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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과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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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를 계속 진행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그 렇다면 벤야민이 이야기하는 신화란 과연 무엇인가? 벤야민은 신화에 대해 어 떻게 정의내리고 있는가? 벤야민의 글들을 읽어보면 신화에 관한 그의 명확한 정의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신화 Mythos’, ‘신화적 질서 mythische Ordnung’

혹은 ‘신화적 시대 mythisches Zeitalter’와 같은 개념들이야말로 그의 역사 철학 적 사유를 구성하는 결정적인 요소들임을 확인할 수 있다.88) 우선 벤야민에게 있어 신화란 초기 낭만주의의 새로운 신화 이념과 같이 전적으로 지향해야 할 무언가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벤야민은 신화를 우리가 이 세계를 좀 더 잘 살아내기 위해 제대로 알고 이용해야 할 일종의 현실로 묘사하고 있다. 다른 한 편으로 벤야민은 신화 혹은 신화적인 것의 부정적 속성을 ‘운명 Schicksal’이나

‘법 Recht’과 같은 개념과 결부하여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러한 연유에서―벤 야민에게서 신화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찾아볼 수 없는 까닭에―우리는 벤야민 의 정의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앞서 살펴본 신화에 관한 입장들을 선회하 면서 벤야민의 신화 개념에 접근해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 신화에 내재한 폭력성과 함께 계몽의 방식으로 폐기될 수 없는 신화의 힘이 드 러나고, 따라서 신화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보다 신화를 대하는 태도가 더욱 중요 한 논의거리로 부상하게 된다.

벤야민은 특히 폭력비판을 위하여 Zur Kritik der Gewalt (1921)89)에서 운명 에 결박된 폭력, 즉 ‘신화적 폭력 mythische Gewalt’을 ‘신적 폭력 göttliche Gewalt’과 구분지으며 사유했다. 그런데 폭력에 대한 벤야민의 사유는 그가 살 아온 삶의 이력, 그리고 그의 삶 마디마디를 매듭짓는 세계사적 사건과 긴밀한 관련을 맺는다. 그중 특히 청년 벤야민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던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이에 대한 반전시위를 준비하던 두 친구―매우 가까 88) Vgl. Günter Hartung: Mythos. In: Michael Opitz u. Erdmut Wizisla (Hg.): Benjamins

Begriffe Bd. 2. Frankfurt a. M. 2000, S. 552: “Im geschichtsphilosophischen Denken Benjamins nehmen die Begriffe Mythos, mythische Ordnung, mythisches Zeit- oder Weltalter eine bestimmende Stelle ein, ja man kann sagen, daß sie für den Aufbau dieses Denkens konstitutiv sind.”

89) W. Benjamin: Zur Kritik der Gewalt. In: Gesammelte Schriften Bd. 2-1. Frankfurt a.

M. 1991, S. 179-204.

운 사이였던 친구 하인레와 그의 약혼녀 젤리그손―의 자살이었다. “1914년 8월 첫 주의 어느 날 반전 데모를 준비하던 중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하인레와 그 의 약혼녀 리카 젤리그손이 베를린에서 자살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 마지막 항의로 전쟁 반대 여론을 환기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비극적인 사건으로 벤야 민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증에 빠지면서 벤야민 은 대학 내에서의 모든 정치 활동을 중단”90)한 채 침묵으로 일관하게 된 것이 다. 연일 계속되는 연대요청에 대해서도 벤야민은 일관되게 거부 의사를 표했 다. “그는 이런 유의 ‘극단주의가 그냥 제스처’밖에는 되지 못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이런 제스처보다 ‘더 강하고 더 순수하며 더욱 눈에 보이 지 않는’ 무엇91)이 필요했던 것이다.”92)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결과 수립된 바이마르 민주공화국은 당시 법과 국가를 사유하던 학자들에게 있어 무엇보다 이론적으로 확고히 정초해야 할 공통의 관심사였다. 특히 당시 독일의 보수적 공법학자이자 정치학자였던 칼 슈미트 Carl Schmitt는 바이마르 공화국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그것은 신생 공화국이 정당한 정치체제 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근거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는 정 치신학 Politische Theologie(1922)에서 그 근거로 ‘주권자 Souverän’를 호출해 낸다. 슈미트는 “모든 근대적 법치국가의 발전 경향이 주권자를 제거하는 방향 으로 진행되어 왔다”93)고 비판하면서, 인간의 정치적 실존에서 극한적 ‘예외상 황 Ausnahmezustand’이 완전히 제거될 수 있는지 여부를 의문시한다. 그리고 그는 예외상황이란 인간의 의지나 조건과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든 들이닥칠 수 있는 정치적 혼란이라는 전제하에, 이로부터 국가를 수호해 줄 강력한 의지의 행위자, 즉 주권자가 요청될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이렇듯 칼 슈미트에게 있 어 주권자란 예외상황 마저도 주관하는 절대적 존재로 자리매김 된다.94) 반면

90) 몸메 브로더젠: 발터 벤야민. 이순예 옮김. 인물과사상사 2007, 29-30면.

