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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실 innere Gemächer’(JvG 20)은 일차적으로 벤야멘타 원장과 그의 누이동 생 리자 벤야멘타 양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언급된다. 이 공간에 출입하도록 허 락된 유일한 학생은 ‘충직함으로 총애를 받고 있는’169) 크라우스 뿐이다. 그는 충직함이라는 자신의 명성에 걸맞게 이 내실들에 대해 결코 한 마디 말도 발설 하지 않는다. 야콥이 그 공간에 대해 집요하게 캐물어도 그는 단지 야콥을 빤히 쳐다보거나 침묵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이러한 수수께끼 같은 상황 속에서도 야 콥은 다음과 같이 예감한다. “어쩌면 나도 한번쯤은 그 내실들에 들어가보게 될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그곳에서 내 눈은 무엇을 보게 될까? 어쩌면 특별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을지도? 오, 아니다, 아니다. 이곳 어딘가에 놀라운 것 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170) (인용자 강조) 야콥은 기묘한 확신을 가지고 내실의 존재와 내실에 내재할 놀라운 무언가를 직감한다. 그리고 이러한 끌림은 야콥이 벤야멘타 원장과 리자 벤야멘타 양에 대해서 느끼는 매 혹의 감정과도 결부되어 있다.

그렇다, 이 사람[벤야멘타 원장]에게는 마음이 끌린다. 그가 나의 관심을 끈다. 벤 야멘타 양도 나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비밀에 싸인 것들

169) Vgl. JvG 20: “Es gibt hier «innere Gemächer». Ich bin bis heute noch nie dort gewesen. Kraus wohl, den man bevorzugt, weil er so treu ist. 이곳에는 ‘내실들’이 있다.

나는 거기 들어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 크라우스는 들어가보았다. 크라우스는 충직하기 때문 에 총애를 받는다.”

170) Ebd.: “Aber vielleicht dringe ich doch noch einmal in diese inneren Gemächer. Und was werden dann meine Augen erblicken? Vielleicht gar nichts Besonderes? O doch, doch. Ich weiß es, es gibt hier irgendwo wunderbare Dinge.”

가운데 무언가를 알아내기 위해 나는 그를 자극한다. 그가 얼떨결에 경솔한 말을 내뱉도록 말이다. […] 하지만 나는 믿는다, 믿고 있다. 내가 벤야멘타 남매의 비 밀을 마침내 캐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비밀들은 견디기 힘든 마력을 예감케 한 다. 이루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아주 아름다운 것의 향기를 발산한다. 누가 알겠는가, 누가 알겠는가. 아……

Ja, dieser Mensch hat es mir angetan, er interessiert mich. Auch die Lehrerin erweckt mein höchstes Interesse. Ja, und deshalb, um etwas herauszukriegen aus all diesem Geheimnisvollen, reize ich ihn, damit ihm etwas wie eine unvorsichtige Bemerkung entfahre. […] aber ich glaube, ich glaube, ich bringe es fertig, in das Geheimnis der Benjamentas endlich noch einzudringen.

Geheimnisse lassen einen unerträglichen Zauber vorausahnen, sie duften nach etwas ganz, ganz unsäglich Schönem, Wer weiß, wer weiß. Ah _ _ _ (JvG 45)

이와 같이 야콥은 벤야멘타 남매가 가진 비밀,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들이 살고 있는 ‘내실’의 비밀에 강도 높게 이끌린다. 그리고 마치 필연이라도 되는 양, 어느 날 저녁 야콥은 돌연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내실로 옮겨지게 된 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어쩌면 아무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다.

난 불가사의한 일 등에 쉽게 현혹되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앉아 있었다. 이미 한밤중이었고, 교실에는 나 혼자였다. 어느 순간 벤야멘타 양이 내 뒤에 서 있 는 것이 느껴졌다.”171) 마치 은총을 내리기라도 하듯 벤야멘타 양은 그녀의 손 을 야콥의 어깨 위에 올려놓고는 “가자. 일어나서 따라와. 네게 보여줄 것이 있 다 Komm mit. Steh auf und komm. Ich will dir etwas zeigen.”(JvG 98)고 속 삭인다. 그리고 야콥은 어느덧 그들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싸여있는 것을 발견 하게 된다.

내실이라는 공간에서 벤야멘타 양은 흡사 ‘마법사 Zauberin’(JvG 99)와 같은 면모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작품 초반부에서 그녀가 수업시간에 가 지고 들어온 ‘짤막하고 하얀 막대기 ein kleiner, weißer Stab’(JvG 9)라는 물건 을 연상시킨다. 그녀의 소품이 풍겼던 신비스러운 인상은 이야기의 절정에 이르 러 내실의 불가사의함과 강력하게 조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실에서 벤야멘타 양이 내뱉은 ‘말[言]’은 그것이 끝나기가 무섭게 실제 형상으로 구현되어 야콥의

