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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콥과 생도들

문서에서 비영리 - S-Space - 서울대학교 (페이지 82-90)

그렇다면 야콥을 비롯한 생도들은 어떠한 의미에서 ‘신화적 인물’로 자리매김 될 수 있을까? 벤야멘타 하인학교의 학생들은 얼핏 보아선 이해하기 어렵고, 심 지어 그들을 굳이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그려진다. 야콥은 이야기의 첫 페이지에서부터 자신을 포함 한 생도들이 훗날 예외 없이 아주 미미한 존재, 누군가에게 예속된 존재로 살아 가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또한 동료 생도들에 대한 야콥의 기록들을 살펴보 면, 이들은 공통적으로 아무런 개성도, 의식도 없는 ‘미숙한 피조물’에 불과하다.

이들은 ‘하인’이 되기 위해 이곳에 모였지만, 기실 그들이 도울 수 있는 것이라 고는 아무것도 없는 듯 보인다. 가령 훈련생들 가운데 가장 작고 어린 ‘하인리 히 Heinrich’는 지금까지 삶에 대해 단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아이 처럼, 의식이나 성격이 완전히 결여된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다만 반듯하고 공 손하며 일할 준비가 되어있을 뿐이다. 하인리히는 흡사 누군가가 손을 내밀면 그에게 손을 내어주는 한 마리 사근사근한 ‘새 Vogel’와 같다.176) 병약하고 잘 토라지는 성격의 소유자 ‘샤흐트 Schacht’ 또한 몽상에 젖어 늘 불평불만만을 늘어놓는 인물이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야콥과 허튼소리를 주고받으며 견뎌 낸다.177) 폴란드 출신인 ‘실린스키 Schilinski’ 역시 명민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176) Vgl. JvG 10: “Er[Heinrich] besitzt keinen Charakter, denn er weiß noch gar nicht, was das ist. Gewiß hat er noch nie über das Leben nachgedacht, und wozu? Er ist sehr artig, dienstfertig und höflich, aber ohne Bewußtsein. Ja, er ist wie ein Vogel.

Das Trauliche gelangt an ihm überall zum Vorschein. Ein Vogel gibt einnem die Hand, wenn er sie gibt, ein Vogel geht so und steht so. Alles ist unschuldig, friedfertig und glücklich an Heinrich. 그[하인리히]에게는 개성이 없다. 개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그는 아직 모를 것이다.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음에 틀림없다. 하긴 깊은 생각이 무슨 소용이었겠는가? 그는 반듯하고, 일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공손하다. 다만 의식이 없다. 그렇다, 그는 한 마리 새와 같다. 사근사근함이 온몸에서 배어 나온다. 새는 누군 가 손을 내밀면 그에게 손을 내어준다. 새는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견딘다. 하인리히는 티 하나 없이 순진무구하고, 평화로우며, 행복하다.”

177) Vgl. JvG 14 f.: “Es ist hübsch, sich mit dem träumerisch angehauchten Schacht zu unterhalten. Er scheint alles zu verstehen, was man ihm sagt, und er selber sagt von Zeit zu Zeit etwas Bedeutsames. Und dann klagt er öfters, und das liebe ich an der

수 없는 ‘모자란’ 인물로 묘사된다.178)

그런데 이처럼 ‘보잘것없는’ 훈련생들은 다른 한편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명 랑하며 쉽게 호감을 사는 인물들이기도 하다.179) 예컨대 사람들은 우락부락한 인상에다 알아듣기 힘든 농부의 말투를 구사하는 ‘한스 Hans’에게서 어쩐지 ‘아 득하고 가벼운 ein wenig fern und leicht’ 무언가를 느낀다. 또한 “그들은 한스 를 아주 편안하게 대한다. 한스에게는 감당하기 힘겨운 감정들을 일깨우는 구석 이 없기 때문이다. 그림 형제의 동화 속에 나오는 농부의 아들. 태곳적부터 독 일적인, 기분 좋은 무엇인가가 그를 얼핏 처음 보는 순간부터 본질적인 것으로 다가온다.”180) 또한 ‘무지하고, 아무 쓸모없고,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인 키다리

‘페터 Peter’에게서 야콥은 거부할 수 없는 커다란 애정을 느낀다.

