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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의 시간

문서에서 비영리 - S-Space - 서울대학교 (페이지 140-144)

균질한 신화적 공간 속에 매몰되어 있는 듯 보이면서도 돌연 자신의 섬김을 통해 이 세계에 파문을 일으키는 하인은 세속적 시간인 크로노스에 결정적 의 미로 충만한 카이로스라는 시간을 기입해 넣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여 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하인의 기적이 결코 세속적 시간인 크로노스와 무관한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인의 섬김은 초자연적 힘이나 이 세계 바깥에 위치한 초월적 존재에 의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이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는 힘은 ‘다리가 입마개에 걸려 낑낑거리는 강아지에게 그 마개를 제거’해 주는 일이나, ‘타인을 위해 문을 열어주는 행위’, 혹은 ‘인사하는 법’과 같이 너무나 사소해서 잘 해도 눈에 띄지 않는 일상적인 행위들 속에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작디작은 섬김의 몸짓들은 그 무엇보다도 삶의 실제적 차원들과 결부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벤야민에게 있어 신화의 폭력적 작동방식을 중단 시킬 수 있는 사람이 혁명가도, 독재자도 아닌, 바로 ‘이야기꾼’이었음을 상기시 킨다. 이야기꾼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간에 실제 삶에 유익한 조언이나 경험을 아무런 대가 없이 전수해주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러한 이야기꾼과 같이 실제적 인 행위를 통해 세계의 무한한 연관성에 복무하는 하인의 섬김은 공허한 윤리 282) Giorgio Agamben: Die Zeit, die bleibt, S. 53.

적 명제나 기이한 마법적 능력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그들이 행하는 기적은 세계에 대해 거의 완전할 정도로 수동적인 자세를 취함으로써 삶의 실제적인 차원에서 약간의 ‘조정’을 마련하는 일과 다름없다.

이처럼 하인이 도래시키는 카이로스의 시간은 크로노스와 전혀 무관하지 않 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카이로스는 이미 크로노스 안에 들어와 있으면서 이 시간의 양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일종의 기적과 같은 계기로서 존재한다. 여기 서 ‘크로노스는 카이로스가 존재하는 곳이며, 카이로스는 크로노스가 거의 존재 하지 않는 곳이다 chronos esti en ho kairόs kai kairόs esti en hō ou pollos chronos’라는 히포크라테스의 정의283)는 카이로스가 크로노스와 별개로 존재하 는 시간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확인시켜준다. 그리고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간의 이러한 긴밀한 관련성을 염두에 둔다면, 신화로부터 깨어나기 위해 요청되는 것 은 크로노스를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완전히 탈바꿈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조 정을 통해 크로노스 내부로부터 카이로스의 시간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크로노스 안에 카이로스가 기입된 모습은 야콥 폰 군텐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다.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면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고 화가 나는데, 바로 그것이 진땀이 나도록 고통스러운 지옥인 것이다. 그 반대로 조심성 있게, 상황에 맞추어 유연하게 행동한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친근하고 또 천재적인 그 무언가가 그의 손을 잡아주는데, 그것이 정원이며, 호의적인 섭 리이다. 이제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친근한 푸른 들판 위를 유유히 산책하 게 된다.

Benimmt sich einer dumm, so muß er sich schämen und ärgern, und das ist die peinliche Hölle, in welcher er schwitzt. Ist er dagegen aufmerksam gewesen und hat er sich geschmeidig benommen, so nimmt ihn jemand Unsichtbares an der Hand, etwas Trauliches, Genienhaftes, und das ist der Garten, die gute Fügung, und er lustwandelt nun unwillkürlich

283) Vgl. Giorgio Agamben: Die Zeit, die bleibt, S. 82: “Die schönste Definition des kairόs, die ich kenne, stammt aus dem Corpus Hippocracticum und beschreibt ihn eben in bezug auf den chronos. Sie besagt: chronos esti en ho kairόs kai kairόs esti en hō ou pollos chronos, »der chronos ist das, in dem es kairόs gibt, und der kairόs ist das, in dem es wenig chronos gibt.« 내가 알고 있는 카이로스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는 히포크 라테스 문집에서 유래하는데, 그것은 카이로스를 크로노스와 관련해서 묘사하고 있다. 이 정 의는 다음과 같다. ‘크로노스는 카이로스가 존재하는 곳이며, 카이로스는 크로노스가 거의 존 재하지 않는 곳이다.’”