91) ‘더 강하고 더 순수하며 더욱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의 예로 ‘새로운 글쓰기 형식’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 벤야민의 독특한 언어관과 관련해 상술된다.

92) 몸메 브로더젠: 발터 벤야민, 31면.

93) Carl Schmitt: Politische Theologie. Vier Kapitel zur Lehre von der Souveränität. Berlin 1985, S. 13: “Alle Tendenzen der modernen rechtsstaatlichen Entwicklung gehen dahin, den Souverän in diesem Sinne zu beseitigen.” (국역본 칼 슈미트: 정치신학. 김항 옮김. 그 린비 2010, 18면.)

94) Vgl. Carl Schmitt: a. a. O., S. 12 f.: “Er[Souverän] entscheidet sowohl darüber, ob der extreme Notfall vorliegt, als auch darüber, was geschehen soll, um ihn zu beseitigen. Er steht außerhalb der normal geltenden Rechtsordnung und gehört doch zu

벤야민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그러지고 이중적인 주권자의 형상을 그려낸다. 독 일 비애극의 원천 Ursprung des deutschen Trauerspiels(1928)에서 묘사되는 군 주, 즉 주권자 Souvarän의 모습은 자신의 “지배 권력과 지배 능력 사이의 불일 치 Die Antithese zwischen Herrschermacht und Herrschvermögen”95)를 보여 주는 한 인간의 형상과 다름이 없다. 그는 예외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자신의 권 력을 이용하지만 “그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거대한 자연사의 흐름 속에서 희생 될 수밖에 없는 순교자”로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고 자 그의 권력을 과도하게 행사함으로써 순리를 거스르는 폭군”으로도 묘사된 다.96) 그리고 이처럼 주권자 안에 극단적으로 상반된 두 가지 면모가 혼재하고 있음이 시사하는 바는 인간이 다름 아닌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피조물성 Kreatürlichkeit―이다. 피조물 상태는 어떠한 고군분투를 통해서도 세계와 자연 의 질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가장 원천적인 제약 조건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처럼 벤야민은 예외상황을 주권자의 법이 작동하지 않는 곳에 위치시킴으 로써 법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공백을 마련한다. 나아가 이러한 틈은 법의 전 적인 지배를 의문시하게끔 한다. 또한 폭력비판을 위하여 에서 논의의 흐름은 폭력적 지배를 법97)의 이름으로 합리적인 것이라 윤색하던 당대 법실정주의나 자연법 사상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벤야민은 ‘법의 지배 Herrschaft des Recht’가 사실은 무고한 인간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근본적인 권력관계를 재 생산해내는 ‘신화적 폭력 mythische Gewalt’에 불과하다고 언급한다.98) 그리고

ihr, denn er ist zuständig für die Entscheidung, ob die Verfassung in toto suspendiert werden kann.” (국역본 칼 슈미트: 정치신학, 18면 참조: “그[주권자]는 극한적 긴급상황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뿐 아니라, 그것을 평정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이 주권자 는 통상적으로 유효한 법질서 바깥에 서 있으면서도 여전히 그 안에 속해 있다. 따라서 헌법을 완전히 효력정지시킬 것인지 어떤지를 결정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다.”)

95) W. Benjamin: Ursprung des deutschen Trauerspiels. In: Gesammelte Schriften Bd.

1-1. Frankfurt a. M. 1991, S. 250.

96) 임석원: 발터 벤야민의 알레고리 개념 연구.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석사학위 논문. 서울대 학교 대학원 2003, 34면 참조.

97) 법 Recht은 정의 Gerechtigkeit와 구분된다.

98) Vgl. W. Benjamin: Zur Kritik der Gewalt. In: Gesammelte Schriften Bd. 2-1. Frankfurt a. M. 1991, S. 195-200: “Im ganzen Bereich der Gewalten, die Naturrecht wie positives Recht absehen, findet sich keine, welche von der angedeuteten schweren Problematik jeder Rechtsgewalt frei wäre. […] Weit entfernt, eine reinere Sphäre zu eröffnen, zeigt die mythische Manifestation der unmittelbaren Gewalt sich im tiefsten mit aller Rechtsgewalt identisch und macht die Ahnung von deren Problematik zur Gewißheit von der Verderblichkeit ihrer geschichtlichen Funktion, deren Vernichtung

신화적 폭력은 신적 폭력과 대비되어 다음과 같이 상술된다.

