다. 또한 그는 “무언가를 그리워한다는 것, 그것에도 향기와 힘이 있다 Etwas entbehren: das hat auch Duft und Kraft”(JvG 21)고 언급하기도 한다. 한편 벤 야멘타 원장은 야콥이 입학했을 때 그에게서 “활기차고 어리석으며 버릇없고 뻔뻔스럽지만, 꽃이 피어 있듯 향기를 발산하는 순수한 감정들 frisch, dumm, unartig, frech und blühend, duftend von unverdorbenen Empfindungen”(JvG 156)을 느낄 수 있었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이러한 구절과 대구를 이루듯 야콥 은 죽을 때에 자신이 꽃으로 변하게 되리라고 상상하기도 한다. “어느 날엔가 내 본성과 행위에서는 그 어떤 향기가 날 것이고, 난 꽃이 되어 약간, 자족하기 라도 하듯 향내를 풍길 것이다.”272) 이처럼 인물들이 섬김의 행위에 가까이 있 거나, 혹은 이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들 주위로는 ‘향기’라는 흔적이 남겨 진다고 재차 언급된다.
여기서 흔적으로만 존재하는 향기는 섬김의 행위가 결코 분명하게 지각될 수
271) Vgl. JvG 83 f.: “Führt sich einer von uns schlecht auf, so wandelt er wie von selber in einer garstigen, finstern Hölle. Hält er sich aber brav, so geht er unwillkürlich zum Lohn zwischen schattigem, sonnenbetupftem Grün spazieren. 우리들 중 누군가 잘못된 행 동을 하면, 그는 스스로 알아서 혐오스럽고 어두운 지옥 속을 걷는다. 칭찬받을 만한 행동을 하면, 그 대가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점무늬를 그리는 숲에서 산 책을 하게 된다”
272) “Eines Tages wird von meinem Wesen und Beginnen irgendein Duft ausgehen, ich werde Blüte sein und ein wenig, wie zu meinem eigenen Vergnügen, dufen, […].” (JvG 144)
있는 양태로 구현되지 않음을 암시한다. 바꾸어 말하면 하인의 섬김은 뚜렷한 결과물을 산출하기보다는 단지 세계에 향기만을 남길 뿐이다. 그리고 섬기는 하 인 자신도 익명적인 존재로서 이 세계의 가장자리로, 혹은 밑바닥으로 후퇴한 다. 이처럼 하인에게 주어진 소명은 그가 ‘마치 하인이 아닌 것처럼’ 머물고 섬 기는 것이며, ‘마치 일을 하고 있지 않은 듯이’ 자신의 작업을 지우면서 일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렇듯 하인의 섬김은 행위를 통한 결과의 산출이라는 일반적인 직업윤리와는 정면으로 대치된다. 그리고 벤야멘타 하인학교의 수업과 훈련내용 들은 무엇보다 이러한 ‘무위(無爲)의 행위’를 겨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야콥 은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우리 수업의 실습 혹은 몸통에 해당하는 부분은 지 속적으로 반복되는, 뭐라 부르든 상관이야 없지만, 일종의 체조 혹은 춤이다. 인 사법, 방에 들어가는 방법, 여인들을 대하는 태도, 또는 그와 유사한 것들을 연 습하는데, 사실 너무 장황하고 지루할 때도 많다. […] 내가 알게 된 바로는, 이 곳은 우리 훈련생들의 인격을 도야하고 형성시키는 일에 주력할 뿐, 학문들로 머리를 가득 채워주려 하지는 않는다. 이곳은 자신의 영혼과 신체의 특성을 정 확히 알게끔 교육을 시킨다.”273) 또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신체 역시도 각 부 위에 따라 세밀한 규정의 통제를 받는다. 그들의 모든 신체는 ‘순종’ 그 자체를 구현하고 있어야만 한다. “수업시간에 우리 학생들은 시선을 앞쪽에 고정시킨 채 꼼짝 않고 자리에 앉아 있다. 혼자 슬쩍 코를 푸는 일도 해서는 안 될 것 같 다. 두 손은 무릎 위에 가만히 놓여 있어 수업시간 중에는 보이지 않는다. 손이 란 인간의 허영과 탐욕을 입증하는, 손가락이 다섯 달린 증거물이므로 책상 아 래 얌전히 숨겨두어야 하는 것이다. […] 모든 것을 고려한 규정은 훈련생들의 코에 대해서도 뭉툭하고 콧구멍이 드러나 보여야 한다고 지정하고 있다. […]
우리의 눈은 줄곧 생각들로 가득 찬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이 또한 규정들이 원하는 바다. 원래 눈은 없었어야 했다. 눈은 뻔뻔스럽고 호기심이 강하기 때문 이다. […]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잘 훈련된 기관은 입이다. 입은 항상 순종적으 로, 그리고 겸손하게 꽉 다물어져 있다. […] 입술은 편안하고 자연스런 상태에 서 눈에 띄게 화려해도 안 되고, 음탕하게 활짝 피어 있어도 안 된다. 그 대신
