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변화의 국면 3: 근로연계복지(workfare)로의 변화

문서에서 PDF Disclaimer (페이지 188-198)

일반적으로 독일에서 활성화정책은 하르츠 개혁 이후에 확산되었으며 구체적인 시기는 2005년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사실 이러한 방향의 재설 정은 1990년대를 관통해서 진행되었다. 실업혜택은 감축 정책을 통해 덜 매력적이게 만들었으며 특히 장기 실업 혜택에 집중되었다. 가장 중요한 발전은 고용 보호 향상 법안의 1996년 개혁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 기 실업혜택은 더욱 줄었으며, 수급요건이 엄격해지고 구직활동이라는 조건이 도입되었다. 일부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개혁은 노동시장 문 제에 있어 독일의 접근방식의 패러다임 전환이라 평가했다. 이러한 개혁 의 결과 실업자는 직업 소개를 받아들여야 했으며 급여와 자격요건이 이 전 직업보다 낮아도 받아들여야 했다(Clasen, 2005).

이러한 정책은 노동시장 상황의 악화를 방지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실업률은 1998년까지 계속 상승했다. 결과적으로 노동시장 문제는 게르 하르트 슈뢰더(Gehard Schröder)의 사민당 정권이 등장한 후 가장 중요 한 아젠다로 부상했다. 정부는 직업을 위한 연대라 불리는 조합주의 유 형의 정책을 추진했다. 고용자와 노조의 대표를 포함했다. 그러나 상충적 인 요구는 이러한 연합으로 하여금 적절한 정책을 산출하지 못하게 했 다. 사용자들은 임금 억제 협약을 지지했지만 이러한 조항이 포함되는 것을 노조는 거부했으며 직업 훈련에 대한 제안에만 집중했다. 결국 노 동시장정책에 대해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2003년에 연 합은 결국 중단된다(Aust and Bönker, 200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연합을 통해 몇 가지 아이디어가 도출되었다. 예를 들어 몇 년 동안 ‘향 상과 의무(foerdern und fordern, promote and oblige)’라는 모토가 유행 하게 되었다(Clasen, 2005).

활성화의 국면은 2001년에 Job Aqtiv Act가 도입되면서 더욱 더 추구 가 되었다. 이는 독일로 하여금 덴마크나 영국과 같은 국가들과 동일한

방향성을 가지고 변화하게 만들었다. 개혁은 엄격한 구직활동에 대한 모 니터링, 실직자들에 대한 개인 컨설팅, 재진입 계약, 그리고 임금 보조 등과 같은 표준적은 활성화 정책을 통해 개혁이 진행되었다(Clasen, 2005). 이러한 변화는 그러나 슈뢰더 정부에 의해서만 달성되었다고 볼 수 없다. 사실 Job Aqtiv Act를 제정한 몇 달 후에 새로운 위원회가 조 직되어 노동시장정책의 현대화를 위해 연구를 했다. 이 위원회는 피터 하르츠(Peter Hartz)라는 전직 폭스바겐그룹 인사담당 이사가 이끌었으 며 총리실에서 위원회의 인사들을 직접 뽑았다. 과거의 비슷한 경험들과 달리 위원회는 노조나 사용자단체의 대표들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하르 츠 위원회는 2002년 대선 직전에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몇 가지 정책이 포함되어 있는데, 창업을 원하는 실업자에 대한 지원, 실업자에 대한 임시적인 취업알선 서비스 등을 포함하고 있 다. 그러나 가장 가시적이고 논쟁적인 제안은 장기 실업 혜택과 사회적 지원에 대한 통합이었다(Hartz Ⅳ개혁). 이전 시스템 하에서는 생산가능 인구에 속하는 실업자는 세 가지 다른 혜택을 받고 있었다. 12개월 미만 의 실업보험, 장기실업자를 위한 실업보조, 그리고 실업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보조다. 이러한 시스템은 비효율적이라고 인식되었다.