모든 영역에서 신화에 대해 신이 맞서듯이 신화적 폭력에도 신적인 폭력이 맞선 다. 그것도 후자의 폭력은 모든 면에서 전자에 대한 반대상을 가리킨다. 신화적 폭력이 법정립적이라면 신적 폭력은 법 파괴적이고, 신화적 폭력이 경계를 설정 한다면 신적 폭력은 경계가 없으며, 신화적 폭력이 죄를 부과하면서 동시에 속 죄를 시킨다면 신적 폭력은 죄를 면해주고(entsühnend), 신화적 폭력이 위협적이 라면 신적 폭력은 내리치는 폭력이고, 신화적 폭력이 피를 흘리게 한다면 신적 폭력은 피를 흘리지 않은 채 죽음을 가져온다.99) (인용자 강조)

이처럼 신화적 폭력―법적 폭력―은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설정하여 인간으 로 하여금 부지불식간에 그 선을 넘어 ‘속죄 Sühne’에 빠지게 하고, 따라서 단 순한 삶 das bloße Leben을 법에 속박해 삶의 희생을 요구한다. 또한 벤야민은 신칸트학파에 속하는 유대인 철학자 코엔 Hermann Cohen을 인용하면서 이러 한 벗어남(추락)이 고대의 운명관에 나타나는 ‘운명 Schicksal’의 질서에 속해 있다고 언급한다.100) 그리고 이러한 언급은 폭력비판을 위하여 Zur Kritik der

damit zur Aufgabe wird. […] Die Auslösung der Rechtsgewalt geht nun, wie hier nicht genauer dargelegt werden kann, auf die Verschuldung des bloßen natürlichen Lebens zurück, welche den Lebenden unschuldig und unglücklich der Sühne überantwortet, die seine Verschuldung »sühnt« ­ und auch wohl den Schuldigen entsühnt, nicht aber von einer Schuld, sondern vom Recht.” (국역본 발터 벤야민: 폭력비판을 위하여. 실린 곳: 발터 벤야민 선집5. 최성만 옮김. 길 2008, 105-112면 참조: “자연법이나 실정법 모두가 예상하는 폭력의 전 영역에서 위에서 암시한 것처럼 법적 폭력의 문제성에서 벗어나 있을 폭력은 하나 도 없다. […] 보다 순수한 영역을 열어 보여주기는커녕 직접적 폭력의 신화적 발현은 가장 깊 은 차원에서 모든 법적 폭력과 동일한 것으로 드러나며 법적 폭력의 문제성에 대한 예감을 그 것의 역사적 기능의 타락상에 대한 확신으로 만들어준다. 이로써 이 역사적 기능을 파괴하는 것이 과제가 된다. […] 법적 폭력의 유발은 단순한 자연적 삶의 죄지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죄지음은 살아 있는 자를 아무 죄도 없이 불행하게 속죄에 넘겨줌으로써 그 죄지음을 ‘속 죄’하게 하며―어쩌면 죄인도 면해줄지 모르나 죄로부터는 아니고 법으로부터 면죄할 것이다.”) 99) W. Benjamin: Zur Kritik der Gewalt. In: a. a. O., S. 199: “Wie in allen Bereichen dem

Mythos Gott, so tritt der mythischen Gewalt die göttliche entgegen. Und zwar bezeichnet sie zu ihr der Gegensatz in allen Stücken. Ist die mythische Gewalt rechtsetzend, so die göttliche rechtsvernichtend, setzt jene Grenzen, so vernichtet diese grenzenlos, ist die mythische verschuldend und sühnend zugleich, so die göttliche entsühnend, ist jene drohend, so diese schlagend, jene blutig, so diese auf unblutige Weise letal.” (국역본 발터 벤야민: 폭력비판을 위하여, 111면.)

100) Vgl. W. Benjamin: Zur Kritik der Gewalt. In: a. a. O., S. 199: “Schon Hermann Cohen hat es in einer flüchtigen Betrachtung der antiken Schicksalsvorstellung eine

»Einsicht, die unausweichlich wird,« genannt, daß es seine »Ordnungen selbst sind, welche dieses Heraustreten, diesen Abfall zu veranlassen und herbeizufüh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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