171) “Etwas mir Unverständliches ist vorgefallen. Vielleicht hat es auch gar nichts zu bedeuten. Ich bin sehr wenig geneigt, mich von Mysterien bewältigen zu lassen. Ich saß, es war schon halb Nacht, ganz allein in der Schulstube. Plötzlich stand Fräulein Benjamenta hinter mir.” (JvG 97 f.)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봐라, 야콥. 이렇게 네 주위가 어두워질 거다. 그러면 누군가 네 손을 잡고 너를 인도해줄 거야. 너는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고,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비로 소 갖게 될 거다. 언짢아하지 마. 또 밝아질 테니.”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희고 눈부신 빛이 우리 쪽으로 타올랐다. 문이 하나 나타났다. 그녀가 앞장서고 나는 그녀 뒤에 바싹 붙은 채 걸었다. 우리는 문을 지나 황홀한 빛의 불속으로 들어갔 다.

«Siehe, Jakob, so wird es dunkel um dich sein. Und da wird dich jemand dann an der Hand führen. Und du wirst froh darüber sein und zum erstenmal tiefe Dankbarkeit empfinden. Sei nicht mißgestimmt. Es kommen auch Helligkeiten.» - Kaum hatte sie das gesagt, so brannte uns ein weißes, blendendes Licht entgegen. Ein Tor zeigte sich, und wir gingen, sie voran, ich dicht hinter ihr, durch die Öffnung hindurch, ins herrliche Licht-Feuer hinein.

(JvG 99)

이후에도 줄곧 벤야멘타 양이 한 말은 주문이 되어 각각의 내실들을 형상화 한다. 빛의 공간을 지나 야콥이 경험하게 되는 것은 ‘가난과 결핍 Armut und Entbehrung’을 의미하는 ‘길고 어두운 복도 ein langer, finsterer Gang’(JvG 100)이고, 고난과 슬픔에 기꺼이 복종하겠다는 의미에서 애무하게 되는 ‘근심의 벽 die Sorgenwand’(JvG 100)이다. 또한 벤야멘타 양이 ‘작고 하얀, 낯익은 공 주님 지팡이로 mit dem kleinen weißen bekannten Herrin-Stab’(JvG 101) 벽을 건드리자 그들 앞에는 ‘자유 Freiheit’라는 주문에 따라 ‘매끄럽게 탁 트인, 얼음 이나 유리로 닦은 것 같은 가느다란 길 eine glatte, offene, schlanke Eis- oder Glasbahn’(JvG 101)이 펼쳐진다. 바로 그 다음에는 ‘세련된 만족감으로 가득 차 고, 몽상들의 달콤한 향기가 나며, 온갖 음란한 장면들과 그림들로 도배된 아주 작은 휴식의 방 ein kleines, mit raffiniertem Wohlbehagen ganz gefüttertes und erfülltes, köstlich nach Träumereien duftendes, reich mit allerhand lüsternen Szenen und Bildern tapeziertes Ruhe-Gemach’(JvG 101 f.)이 나타난 다.

이러한 일련의 ‘내실’ 경험들 속에서 야콥은 벤야멘타 양의 마력에 속수무책 으로 빠져든 채 그녀의 이상야릇한 주문의 힘에 마구잡이로 휘둘리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야콥은 이 신화적 공간에서 깨어날 의지나 계기를 전혀 마련하고 있지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내실 경험의 마지막 단계

에 이르러 예기치 않게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음악이 연주되는 ‘휴 식의 방’에서 담배 한 개비와 소설 한 권을 즐기던 야콥은 다음과 같은 벤야멘 타 양의 말로 인해 갑자기 닥쳐온 ‘기이한’ 불쾌감에 매몰된다.

“그것은 네가 읽을 만한 책이 아니야. 그런 책들일랑 읽지 마. 일어나라. 차라리 이리 와. 유약함은 무념과 잔인함으로 유혹한다. 우리 앞으로 사납게 천둥이 몰아 쳐 오는 소리가 들리지? 그건 불쾌함이라는 거다. 너는 방금 방에서 휴식을 즐겼 어. 이제 불쾌함이 네 위로 비처럼 쏟아져 내릴 것이고, 의혹과 불안이 너의 몸 을 흠뻑 적실 거야.”

«Das ist nichts für dich. Lies nicht in solchen Büchern. Steh auf. Komm lieber. Die Weichlichkeit verführt zur Gedankenlosigkeit und Grausamkeit.

Hörst du, wie es zornig einherdonnert und -rollt? Das ist das Ungemach.

Du hast jetzt in einem Gemach Ruhe genossen. Nun wird das Ungemach über dich herabregnen und Zweifel und Unruhe werden dich durchnässen.»

