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 한 가운데에 위치한 벤야멘타 하인학교는 외견상 전근대적이며 과거 지향적인 공간으로 비춰진다. 무엇보다 이곳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계급, 규율, 원칙, 복종, 인내 등과 같은 ‘신화의 부정적 형상’들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배 우는 ‘지식’이란 거의 아무 것도 없고, 그들은 늘 ‘명령’을 기다리며 “어딘가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거나 앉거나 서거나 누워 있거나 할 뿐이다.”154) 이들은 “종종 반나절이 다 되도록 늘어지는 기묘한 무위 zu einem oft halbtagelangen seltsamen Müßiggang”(JvG 15)를 견디는 형벌을 받고 있다. 게다가 학생들이 그나마 보고 듣는 것이라고는 달달 외워야 할 규정들 Vorschriften이나 벤야멘 타 소년학교가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가? Was bezweckt Benjamenta’s Knabenschule?(JvG 8)라는 교과서에 한정되어 있다. 이 학교의 풍경이 보여주 는 기묘함은 오후 세시에 극에 달한다. 모든 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에게 절대적 인 자유가 주어지는 이 시각에도 교실을 감도는 것은 단지 정적일 뿐이다.
오후 세시부터 우리 생도들은 거의 자유의 몸이 된다. 아무도 우리에게 신경 쓰 지 않는다. 원장 선생님 오누이는 내실 속으로 숨어버리고, 교실에는 적막이, 사 람을 거의 미칠 지경에 이르게 하는 적막이 감돈다. 어떤 소음을 내서는 안 된다.
소리 내지 않고 재빨리 움직이는 것과 살금살금 다니는 것, 그리고 귓속말로 속 삭이는 것만이 허용된다. 실린스키는 거울을 들여다보고, 샤흐트는 창밖을 내다보 거나 앞집 식모 여자아이와 손짓을 주고 받는다. 크라우스는 과제를 입으로 중얼 거리면서 외우고 있다. 도처에 무덤 속 같은 정적이 감돈다. 마당은 마치 사각형 의 영겁처럼 쓸쓸히 놓여 있다.
Von drei Uhr nachmittags an sind wir Eleven fast ganz uns selbt überlassen.
Niemand kümmert sich mehr um uns. Vorstehers sind in den innern Räumen verborgen, und im Schulzimmer herrscht Öde, eine Öde, die einen beinahe krank macht. Lärm soll nicht vorkommen. Es darf nur gehuscht und geschlichen und nur im Flüstertone gesprochen werden. Schilinski schaut sich 154) “Wir kauern, sitzen, stehen oder liegen immer irgendwo.” (JvG 15)
im Spiegel, Schacht schaut zum Fenster hinaus, oder er gestikuliert mit dem Küchenmädchen von gegenüber, und Kraus lernt auswendig, indem er Lektionen vor sich hinmurmelt. Eine Grabesstille herrscht überall. Der Hof liegt verlassen da wie eine viereckige Ewigkeit, […]. (JvG 71)
이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침묵 속에서 자세를 관철하는 행위는 결코 편안함에 속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삶이 너무나 고통스러울 수 있음’155)을 받아들여야하는 고된 훈련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심지어 그들에게는 “지루함 Langeweile”(JvG 71)을 느끼는 것마저 금지된다.
“지루함이란 자신을 활기차게 만들어줄 뭔가가 밖에서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나 느끼는 것”156)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학교의 풍경은 일견 전체주 의의 한 모델―초기 낭만주의의 빛바랜 신화의 잔재―을 재현하고 있는 듯 보 인다. 생도들의 모든 활동과 생각은 이곳을 지배하는 규율과 원칙의 존립을 위 해 제한되고, 특정 방식에 따라 훈련된다. 그리고 어쩌다가 계율을 위반할 경우 생도들은 동료 크라우스가 퍼붓는 조롱과 멸시, 그리고 그가 씌우는 죄 연관이 라는 굴레를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이들이 도달해야할 지점은 자신의 의지가 하고자 하는 대로가 아니라, 그들 안에 똬리를 튼 원칙들이 명령 하는 대로 그들의 몸을 저절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게다가 생도들의 ‘지루하 고 지난한’ 훈련의 종착역은 구시대의 잔재인 종의 자리, 즉 하인의 자리에 불 과하다.