Unterhaltung. […] Wir reden Dummheiten miteinander, oft auch Ernstes, aber unter Vermeidung großer Worte. Schöne Worte sind viel zu langweilig. Ah, an den Zusammenkünften mit Schacht in der Kammer merke ich es: wir Zöglinge des Instituts Benjamenta sind zu einem oft halbtagelangen seltsamen Müßiggang verurteilt. 몽상에 젖 어 있는 샤흐트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주 기분 좋은 일이다. 그는 사람들이 떠드는 것을 죄다 이해하는 것 같다. 때로는 그가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는 거의 예 외 없이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 그가 늘어놓는 불평을 듣는 일이 나는 좋다. […] 우리는 허 튼소리들을 서로 주고받는다. 진지한 이야기들을 나눌 때도 많지만 그럴 때도 거창한 말들은 쓰지 않는다. 근사한 말들은 너무 따분하다. 아, 방 안에서 샤흐트와 함께 지내며 새삼 깨닫게 된 것이 있다. 벤야멘타 학원의 우리 생도들은 종종 반나절이 다 가도록 늘어지는 기묘한 무위 를 견디는 형벌을 받고 있다는 것 말이다.”

178) Vgl. JvG 24: “Recht karg steht es mit seinen[Schilinskis] Geistesgaben. Er besitzt absolut keinen Scharfsinn, und von Feinsinn oder dergleichen darf man bei ihm nicht reden. Und doch ist er durchaus nicht dumm, beschränkt vielleicht, aber ich nehme dieses Wort nicht gern in den Mund, wenn ich an meine Schulkameraden denke. 그[실 린스키]가 지닌 지적 재능은 정말로 보잘것없다. 그에게 명민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섬세한 감각 같은 것들을 그에게서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는 절대로 바보는 아니다. 약간 모 자란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학우들을 두고 그런 말을 입에 담고 싶지는 않 다.”

179) Vgl. JvG 92: “Wir Zöglinge hoffen nichts, ja, es ist uns streng untersagt, Lebenshoffnungen in der Brust zu hegen, und doch sind wir vollkommen ruhig und heiter. Wie mag das kommen? Fühlen wir über unsern glattgekämmten Köpfen etwas wie Schutzengel hin und her schweben? Ich kann es nicht sagen. Vielleicht sind wir heiter und sorgenlos aus Beschränktheit. Auch möglich. 우리 훈련생들은 바라는 것이 아 무것도 없다. 그렇다, 삶의 희망들을 가슴속에 품는 것이 우리에게는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느긋하고 밝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가지런히 빗질된 머리 위로 수호천사라도 날아다닌다고 느끼는 것일까? 뭐라 말하기는 힘들다. 어쩌면 우리는 어리석기 때문에 밝고 걱정 없이 지내는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다.”

180) “Man nimmt ihn ganz leicht, weil er nichts hat, das schwer zu ertragen wäre, weil es Empfindungen wachriefe. Der Grimmsche Märchenbauernjunge. Etwas Uralt-Deutsches und Angenehmes, verständlich und wesentlich auf den ersten, flüchtigen Blick.” (JvG 40)

페터는 우리 생도들 가운데 단연코 가장 멍청하고 둔하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나 의 소박한 마음은 그에게 상장과 화환을 수여해주고 싶다. 멍청한 사람들이 내게 는 너무나도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하고, 지식과 재치로 번쩍 거리고, 자신을 과시해대는 인간들을 나는 증오한다. 영리하고 약아빠진 인간들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공포다. 그에 비하면 페터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른다.

그는 키가 굉장히 크다는 사실만으로도 멋지지만, 그보다 더 멋진 이유는 고운 마음씨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의 착한 마음은 스스로에게 자신이 멋진 신사이며 고상하고 우아한 한량의 외모를 지녔다고 끊임없이 속삭여 주는 것이다.

Peter ist ganz entschieden der Dümmste und Unbeholfenste unter uns Eleven, und das belegt und bekränzt ihn in meinen unmaßgeblichen Augen mit Auszeichnungen, denn unglaublich lieb sind mir die Dummen. Ich hasse das alles verstehenwollende, mit Wissen und Witz glänzende und sich breitmachende Wesen. Verschmitzte und gewitzigte Menschen sind mir ein unnennbarer Greuel. Wie nett ist doch gerade in diesem Punkt Peter. Schon, daß er so lang ist, zum Mittenentzweibrechen lang, ist schön, aber noch viel schöner ist die Gutherzigkeit, die ihm beständig einflüstert, er sei Kavalier und habe das Aussehen eines edlen und eleganten Verbummelten. (JvG 41 f.)

