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은 마틴의 주도로 번역된 서양 국제법 서적을 통해 주외공관 제도를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앞서 해외 각국이 설치한 주청공
48) 傅德元, 「丁韙良主持飜譯≪公法會通≫新探」, 河北學刊 28(2), 2008, 84쪽.
49) 公法會通 1, 23-25쪽.
50) 出使英法俄國日記 , 427, 428, 431, 432, 433쪽.
관을 피상적으로 경험하던 것보다는 질적으로 발전된 것이었다. 그러나 청 은 여전히 청은 서양 국제법을 전면 수용하기보다 그 중 유리한 내용만을 활용하려 하였다. 따라서 서양 국제법 서적에 담긴 주외공관 제도 서술을 통해 청이 주외공관 제도를 구상하고 실천하는 이론적 배경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먼저 만국공법 은 공사 제도의 연원을 설명하였다. 이는 조약질서가 중 화질서와는 구분되는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예로부터 교화가 점차 행해졌기에 모든 나라는 서로 예로써 대하여 通使 의 규정이 있었다. 생각건대, 각국에 또 欽差와 駐箚를 두는 규정이 있는 것은 최근 200년간 각국의 통상과 교제가 더욱 긴밀해진 때문이다. 명확 하지 않은 일이 있을 때마다 흠차를 특별히 파견하여 처리한다. 그리고 각국이 강자에 의지하고 약자를 업신여겨 均勢의 법도를 해칠 것을 우려 하여 흠차를 수도에 주재토록 하여 예방토록 한다. 이것이 만국공법에서 장정을 두어 통사 왕래의 권리를 정한 까닭이다.51)
이처럼 공사 제도는 서양 국가 사이에 통상과 교제가 긴밀해지는 상황에 서 세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었다. 동아시아에서 중국 중심 의 국제질서가 지속하여 온 것과 달리, 서구 사회에서는 여러 주권국가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들 간의 세력 균형을 중시하는 국제질서가 자리 잡았던 것이다. 따라서 청에서 공사 제도는 국가 간의 분쟁을 줄이고 약소국의 존 립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서양 국가 사이에서만 적용되는 원칙일 뿐 동아시아 국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하 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였다.
만국공법 은 공사를 포함한 외교사절의 등급을 4가지로 분류하였다. 이 는 상주공사의 등급을 구분하는 데도 원용되었다. 그리고 이 내용은 만국 공법 이후의 서양 국제법 서적에서도 유사하게 반복되었기 때문에, 청이
51) 萬國公法 , 275쪽.
공사를 파견하면서 그 등급을 결정하는 데도 참고가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만국공법 은 공사의 등급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권리의 연원과 신임장 을 제출하는 대상을 명시하였다.52)
等級 權利 淵源 信任狀 提出
1等使臣 代君行事
寄信憑於君 2等使臣
代國行事 3等使臣
4等使臣 寄信憑於陪臣
<表1-8> 萬國公法 의 공사 등급 규정
공사가 지닌 권리의 연원을 살펴보면 1등공사는 군주로부터, 2·3·4등공 사는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는 차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군주와 국가 가 일체화된 專制國이 있는가 하면 군주가 존재하지 않는 共和國도 있었 고, 만국공법 에서도 “업무에 따라 등급을 구분하자면 1등사신과 2등사신 은 동등한 것”이라 하였기에,53) 권리 연원에 따른 구분은 사실상 큰 의미 가 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주목할 부분은 공사가 누구에게 신임장을 제출 하느냐 하는 것이다. 1·2·3등공사는 군주에게 신임장을 제출하지만, 4등공 사는 陪臣에게 신임장을 제출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이것은 훗날 청이 체약국인 서양 국가나 일본에는 2등공사를 파견하면서, 속국으 로 간주된 조선에는 4등공사를 파견하는 근거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심 장한 구절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청 정부가 그 의미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는 못하였다.54)
곧 이어 만국공법 은 공사가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다음과 같이 구체
52) 萬國公法 , 279-283쪽.
53) 萬國公法 , 280쪽.
54) 중화민국이 성립된 후 1等使臣은 (特命全權)大使, 2等使臣은 (特命全權)公使로 인식되 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중화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해외 각지에 파견한 公使도 점차 大使로 승격되기 시작하였다. (胡愈之, 「大使與公使」, 世界知識 1934(3), 1934, 124-125쪽 ; 川島眞, 앞의 책, 2004, 108쪽 참고) 즉, 동아시아 3국이 ‘대사’라 는 직함을 사용하는 것은 20세기부터 일반화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적으로 설명하였다.
외국에 駐箚하는 자는 그 권리가 본국에서와 동일한데, 이것은 이른바 부 재하지만 존재하는 것(不在而在)이다. … 만약 자녀가 외국에서 태어났어 도 그는 여전히 본국의 인민이다. … 타국에 주차하는 외교관이 자신의 교당에서 예배를 드릴 때 본국의 종교 예절에 따를 수 있다.55)
이것은 공사가 외국에 머물고 있다 할지라도 본국에서와 동일한 권리를 지닌다는 규정이다. 본국에 머물고 있지는 않지만 본국에 머물고 있는 것 과 마찬가지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사의 지위는 특별한 것으로서 함부로 침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는 톈진조약과 베이징조 약을 통해서도 이미 인정된 바 있었고, 청에 주재하는 외국공사들이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청으로서는 그다지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 다고 할 수 있다.
