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신화’에 대한 열망은 1800년경 초기 낭만주의64) 시기에서도 계속 이
62) Ebd.: “So müssen endlich Aufgeklärte und Unaufgeklärte sich die Hand reichen, die Mythologie muß philosophisch werden und das Volk vernünftig, und die Philosophie muß mythologisch werden, um die Philosophen sinnlich zu machen. Dann herrscht ewige Einheit unter uns. Nimmer der verachtende Blick, nimmer das blinde Zittern des Volks vor seinen Weisen und Priestern.
Dann erst erwartet uns gleiche Ausbildung aller Kräfte, des Einzelnen sowohl als aller Individuen.
Keine Kraft wird mehr unterdrückt werden. Dann herrscht allgemeine Freiheit und Gleichheit der Geister! - Ein höherer Geist, vom Himmel gesandt, muß diese neue Religion unter uns stiften, sie wird das letzte, größte Werk der Menschheit sein.”
63) Vgl. Georg W. F. Hegel: Vorlesungen über die Ästhetik 1. In: Georg W. F. Hegel:
Werke in zwanzig Bänden. Bd. 13. Frankfurt a. M. 1970, S. 151.
64) 독일 낭만주의는 시대적으로 구분하거나 정의를 내리는 데에 있어 관점에 따라 상이하게 구 성될 수 있는 문예사조에 해당한다. 본고에서 다루어지는 낭만주의는 18세기 말 독일의 예나
어졌다. 초기 낭만주의자들은 고대 당시에 최고의 문학작품으로 고대 그리스 신 화가 존재했던 바와 같이, 당대에도 이에 상응하는 혹은 더 나은 새로운 신화가 탄생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들이 모색했던 새로운 신화는 급속한 산업화와 맞물려 분석적 사고가 팽배한 시대에 삶의 총체성을 되찾으려는 시도의 일환이 었다. 독일 초기 낭만주의 미학의 세례를 받은 프랑스 현대 철학자 라쿠-라바르 트 Philippe Lacoue-Labarthe와 낭시 Jean-Luc Nancy는 독일 낭만주의의 출현 이 18세기 후반의 세 가지 심각한 위기상황과 결부되어 있다고 언급했다. 첫 번 째 위기상황은 부르주아 계급의 자녀들이 기존의 법조인이나 성직자로서의 지 위를 상실하게 되면서 발생한 사회적․도덕적 위기(“the social and moral crisis of a bourgeoisie”)를 가리킨다. 이어서 두 번째 위기상황은 프랑스 혁명 으로 야기된 정치적 위기(“the political crisis of the French Revolution”)와 관 련되며, 세 번째는 칸트의 비판철학(“the Kantian critique”)에서 비롯된 사상적 위기에 해당하는 것이다.65) 이러한 당대의 사회적․도덕적․정치적․종교적 맥 락 속에서 예나 낭만주의는 시대의 산문화에 맞서 문학을 통해 총체적 세계를 구현하고자 한 정신사적 운동―‘심미적 혁명 ästhetische Revolution’―이었다.
여기서 문학은 개별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예술적 표현양식 전체를 의미한다.
특히 문학 장르의 혼합, 가령 서사적인 것과 서정적인 것, 현실적인 것과 동화 적인 것의 혼합은 문학이 간단없이 진보하면서 종합적인 예술―‘진보적 보편문 학 progressive Universalpoesie’ 또는 ‘선험문학 Transzendentalpoesie’―로 발 전해야 한다는 초기 낭만주의 문학관의 무한성을 암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혁신 적 취지는 초기 낭만주의의 새로운 신화 이념 속에 각인되어 있다. 우리는 이를 초기 낭만주의 문학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프 리드리히 슐레겔 Friedrich Schlegel의 글들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 히 그의 신화에 관한 담화 Rede über die Mythologie (1800)66)는 초기 낭만주 의의 새로운 신화 이념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단초들을 제공한다.
신화에 관한 담화 는 1800년 낭만주의 잡지 <아테네움 Athenäum>에 게재 된 문학에 관한 대화 Gespräch über die Poesie 에 실린 네 편의 글들67) 중
Jena를 중심으로 고전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초기 낭만주의 운동(이하 낭만주의는 초기 낭만주의를 가리킨다)을 일컫는다.
65) Vgl. Philippe Lacoue-Labarthe, Jean-Luc Nancy: The literary absolute. The Theory of Literature in German Romanticism. New York 1988, p. 5.
66) Friedrich Schlegel: Rede über die Mythologie. In: Wolfdietrich Rasch (Hg.): Die Bibliothek deutscher Klassiker Bd. 23. München u. Wien 1971, S. 496-508.
