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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설

문서에서 비영리 - S-Space - 서울대학교 (페이지 102-107)

벤야민의 조어 ‘언어 황무지화 Sprachverwilderung’는 일차적으로 언어 (Sprache)를 야생의 상태, 즉 아직 정돈되지 않은 상태(wild)로 내버려두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방임(스스로 가도록 내버려둠) Sichgehenlassen’219)이라는 표현으 로도 치환될 수 있는 이 말은 발저가 정처 없이 소요(逍遙)했던 사람이었음을 환기한다. 이렇듯 방임하는 듯한 글쓰기는 발저의 삶에서 ‘산책’이라는 행위를 통해 공간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듯 보인다. 또한 ‘언어 황무지화’라는 말은 야 콥 폰 군텐의 마지막에서 야콥이 벤야멘타 원장과 함께 가게 되는 ‘황야 Wüste’(JvG 164)라는 공간과도 조응한다. 그곳은 생각이 들어설 수 없는, 격동 적인 움직임으로 가득 찬 장소이다. 이러한 역동성의 공간은 그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연관되며 변화 가능한 세계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처럼 방치하는 글쓰 기의 징후는 가장 먼저 중심 Zentrum으로 수렴되지 않는 이야기, 다시 말해 뚜 렷한 내용을 전달하지 않고 쓸데없이 길게 늘어지는 ‘장광설(長廣舌) Wortschwall’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야콥은 무언가를 말하자마자 마치 방금 말 한 것을 얼른 독자가 잊어버리기라도 해야 하는 듯이 장난스럽게 그 말을 지우 거나 번복한다. 이 작품의 처음 부분에서 야콥은 리자 벤야멘타 양의 수업에 대 해 다음과 같이 주절거린다.

이게 무슨 수업이람? 하지만 내가 그 수업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거짓말 을 하고 있는 것일 게다. 그렇다. 나는 벤야멘타 양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을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녀가 가르쳐주는 219) W. Benjamin: Robert Walser, S. 126.

것은 많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같은 것을 반복한다. 그런데 아마도 이 모든 하찮은 것들과 우스꽝스러운 것들 뒤에 비밀이 감춰져 있을지도 모른다. 우스꽝 스럽다고? 벤야멘타 학교에 소속된 우리 소년들에겐 우습다고 여겨지는 것은 없 다.

Welch ein Unterricht! Doch ich würde lügen, wenn ich ihn kurios fände. Nein, ich finde das, was Fräulein Benjamenta uns lehrt, beherzigenswert. Es ist wenig, und wir wiederholen immer, aber vielleicht steckt ein Geheimnis hinter all diesen Nichtigkeiten un Lächerlichkeiten. Lächerlich? Uns Knaben vom Institut Benjamenta ist niemals lächerlich zumut. (AvG 9)

첫 번째 외침(“이게 무슨 수업이람?”)에서 야콥은 수업을 이상하고 무의미하 다고 여기는 자신의 생각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두 번째 문장은 앞선 문장과 정확히 모순된다. 그는 자신이 벤야멘타 양의 수업을 매우 중요하게 생 각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바로 전에 했던 말을 철회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아마도 이 모든 하찮은 것들과 우스꽝스러운 것들 뒤에 비밀이 감춰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자신의 강경한 입장을 유보하는 동시에, 이 수업이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는 여지를 넌지시 내비친다. 특히 이 문장에 쓰인 ‘아마도 vielleicht’라는 단어는 발저의 단정 짓지 않는/못하는 말하기를 특징짓는 부사 로, 이후에도 빈번히 등장한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우스꽝스럽다고?”라는 질문은 앞선 문장과 재차 모순된다. 오히려 이 질문은 수업이 전혀 우스꽝스럽 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할 뿐만 아니라, 벤야멘타 학교 학생들에게 우스 운 것이란 결코 없다는 뒤의 진술을 강력하게 뒷받침해준다. 이처럼 매번 길고 번거롭게 너부러지는 문장들 속에서 야콥의 내면 고백과 바깥 관찰 간의 경계 는 점차 희미해진다. 이 문장들에 따르면 야콥은 벤야멘타 양의 수업을 우스꽝 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벤야멘타 양의 수업은 실제로 유익할 수도 있고, 유익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듯 발저의 문 장들에는 작가가 분명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부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지금 이 자리에 야콥의 자기연출 및 즉흥연설 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문장과 단어는 명멸하는 불빛처럼 잠시 동안 나타났다가 사라지면서 끝없는 지나감의 흔적을 남긴다.

벤야민은 이러한 발저의 글쓰기 방식을 한꺼번에 흘러들어와 이전 파도를 집 어 삼키는 큰 파도(Schwall)의 형상을 빌려 “장광설(언어물결) Wort-schwall”220) 220) W. Benjamin: Robert Walser, S. 127.

