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 문학비평들을 상기시키는 그 다른 차원의 이해란 발저의 텍스트 가 무엇보다 ‘글쓰기의 물질성 Materialität des Schreibens’에 천착해 이를 전면 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고 본 입장이었다.209) 이러한 연구들에 따르면 발저의 글쓰기란 애초부터 특정한 내용을 전달하거나 독자의 이해를 구하는 것과는 거 리가 멀고, 이러한 연유에서 발저의 인물들 역시 해석되어야 할 필연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오히려 그의 글쓰기는 초현실주의 계열의 작가들이 선보인 바와 같이 글쓰기라는 인간 활동 자체에 필연적으로 개입될 수밖에 없는 육체적․물 질적 조건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고 이해된다. 또한 기의를 읽어낼 수 없는 발저의 마이크로그램 원고들이야말로 활자로 인쇄되어 나온 그의 글을 통 해서는 독자들이 직감하기 어려운 발저 본연의 ‘해독 불가능성’이 시각적으로 형상화된 등가물이자, 그의 작업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물적 근거로 간주되었
208) 이 시기는 발저 저술활동의 막바지에 해당한다.
209) Vgl. Rochelle Tobias: The double fiction in Robert Walser’s Jakob von Gunten. In:
The German Quarterly 79 (2006) 3, p. 293.
다.
실제로 발저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신병원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꽤 오 랜 시간동안 엄청나게 많이, 그리고 쉬지 않고 글을 썼다. 그리고 온 몸으로 수 행된 그의 글쓰기는 그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생각과 느낌들―가령 필기 구의 감촉과 이것이 유발하는 또 다른 감각들, 일상적 사건들과 여러 물질적․
육체적 요소 등―을 종이 표면 위로 노출시키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다. 이와 동시에 그의 글쓰기 자체는 무화되고, 글을 쓰는 작가 역시 텍스트 이면으로 꼭 꼭 숨어버리는 듯 보인다. 이러한 글쓰기에 대한 강박, 끊임없이 글을 쓰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는 로베르트 발저를 비롯하여 다음과 같은 글 쓰는 ‘광인’들에 게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스베덴보리 Emanuel Swedenborg는 1745년 4월
‘인간들에게 성경의 정신적 의미를 해명해주라’는 신의 명령을 받은 후부터 라 틴어로 100여 권이 넘는 책을 집필하였다. 발작 증세를 보인 후 죽을 때까지 튀 빙겐의 한 목수의 옥탑방에서 기거해야 했던 프리드리히 횔덜린 Friedrich Hölderlin은 그를 방문한 바이브링거가 넘겨주는 종이마다 족족 끊임없이 무엇 인가를 써대 그를 당혹하게 했으며, 드레스덴 고등법원 판사회의 의장이었던 다 니엘 파울 슈레버 Daniel Paul Schreber는 병원에서 감금 생활을 하는 동안 400페이지에 육박하는 그의 회상록 말고도 ‘내 삶에서’라는 제목을 붙인 일기 와 스스로가 ‘작은 연구’라고 칭한 여러 권의 노트를 기록하였다.210)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광인’들의 강박적인 글쓰기가 각기 어느 지평을 향 해 나아가고 있는지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이들의 글쓰기가 지금까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글쓰기 자체의 문제, 그리고 글쓰기에 필연적으로 연루되는 글쓰기의 물질성 문제를 인식의 수 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발저의 ‘마이크로그램’ 원고들이 손수
‘연필 Bleistift’로 쓰였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발저가 스위스 저널리 스트이자 작가로 활동한 리히너 Max Rychner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그는 펜을 사용하면서 겪는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연필로 쓰 는 방법 Bleistiftmethode’을 직접 개발했던 것이다.211) 그가 연필이라는 필기구 를 자신의 생각을 물화시키는 일차적 매개이자 본질적 수단으로 간주한 사실은
―연필로 쓰는 방법이 발저의 저술활동 막바지 기간에 국한되어 사용되긴 했지 만―그가 글쓰기를 전적으로 순수한 정신적 활동으로 간주하지 않고, 실제로 글
210) 김남시: 글쓰기의 육체성과 물질성. 실린 곳: 자음과모음 제11권 (2011), 656-657면.