67) 슐레겔의 「문학에 관한 대화」는 「시문학의 시대 Epochen der Dichtkunst」, 「신화에 관한 담
하나에 해당한다. 문학에 관한 대화 는 낭만주의 문학을 이론적으로 정초하고 있는 글인데, 이목을 끄는 점은 이 글이 이러한 개념적 작업을 소설 또는 에세 이의 형식으로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 글에서는 네 명의 허구적 인물들이 등장해 각각의 글을 발표하고, 다른 사람들과 토론을 나누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중 루도비코 Ludoviko라는 인물이 발표하는 신화에 관한 담화 에 서는 무엇보다 문학과 신화가 본래적으로 합일되어 있다는 전제 하에 ‘새로운 신화’의 필요성이 피력되고 있다. 그런데 초기 낭만주의의 새로운 신화 이념을 본격적으로 탐색하기 전에, 우선 하만 Johann Georg Hamann(1730-1788)의 영 향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사야 벌린에 따르면 그는 “계몽주의에 가장 치명적 인 일격을 가했으며, 낭만주의의 모든 과정을 […] 촉발시킨 사람 one man who, […] struck the most violent blow against the Enlightenment and began the whole romantic process”68)이자, 당시에 부정적으로 간주되던 신화를 맨 처 음 적극적으로 옹호한 인물에 해당한다. 하만에 따르면 “신화는 단순히 세계에 대한 거짓 진술이 아니며, 세인들을 현혹하려는 파렴치한들이 날조해 낸 이야기 도, 시인들이 멋을 부리기 위해 고안한 장식도 아니었다.”69) 오히려 “신화는 인 간이 감히 말로 나타낼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신비를 표현하는 수 단”70)이자 예술적인 이미지와 상징들을 통해 비가시적인 것을 드러내 보이는 매체인 것이다. 이와 같이 신화를 보는 하만의 관점은 슐레겔의 신화에 관한 담화 에서 좀 더 다듬어진 형태로 등장한다. 우선 루도비코는 다음과 같은 물음 으로 연설을 시작한다.
나의 친구들이여, 그대들이 예술을 숭배하는 만큼의 진지함으로 나는 그대들에게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기를 권하고자 한다. 감격의 힘은 문학에서도 줄곧 제각기 분산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문학이 반대 요소에 맞서 싸워 지쳤을 때에도, 결국 이 힘은 홀로 입을 다물어야 하는가? 최고로 신성한 것이 늘 이름도 형상도 없이
화 Rede über die Mythologie」, 「소설에 관한 편지 Brief über den Roman」, 「괴테의 초기 및 후기 작품들에 나타난 다양한 문체 연구 Versuch über den verschiedenen Stil in Goethes früheren und späteren Werken」라는 네 개의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68) Isaiah Berlin: The roots of romanticism. Princeton 1999, p. 40. (국역본 이사야 벌린: 낭 만주의의 뿌리. 강유원․나현영 옮김. 이제이북스 2001, 68면.)
69) Isaiah Berlin: a. a. O., p. 49: “myths were not simply false statements about the world, neither the wicked inventions of unscrupulous persons, seeking to throw dust in people’s eyes, nor pretty embellishments invented by poets for the purpose of decorating their wares.” (국역본 이사야 벌린: 낭만주의의 뿌리, 83면)
70) Ebd.: “Myths were ways in which human beings expressed their sense of the ineffable, inexpressible mysteries of nature.” (국역본 같은 곳)
머물며 어둠 속에서 우연에 내맡겨져야 하는가?71)
먼저 이 구절에서는 ‘감격의 힘’이 분산된 당대 문학에 대한 개탄이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한탄은 객관성과 명징성, 시와 산문의 분리 등을 강조한 당시 문 학운동의 한 경향성을 겨냥하고 있는 듯 보인다. 또한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감 격의 힘’은 오히려 고전주의의 완전성이라는 이상에서 벗어난 현실상황, 가령 삶의 여러 지난하고 기괴한 형상들을 아우르는 상상력과 독창성, 창조의 절대적 자유를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들에서는 바로 이러한 힘과
‘최고로 신성한 것’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문학에 대한 요청이 암시되고 있 다. 루도비코는 아래에 인용된 바와 같이 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문학, 새로 운 신화가 시급히 출현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나는 바로 결론으로 넘어가겠다. 주장컨대, 고대인의 문학에서 신화가 중심점을 이루었다면, 우리 문학에서는 중심점이 부재한다. 그리고 본질적인 모든 것은―이 점에 있어서 현대 시문학은 고대 시문학에 비해 뒤떨어지는데―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요컨대 우리는 신화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덧붙여 말하자면 우리는 하나의 신화를 소유할 때가 거의 다 되었다. 아니 오히려 우리 가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내는 데에 진지하게 참여해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72)
이처럼 슐레겔을 비롯한 대다수의 초기 낭만주의자들은 신화 개념을 특히 고 대 그리스 신화와 관련지어 사유했다. 고대 그리스 신화야말로 근대 예술이 지 향해야 할 전범―“문학의 유구하고도 영원한 원천 der alte ewige Urquell der Poesie”73)―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 새로운 신화는 개별 문학 장
71) Friedrich Schlegel: Rede über die Mythologie. In: Wolfdietrich Rasch (Hg.): a. a. O., S.