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이어서 그는 발저 특유의 ‘지우는/유보하는’ 글쓰기 형 식을 다음과 같은 일례를 들어 설명한다. “발저가 만약 한 걸작[쉴러의 빌헬름 텔 Wilhelm Tell(1804)]에 등장하는 독백 ‘이 오목 팬 길을 통해서 그가 올 것 임에 틀림없다’를 그의 산문에서 고쳐 쓴다면, 그는 ‘이 오목 팬 길을 통해서’라 는 고전적인 구절로 시작할 테지만, 그때 이미 공포가 발저의 텔[발저의 주인 공]을 사로잡을 것이다. 그때 이 발저의 텔은 이미 박약하고, 외소하고, 자포자 기인 채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이 오목 팬 길을 통해서 나는 그가 올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221) (인용자 강조) 이 렇듯 발저는 결코 진중한 독백을 감당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혹은 달리 말하자 면 그는 끊임없이 옆에 있는 누군가를 참조하며 말하는 듯 보인다. ‘나는 ~라고 생각한다’라는 식의 문장은 대담하게 던져진 평서문이라기보다 차라리 수줍음에 서 비롯되는 부가 의문문과 같다. 어쩌면 이는 “전형적인 발저 식의 정중함 a typical Walser courtesy”222)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히벨 Hans H. Hiebel은 이러한 발저의 수다스러움 Geschwätzigkeit이 프로이트의 ‘전치 Verschiebung’ 구조를 띤다고 분석한다.223) 프로이트에 따르면 전치란 잠재된 무의식적 요소가 의식적으로 보았을 때 전혀 아무런 관련이 없 거나 부차적인 요소들로 대체되어 드러나는 정신의 작동법칙을 일컫는다. 히벨 은 “뭔가를 쓰면서 우리는 중요한 것, 즉 자신이 결단코 강조하고자 했던 바를 계속해서 유예한다 Man schiebt schreibend immer etwas Wichtiges, etwas, was man unbedingt betont haben will, auf ...”라는 발저의 말을 직접 인용하면 서224), 뭔가를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소망이 그의 장광설 속에서 계속해서 좌 절을 겪게 된다고 해석한다. 또한 그에 따르면 항상 동일한 것을 반복하는 발저 의 문장에는 수다스러움이 지니는 명랑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중첩된 실망에서

221) Ebd.: “Wenn er[Robert Walser] in einem Virtuosenstück den Monolog: »Durch diese hohle Gasse muß er kommen« in Prosa verwandelt, so beginnt er mit den klassischen Worten: »Durch diese hohle Gasse«, aber da packt seinen Tell schon der Jammer, da scheint er sich schon haltlos, klein, verloren, und er fährt fort: »Durch diese hohle Gasse, glaube ich, muß er kommen,«”

222) Susan Sontag: Walser’s Voice. In: Susan Sontag: Where the stress falls. New York 2001, p. 91.

223) Vgl. Hans H. Hiebel: Robert Walsers Jakob von Gunten, S. 240: “Walsers

»Geschwätzigkeit« hat die Struktur der Freudschen Verschiebung. Die metonymische Verschiebung konstituiert nach Lacans strukturaler Darstellung der Freudschen Theorie die Bahn des »Wunsches«, des »Begehrens« (»désir«).”

224) Vgl. Ebd.

기인하는 ‘흐느낌’이 수반된다. 그리고 벤야민의 비평문에서 인용된 이 “흐느낌 Schluchzen”225)이란 표현은 히벨에게서 ‘우울 Melancholie’이란 말로 바뀌어 쓰 이고, 이 우울은 ‘정신분열증자 Schizo’의 그것으로 이어진다.226) 정리해서 말하 자면 발저의 주인공은 법에 따라 균질하게 조직된 사회(신화적 세계)로부터 도 주하거나, 혹은 이에 완전히 무관심함으로써 반사회적이고 고립된 “개체적/단독 자적 인간성 Einzelmenschlichkeit”227)을 실현한 경우이다. 다시 말해 히벨에 따 르면 발저의 주인공은 고향을 상실한 탕아이자, 정신분열증적 도피행로를 따라 신화 세계 저편으로 옮겨간 아웃사이더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열증자의 왜곡된 화법과 행위를 통해 그 사회에 이미 공고화되어 있는 관례(Code) 및 권력 작동 방식은 폭로되고 파기된다.

