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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 독백과 외적 관찰이 뒤섞인 발저의 말하기는 관습적으로 통용되는 의미 를 겨냥하지 않는다. 그는 방금 내뱉은 말을 바로 다음 순간에 철회하거나 부정 하고, 가정법으로 점철된 문장들을 나열함으로써 뚜렷한 내용을 전달하려고 하 지 않는다. 각각의 문장은 뒤따라올 문장을 불러들이지만, 모든 문장은 제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이처럼 표면상 비논리적이고 무의미해 보이는 역설 적인 말하기를 통해 야콥을 비롯한 인물들은 외관상 끊임없이 농담을 즐기고 있는 듯 보인다. 이를테면 혼잡한 인파 속에서 야콥과 우연히 마주친 형 요한은 야콥에게 몇몇 모순적인 조언들을 늘어놓는다.

나[야콥]는 고개만 두 번 끄덕이고는 요한 형이 계속 얘기하도록 놔두며 그의 말 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많은, 많은 돈을 벌려고 노력해라. 모든 것이 엉망 이 되었지만 돈은 아직 건재하다. 모든 것, 모든 것이 파괴되고, 반쪽이 나고, 우 아함과 화려함을 빼앗겼다. […] 한 마디로 말하지만, 절대로 겁먹지 마라. 가난하 게 경멸받으면서 살아, 사랑하는 친구야. 돈 생각일랑 떨쳐버려라. 그것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승자다운 것이다. 인간은 정말 불쌍하기 그지없는 존재다. 부자들 은 말이다, 야콥, 불만에 가득 차 있고 불행하단다. 오늘날의 부자들은 더 이상 가진 것이 없단다. 그들이야말로 진정 굶주린 자들이란다.”

Ich begnügte mich, mit dem Kopf zweimal zu nicken, und ließ Johann, indem ich gespannt aufhorchte, fortreden: «Versuche es, fertig zu kriegen, viel,

viel Geld zu erwerben. Am Geld ist noch nichts verpfuscht, sonst an allem.

Alles, alles ist verdorben, halbiert, der Zier und der Pracht beraubt. […] mit einem Wort, sei niemals verzagt. Bleib arm und verachtet, lieber Freund.

Auch den Geld-Gedanken schlage dir weg. Es ist das Schönste und Triumphierendste, man ist ein ganz armer Teufel. Die Reichen, Jakob, sind sehr unzufrieden und unglücklich. Die reichen Leute von heutzutage: sie haben nichts mehr. Das sind die wahren Verhungerten.» (JvG 67 f.) (인용자 강조)

위에서 인용된 바와 같이 요한은 야콥에게 많은 돈을 벌어들이라고 제안함과 동시에, 돈 생각일랑 그만두고 가난하게 경멸받으며 살라고 권고한다. 이처럼 일반적인 말하기에서는 공존할 수 없는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의 병치는 이후에 도 빈번히 등장한다. 이어서 요한은 야콥에게 “너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어떤 것도 희망해서는 안 돼 Du mußt hoffen und doch nichts hoffen”(JvG 68) 라고 말하기도 한다. 야콥은 깨끗한 셔츠 깃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읊조린다.

“깨끗한 셔츠 깃이 필요하다. 인간의 행복은 그런 일들에 달려 있지 않으면서 또 그런 일들에 달려 있기도 하다. 행복? 아니다. 하지만 단정해야 할 필요는 있다. 청결함 자체도 하나의 행복이다. 쓸데없이 지껄여대고 있다. 구구절절 옳 은 이 모든 말들이 얼마나 역겨운지.”234) 또한 그는 크라우스에 대해서도 “이 못생긴 크라우스가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사람들보다 더 아름답다”235)라든가

“이런 무정한, 사랑스러운 인간 같으니 Liebloser, lieber Mensch”(JvG 154 f.)와 같은 모순적인 발언으로 일관한다. 이러한 앞뒤가 맞지 않는 말하기는 ‘규정 Vorschriften’에 대한 야콥의 주절거림에서 극에 달한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것이다. 무언가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다른 곳에서는 그것을 두 배로 하라는 것을 뜻한다. 무심하고, 신속하게, 가볍게 내려진 허락보다 더 따분 한 것은 없다. […] 예를 들어 울어서는 안 된다는 상황, 그것이 사람을 더 울게 만든다. 사랑을 포기하라는 것, 그래, 그것은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해서 는 안 된다고 하면, 난 열 배로 사랑한다. 금지된 모든 것이 수백 배의 증폭된 방식으로 살아간다. 죽어야 하는 것은 보다 활기차게 살아가는 법이다.”236) 이처

234) “Saubere Hemdkragen sind mir ein Bedürfnis. Das Glück eines Menschen hängt nicht und hängt doch von solchen Dingen ab. Glück? Nein. Aber man soll anständig sein.

