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總辦商務委員 진수당의 위상과 활동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 마련된 후, 청은 주한공관을 개설할 준비를 서 둘렀다. 1883년 이홍장은 辦理朝鮮商務章程을 제출하였다. 주외공관을 운 영하는 규정으로 出使章程을 마련해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도로 주한공관 을 운영하는 규정을 입안한 것은 조선을 열강과 달리 보는 인식을 반영하 고 있다. 이는 이홍장이 “조선은 중국의 번복이므로 위원을 주재시키는 것 은 외국에 출사하는 체제와 조금 다르지만 사정이 대략 같습니다. 이에 출 사장정을 참작하여 다소 변통하였습니다.”라고 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53) 판리조선상무장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북양대신은 總辦朝鮮各口商務委員 1명을 한성에 주재하여 인천의 상무 를 겸관하도록 하고, 分辦元山口商務委員 1명, 分辦釜山口商務委員 1 명을 각각 해당 항구에 주재하며 상무를 관리하도록 하는데, 모두 북 양대신이 발급한 木質關防을 사용한다.

2. 총판위원이 조선에 도착한 후 … 만약 어려운 일이 있으면 수시로 북 양대신에게 문의한다.

3. 조선의 민가는 비루하고 좁아 빌리거나 구매할 만한 곳이 없다. 한성·

원산·부산 세 곳에는 委員公館을 건설하여 (상국의) 체제를 높이도록 한다.

4. 총판위원과 분판위원 사이에 공문을 주고받을 때, 총판위원은 札行을, 분판위원은 申呈을 사용한다.

5. 총판 및 분판위원은 조선 관원과 공문을 왕래함에 있어 통리아문 이하 모두 平行照會를 사용하고, 각국의 공사나 영사와의 조회에서는 모두

52) William Langer, op. cit., 1960, 13장 ; Mark Shulman, Navalism and the Emergence of American Sea Power, 1882-1893, Annapolis, md. : Naval Institute Press, 1995.

53) 「總署收軍機處交出李鴻章抄摺」(光緖 9年 6月 25日), 淸季中日韓關係史料 , 1172쪽.

華文을 사용하고 필요에 따라 洋文을 첨부한다.

6. 조선은 각국공사와 함께하는 자리에서 頭等, 二等, 三等의 직분이나 부 임날짜의 선후에 따라 坐次를 정하는데, 조선은 중국의 속방이므로 중 국 총판위원은 賓中之主이 되어 조선 관청의 상석에 위치해야 한다.

7. 각 항구의 상민에 공소 안건이 있으면 위원이 … 공평하게 분별하여 처리한다.

8. 총판위원은 총영사에 비추어 매월 은 400냥, 분판위원은 일본 이사관 에 비추어 매월 은 300냥이나 200냥으로 차이를 둔다.

9. 총판위원과 분판위원은 해외에 출사한 것에 비추어 3년을 임기로 하 고, 북양대신이 살펴 공로가 뛰어난 자는 請獎한다.

10. 윤선 왕래, 공관 임차, 공식 연회 등 모든 공식 안건은 미리 계산하 기 어렵다. 출사장정에 비추어 수시로 조사하여 정산한다.

11. 총판위원 이하 관원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경비는 각 해관의 출사경비 항목에서 지급한다.

12. 이번 총판위원을 파견한 것은 오로지 해로무역을 관할케 한 것이 다.54)

이홍장이 밝힌 바와 같이 판리조선상무장정은 출사장정을 참고한 것이었 다. 따라서 판리조선상무장정은 출사장정과 유사한 규정을 일부 포함하고 있었다. 먼저 상무위원의 임기를 3년으로 정한 것은 출사장정에서 정한 공 사의 임기와 동일하였다. 그리고 주외공사의 등급을 頭等, 二等, 三等으로 분류한 것 또한 출사장정에서 공사의 등급을 구분한 것과 동일하였다. 청 이 출사장정을 제정할 때 열강의 주외공관 제도와 서양 국제법 서적을 참 고하였으므로, 출사장정을 본뜬 판리조선상무장정 또한 근대외교의 속성을 상당 부분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판리조선상무장정에는 출사장정과 판이한 규정이 많았다는 데 주 목할 필요가 있다. 출사장정은 대등 관계에 있는 외국에 적용하는 것이지 만, 판리조선상무장정은 상하 관계에 있는 번속에 적용하는 것이었기 때문 이다.55) 이는 먼저 영사를 지칭하는 용어가 달랐다는 데서부터 확인된다.

