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절에서 설명한 복지국가 변화에 대한 경로의존적인 접근에 대해 비 판을 하며 제도변화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는 흐름이 2000년대 이 후에 등장했다. 이들은 제도변화를 촉발하는 요인으로써 외생적 변수에 주목을 하는 분절적 균형모델이 제도 자체의 내재적 모순과 사회적 행위 자들 사이의 갈등과 전략적 선택에 의해 초래되는 제도변화의 동학을 제 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 있다고 지적했다(이주하, 2009: 361). 오히 려 사회·경제·인구학적 변화 등이 제도의 안정적인 재생산을 힘들게 하 고 제도를 둘러싼 행위자들의 갈등이 심화되며 새로운 행위자들이 등장 하면서 사소하지만 장기적인 변화가 점증적으로 일어날 때 제도는 상당 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Thelen, 2004; Streeck and Thelen, 2005; Mahoney and Thelen, 2010). 점진적 변화를 바탕으로 한
10) 피어슨(Pierson, 2011)이 논문에 사용한 데이터는 스크럭스와 동료들 (Scruggs et al., 2014)이 만든 comparative welfare entitlement dataset 2(CWED2)이다. 이 데이터셋은 에스핑 앤더슨(Esping-Andersen, 1990)이 탈상 품화 지수를 구축하는 데 이용한 변수를 바탕으로 관대성지수(generosity index)라 불리는 기존의 탈상품화 지수를 보완한 지수를 포함하고 있으며 기간 도 1971년부터 2010년까지 제공함으로써 장기적인 관점에서 복지제도 분석을 가능하게 해준다. 본 연구에서도 이 데이터셋을 활용하여 분석을 실행했다.
역사적 제도주의는 행위자의 전략에 주목하면서 변화의 다양한 메커니즘 을 이론화했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우명숙, 2011). 또한 제도가 새로 운 제도로 완전히 대체(replacement)되는 게 아니라면 변화와 연속성이 맞물려 있는 ‘진화’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제 도 변화의 전환점에 있어 기존의 제도는 문제정의와 문제해결에 있어 중 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며, 변화의 방향을 결정하기도 한다(Ibid., 149). 그리고 전환점에서의 제도 변화는 연속적으로 미래의 제도변화에 영향을 미치며 위기를 촉진하기도 한다(Haydu, 1998). 이러한 점진적 제 도변화 과정에서 집단 간의 갈등과 연합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제도는 근본적으로 권력 분배와 관련이 있다(Mahoney and Thelen, 2010: 8). 점 진적이지만 중대한 변화를 강조하는 연구자들은 복지정책을 법 혹은 국 가기관과 같은 제 3자에 의해 규칙이 강제되는 일종의 공식적인 정책인 제도로 간주한다(Streeck and Thelen, 2005: 12, 우명숙, 2011). 제도로서 복지정책은 그 자체가 복지재원을 둘러싼 재분배적 제도라는 측면에서 정치적 함의를 갖고 있다. 따라서 과거에 합의된 맥락이 달라지고 정책 에 참여하는 행위자들에 변동이 생기면 복지제도의 균열과 갈등이 발생 하게 된다(우명숙, 2011: 151). 그러므로 복지제도가 유지 혹은 재생산되 거나 변화하기 위해서는 행위자들 간의 적극적인 반영과 상호작용이 중 요하다.
스트렉과 씰렌(Streeck and Thelen, 2005)은 제도변화를 크게 다섯 가 지로 유형화했다. 우선 변위(displacement)는 상대적으로 주변부에 있던 제도가 점차 지배적인 제도로 등장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중첩 (layering)은 기존의 제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요소(혹은 제도) 들을 이식하는 것이다. 표류(drift)는 의도적으로 제도를 그대로 방치함으 로써 제도가 쇠퇴하거나 변형되게 만드는 과정이다. 전환(conversion)은 기존의 제도가 변화하거나 해체되기 보다는 제도 내에서 새로운 목표가 채택되거나 새로운 행위자집단이 포함됨으로써 기존 제도의 기능이나 역 할이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소진(exhaustion)은 점진적으 로 제도가 해체되어 소멸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표 3-2>에 위의 다섯
<표 3-2> 제도변화의 다섯 가지 유형 변위
(displacement)
중첩 (layering)
표류 (drift)
전환 (conversion)
고갈 (exhaustion)
정 의
주변부의 제도가 점진적으로
지배적인 제도로 자리매김
기존의 제도에 새로운 제도들이
추가
의도적으로 제도를 방치함으로
써 제도가 쇠퇴 혹은 변형됨
기존제도의 목표가 재설정되거
나 기능 혹은 역할이
변화
점진적으로 제도가 해체되어 소멸하는
과정 메
커 니 즘
배반 (defection)
상이한 성장 (differential
growth)
의도적 무시 (deliberate
neglect)
재설정, 재해석 (redirection, reinterpretati
on)
쇠퇴 (depletion)
출처: Streeck and Thelen(2005: 31)
가지 과정이 요약되어있다. 이들은 정책의 유산, 선거의 규칙, 제도적 구 조가 제도 변화에 있어 제약이 될 수 있지만 정치 행위자들에게는 정치 적 이익을 획득하기 위한 기회이자 자원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Ibid.).