Reinlichkeit allein ist ein Glück. Ich schwatze. Wie hasse ich all die treffenden Worte.”

(JvG 50)

235) “dieser ungraziöse Kraus ist schöner als die graziösesten und schönsten Menschen.”

(JvG 81)

236) “Was ich sagen wollte: etwas nicht tun dürfen, heißt, es irgendwo anders doppelt

럼 발저의 인물들은 겉으로 보았을 때 쉽게 이해가 가지 않을뿐더러 이치에 맞 지 않은 듯 보이는 말장난을 구사한다.

그런데 독자는 이러한 언어유희 Sprachspiel에 계속적으로 직면하면서, 신비 스럽게도 어떤 실제적인 차원에 가닿게 된다. 역설적인 말하기는 기묘하게도 일 상적 언어로 포착하기 어려운 세계의 실질적 모순 상황과 틈을 드러내 보여주 면서 일종의 진리치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가령 “너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어떤 것도 희망해서는 안 돼”(JvG 68)라는 문장에서 독자는 첫 번째 희 망하다 hoffen가 ‘계속해서 [겸손하고 근면하게] 살고자 함 Weiterleben-Wollen’

을 의미하는 반면, 두 번째 희망하다는 ‘요구하는 바가 많고 교만하게 존재하는 것 Anspruchsvoll- und Hoffärtig-Sein’을 뜻한다고 유추할 수 있다.237) 또한 벤 야멘타 학교에서는 후자의 의미로 희망하는 것, 즉 높은 존재가 되기를 희망하 는 것이 금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설적인 말하기는 의미의 애매모호함을 통과하면서 점차 ‘영(零) eine Null’이라는 기묘한 이상으로 수렴 해 들어간다. 히벨 Hans H. Hiebel은 이러한 발저의 글쓰기를 “분열증적 ‘신비 화’와 ‘혼란’ die schizophrenisierenden »Mystifikationen« und »Konfusionen«”

또는 “신비화하는 역설 die mystifizierende Paradoxie”이라고 명명한 바 있 다.238) 야콥은 벤야멘타 하인학교의 ‘규율에 내재하는 신비 Disziplin-Mystik’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벤야멘타 하인학교는 미미하지만 확고하고 확실한 것에 적응하는 것이, 다시 말 해 엄격한 외관을 규정하는 법칙과 규율들에 익숙해지고 순응해나가는 것이 얼마 나 유익한 일인지 우리에게 각인시킨다. ①어쩌면 이 학교는 우리를 우둔하게 만 들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②어쨌든 우리를 작은 존재들로 만들어버리려고 한다.

③하지만 이 학교는 우리를 절대 주눅 들게 만들지는 않는다. ④우리 훈련생들 모두는 누구나 예외 없이 수줍음을 타면 처벌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⑤말 을 더듬고 두려움을 보이는 자는 우리 벤야멘타 양에게 경멸의 대상이 된다. ⑥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작은 존재여야 한다. 우리가 위대하지 않다는 것을, 그것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번호는 인용자에 의함)

Uns prägt man ein, daß es von wohltuender Wirkung ist, sich an ein festes,

tun. Nichts ist fader als eine gleichgültige, rasche, billige Erlaubnis. […] Nicht weinen dürfen zum Beispiel, nun, das vergrößert das Weinen. Liebe entbehren, ja, das heißt lieben. Wenn ich nicht lieben soll, liebe ich zehnfach. Alles Verbotene lebt auf hundertfache Art und Weise; also lebt nur lebendiger, was tot sein sollte.” (JvG 104 f.) 237) Vgl. Hans H. Hiebel: Robert Walsers Jakob von Gunten, S. 260 f.

238) Vgl. Ebd.

sicheres Weniges anzupassen, das heißt sich an Gesetze und Gebote, die ein strenges Äußeres vorschreibt, zu gewöhnen und zu schmiegen. Man will uns vielleicht verdummen, jedenfalls will man uns klein machen. Aber man schüchtert uns durchaus nicht etwa ein. Wir Zöglinge wissen alle, der eine so gut wie der andere, daß Schüchternheit strafbar ist. Wer stottert und Furcht zeigt, setzt sich der Verachtung unseres Fräuleins aus, aber klein sollen wir sein und wissen sollen wir es, genau wissen, daß wir nichts Großes sind.