155) Vgl. JvG 71: “ich stehe meist aufrecht und übe mich, auf einem Bein zu stehen. Oft halte ich zur Abwechslung den Atem lang an. Auch eine Übung, und es soll sogar, wie mir einmal ein Arzt sagte, eine gesundheitfördernde sein. Oder ich schreibe. Oder ich schließe die unmüden Augen, um nichts mehr zu sehen. Die Augen vermitteln Gedanken, und daher schließe ich sie von Zeit zu Zeit, um nichts denken zu müssen.
Wenn man so da ist und nichts tut, spürt man plötzlich, wie penibel das Dasein sein kann. Nichtstun und dennoch Haltung beobachten, das fordert Energie, der Schaffende hat es leicht dagegen. 나는 주로 똑바로 서 있다. 그리고 한쪽 다리로 서는 연습을 한다. 때 로는 기분 전환 삼아 숨을 쉬지 않고 오래 참아보기도 한다. 그것도 하나의 훈련이다. 더 나아 가, 언젠가 의사가 내게 말해주었듯, 건강을 증진시키는 훈련이다. 글을 쓰기도 한다. 아니면 피로를 모르는 두 눈을 감아버린다. 아무것도 더 보지 않기 위해서다. 눈은 생각들을 전한다.
그래서 나는 때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눈을 감는다. 그렇게 눈을 감고 아무것도 하지 있으면, 삶이 너무나 고통스러울 수 있음을 갑작스럽게 느끼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자세를 관찰하는 것, 그것은 에너지를 요하는 힘든 일이다. 그와는 반대로 무언가를 창조해내 는 사람은 편안한 삶을 사는 것이다.”
156) “Langeweile gibt es bei Menschen, die da immer gewärtigen, es solle von außen her etwas Aufmunterndes auf sie zutreten” (JvG 86)
이렇게 작고 보잘 것 없는 무리들을 지도하고 통치하는 ‘독재자’는 다름 아닌 벤야멘타 오누이이다. 벤야멘타 원장은 마치 군주처럼, 리자 벤야멘타 양은 흡 사 공주와 같이 군림한다. 가령 야콥이 처음 벤야멘타 하인학교를 방문했을 때 벤야멘타 원장은 “지배자와 같은 어조 mit seiner Gebieterstimme”(JvG 12) 그 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명령하는가 하면, 이후에도 그는 줄곧 ‘거인’의 형상으로 묘사된다.
벤야멘타 씨는 거인이다. 우리 훈련생들은 이 거인에 비하면 난쟁이들이다. 거인 은 항상 침울한 기분에 빠져 있다. 우리처럼 이렇게 작고 보잘것없는 피조물 한 무리를 지도하고 통치하는 노릇을 하며 그가 짜증을 내는 것은 사실 아주 당연한 일이다. 조무래기들을 다스리는 일은 결코 그의 능력에 상응하는 과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벤야멘타 씨는 다른 큰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다. 헤라클레 스 같은 사람이 우리를 가르치는 이런 자질구레한 일을 맡는 바람에 잠이나 자 고, 중얼중얼 신문이나 읽는 일밖에는 할 수 없는 것이다.
Herr Benjamenta ist ein Riese, und wir Zöglinge sind Zwerge gegen diesen Riesen, der stets etwas mürrisch ist. Als Lenker und Gebieter einer Schar so winzigen, unbedeutenden Geschöpfen, wie wir Knaben sind, ist er eigentlich auf ganz natürliche Weise zur Verdrießlichkeit verpflichtet, denn das ist doch nie und nimmer eine seinen Kräften entsprechende Aufgabe: über uns herrschen. Nein, Herr Benjamenta könnte ganz anderes leisten. Solch ein Herkules kann ja einer so kleinlichen Übung gegenüber, wie die ist, uns zu erziehen, gar nicht anders als einschlafen, das heißt brummend und grübelnd seine Zeitungen lesen. (JvG 17 f.)
