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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메시스와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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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법의 작동을 중단시키고 신화의 세계가 가진 힘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킬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여기서 ‘신화 Mythos’를 이 말의 어원인 그리스어 ‘이야기하기 mythein’와 겹쳐 읽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모색하는 방편이 신화의 ‘이야기 방식’과 구분되는 다른 이야기 방식일 것이라 고 짐작하게 된다. 그렇다면 신화의 이야기 방식―결코 탕감될 수 없는 ‘빚=죄’

의 연쇄를 아래 세대에게 대물림시키는 이야기 방식―과 구별되는 다른 이야기 방식이란 과연 무엇일까? 어떠한 이야기 방식이야말로 이러한 부채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을까? 먼저 벤야민은 윗세대가 아래 세대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삶을 전달하는 이야기 방식의 부재를 ‘경험 Erfahrung의 빈곤’ 상황과 병치시킨다. 벤야민에 따르면 경험을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이 박탈된 현상은 경험의 가치가 하락한 데에 그 원인이 있다.111) 그는 이러한 상황과 관련해 이

110) 조효원: 발터 벤야민의 Medium 개념 연구. 성균관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석사학위 논문. 성균 관대학교 대학원 2009, 82-97면 참조.

111) Vgl. W. Benjamin: Der Erzähler. Betrachtungen zum Werk Nikolai Lesskows. In:

Gesammelte Schriften Bd. 2-2. Frankfurt a. M. 1991, S. 439: “Immer seltener wird die Begegnung mit Leuten, welche rechtschaffen etwas erzählen können. Immer häufiger verbreitet sich Verlegenheit in der Runde, wenn der Wunsch nach einer Geschichte laut wird. Es ist, als wenn ein Vermögen, das uns unveräußerlich schien, das Gesichertste unter dem Sicheren, von uns genommen würde. Nämlich das Vermögen, Erfahrungen auszutauschen. Eine Ursache dieser Erscheinung liegt auf der Hand: die Erfahrung ist im Kurse gefallen.” (국역본 발터 벤야민: 얘기꾼과 소설가. 니콜라이 레쓰코 브의 작품에 관한 고찰. 실린 곳: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반성완 편역. 민음사 2004, 166면 참조: “날이 가면 갈수록 얘기를 그런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가 더 힘들어 지고 있다. 얘기를 듣고 싶다는 소리가 커가면 커갈수록 우리는 더 자주 우리들 주변의 이곳저 곳에서 당혹감을 맛보게 된다. 이러한 당혹감은 마치, 우리들로선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것으 로 보였던 능력, 즉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으로 보였던 것을 박탈당하는 것과 같은 느낌인 것이다. 요컨대 그것은 한마디로 경험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능력의 박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 원인의 하나는 명백하다. 즉 경험의 가치가 하락한 것 이다.”)

야기꾼 Der Erzähler (1936)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진행과정[경험의 가치가 새로운 하강선을 긋고 있는 상황]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명백해지기 시작하였고, 또 그 이후에도 간단없이 계속되고 있다. 전쟁이 끝나자 전쟁터로 부터 귀환한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다는 사실, 그러니까 직접적 경험을 서로 나누는 일이 더 풍성해진 것이 아니라 더 빈약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부쩍 눈에 띄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후 10년 동안 전쟁에 관해 홍수처럼 쏟아진 책들도 따지고 보면 결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경험이 아니었다. 이러한 현상은 조금 도 이상스러운 일이 못되는데 왜냐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겪은 경험 중에서 전 략적 전쟁을 대신한 진지(陣地) 전쟁, 경제적 경험을 대신한 인플레이션, 육체적 전쟁을 대신한 물량 전쟁, 도덕적 경험을 대신한 권력자만큼 철저하게 비난의 대상이 된 경험도 없었기 때문이다.”112) 그리고 이처럼 전달 가능한 경험이 부 재한 시대에 벤야민은 입에서 입으로 경험을 전해온 무명의 ‘이야기꾼’을 불러 낸다.