273) “Der praktische oder körperliche Teil unseres Unterrichtes ist eine Art fortwährend wiederholtes Turnen oder Tanzen, ganz gleich, wie man das nennen will. Der Gruß, das Eintreten in eine Stube, das Benehmen gegenüber Frauen oder ähnliches wird geübt, und zwar sehr langfädig, oft langweilig, […]. Uns Zöglinge will man bilden und formen, wie ich merke, nicht mit Wissenschaften vollpfropfen. Man erzieht uns, indem man uns zwingt, die Beschaffenheit unserer eigenen Seele und unseres eigenen Körpers genau kennen zu lernen.” (JvG 63)
단호한 체념과 대기의 증표로 위아래가 맞물려 꼭 다물어져 있어야 한다. 우리 학생들은 모두 그대로 하고 있다. 규정이 명하는 대로 우리의 입술을 매우 엄격 하고 혹독하게 다루고 있다.”274) 이렇듯 벤야멘타 하인학교의 규율과 훈련은 ‘마 치 존재하지 않는 듯이’, 혹은 ‘마치 하인이 아닌 듯이’ 살아가는 하인의 존재양 태를 설계하고 기획한다. 그리고 이러한 하인의 삶의 모습은 무엇보다 ‘단정한 예의범절’의 세계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삶의 양상과 극단적인 대조를 이룬다.
야콥에 따르면 소위 ‘교양 있는’ 사람들만이 모여든다는 대도시의 시민사회는
“최고의, 가장 정선된 사교계 예절 das beste, gewählteste Salon-Benehmen”(JvG 54)로 가득 차 있으며, 온갖 억지웃음과 ‘메르시. 아, 감사드려요 Merci. O, ich danke’(JvG 54)와 같은 격식 차린 말들이 요구되는 다소 산만한 공간과 다름없 다. 사교계에 모인 사람들은 ‘마치 너무나도 감사한 듯’, ‘마치 너무나도 반가운 듯’, ‘마치 너무나도 재미있다는 듯’ 이야기하고 행동한다. 이들은 어색함 때문에 서로가 얼굴 붉히는 일을 꺼릴뿐더러, 굳이 서로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 어 하지도 않는다. 이처럼 야콥 폰 군텐에서 그려지는 시민사회는 말끔하고 단정한 외양을 유지하기 위해 ‘마치~인 것처럼’이라는 공식을 따라 작동하는 허 위의 공간과 다름없다. 그런데 이 공간의 화려한 겉모양은 이러한 외양과 상반 되게 이 세계의 존재기반이 이미 붕괴되어 있음을, 다시 말해 이 세계의 위태로 움을 반증한다. ‘영 eine Null’이 되려고 하는 생도들이 아니라, 바로 대도시의
‘교양 있는’ 시민들이야말로 ‘니힐리즘’이라는 허공을 딛고 서 있는 것이다. 상당 히 이름이 알려진 예술가이자 오래 전부터 사교계에 드나들어 온 야콥의 형 ‘요 한’은 야콥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엇보다도 우선 네가 알아야 할 것은, 결코 네가 무언가를 위반했다고 생각지
274) “In der Unterrichtsstunde sitzen wir Schüler, starr vor uns herblickend, da, unbeweglich. Ich glaube, man darf sich nicht einmal die persönliche Nase putzen. Die Hände ruhen auf den Kniescheiben und sind während des Unterrichts unsichtbar. Hände sind die fünffingrigen Beweise der menschlichen Eitelkeit und Begehrlichkeit, daher bleiben sie unter dem Tisch hübsch verbogen. […] Nasen von Zöglingen sollen stumpf und gestülpt erscheinen, so verlangen es die Vorschriften, die an alles denken, […].
Unsere Augen blicken stets ins gedankenvolle Leere, auch das will die Vorschrift.
Eigentlich sollte man gar keine Augen haben, denn Augen sind frech und neugierig, […]. Das Dressierteste an uns ist aber doch der Mund, er ist stets gehorsam und devot zugekniffen. […] Lippen dürfen nicht prangen und lüstern blühen in der bequemen natürlichen Lage, sondern sie sollen gefalzt und gepreßt sein zum Zeichen energischer Entsagung und Erwartung. Das tun wir Schüler alle, wir gehen mit unsern Lippen laut bestehender Vorschrift sehr hart und grausam um, […].” (JvG 55 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