(JvG 102) (인용자 강조)

그런데 이 구절들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방[室]’을 의미하는 독일어 명사 das Gemach를 둘러싼 언어유희이다. 벤야멘타 양의 주문에 따라 그 모습을 바 꾸던 ‘방 das Gemach’은 내실 경험의 맨 막바지인 ‘휴식의 방’에 이르러 돌연

‘불쾌감 das Ungemach’이라는 감정을 호출한다. 그런데 언어유희의 관점에서 보면 ‘방’이라는 공간과 ‘불쾌감’이란 느낌의 조우는 결코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 다. 이는 오히려 자동적이기까지 하다고 할 수 있는데, ‘불쾌감 das Un-gemach’이란 독일어 단어는 ‘방 das Gemach’이란 명사의 직접적인 부정형 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주의를 끄는 것은 ‘Gemach’이라 는 단어가 ‘방’이라는 명사 이외에도 ‘안락하게’라는 의미의 부사로도 쓰인다는 점이다. 이렇듯 ‘Gemach’라는 단어가 ‘방’과 ‘안락하게’라는 두 가지 뜻을 동시에 포개어 가지고 있다는 점에 착안한다면, ‘방 das Ungemach’이라는 공간과 ‘불쾌 감 das Ungemach’이라는 감정 사이의 거리는 더욱 더 줄어들게 된다. 이들은 사실 서로 인접해있는 것이다.

이처럼 ‘휴식의 방’에서 안락함을 느끼다가 불쾌감에 빠져버린 야콥은 역설적 이게도 바로 이 ‘불쾌함’ 덕분에 이 내실 경험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선생님이 말을 마치자마자 나는 진득거리고 불쾌하기 그지없는 의혹의 강에서 헤엄을 치 기 시작했다. 자신감을 상실한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벤야멘타 양이 아직 내 곁 에 있는지 확인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녀는 그곳에 없었다. 이 모든 환상과

상황들을 불러낸 마법사, 벤야멘타 양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홀로 헤엄치고 있었던 것이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강물이 입 속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아, 이 불쾌감이라니.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그리고 음란한 편안함에 빠졌던 것을 통렬히 후회했다. 그 순간 나는 벤야멘타 학원의 어두운 교실에 다시 돌아와 앉 아 있었다.”172) 이처럼 벤야멘타 공주의 마력이 집약되어 있는 ‘내실’이라는 공 간은 안락함, 나아가 신화적 세계에 도취된 꿈의 상태와 연결되는 반면, ‘불쾌 감’은 이 세계로부터 깨어남과 연결된다. 달리 말하자면 신화가 가진 이중적 힘 에 대한 알레고리인 ‘내실’ 일화는 “도취를 통한 자아의 이완이야말로 인간으로 하여금 꿈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생산적이고 생동하는 경험이기도 하 다173)”라는 벤야민의 테제와 정확히 맞물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깨어남을 가 능하게 하는 것은 위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아무렇지 않게 너부러져 있는 언어 들 간의 조응, 달리 말하자면 ‘의도치 않게’ 구사된 ‘언어 황무지화 Sprachverwilderung’ 기법이다. 바꾸어 말하면 ‘내실’ 이야기는 신화와의 첨예한 대결 과정 속에서 발견된 독특한 언어 기법으로 이루어진 발저식 ‘동화’의 본령 을 구현하고 있다. 마치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야콥은 다음과 같은 문장들로

‘내실’ 일화를 끝맺는다. “문화가 지배적인 시대의 문화인으로서가 아니라 마 치 동화 속 인물처럼 사는 것이다.”174) (인용자 강조) 이처럼 야콥은 내실 경 험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새롭게 태어난다. 발저의 ‘동화’ 속 인물은 벤야민의 언급에서와 같이175) 신화 속에 침잠하면서도 신화의 고통으로부터 깨어나기 위 해 매번 부단히도 싸우고 있는 것이다.

172) “kaum hatte sie zu Ende gesprochen, da schwamm ich in einem dickflüssigen, höchst unangenehmen Strom von Zweifel. Durch und durch entmutigt, wagte ich gar nicht, mich umzuschauen, ob sie noch neben mir sei. Nein, die Lehrerin, die Hervorzauberin all dieser Erscheinungen und Zustände, war verschwunden. Ich schwamm ganz allein.

Ich wollte schreien, aber das Wasser drohte mir in den Mund zu laufen. O dieses Ungemach. Ich weinte, und ich bereute bitter, mich der lüsternen Bequemlichkeit hingegeben zu haben. Da plötzlich saß ich wieder im Institut Benjamenta, in der dunkelnden Schulstube, […].” (JvG 102 f.)

173) W. Benjamin: Der Sürrealismus. In: Gesammelte Schriften Bd. 2-1. Frankfurt a. M.

1991, S. 297: “Diese Lockerung des Ich durch den Rausch ist eben zugleich die fruchtbare, lebendige Erfahrung, die diese Menschen aus dem Bannkreis des Rausches heraustreten ließ.”

174) “ich lebe dann wie in einem Märchen und nicht mehr als Kulturmensch in einem Kulturzeitalter.” (JvG 103)

175) Vgl. W. Benjamin: Robert Walser. In: Katharina Kerr (Hg.): Über Robert Walser. Bd.

1. Frankfurt a. M. 1978, S. 129: “Sie[Walsers Figuren] kämpfen noch, sich von dem Leiden zu befreien. 발저의 인물들은 [신화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전히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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