211) Vgl. Rochelle Tobias: The double fiction in Robert Walser's Jakob von Gunten, p.
294.
쓰기를 가능케 하는 물질적 조건들에 예민하게 반응한 작가였다는 점을 방증한 다. 그리고 발저의 이와 같은 면모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면 그는 단지 지엽적 인 대상과 주변적인 인물들에 집착했던 몽상적인 작가에 그치지 않고, ‘형식 Form’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형식을 가지고 실험하며, 그의 작업에서 형식이 본 질을 이루는 작가, 즉 모더니스트 작가로서 자리매김 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미 여러 차례 언급된 바와 같이 발저의 ‘연필로 쓰는 방법’이 그의 후기 저술활동에 한정된다는 점, 바꿔 말하면 발저의 대다수 작품들이 이 방법 이 사용되기 이전에 창작되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그의 모든 작품에 ‘글쓰 기의 물질성’이란 리트머스 종이를 가져다 대보는 것은 다소 무리가 아닐 수 없 다. 그의 초기 작품에 글쓰기의 물질성을 보여주는 단초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 더라도 말이다. 히벨 Hans H. Hiebel의 한 연구는 발저의 야콥 폰 군텐을 글 쓰기의 물질성이라는 척도로 분석한 대표적인 경우이다. 히벨은 자신의 논문212) 에서 이 소설이 기의를 해체하고 파괴하며, 기표들의 연쇄와 이들 간의 유희를 전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유로 독자는 발저의 언 어, 혹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 작 품에서는 글쓰기 자체의 문제만이 주제화되고 있을 뿐, 그 어떤 의미를 구성해 내려는 시도, 혹은 의미작용 따위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령 히벨 은 야콥 폰 군텐에 등장하는 ‘황야 Wüste’(JvG 164)라는 공간을 그 의미가 분명치 않은 텅 빈 기표라고 분석한다. 황야는 의미와 무의미라는 극단적 두 대 립항들이 직조해낸 ‘역설적 이미지 ein paradoxes Bild’에 불과하다는 것이다.213) 그리고 그에게서 발저가 구사하는 ‘취소 Aufhebungen’하고 ‘부정 Negationen’하 며 ‘가정하는 말하기 Konjunktivität’ 방식이란 현실원칙에서 이탈한 진기한 ‘내 적 독백 innerer Monolog’으로 간주될 뿐이다.214) 하지만 히벨이 자신의 작품분 석에서 크게 의존하고 있는 벤야민의 로베르트 발저 비평문으로 다시 돌아가 그가 벤야민의 중요한 논의―“[발저의 글쓰기] 형식은 신화와의 거대하고 세속 적인 대결 속에서 모색되어야 한다”215)―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면, 그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발저의 독특한 글쓰기는 신화와의 대결이라는
212) Hans H. Hiebel: Robert Walsers Jakob von Gunten. Die Zerstörung der Signifikanz im modernen Roman. In: Katharina Kerr (Hg.): Über Robert Walser. Bd. 2. Frankfurt a. M.
1978, S. 308-345.
213) Vgl. Hans H. Hiebel: Robert Walsers Jakob von Gunten, S. 256 f.
214) Vgl. Hans H. Hiebel: a. a. O., S. 258.
215) W. Benjamin: Robert Walser, S. 129: “Die[Form] hat man in der großen profanen Auseinandersetzung mit dem Mythos zu suchen, […].”
의미작용을 수반하며, 이러한 까닭에 그의 글쓰기 방식이 단지 글쓰기의 물질성 만을 보여주고 있다고 단정 짓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또한 ‘언어 황무지화’ 기법 을 글쓰기의 물질성 차원에서만 고찰하는 것은 벤야민의 미메시스적 언어철학 의 전체적인 밑그림을 간과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벤야 민에게 있어 언어란 언어를 단지 내용전달의 수단으로 보는 도구주의적 언어관, 벤야민의 용어로 하자면 부르주아적 언어관과 철저하게 구분되는 독특한 지평 에 속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