(JvG 64)

①번 문장에서는 벤야멘타 하인학교가 지향하는 목표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생도들을 ‘우둔하게 만드는 것 verdummen’, 인용된 구절의 다른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그들을 겁먹게 만드는 것, 즉 그들을 ‘위협하는 것 einschüchtern’이다. ②번 문장은 이러한 목표의 내용을 다시 한 번 더 부연한 다. 이 학교는 결국 학생들을 ‘작은 또는 하찮은 klein’ 존재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작은 또는 하찮은’을 의미하는 klein이라는 단어는 ‘겁을 먹은 또는 위축된’을 뜻하는 eingeschüchtert라는 단어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 데 ③번 문장에서 야콥은 돌연 이 학교가 결코 학생들을 ‘주눅 들게 만들지 않 는다 nicht einschüchtern’고 딱 잘라 말한다. 이러한 언급은 방금 앞에서 한 말

“어쨌든 이 학교는 우리를 작은 존재들로 만들어버리려고 한다 jedenfalls will man uns klein(=eingeschüchtert) machen”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리고 이처럼 여러 단어들로 변주되고 있는 ‘eingeschüchtert’라는 말의 의미가 더욱 모호해지 고 신비화되는 가운데, 수수께끼와 같은 문장이 또 다시 이어진다. “우리 훈련 생들 모두는 누구나 예외 없이 수줍음을 타면 처벌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Wir Zöglinge wissen alle, der eine so gut wie der andere, daß Schüchternheit strafbar ist.” 이 문장에서 겁을 먹거나 수줍어하는 상태를 일컫 는 ‘Schüchternheit’라는 단어는 ‘겁을 먹게 하다’ 또는 ‘위협하다’라는 뜻의 ein-schüchtern이라는 말과 조응하는데, 역설적이게도 야콥은 이처럼 겁을 먹은 상태야말로 ‘벌을 받거나 strafen’, ‘위협 받게 된다 einschüchtern’는 사실을 알 고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자면 생도들은 위협 받은 상태 Schüchternheit야말 로 위협 받기 einschüchtern 마련임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⑤ 번 문장에서와 같이 말을 더듬거나 두려움을 보이는 학생은 벤야멘타 양에게 경멸을 받게 된다. 하지만 바로 다음 문장에서 야콥은 어떤 경우에도 생도들은

‘작은 klein’ 존재여야 한다고, 즉 결코 ‘큰 Groß’ 존재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다.

이처럼 발저의 문장들은 단어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면서 외관상 자기 딜레마 double bind에 봉착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의 다듬어지지 않고 널브러진 문장들을 거슬러 읽어가다 보면, 독자는 말의 규정적 의미가 힘을 잃 고, 대립된 두 말들 간의 긴장관계가 불가피하게 느슨해지는 역동성의 장(場)에 들어서게 된다. 다시 말해 ‘큰 groß’과 ‘작은 klein’, ‘주인 Herr’과 ‘하인 Diener’,

‘병적인 pathologisch’과 ‘병적이지 않은 nicht pathologisch’과 같은 대립쌍들이 고정적인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변화무쌍한 의미의 공간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 다. 예컨대 야콥은 그의 자아를 왜소하게 만들고, 그를 전적으로 지배하게 될 학교의 원칙과 규율―‘작고 미미한 존재가 되는 것 Kleinsein’―에 철저히 복종 함으로써, 점차 ‘작은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작은 존재’란 세상 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자면 보잘 것 없는 미물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밑바닥 의 시선에서 보자면 성급히 승리의 도취감에 젖지 않고, 사사로운 이익에 집착 하지 않으며 쉬지 않고 일하는, 열정적이고 겸손한 존재일 수도 있다. 또한 이

‘작은 존재’란 자신의 상실감을 오롯이 느끼고, 이를 묵묵히 견뎌낼 수 있는 인 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야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규정이라는 것이 우 리의 존재를 은빛으로, 심지어 금빛으로 빛나게 한다는 것을, 한마디로 말해 매 혹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또 확고한 신념으로 간직하 지 않을 수 없다.”239) 따라서 학생들을 ‘작은 존재’로 만들려는 학교는 역설적이 게도 그들을 결코 주눅 들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쉽게 겁먹지 않으며 용감히 삶 속으로 뛰어든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발저의 인물들은 ‘광기의 언어 die Sprache des Wahnsinns’를 구사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자기 자신으로부터 점점 은폐되어 가 는 비밀을, 그들의 진정한 이념―“근사하고 동그란 영 eine reizende, kugelrunde Null”(JvG 8)―을 구제해내고 있다. 또한 누구나 세계의 주인이 되 고자 하는 근대의 크고 불투명한 열망 속에서 생도들은 기어코 작게 머묾으로 써 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이러한 반(反)영웅적 아비투스 Habitus, 혹은 발저의 실제적인 삶의 경험은 다름 아닌 특유의 역설적인 말하기 를 통해 언어로 형상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역설적인 말하기가 지향하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세계의 다차원적 면모를 읽어내는 지혜의

239) “Ich muß demnach unbedingt annehmen und es als feste Überzeugung aufbewahren, daß Vorschriften das Dasein versilbern, vielleicht sogar vergolden, mit einem Wort reizvoll machen.” (JvG 104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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