이렇듯 생도들의 하찮은 겉모양 이면에는 예기치 못한 기품과 천진난만한 기 운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특성들은 이제 막 벤야멘타 학교에 입학한 야 콥으로 하여금 ‘선한 마음씨’ 또는 ‘태곳적의 기분 좋은 무언가’에 대한 아득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생도들에게 속한 것, 가령 “미완의 몸짓이나, 예상치 못한 고상함, 판단과 취향에 나타나는 일종의 수학적 대담함과 그들의 팔다리에 깃든 가벼운 민첩함 그리고 달변의 능력은 이들이 상보적인 세계에 속해 있음 을 보여주며, 잃어버린 시민권이나 불가침의 다른 영역을 암시하는 것이다.”181) (인용자 강조) 그리고 야콥은 이러한 ‘고상하면서도 강력한 인간적 교양 anmutige, kräftige menschliche Bildung’(JvG 25)의 절정을 ‘크라우스 Kraus’에 게서 발견한다.

181) Giorgio Agamben: Die Gehilfen. In: Giorgio Agamben: Profanierungen. Frankfurt a. M.

2005, S. 24: “[…] eine unvollendete Geste, eine unvermittelte Grazie, eine gewisse mathematische Verwegenheit in den Urteilen und im Geschmack, eine luftige Behendigkeit der Glieder und eine Wortgewandtheit, zeugt von ihrer Zugehörigkeit zu einer komplementären Welt, spielt auf eine verlorene Bürgerschaft oder ein unverletzliches Anderswo an.”

사랑스런 크라우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매번 그에 대한 생각에 이르게 된다. 크라우스에게서는 교양이라는 말의 원래 의미를 아주 정확히 보게 된다. 크 라우스는 훗날 어떤 삶을 살게 되든지 어디서나 유용한 인간으로, 그렇지만 교양 은 없는 인간으로 평가될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는 어디까지나 교양을 갖춘 인간이다. 그는 확고부동하고 온전한, 깨지지 않는 전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크 라우스야말로 인간적 교양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주변에는 날개를 달고 속삭여대는 지식들이 날아다니지 않는다. 그 대신 무엇인가가 그의 내면에 들어 있다. 그는, 그는 그 무엇 위에 가만히 있고, 그리고 그 무엇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는 진심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결코 누군가를 속이거나 헐뜯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이것을, 이 수선스럽지 않음을 나는 교양이라고 부른다.

Der liebe Kraus! Immer zieht es mich in Gedanken wieder nach ihm hin. An ihm sieht man so recht, was das Wort Bildung eigentlich bedeutet. Kraus wird später im Leben, wohin er auch kommen wird, immer als brauchbarer, aber als ungebildeter Mensch angesehen werden, für mich aber ist gerade er durchaus gebildet, und zwar hauptsächlich deshalb, weil er ein festes, gutes Ganzes darstellt. Man kann gerade ihn eine meschliche Bildung nennen. Das flattert um Kraus herum nicht von geflügelten und lispelnden Kenntnissen, dafür ruht etwas in ihm, und er, er ruht und beruht auf etwas. Man kann sich mit der Seele selber auf ihn verlassen. Er wird nie jemanden hintergehen oder verleumden, nun, das vor allen Dingen, dieses Nicht-Schwatzhafte, nenne ich Bildung. (JvG 79)

‘재능들로 빛나지는 않지만, 타락하지 않은 선한 마음의 미광을 내비치고 있 는’182) 크라우스는 오로지 누군가의 시중을 들며 그에게 복종하는 일을 해나가 기를 원한다. 그는 결코 ‘성공’하려고 하지 않고, 심지어는 기꺼이 착취당하고자 한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 번 더 주목을 끄는 점은 크라우스가 수행하는 ‘완 벽히 섬기는 태도’가 그에게서 개성과 의지를 탈각시키고, 그를 점차 ‘영(零) eine Null’에 가까운 존재로 만들어 감에도 불구하고―혹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인간과 사물을 그에게로 끌어당기는 일종의 중력장을 형성한다는 점이 다. 발저의 인물들에게는 모종의 신비한 중력 Gravitation이 작용하는데, 그러한 중력에 의해 야콥은 크라우스에게로, 벤야멘타 남매는 야콥에게로 끌어당겨진 182) Vgl. JvG 81: “Er[Kraus] glänzt nicht mit Gaben, aber mit dem Schimmer eines guten

und unverdorbenen Herz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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