벤야멘타 원장과 같이 강압적인 지배자의 모습으로는 아니지만, 리자 벤야멘 타 양 역시 생도들로부터 무한한 추앙을 받는다. 야콥은 벤야멘타 양에게 다음 과 같이 고백한다. “제가 너무나도 순수한 경외감에 사로잡히고 속박되었을 때 보다 더 자신감에 차서 단 한 번이라도,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단 한 번이 라도 선생님께 맞섰다면, 저는 저 자신을 증오할 것이고, 핍박할 것이고, 밧줄에 목을 매달고, 가장 치명적인 방법으로 독을 먹고, 어떤 종류가 되었던 상관없이 칼로 제 목을 베어버릴 거예요. […] 선생님의 두 눈이요. 그 눈이 제게는 언제 나 명령이자 침해할 수 없는 계명이었어요. 그래요, 맞아요,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문가에 서 있는 선생님의 모습이요! 전 이곳에서 결코 하늘을, 달을, 해 와 별을 필요로 한 적이 없었어요. 선생님, 그래요, 선생님이 저에게는 그것들보
다 더 높은 존재였어요.”157) 또한 작품의 후반부에서 벤야멘타 양의 장례식이 치러질 때 크라우스는 다음과 같은 추도사를 낭독한다. “일찍 고인이 된 당신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결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우리는 당신이 다스리고 지배했던 당신의 소년들입니다. 우리는 변덕스럽고 힘겨운 삶 속으로, 벌이와 일자리를 찾아, 뿔뿔이 흩어지게 되겠지요. 그래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서로를 결코 다시 찾거나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우리는 모두 교육자인 당 신을 생각할 거예요. 왜냐하면 당신이 우리의 마음에 새겨놓은 생각들, 당신이 우리 안에 확고히 심어놓은 교훈과 지식들이 우리 속에 존재하는 선의 창조주 인 당신을 언제나 기억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지요. 정말 저절로 말이에요.
[…] 당신은 우리 안에서 계속 군림하고, 명령하고, 살아가며, 가르치고, 질문하 고, 소리를 낼 거예요.”158) 이와 같이 벤야멘타 남매에게 생도들이 보이는 태도 는 무엇보다 절제와 충성으로 이루어진 중세의 기사도 정신을 연상시킨다. 그리 고 마치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벤야멘타 하인학교는 곳곳에서 중세의 복고적 면모와 특징들을 구현하고 있다. “비밀이 가득한 미지의 세계인 내실들로 나 있 는 문 위에는 상당히 평범해 보이는 경찰 검이, 그 위에 엑스 자로 겹쳐져 있는 칼집과 함께 장식으로 걸려 있다. 그 위에는 투구가 근엄하게 걸려 있다. 이 장 식은 마치 이곳에서 통용되고 있는 규정들을 보여주는 그림이나 장식적 표명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159) 검과 투구라는 소품에서 중세의 기사를 떠올리는
157) “Wenn ich Ihnen nur ein einziges, nur ein verschwindend kleines einziges Mal selbstbewußter gegenübergetreten bin, als ganz befangen von Gefühlen und Fesseln der lautersten Ehrfurcht, so will ich mich hassen, verfolgen, an Stricken aufhängen, mit Giften tötendster Art vergiften, mit Messern, gleichviel was für welchen, mir den Hals abschneiden. Nein, es ist ganz unmöglich, Fräulein. […] Schon Ihre Augen. Wie sind sie mir immer der Befehl und das unantastbare schöne Gebot gewesen. Nein, nein, ich lüge nicht. Ihr Erscheinen an der Türe! Ich habe hier nie einen Himmel nötig gehabt, nie Mond, Sonne und Sterne. Sie, ja Sie sind mir die höhere Erscheinung gewesen.”
(JvG 124 f.)
158) “Doch du, Frühgestorbene, wirst unsern Gedächtnissen nie, nie entschwinden. Du wirst am Leben bleiben in unsern Herzen. Wir, deine Knaben, die du gemeistert und beherrscht hast, wir werden uns im flatterhaften und mühevollen Leben, Gewinn und Unterkommen suchend, zerstreuen, so, daß vielleicht alle alle nie wieder finden und sehen. Aber wir alle werden an dich denken, Erzieherin, denn die Gedanken, die du uns eingeprägt, die Lehren und Kenntnisse, die du in uns befestigt hast, werden uns immer an dich, die Schöpferin des Guten, was in uns ist, erinnern. Ganz von selber.
[…] In uns herrschest, gebietest, lebst, erziehst und fragst und tönst du weiter.” (JvG 151 f.)
159) “Über der Türe, die in die geheimnisvolle unbekannte Welt der innern Gemächer führt, hängt als Wandschmuck ein ziemlich langweilig aussehender Schutzmannssäb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