54) 「總署收軍機處交出李鴻章抄摺 附件一. 酌擬派員辦理朝鮮商務章程」(光緖 9年 6月 25 日), 淸季中日韓關係史料 , 1172-1175쪽.

55) 중화민국 시기 淸史를 편찬할 때 서구 열강과 일본은 外國傳에, 조선과 베트남은 屬國

판리조선상무장정은 청 상인을 보호·지원하는 영사를 ‘상무위원’이라 불렀 다. 이는 성초지장 에서 “외국에 파견되는 委員은 공사의 권한을 지니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한 결과로 생각된다.56) 일본에 파견한 영사를 ‘理事 官’이라 지칭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조선에 파견하는 영사를 ‘상무위원’이 라 지칭하여 ‘영사’라는 용어를 회피한 것이다.57) 그러나 상무위원은 ‘영 사’, ‘理事’, ‘理事官’이라고 불렸으니, 사실상 영사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 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판리조선상무장정과 출사장정은 총판상무위원과 공사·영사의 관할 을 달리 규정하였다. 총판상무위원은 북양대신의 관할에 속하였다. 북양대 신은 총판상무위원을 임명하고 그 권한을 증명하는 목질관방을 발급하였 다. 만약 총판상무위원이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북양대신에게 자문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출사장정에서는 공사·영사에 대 한 감독을 총리아문이 맡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따라서 총리아문이 총판상 무위원까지 관할하는 경우 이는 공사·영사와 마찬가지인 것으로 비칠 뿐 아니라, 조선이 열강과 대등한 국가로 인식될 우려가 있었다. 총리아문 대 신 북양대신이 총판상무위원을 관할토록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한편 판리조선상무장정과 출사장정은 총판상무위원과 공사·영사의 반열 을 구분하였다. 총판상무위원은 각국사절이 모인 자리에서 가장 上席에 앉 도록 규정되었다. 출사장정에는 공사·영사의 반열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 지 않지만, 1815년 빈 회의 이후 서로 동등한 외교사절의 서열은 부임 일 자를 기준으로 하는 관행을 따랐다.58) 이는 “公議條規에 따르면, 만약 각

傳에 서술하였다. 청사 편찬에는 청대 지식인이 대거 참여하고 있었으므로, 이는 일정 부분 청의 대외 관념을 반영한 결과라 생각된다. 정동연, 「 淸史稿 에 나타난 동아시아 주변국 인식 - 「屬國傳」과 「邦交志」를 중심으로」, 중국근현대사연구 80, 2018b 참고.

56) 星軺指掌 , 第1卷 第3章, 23-23면.

57) 청은 1897년 연해주에 영사가 아닌 海參威商務委員을 파견하였다가 1909년 총영사로 바꾸었다. ( 淸季中外使領年表 , 81쪽 참고) 이 시기 청은 대한제국에 상무위원이 아니 라 영사를 파견하고 있었으므로, 연해주에서 상무위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데 큰 문 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에서 사용되던 상무위원이라는 명칭을 연해주에서 굳 이 재활용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 또한 연해주를 외국이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국 사신이 동등하고 모두 신빙장을 보냈다면 도착한 날의 先後를 따져 차 례를 정한다. … 오늘날에는 성문화된 규칙이 있으니 오로지 공사의 등급 을 기준으로 대우를 결정한다.”59)거나 “동등한 공사의 위계는 임지에 도착 한 날짜의 선후에 따라 정한다.”60)는 등 서양 국제법 서적에도 포함된 내 용이었다. 그러나 이는 청이 조선의 상국임을 보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 는 내용이었으므로,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따르려고 하지는 않았다.

판리조선상무장정과 출사장정은 주외공관의 건물에 관한 규정에서도 차 이를 보였다. 출사장정은 주외공관의 건물에 관한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 았다. 따라서 청의 주외공사는 현지 건물을 임대 또는 구매하여 주외공관 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판리조선상무장정은 별도의 주한공 관을 신축하도록 명시하였다. 이는 주외공관의 건물에 관한 첫 번째 규정 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지니는데, 무엇보다도 청의 상국 권위를 내보이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판리조선상무장정은 청과 조선이 상국과 번속 관계임 을 드러내기 위해 세심하게 설계되었다.