이 이야기꾼은 먼 곳으로부터 와서 자신의 낯선 경험들을 이야기해 주는 사 람(‘장사를 하는 선원 유형’)일 수도 있고, 오래 전부터 고향에 정착해 살면서 누구 못지않게 이곳의 이야기와 전설을 잘 알고 있는 사람(‘땅을 경작하는 농부 유형’)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둘의 공통점은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관심을 가 질 만한 진정한 이야기, 즉 ‘지혜 Weisheit’를 전달해주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초기 낭만주의의 ‘새로운 신화’와 관련해 이야기꾼이 이야 기를 전달하는 원초적인 장면을 확인한 바 있다. 까마득한 밤 사람들이 사방에 피워놓은 모닥불 주위로 함께 모여 있고, 어떤 이가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 는 아득한 장면을 말이다. 그런데 벤야민이 호출하는 이야기꾼과 그의 언어는 초기 낭만주의자들이 불러낸 신화 전수자 그리고 그의 언어와 비슷한 듯 보이 지만, 사실은 사뭇 다르다. 우선 초기 낭만주의의 신화 전수자가 공동체의 토대 를 이루는 ‘근원적 이야기’를 수직적으로 전달하는 반면, 벤야민의 이야기꾼은 자신의 ‘조언’을 수평적으로 제안한다. 또한 전자의 경우 그들이 공유하는 언어

112) Ebd.: “Mit dem Weltkrieg begann ein Vorgang offenkundig zu werden, der seither nicht zum Stillstand gekommen ist. Hatte man nicht bei Kriegsende bemerkt, daß die Leute verstummt aus dem Felde kamen? nicht reicher - ärmer an mitteilbarer Erfahrung. Was sich dann zehn Jahre später in der Flut der Kriegsbücher ergossen hatte, war alles andere als Erfahrung gewesen, die von Mund zu Mund geht. Und das war nicht merkwürdig. Denn nie sind Erfahrungen gründlicher Lügen gestraft worden als die strategischen durch den Stellungskrieg, die wirtschaftlichen durch die Inflation, die körperlichen durch die Materialschlacht, die sittlichen durch die Machthaber.” (국역 본 같은 곳)

가 그들의 연합을 위한 ‘토대와 서약의 신성한 언어’인 반면, 후자의 경우는 실 질적인 삶의 재료로 짜인 ‘지혜의 언어’인 것이다. 그리고 벤야민은 이야기꾼 에서 자신이 불러낸 이야기꾼과 그의 언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직접적으로 언 급한다. “얘기꾼이란 얘기를 듣는 사람에게 조언을 해줄 줄 아는 사람이다. […]

조언이란 결국 어떤 의문에 대한 대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금 막 펼쳐지려는 어떤 얘기의 연속과 관계되는 하나의 제안이다. […] 실제적 삶의 재료로 짜여 진 조언은 지혜이다. 얘기의 예술이 그 종국을 치닫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진리의 서사적인 면, 즉 지혜가 사멸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113) 이처럼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유례없는 파국을 경험한 벤야민은 신화의 폭력성―무고한 인간 을 죄 연관으로 밀어 넣거나 배타적 민족공동체, 전체주의로 수렴된 신화의 폭 력적인 힘―을 여지없이 비판하면서도, 이로부터 얼굴을 마주하며 지혜를 나누 는 ‘무명의 이야기꾼’을 구제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사물의 온기가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신화에 밀착해 신화의 작동을 중단시키고, 그로부터 신화가 가진 힘을 훔쳐내는 방식은 벤야민에게서

“미메시스적 능력 das mimetische Vermögen”114)이라고 명명된다. 특히 점성 술에 관하여 Zur Astrologie (1932)에서 벤야민은 미메시스적 힘과 미메시스적 관찰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선 미메시스적 힘이란 부모가 자신과 유사한 자 식을 낳는 것처럼, 또는 동물이 자신의 몸 색깔을 주위와 비슷하게 바꾸는 것―

‘의태․보호색 Mimikry’―처럼 ‘모든 것들이 그것들 속에서 고유하게 작용하는 힘 Auswirkungen einer eigens in ihnen wirkenden’을 의미한다.115) 그리고 미

113) W. Benjamin: Der Erzähler, S. 442: “in jedem Falle ist der Erzähler ein Mann, der dem Hörer Rat weiß. […] Rat ist ja minder Antwort auf eine Frage als ein Vorschlag, die Fortsetzung einer (eben sich abrollenden) Geschichte angehend. […] Rat, in den Stoff gelebten Lebens eingewebt, ist Weisheit. Die Kunst des Erzählens neigt ihrem Ende zu, weil die epische Seite der Wahrheit, die Weisheit, ausstirbt.” (국역본 발터 벤 야민: 얘기꾼과 소설가, 169면.)

114) W. Benjamin: Über das mimetische Vermögen. In: Gesammelte Schriften Bd. 2-1.

Frankfurt a. M. 1991, S. 210.

115) Vgl. W. Benjamin: Zur Astrologie. In: Gesammelte Schriften Bd. 6. Frankfurt a. M.

