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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조약의 領事·公使 번역 양상

제1·2차 아편전쟁을 계기로 청은 각종 불평등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들 불평등조약은 열강에 많은 이권을 넘겨줄 것을 규정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가혹한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주외공관 관련 용어의 번역을 촉발하 여 주외공관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것이기도 하였다.

제1차 아편전쟁이 벌어지기 직전, 청에서는 영국이 파견한 상무감독, 즉

‘Superintendent of Trade’를 가리키는 말로 ‘領事’라는 번역어가 사용되 었다.26) 그러나 아직 영사는 영국이 일방적으로 파견한 관리로서 廣州에서 公行을 상대로 무역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자국 민 보호를 비롯한 僑務를 처리하는 ‘Consul’로서의 영사와는 구분되는 것 이었다고 할 수 있다.

1842년 난징조약 제2조는 영사와 관련된 번역 양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 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기존에 사용되던 ‘영사’에 더해 ‘관사’라는 번역어 가 추가되었음이 눈에 띈다.

23) 田濤, 「19世紀下半期中國知識界的國際法觀念」, 近代史硏究 2000(2), 2000, 111쪽.

24) 「附 譯署來電」(光緖 22年 4月 27日), 李鴻章全集 26, 253쪽.

25) 靑山治世, 앞의 책, 2014, 序章.

26) 籌辦夷務始末 (道光)4, 15-16면.

【英文】Her Majesty the Queen of Great Britain, &c., will appoint Superintendents or Consular officers, to reside at each of the above-named cities or towns, to be the medium of communication between the Chinese authorities and the said merchants.

【漢文】英國君主派設領事、管事等官住該五處城邑, 專理商賈事宜, 與各該 地方官公文往來。27)

원문에서는 기존의 ‘Superintendent of Trade’가 ‘Superintendent’라 축 약되었고, ‘Consular officer’라는 말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단지 무역 관련 사무의 처리가 아니라 ‘to be the medium of communication between the Chinese authorities and the said merchants’, 즉 ‘중국 당국과 상인 사이의 의사소통’이라고 폭넓게 규정되었다. 이처럼 영국은 제1차 아편전쟁 이후 그동안 무역 관련 사무를 맡아온 상무감독을 자국민 보호 등의 업무를 포괄적으로 수행하는 영사 (Consul)로 확대 발전시키려 하였다.28)

번역문을 보면 ‘Superintendent or Consular officer’는 ‘領事、管事等 官’으로 번역되었고, 이들의 역할이 ‘專理商賈事宜, 與各該地方官公文往來’

라 규정되었다. 기존 언어 관행에서는 ‘Superintendent’라는 원어가 ‘領事’

의 번역어와 짝지어져 ‘專理商賈事宜’라는 記意를 지니고 있었다. 여기에

‘Consular officer’라는 원어와 ‘管事’라는 번역어, 그리고 ‘與各該地方官公 文往來’라는 기의가 추가되었던 것이다. ‘번역의 중층성’이 한층 심화한 상 황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번역 양상은 1843년 후먼조약이 체결될 때도 동일하게 반복되었 다. 난징조약과 후먼조약은 영국과 불과 1년 사이에 체결된 것이었으므로, 번역 양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는 ‘Consul’과 ‘管事官’,

27) Treaties, Conventions, etc., between China and Foreign States, p.352.

28) 植田捷雄, 앞의 글, 1946, 24-25쪽.

‘Superintendent of Trade’와 ‘領事官’이 정확히 대응하면서 ‘번역의 중층 성’이 다소 해소되었다. 앞서 난징조약에 포함되었던 ‘Consular officer’가

‘Consul’로, ‘領事’가 ‘領事官’으로, ‘管事’가 ‘管事官’으로 미세하게 조정되 기는 하였지만, 영사와 관련된 원어/번역어의 관계에 큰 변화가 나타나지 는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1843년 무렵이 되면 원어와 번역어 사이에서

‘Superintendent (of Trade)’와 ‘領事(官)’, 그리고 ‘Consul(ar officer)’과

‘管事(官)’라는 대응 관계가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29)