이홍장은 판리조선상무장정을 마련하는 동시에 조선에 상무위원을 파견 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는 청이 서구 열강에 이어 번속에까지 주외공관을 설립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중국조선상민수륙무역장정에는 향후 북양대신이 상무위원을 파견하여 조 선의 항구에 주재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 현재 미국은 조약을 교환하 고 이미 사절을 파견하여 한성에 머물도록 하였고, 일본도 이미 인천에서 땅을 사고 집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 마땅히 대원을 파견하여 지세를 관찰하고 주찰할 곳을 선택하여 華商을 보살펴야 합니다. … 만약 총판상 무위원을 조선의 왕경에 주재하도록 하면 인천의 상무도 겸할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지금의 급한 사무인 듯합니다.61)

58) 해롤드 니콜슨(신복룡 譯), 앞의 책, 2009, 43-50쪽.

59) 萬國公法 , 282쪽.

60) 公法會通 1, 139쪽.

61) 「總署收軍機處交出李鴻章抄摺」(光緖 9年 6月 25日), 淸季中日韓關係史料 , 1172쪽.

이때 총판상무위원으로 물망에 오른 것은 陳樹棠이었다. 그는 廣東 출신 으로 상하이에서 買辦으로 활동하다가 1875년 招商局에서 唐廷樞·鄭觀應 과 함께 仁和保險公司를 설립하여 근대적 보험 제도를 도입한 인물이었 다.62) 이러한 洋務 경력으로 1880년 샌프란시스코총영사에 임명되었고, 1882년 귀국한 후에는 이홍장의 막료를 지냈다. 이 무렵 조선이 “교섭 및 상무와 관련된 일에 어두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므로 … 현명하고 숙달 된 인사를 보내 지도해줄 것”을 요청함에 오자,63) 이홍장은 “매매하는 일 과 물가의 高下를 잘 안다.”며 그를 묄렌도르프, 마건상과 함께 보내 조선 의 商務를 시찰하도록 하였다.64)

조선 항구가 처음 열려 중국 상민이 나아가 무역하는데, 이로부터 반드시 나날이 번성하여 때로는 피차 교섭할 일이 있을 것이므로, 상황을 자세히 알고 전체적인 구도에 밝은 관리가 나아가 처리하면 번방을 연결하고 백 성들을 억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살피건대 예전에 출사미국대신 진 란빈이 2品 候補道 陳樹棠을 샌프란시스코총영사로 파견할 것을 주청하 여 3년 간 재임하였는데, 침착하여 힘과 기력을 낭비하지 않으니 상민이 기쁜 마음으로 복종하였습니다. … 이 자는 충성스럽고 근실하며 숙달되 고 노련하므로, 총판조선상무위원으로 임명하여 파견하면 진실로 그 임무 를 맡을 수 있을 것입니다.65)

이윽고 총판상무위원으로 임명된 진수당은 톈진을 출발하면서 조선 측 統理交涉通商事務 趙寧夏에게 자신의 부임을 알리는 조회를 발송하였다.66)

62) 진수당이 조선에서 오기 전의 행적에 관해서는 施吉瑞·劉倩, 「中國首任駐舊金山總領事 陳樹棠與美國排華運動」, 淸史論叢 2017(2), 2017 ; 葉克飛, 「茶東陳氏: 一個中國鄕村與 世界文明擁抱的百年」, 同舟共進 2020(3), 2020 참고. 진수당이 조선에 건너와 전개한 활동은 權赫秀, 「陳秀棠在朝鮮的商務領事活動與近代中朝關係」, 社會科學硏究 2006(1), 2006 참고.

63) 「朝鮮國王爲請求派員帮助辦理商務致李鴻章咨文」(光緖 8年 10月 5日), 淸代中朝關係檔 案史料滙編 , 103쪽.

64) 陰晴史 (高宗 19年 3月 22日).

65) 「陳樹棠總辦朝鮮商務片」(光緖 9年 6月 21日), 李鴻章全集 10, 208쪽 ; 「總署收軍機 處交出李鴻章抄片」(光緖 9年 6月 25日), 淸季中日韓關係史料 , 1176쪽.

66) 「淸總辦陳樹棠到任에 關한 照會」(高宗 20年 8月 5日), 淸案 1, 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