또한 제도변화의 유형에 있어 제도의 보상이 점진적으로 줄어드는 고갈 (depletion), 표류(drift), 소모(exhaustion)에 주목하면서 제도적 자기강화 를 더 이상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남성 부양자모델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의 증대와 서비스산업으로의 이행에 따른 장기실업 자의 증가와 같은 새로운 사회적 위험의 등장에 따라 사회적인 도전을 받고 있다. 남성부양자를 중심으로 한 복지 제공방식은 오랜 기간에 걸 쳐 침식되고 있으며, 젠더 불평등, 일-가족 양립의 문제, 노동시장 이중 화와 같은 문제들을 촉발시켰다.
해커(Hacker, 2004, 2005)는 위의 다섯 가지 제도변화 유형 중 현 상태 편향의 정치적 환경(혹은 거부 행위자들(veto players)의 규모)과 내부변 화의 걸림돌(정책 재량권과 정책지지 연합의 수준)이라는 차원을 바탕으 로 네 가지 제도변화 유형을 분류했다. 그 중에서도 사회적 위험에 따른 복지국가의 정책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요인으로 중첩, 표류, 전환을 꼽
<표 3-3> 점진적인 제도변화의 유형
내부 변화의 걸림돌 높음(낮은 정책
재 량 권
(discretion); 강한 정책지지 연합)
낮음(높은 정책 재 량권(discretion);
약한 정책지지 연 합)
현 상태 편향의 정치적 환경
높음(많은 거부 행위
자들(veto players)) 표류(drift) 전환(conversion) 낮음(적은 거부 행위
자들(veto players)) 중첩(layering) 제거/대체 (replacement) 출처: Hacker(2004, 2005)
았다. <표 3-3>에 제시된 바와 같이 우선 표류는 정책의 골격이 그대로 유지되는 상태에서 정책의 효과가 결과가 달라지는 상황이다. 제도 내부 의 목표를 수정하거나 재조정하기에는 강한 정책지지 연합의 저항에 부 딪히며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많은 거부 행위자들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경우에 의도적으로 제도의 변화를 회피하는 경우다. 대표적 으로 미국에서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응해 적극적인 제도적 대응을 하 지 않음으로써 개인에게 위험관리를 전가한 경우(Hacker, 2005)나 서비 스경제로의 산업구조가 전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조업 내의 정 규직을 대상으로 한 복지제도에 집중함으로써 서비스업 종사자 혹은 제 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충분한 수준의 사회보호와 고용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중화(dualization) 현상(Emmeneger at al., 2010; Palier and Thelen, 2010)을 꼽을 수 있다. 반면에 전환은 새로운 제도나 정책을 도 입하기 위해 많은 거부 행위자들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정책 재량권이 높 으며 정책 지지연합이 낮은 경우 제도 혹은 정책의 개정 없이 기존의 제 도를 새로운 목표로 방향을 재설정하거나 기능을 변경하는 경우를 의미 한다. 전환을 통한 제도의 적응 혹은 재조정은 제도나 정책이 행위자들 로 하여금 일정한 제약 속에서 다양한 목적을 추구할 수 있게 허용함을 의미한다(Beland and Powell, 2016). 마지막으로 중첩은 정치적 구조상의 거부 행위자가 적은 반면 정책 재량권이 낮고 강한 정책 지지연합의 반 대에 부딪히는 경우 기존의 제도를 해체하거나 와해시키지 않고 새로운
제도나 정책을 추가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기존의 공적 연금 제도에 사적 연금계정을 추가함으로써 연금혜택의 층위를 다양화하는 경 우이다(Seeleib-Kaiser, 2016).
홀과 씰렌(Hall and Thelen, 2009)은 앞 절에서 언급한 자본주의 다양 성에 대한 논의가 경로의존성에만 주목하여 제도의 연속성만을 강조한다 는 비판에 대응하여 제도를 자원(resource)으로 간주하고 있다. 다시 말 해, 제도란 인센티브나 구속(constraints)의 행렬(matrix)이 아니라 행위 자들이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용하는 자원으로 간주했다. 제도 를 자원으로 간주하는 관점은 앞서 언급한 신제도주의의 세 가지 연구흐 름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난다(Deeg and Jackson, 2007: 160).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에서는 제도를 집단행동문제(collective action problem)를 해결하는 동시에 자기강화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간주한다. 역사적 제도 주의에서는 제도의 기원과 진화과정에서 정치적 연합과정을 중요시한다.
마지막으로 사회학적 제도주의에서는 제도의 변화에 있어서 행위자들 사 이의 해석과 담론을 강조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제도가 불확실성을 감소시키지만 행위자들의 행위를 완전하게 구속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다. 비교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제도변화를 미시(micro), 중범위(meso), 거시(macro) 수준에서 각각 설명한 디그와 잭슨(Ibid.)은 자원으로서 제 도를 간주하는 관점과 관련하여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제 도를 재조정하는 게 제도변화의 유일한 요인이 아님을 지적하며 정치적 권력의 획득이 때로는 더 중요함을 강조한다. 상대적인 권력의 변화는 제도를 변화하려는 노력을 촉진시킬 수 있다(Thelen, 2004). 제도 변화는 그들이 마주한 문제의 속성을 진단하고 규정하기 위한 의식적인 과정에 서부터 시작된다. 또한 다른 행위자들에게 변화의 필요성을 확신시키고 특정한 유형으로의 변화를 홍보하기도 한다(Deeg and Jackson, 2007).
제도변화의 재분배적 결과 때문에 결국 제도변화는 정치적 과정과 밀접 한 관련이 있다(Hall and Thelen, 2009).11) 다시 말해 “제도가 일단 작동 11) 양재진(2009: 451)은 복지는 공공재보다는 준공공재(quasi-collective goods) 에 가깝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보편주의적인 복지라고 하더라도 누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