in traulichen, grünlichen Gefilden. (JvG 84) (인용자 강조)

이처럼 누군가가 이 세계 안에서 조금 더 ‘조심성 있고, 유연하게’ 행동한다면 그는 돌연 전혀 다른 차원의 무엇, 즉 ‘호의적인 섭리’와 조우하게 된다. 바꾸어 말하자면 하인의 섬김은 약간의 조정을 통해 세속적 시간 속에 직접 카이로스 의 시간이 도래하게끔 하는 것이다. 이어서 크로노스의 시간에 카이로스가 이미 와 있는 상황은 야콥 폰 군텐에서 동화적인 장면으로 묘사된다. 특히 동화(우 화)의 구조가 메시아적인 세계와 부합하는 면이 있다는 점, 나아가 카프카의 한 문장 “당신들이 비유를 따른다면, 당신들 자신이 비유가 될 것이다 Würdet Ihr den Gleichnissen folgen, dann wäret Ihr selbst Gleichnisse geworden”를 적극 적으로 참조한다면,284) 야콥 폰 군텐에서 언급되는 동화적 면모들이 결코 세 속적 시간에 기입된 메시아적인 시간과 무관하지 않음을 재차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그 자체로는 언어적 표현인 ‘비유’가 현실로 현현하는 시적 변용과 마찬가 지로, 세속적 시간의 체험이 메시아적 시간 체험으로 변용되는 기적 아닌 기적 이 일어나는 것이다. 야콥은 고되지만 유쾌한 대청소를 할 때면, 자신을 비롯한 생도들이 마치 ‘동화 속에 등장하는 요정’과 같이 느껴진다고 언급한다.

청소를 하는 날엔 하루가 유쾌하게 지나간다. 즐겁게 바닥에 윤을 내고, 세간들과 부엌살림들을 왁스 묻힌 걸레로 광택이 나도록 닦는다. 책상과 의자들에 물을 끼 얹고, 문고리를 번쩍거리게 문지르며, 유리창은 입김을 불어 닦는다. 모두 작은 과제를 받고, 모두 무슨 일인가를 해낸다. 닦고, 문지르고, 씻어내는 그런 날에는 동화 속 요정들이 떠오른다. 불가사의한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힘들고 거친 일들을 척척 해냈다는 작은 요정들 말이다.

Aber es geht lustig zu an solchen Aufräumetagen. Der Fußboden wird fröhlich poliert, die Gegenstände, auch die der Küche, werden blank gerieben, wozu es Lappen und Putzpuder in Menge gibt, Tisch und Stühle werden mit Wasser überschüttet, Türklinken werden glänzend gemacht, Fensterscheiben angehaucht und abgeputzt, jeder hat seine kleine Aufgabe, jeder erledigt etwas. Wir erinnern an solchen Putz-, Reib- und Waschtagen an die märchenhaften Heinzelmännchen, die, wie es bekannt ist, alles Grobe und Mühselige aus reiner übernatürlicher Herzensgüte getan haben. (JvG 36) (인용자 강조)

284) Vgl. Giorgio Agamben: Die Zeit, die bleibt, S. 54 f.

이처럼 벤야멘타 하인학교의 생도들이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들 을 충실히 이행할 때, 인용된 카프카의 문장에서처럼 그들은 스스로가 비유 속 의 인물(요정)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변형은 크로노스라는 세속적 시간 속에 동화의 시간(카이로스)이 도래했음을 암시한다. 또한 생도들 중 한스를 묘사하 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 역시 크로노스에 동화의 시간으로 개입한 카이로스의 양상을 보여준다. “한스는 깊이 좀 꿰뚫어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내가 그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절대로 아니고말고. 하지만 뭐랄까, 그에게서는 아득 하고 가볍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 사람들은 그를 아주 편안하게 대한다.