그러나 이와 같은 Superintendent/領事官과 Consul/管事官의 대응 관계 는 다소 불안정한 것이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난징조약에는 영국 상 인과 중국 당국 사이의 교섭을 Consular officer/管事가 맡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후먼조약에서는 Consul/管事官뿐 아니라 Superintendent of Trade/領事官도 맡을 수 있다고 규정되었다. 즉, 후먼조약의 단계가 되면 영사의 역할이 단지 무역에 국한되지 않고, 점차 교섭이나 재판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직 英語와 漢語를 매개하는 프로토콜 (protocol)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Superintendent’와

‘Consular officer’의 원어, 그리고 ‘領事’와 ‘管事’의 번역어가 뒤섞여 사용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1844년 체결된 왕샤조약 제4조와 황푸조약 제4조의 원문과 번역 문을 대조해 보면 이 시기 영사와 관련된 원어/번역어 관계에 다소 변화가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왕샤조약은 원문이 영어, 황푸조약은 원 문이 프랑스어라는 차이가 있으나, 영사에 대한 원어와 번역어의 관계가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음이 눈에 띈다. 이는 서구 사회에서 영사 관련 용어 가 일찍부터 생겨나 여러 종류의 언어 체계에 녹아들었던 사정을 보여준 다. 왕샤조약과 황푸조약에서는 영사를 지칭하는 원어/번역어의 관계가 Consul/領事로 일원화되었다. 그밖에 왕샤조약의 총 34개 중 20개 조항, 그리고 황푸조약의 총 36개 중 24개 조항에서도 영사를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에 나타난 원어/번역어 관계도 모두 Consul/領事로 통일되어 있다. 난

29) Treaties, Conventions, etc., between China and Foreign States, pp.390-399.

징조약과 후먼조약에서 자주 사용되었던 ‘Superintendent’, ‘管事’ 등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30)

기실 ‘Superintendent’라는 원어는 영국이 청에 파견한 상무감독을 지칭 할 때 사용하던 단어였으므로, 미국이나 프랑스가 영국과 이를 똑같이 사 용할 이유는 없었다. 따라서 왕샤조약과 황푸조약에 포함된 여러 조항 속 에서 ‘Superintendent’가 도태되고 ‘Consul’만 남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번역어에서 ‘領事’가 ‘管事’를 밀어낸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19세 기 중후반 청에서 출판된 각종 英華·華英字典을 통해 ‘Consul’ 개념의 확 장과 변용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31) 이들 자전은 편찬 주체와 번역 대상의 관념이 상호작용한 결과물이라는 데서 중요한 분석 대상이라 할 수 있다.32)

字典 發行年度 ‘Consul’의 번역어

衛三畏英華韻府歷階 1844 領事

麥都思英華字典 1847 領事官, 管事官

羅存德英華字典 1866 領事官

盧公明英華萃林韻府 1872 領事, 領事官, 管事官

井上哲次郞訂增英華字典 1884 領事官

鄺其照華英字典集成 1899 領事官

顔惠慶英華大辭典 1908 領事官

商務書館英華新字典 1913 領事

赫美玲官話 1916 領事

<表1-3> 英華字典에 나타난 ‘Consul’의 번역 양상

30) Treaties, Conventions, etc., between China and Foreign States, pp.677-690, 771-790.

31) 이동욱은 萬國公法 , 公法便覽 , 公法會通 의 서양 국제법 서적, 그리고 당시 간행 된 8종의 英華·華英字典에 나타난 ‘번속’ 관련 개념의 확장과 변용 과정을 19세기 말 청의 언어적 콘텍스트 속에서 고찰한 바 있다. 이동욱, 앞의 글, 2018 참고.

32) 臺灣中央硏究院近代史硏究所, 英華字典資料庫 . (http://mhdb.mh.sinica.edu.tw/dictionary/index.php)

1844년에 출간된 衛三畏英華韻府歷階 는 미국인 윌리엄스(Samuel Williams)가 편찬한 자전이다. 여기서 ‘Consul’을 ‘領事’로 번역한 것은 같 은 해 청과 미국 사이에 체결된 왕샤조약에서의 번역 양상과 정확히 일치 한다. 곧이어 1847년에 출간된 麥都思英華字典 은 영국인 메드허스트 (Walter Medhurst)가 집필한 것이다. 여기서는 ‘Consul’을 ‘領事官’ 또는