만국공법 은 영사 제도에 대한 내용도 소개하였다. 다만 그 내용은 단 하나의 절에서 소략하게 다루어졌다. 이는 마틴이 번역의 底本으로 삼았던 휘튼의 국제법 원리(
Elements of International Law
) 제6판(1855年)에 서도 마찬가지였음을 고려해 볼 때, 아직 서구 사회에서도 영사를 외교사 절과 구분하는 경향이 강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만국공법 의 다음 구절 을 통해서도 뒷받침된다.領事官은 使臣의 예에 속하지 않는다. 각지의 律例 및 和約章程, 또는 대 외협약(准額外賜)을 통해 권리를 얻는다. 그러나 영사 등의 관직은 만국 공법에서 정한 國使의 권리와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56)
이처럼 만국공법 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영사가 외교사절과 유사하게 활 동하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원칙적으로는 영사가 외교사절과는 구분되는
55) 萬國公法 , 286-296쪽.
56) 萬國公法 , 296쪽.
것으로 규정하였다. 영사의 역할이나 활동을 서술하는 데 많은 분량을 할 애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이에 따라 청은 만국공법 을 통해서는 영사 제도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뒤이어 출간된 성초지장 은 공사의 등급을 서술하였다. 만국공법 이 공사의 등급에 따른 권리 연원과 신임장 제출 대상에 집중하였다면, 성초 지장 은 공사의 등급에 따른 권한을 서술하는 데 집중하였다는 차이점이 있다. 다음 내용은 청이 주외공관을 개설하고 주외공사의 등급을 결정하는 원칙이 되었다.
무릇 공사 중에 군주의 일을 처리하는 권한이 없고 외국 군주에게 서한 을 보내는 자는 2등에 속한다. … 4등공사로 실제 직책에 있는 자를 辦事 大臣이라고 한다. … 무릇 외국에 파견되는 委員은 공사의 권한을 지니지 않는다. 그러나 위원이 疆界를 살펴 처리하거나 세금을 징수하거나 집행 할 때는 공사의 직함을 더할 수 있다.57)
이는 만국공법 의 논의를 한층 구체화한 것으로, 특히 외국에 파견하는 공사가 주로 2등공사에 속한다는 서술은 청이 외국에 파견하는 공사를 2 등공사로 설정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한편 委員과 公使를 구분하고 있는 서술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위원은 공사의 권한을 지니지 않는 다고 하였으니, 이는 곧 외교 교섭을 처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위원이 영토 문제 등을 논의할 때는 공사의 직함을 지닐 수 있다고 하였는 데, 이는 향후 청이 원세개를 조선에 파견할 때 4등공사의 官秩을 더한 배 경을 파악하는 단서가 된다.
성초지장 에는 공사의 외교 의례에 관한 내용도 수록되어 있다. 그동안 외교사절의 의례 문제는 청을 줄곧 외교적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었다. 개 항 이전 청이 三跪九叩頭를 행할 것을 요구하였을 때는 서양의 외교사절이 굴욕적인 처사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개항 이후 청의 외교사절이 서양에 파견되면 鞠躬이나 握手 등 상호 대등한 지위를 상징하는 의례를
57) 星軺指掌 , 第1卷 第3章, 23-23면.
치러야 했다. 스스로를 천하의 중심이라 간주하는 청으로서는 용납하기 어 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청이 외국과 조약을 맺고 공사를 파견하는 단계가 되면 이러한 외교 의례를 실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서양에서도 頭等公使가 임지에 도착하여 군주를 朝見하는 예법은 모두 같지 않지만, 그 중 같은 부분은 대략 설명하겠다. … 궁전 내의 군주는 앉거나 서 있고, 좌우에 늘어선 왕공대신과 公使 일행은 몸을 굽혀 세 번 인사한다. 군주가 일어서서 공사를 앉도록 하면, 공사는 앉아서 陳詞를 읽는다. 낭독이 끝난 후 參贊이 받들고 온 국서를 공사가 군주에게 전달 하면, 군주가 이를 받아 총리대신에게 건네준다. 군주가 答詞를 읽은 다 음 사신이 몸을 굽혀 세 번 인사하고 물러난다.58)
성초지장 은 공사의 역할에 대해서도 폭넓게 설명하였다. 이는 공사 제 도와 관련된 핵심적인 내용이었지만 만국공법 에서는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성초지장 에 따르면 공사는 “본국 인민을 보호”하고 “널리 상의 하고 방문하여 보고 들은 바를 수시로 본국에 보고”하며, “의논하여 조약 을 체결”하고 “불화가 있을 때 우방국에 조정을 요청”하는 등의 역할을 수 행해야 했다.59) 이는 훗날 청 정부가 파견한 주외공사들의 기본적인 업무 가 되었다.
성초지장 은 영사 제도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앞서 만국공법 에서 는 영사 제도가 단 하나의 절에서 간략히 설명되었기 때문에, 성초지장 에서 한 권 전체를 할애하여 상세히 다룬 것은 영사 제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먼저 성초지장 에는 영사 파견의 연원이 제시 되어 있다.
살피건대, 領事官은 駐京公使보다 먼저 설치된 것이다. … 이후 무역이 점차 번성하고 사무가 날로 복잡해지면서, 영사 파견의 권한이 군주에 돌 아가지 않고 각지의 商會로 번져 나가, 연해의 각국 상선이 모여들어 서 58) 星軺指掌 , 第2卷 第7章, 21면.
59) 星軺指掌 , 第2卷 第8章, 31-3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