그에게는 감당하기 힘겨운 감정들을 일깨우는 구석이 없기 때문이다. 그림 형 제의 동화 속에 나오는 농부의 아들. 태곳적부터 독일적인, 기분 좋은 무엇 인가가 그를 얼핏 처음 보는 순간부터 본질적인 것으로 다가온다.”285) (인용자 강조) 이처럼 훈련생이 지닌 하인의 면모는 그의 주변 세계를 ‘태곳적부터 독일 적인 세계’로, 달리 말하면 ‘동화의 세계’로 변형시킨다. 완벽에 가까운 섬김을 보여주는 크라우스가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존재이면서도 ‘진정한 신의 작품 ein echtes Gott-Werk’으로 추앙받는 까닭 또한 여기에 있다.

크라우스는 진정한 신의 작품이며, 무(無)이며, 하인이다. 크라우스는 제대로 배운 게 없으니 매우 고된 일을 수행하기에나 적합하다고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누군가를 돕고, 복종하고, 시중을 드는 일뿐이다. 세상 사 람들은 그것을 곧 알아차리고는 그를 착취할 것이다. 사람들이 그를 착취한다는 사실 안에는 환하게 빛을 발하는, 자비와 광명으로 빛나는 금빛 찬란한 신적 인 정의가 들어 있다. 그렇다, 크라우스는 거짓 없는, 아주, 아주 단조롭고, 단 순하고, 명료한 존재의 초상이다. 이 사람의 단순함을 알아보지 못할 사람은 아 무도 없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그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는 결코 성공하지 않을 것이다. 난 그것이 멋지고, 멋지고, 또 멋지다고 생각한다.

Kraus ist ein echtes Gott-Werk, ein Nichts, ein Diener. Ungebildet, gut genug, gerade die sauerste Arbeit zu verrichten, wird er jedermann vorkommen, […].

Er hat nichts anderes im Sinn, als zu helfen, zu gehorchen und zu dienen, und das wird man gleich merken und wird ihn ausnutzen, und darin, daß man ihn ausnutzt, liegt eine so strahlende, von Güte und Helligkeit

285) “Hans fordert keinen gedankenvollen Tiefsinn heraus. Er ist mir nicht gleichgültig, durchaus nicht, aber, wie soll ich sagen, ein wenig fern und leicht. Man nimmt ihn ganz leicht, weil er nichts hat, das schwer zu ertragen wäre, weil es Empfindungen wachriefe. Der Grimmsche Märchenbauernjunge. Etwas Uralt-Deutsches und Angenehmes, verständlich und wesentlich auf den ersten, flüchtigen Blick.” (JvG 40)

schimmernde, goldene, göttliche Gerechtigkeit. Ja, Kraus ist ein Bild rechtlichen, ganz, ganz eintönigen, einsilbigen und eindeutigen Wesens. Niemand wird die Schlichtheit dieses Menschen verkennen, und deshalb wird ihn auch niemand achten, und er wird durchaus erfolglos bleiben.

Reizend, reizend, dreimal reizend finde ich das. (JvG 81 f.) (인용자 강조)

크라우스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하인은 세속적인 세계 속에 ‘아주 단조롭고, 단순하게’ 머물고 있으면서도, 그 누구도 오인할 수 없을 정도로 ‘명료하고 환한 빛’을 발하고 있는 존재이다. 이처럼 하나의 ‘풀리지 않는 심오한 수수께끼 ein tiefes unauflösbares Rätsel’(JvG 81)로, 혹은 ‘오래 전부터 전해져오는 그 무엇 etwas Altes’(JvG 77)으로 이 세계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섬김의 행위는 크로 노스 안에 카이로스를 마련하는 약간의 ‘조정’이자 작은 씨앗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하인이 도래시키는 동화의 세계는 이 세계 바깥에 존재하는 선험적 고향 이 아니라, 하인의 수동성이라는 능력을 통해 세속 안으로 개입된 카이로스의 세계와 다름없다. 바꾸어 말하자면 크로노스 안에 도래한 카이로스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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