496: “Bei dem Ernst, mit dem ihr die Kunst verehrt, meine Freunde, will ich euch auffordern, euch selbst zu fragen: Soll die Kraft der Begeisterung auch in der Poesie sich immerfort einzeln versplittern und, wenn sie sich müde gekämpft hat gegen das widrige Element, endlich einsam verstummen? Soll das höchste Heilige immer namenlos und formlos bleiben, im Dunkel dem Zufall überlassen?”
72) Friedrich Schlegel: Rede über die Mythologie. In: a. a. O., S. 497: “Ich gehe gleich zum Ziel. Es fehlt, behaupte ich, unsrer Poesie an einem Mittelpunkt, wie es die Mythologie für die der Alten war, und alles Wesentliche, worin die moderne Dichtkunst der antiken nachsteht, läßt sich in die Worte zusammenfassen: Wir haben keine Mythologie. Aber, setze ich hinzu, wir sind nahe daran, eine zu erhalten, oder vielmehr es wird Zeit, daß wir ernsthaft dazu mitwirken sollen, eine hervorzubringen.”
73) Ebd.
르를 넘어, 파편화되어 흩어져 있던 개개인과 삶의 조각들을 어우러지게끔 하는 문학적․예술적 사건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이러한 ‘사건’과 관련해 우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아득한 장면 하나를 떠올릴 수 있다. 까마득한 밤, 사방에 피워 놓은 모닥불 주위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고, 어떤 이가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을 말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그들이 어떻게 그 기원으로부터 유래하게 되었는지 이야기 해 준다. 또한 이 이야기 속에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존재나 기이한 힘, 수많 은 변신들이 등장하고, 이야기꾼은 이들에게 이름을 붙여준다. 사람들은 두려움 을 넘어 공포와 전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한 자리에 모인 사람 들은 이 낯선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신이 왜 여기에 모여 있고, 모여야 하며, 또 왜 그들이 이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아무 거리낌 없이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신화는 인간의 단순한 호기심을 채워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어떤 세계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에 응 답한다. 신화는 결코 한 개인의 신화가 아니라 공동체의 내밀하고 근원적인 이 야기, 즉 ‘공동체의 신화’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나누어 가지는 언어는 “교환 들을 위한 언어가 더 이상 아니며, 그들의 연합을 위한 언어―토대와 서약의 신 성한 언어―”74)가 된다. 특히 신화의 언어에 관한 낭시 Jean-Luc Nancy의 언 급은 낭만주의자들의 신비주의적 언어관을 선회하면서, 신화와 언어 간의 기묘 한 관계를 환기시킨다. 여기에서 낭만주의자들이 공유한 신비주의적 언어관이란 언어를 의사전달을 위한 도구 이상의 것으로 간주하고, 합리적 기호와 구분되는 본래적 언어에 마술적 힘이 내재한다고 보는 입장을 가리킨다. 낭시에 따르면 신화는 외부에 있는 어떤 대상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신화의 언어
‘안에서’ 어떤 공동체를 호출해낸다. 다시 말해 우리는 신화를 듣는 와중에 어쩌 면 아주 순간적으로나마 신화의 언어가 빚어내는 어떤 공동체에 합류하게 될는 지도 모른다.
따라서 신화는 아무 말로나 만들어지지 않으며, 아무 언어나 말하지 않는다. 신화 는 명백히 나타나는 사물들의 언어이자 말이며, 그 사물들에 대한 소통이다. 신화 는 사물들의 외현(外現)도, 외관도 말하지 않으며, 신화 속에서 사물들의 리듬이
74) Jean-Luc Nancy: The inoperative community. Minneapolis 1991, p. 44: “It is no longer the language of their exchanges, but of their reunion―the sacred language of a foundation and an oath.” (국역본 장-뤽 낭시: 무위의 공동체. 박준상 옮김. 인간사랑 2010, 10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