‘管事官’이라 번역하면서, ‘외국에서 본국 관련 사무를 管理하는 사람’이라 고 정의하였다. 이는 청과 영국이 체결한 난징조약과 후먼조약을 참고한 결과라 생각되는데, 아직은 영사가 단지 관리자의 존재로만 규정되고 있음 을 알 수 있다. 그러나 1866년의 羅存德英華字典 은 ‘Consul’을 ‘領事’로 번역하면서, ‘국가의 권익, 상업, 상인, 선원을 보호하고 해당 외국과의 상 거래를 돕기 위해 군주나 국가로부터 대리인 또는 대표로 위임받은 사람’

이라 폭넓게 규정하였다. 이는 영사를 군주나 국가로부터 정식 임명된 대 표와 동시에 僑務 일반을 수행하는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Consul’을 ‘領事’나 ‘領事官’으로 치환하는 번역 양상은 일종의 典型으로 자리 잡아, 1884년 이후에는 모든 자전에서 똑같이 나타나기 시 작하였다. 이는 영사 관련 단어에서 ‘번역의 중층성’이 극복되고 원어와 번 역어의 관계가 일원화되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Consul’은 ‘管事’가 지닌 ‘사무를 관리한다’는 의미보다는 ‘領事’가 지닌

‘사무를 통할한다’는 의미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즉, 영사 관 련 단어의 번역 양상이 달라진 것은 영사의 위상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반면, 공사에 대한 원어와 번역어의 관계에 있어서는 ‘번역의 중층성’이 오랫동안 지속하였다. 서구 사회에서 공사 제도는 15세기 중엽 이탈리아의 밀라노 大公 스포르차(Francesco Sforza)가 제노아에 공사를 파견한 것을 그 효시로 한다.33) 그런데 서구 열강의 여러 언어에서 공사를 지칭하는 단 어는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고, 공사의 등급에 따라 여러 단어가 쓰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를 번역하여 수용하는 입장이었던 청에서 공사를 지칭하

33) 해롤드 니콜슨(신복룡 譯), 외교론 , 평민사, 2009, 43-50쪽.

는 용어가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1858년 청이 미국, 프랑스, 영국과 연이 어 체결한 톈진조약이라 할 수 있다. 이 세 조약의 원문에서는 ‘minister’,

‘ambassador’, ‘representative’ 등의 단어가 각기 다른 등급의 공사를 지 칭하는 데 활용되었다. 그런데 이들 단어에 대응하는 번역어로는 ‘大臣’,

‘欽差大臣’, ‘欽差大臣公使’, ‘欽差各國大員’, ‘秉權大員’ 등이 사용되었다.34) 이들 번역어는 공사의 등급 차이는 물론, 공사가 지닌 ‘상주’의 속성을 반 영하지 않은 채, 기존의 언어 관습에서 사용되던 ‘欽差大臣’에 기대어 공사 를 파악하였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청에서 공사像이 명확 히 정립되지 못한 상황을 보여준다.

그러던 것이 1860년 청이 영국, 프랑스와 北京條約을 체결하는 단계가 되면, 서서히 공사를 둘러싼 ‘번역의 중층성’이 줄어들면서 ‘상주’의 속성이 반영되기 시작하였다. 中英北京條約에서는 ‘representative in China’,

‘representative’가 ‘欽差駐華大臣’, ‘欽差大員’으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中 法北京條約에서는 ‘ministre’가 ‘駐紮中國之欽差大臣’, ‘駐箚中國欽差大臣’,

‘駐紮京師之欽差大臣’, ‘欽差大臣’으로 번역되었다.35) 이를 통해 원어가

‘representative’, ‘ministre’, 번역어가 ‘欽差大臣’로 수렴되고, ‘駐華’, ‘駐 紮’, ‘駐箚’ 등을 통해 ‘상주’의 속성이 표현되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는 곧 ‘번역의 중층성’이 조금씩 극복되고 있음을 뜻하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 해 청의 공사 제도 이해는 더욱 진전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까지도 정작

‘公使’라는 단어는 널리 쓰이지 않았고, 간혹 쓰이더라도 외교관 일반을 지 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곧 이어 서양 국제법 서적이 체계적으로 소 개되면서 공사와 관련된 ‘번역의 중층성’은 완화되었고 그만큼 청의 공사 제도 이해는 진전하였다.

34) Treaties, Conventions, etc., between China and Foreign States, pp.404-421, 713-728, 814-839.

35) Treaties, Conventions, etc., between China and Foreign States, pp.430-434, 885-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