1991, S. 192: “Man geht weiter und sucht sich klar zu machen, daß diese Ähnlichkeit nicht nur durch zufällige Vergleiche unsererseits in die Dinge hineingetragen werden sondern daß sie alle - wie die Ähnlichkeit zwischen Eltern und Kindern - Auswirkungen einer eigens in ihnen wirkenden, einer mimetischen Kraft sind.” (국역본 발터 벤야민: 점성술에 대하여. 실린 곳: 발터 벤야민 선집6. 최성만 옮김. 길 2008, 316면 참 조: “사람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이런 유사성들이 우연한 비교를 통해 우리가 사물들 속에 가 져간 것들만이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이―부모와 자식 간의 유사성처럼―그것들 속에서 고유하게 작용하는 힘, 어떤 미메시스적 힘이 낳은 결과들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메시스적 관찰방식이란 얼굴이나 건축물, 식물이나 구름의 형상, 피부발진 등에 서 유사성을 지각하는 것을 가리킨다.116) 말하자면 미메시스적 능력이란 ‘유사 성 das Ähnliche’을 생산해내기도 하고 파악하기도 하는 능력 모두를 일컫는 것 이다. 그런데 벤야민이 이야기하는 유사성은 육안을 통해서만 파악되는 유사성 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이러한 감각적 유사성을 넘어서는 “비감각 적 유사성 unsinnliche Ähnlichkeit”117)을 가리킨다. 이와 관련해 벤야민은 유 사성론 Lehre vom Ähnlichen (1933)에서 우리가 감각을 통해 의식적으로 지각 하는 유사성은 무수히 많은 유사성들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한다.118) 그렇다면 감각적 유사성과 구분되는 ‘비감각적 유사성’이란 무엇일까? 벤야민은 비감각적 유사성이 포착되는 한 예로 ‘점성술 Astrologie’을 제시한다. 아이가 탄생하는 순간, 수많은 별들의 움직임 속에서 순간적으로 하나의 통일된 별자리 를 읽어내는 것, 이처럼 휙 스쳐 지나가는 ‘위기의 순간 kritischer Augenblick’

에 우주와 아이 사이의 유사성을 읽어내는 경우를 말이다. 이는 다음의 구절들 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유사성의 지각은 어떤 경우든 번득이며 지나가버리고 마는 순간에 묶여 있다. 유 사성은 휙 스쳐 지나가는데, 어쩌면 다시 획득할 수 있을지 모르나 본래 다른 지 각들처럼 붙들어 매둘 수는 없다. 유사성은 별들의 운행과 마찬가지로 눈앞에 순 간적으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처럼 유사한 것들을 지각하는 일은 시간적 요인에 묶여 있다. 그것은 순간적으로 파악되어야 할 두 별의 만남에 점 성가라는 제3자가 끼어드는 양태와 같다.119)

116) Vgl. Ebd. (국역본 같은 곳 참조.)

117) W. Benjamin: Lehre vom Ähnlichen. In: Gesammelte Schriften Bd. 2-1. Frankfurt a.

M. 1991, S. 207.

118) Vgl. W. Benjamin: Lehre vom Ähnlichen, S. 205: “Noch für die Heutigen läßt sich behaupten: die Fälle, in denen sie im Alltag Ähnlichkeiten bewußt wahrnehmen, sind ein winziger Ausschnitt aus jenen zahllosen, da Ähnlichkeit sie unbewußt bestimmt. Die mit Bewußtsein wahrgenommenen Ähnlichkeiten - z. B. in Gesichtern - sind verglichen mit den unzählig vielen unbewußt oder auch gar nicht wahrgenommenen Ähnlichkeiten wie der gewaltige unterseeische Block des Eisbergs im Vergleich zur kleinen Spitze, welche man aus dem Wasser ragen sieht.” (국역본 발터 벤야민: 유사성론. 실린 곳: 발터 벤야민 선집6. 최성만 옮김. 길 2008, 200면 참조: “오늘날의 현대인에게도 일상에서 유사한 것들을 의식을 통해 지각하는 경우는 무수히 많은 유사한 것들의 경우들 가운데 일부에 불과 하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유사성을 무의식적으로 지각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 다. 사람들이 의식을 통해 가령 얼굴에서 지각하는 유사한 것들은 무의식적으로 지각하는, 혹 은 전혀 지각되지 않은 유사한 것들에 비하면 수면 위에 드러나 있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 다.”)

119) W. Benjamin: Lehre vom Ähnlichen, S. 206 f.: “Ihre[der Ähnlichkeit] Wahrnehm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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