그런데 위에서 분석된 발저의 글쓰기가 신화적 세계의 결을 거슬러 보게 하 고 그 폭력성을 중단시킨다고 본 히벨의 입장은 일견 타당하지만, 그의 주인공 들을 이 신화적 세계로부터 도피한 은둔자 내지 무정부주의자로 읽어낸 것은 다소 손쉽고 피상적인 해석이 아닐 수 없다. 그 어떤 사람도 이 세계 바깥으로 손쉽게 이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잘 알지도 못하고 아무 연관도 없는 사람을 섬기는 것”228), “선함과 순수함, 그리고 숭고함이 안개 속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그들을 아주, 아주 은밀하게, 말하자면 매우 냉철 하면서 드러나지 않는 조용한 열정을 가지고 숭배하고 경배하는 것”229), “고운 마음씨를 가졌다는 것”230), ‘항상 누군가의 곁을 스쳐 지나가면서 일하는 것’231),

“무언가를 영원히 잊지 않도록 실제로 확고히, 확고하게 기억 속에 각인시키는 것”232), 그리고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겠다는 계획”233)을 갖는다는 것은 은둔

225) Vgl. W. Benjamin: Robert Walser, S. 128: “Was sie weinen, ist Prosa. Denn das Schluchzen ist die Melodie von Walsers Geschwätzigkeit. Es verrät uns, woher seine Lieben kommen. Aus dem Wahnsinn nämlich und nirgendher sonst. 이 인물들이 우는 것, 바로 그것이 산문이다. 그들의 흐느낌은 발저의 수다스러움이 갖는 멜로디이기 때문이다. 그것 은 우리에게 발저의 사랑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누설한다. 말하자면 광기에서 비롯된 것 이지 그밖에 어떤 곳으로부터도 아니다.”

226) Vgl. Hans H. Hiebel: Robert Walsers Jakob von Gunten, S. 242 f.

227) Hans H. Hiebel: Robert Walsers Jakob von Gunten, S. 243.

228) “Jemandem, den man nicht kennt und der einen gar nichts angeht, einen Dienst erweisen” (JvG 23)

229) “Das Gute, Reine und Hohe irgend, irgendwo versteckt in Nebeln zu wissen und es leise, ganz, ganz still zu verehren und anzubeten, mit gleichsam total kühler und schattenhafter Inbrust” (JvG 41)

230) “die Gutherzigkeit” (JvG 42)

231) Vgl. JvG 46: “Menschen eilen und wirken immer an einem vorbei. 사람들은 항상 누군 가의 곁을 스쳐 지나가면서 일한다.”

자의 유아론(唯我論)적이고 아나키스트의 허무주의적인 태도와는 엄연히 구별되 는 것이다. 오히려 발저의 인물들은 이 세계 바깥에서 유유자적하게 지내고자 하는 은자들이라기보다, 이 세계에 더욱 밀착해 이곳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또한 이 세계와 음각(陰刻)적인 방식으로 투쟁을 벌이는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 다. 그들에게 있어 “벤야멘타 학원은 앞으로 펼쳐질 인생이라는 거실과 호화로 운 연회장들에 들어서기 전에 통과하는 대기실이다. 여기서 [그들은] 존경심을 느끼는 법을 배운다. Die Schule Benjamenta ist das Vorzimmer zu den Wohnräumen und Prunksälen des ausgedehnten Lebens. Hier lernen [sie]

Respekt empfinden”(JvG 64 f.) 그리고 그들이 벤야멘타 학교라는 대기실을 지 나 도달하는 삶의 공간은 성찰의 공간이라기보다 격동적인 움직임의 공간인 것 이다. 여기서 이 역동적인 움직임은 모든 존재가 서로 얽혀 연관되고 충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증하고, 무한히 변화 가능한 세계와 맞닿아 있다.

따라서 모든 문장이 이전 문장을 단지 잊히게끔 하기 위해 쓰인 듯한 발저의 장광설은 일차적으로 그가 끊임없이 옆에 있는 사람을 참조하며 말하고 있음을, 다시 말해 발저 특유의 정중함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수다스러움은 일 견 반항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반항심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 사태에 대해 수줍어하고 얼굴 붉히는 태도와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이렇듯 발저의 수 다스러움과 섬김의 태도 사이에는 일종의 ‘수줍음 Scham’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말하기는 자신의 내면 고백과 바깥 관찰 사이를 넘나들면서 어떤 사태 의 이면을 폭로하는 동시에, 일종의 흐느낌을 수반한다. 그리고 이 흐느낌은 한 미치광이의 비정상적인 우울이 수사학적으로 윤색된 것이라기보다, 벤야민이 언 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신화의] 광기’, 즉 이 세계의 병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발저의 인물들은 이 병에 완전히 매몰되어 있다기보다, 이 병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이 병으로부터 회복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야콥이 읽어내고 있는 이 시대의 병은 “숭고하고, 중요하 고, 위대한 모든 것에 피도 안 마른 머리나 박고 다니며 위아래도 무시하고, 신 을 부정하고, 법을 비웃는 일 das Alter mißachten, Gott leugnen, Gesetze bespotten und meine jugendliche Nase schon in alles Erhabene, Wichtige und Große stecken”(JvG 65) 그리고 “다소나마 의무와 규율과 제약들을 따라야 하 는 상황에서는 악이나 쓰고, 엄마와 아빠를 찾으며 고양이처럼 야옹거리는 젊은 232) “Etwas sich in der Tat fest, fest einprägen, für immer!” (JvG 63)

233) “Plan, ganz von unten anzufangen” (JvG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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