따라서 노동시장과 취업알선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실업 혜택Ⅱ 라 불리는 새로운 혜택이 도입되었다. 이 혜택은 이전의 실업 보 조 혜택과 사회 지원 혜택을 대체했다(Fleckenstein, 2008).

다른 개혁안들도 친노동적인 집단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계속 추진되었 다. 이러한 개혁안은 ‘아젠다 2010(Agenda 2010)’이라 불렸으며 사민당이 선거에 승리한 직후인 2003년 초에 공표되었다. 이러한 개혁은 매우 인 기가 없었으며 슈뢰더 총리를 2006년 선거에서 패배하게 만들었다. 만약 슈뢰더가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활성화를 성과 자랑(credit claiming)을 위해 사용했다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Bonoli, 2013). 몇 년 뒤에 독일은 조기 은퇴와 완전 실업자를 줄이기 위해 노동시장정책을 이용하는 수동 적 복지국가에서 실직자들을 노동시장에 재진입 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 는 활성화 지향의 복지국가로 탈바꿈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실업률이 계

속해서 높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정책은 신념에 의해 주도될 수도 있지만 활성화정책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기업이 요구하는 기술 수준 유형별 노동력의 비중이 변화하면 서 이러한 활성화의 양상이 좀 더 고용보호와 사회보호 수준이 모두 낮 아지는 탈규제화(deregulation)의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다(Thelen, 2014).

플레켄스타인과 시립-카이져(Fleckenstein and Seeleib-Kaiser, 2011)에 따르면 독일 노동시장은 일반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반면 특정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고 있다. 특히 일반-고숙련 기술을 요구하 는 직종의 고용률 상승이 일반-저숙련 기술의 고용률 상승보다 높다. 노 동시장개혁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는 1997년에 특정 기술을 요구 하는 직종에 취업한 독일 노동자는 전체의 26 퍼센트였지만 하르츠 Ⅳ 개혁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2004년에는 23 퍼센트까지 낮아졌다. 비록 특 정한 기술을 요구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남성 노동자는 이러한 수준 이상 이지만 이들 집단의 비중도 1997년에 43 퍼센트에서 2004년에 38 퍼센 트까지 하락했다(Ibid., 1639). 따라서 고용보호와 사회보호의 이중적 구 조(Palier and Thelen, 2010)를 특징으로 하는 독일의 노동시장관련 복지 정책도 핵심 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영미권 국가들처럼 탈 규제화의 경향이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가족정책도 노동시장의 참여를 강조하는 양상으로 변화하였다. 특히 1991년 독일의 통일은 양육 정책에 있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알려져 있다. 동독 여성의 경우 출산 이후 노동시장으로 진입했고 국가가 양육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는 가족 정책의 확대에 대한 또 다른 압력으로 작 용했다. 역설적으로, 기독민주당으로 하여금 1973년과 1974년에 사민당이 추진하려다 실패한 법안을 도입하게 만들었다. 1996년에 정부는 3세부터 6세 아동을 대상으로 한 유치원(kindergarten) 교육을 실시했다. 특히 비 용을 지불하는 주(länder)정부의 반대를 극복하고 통과되었다. 이러한 법 률은 의회 내에서 여성의 참여가 증가하면서 가능했다. 그리고 1973년 이후부터 유치원의 수가 서독에서 급격히 증가하여 1994년에 이미 3세부 터 6세 사이의 아동의 72 퍼센트가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Ibid.).

1998년에 사민당이 다시 정권에 복귀했을 때 가족 정책은 우선 전통적 인 독일 가족 모델을 지지했다(Clasen, 2005). 2001년에 슈뢰더 정부는 보육 서비스의의 확대를 우선적으로 추진했고 맞벌이 부부에 대한 정책 적 지원을 강화했다. 2001년에 육아 휴직제도가 개정되어 24개월이 아닌 12개월 동안 좀 더 높은 수준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정 책은 부모가 파트타임 일자리에 일할 수 있게 하는 권리로 보완이 되었 다. 2002년에는 하르츠 개혁의 맥락을 이어가 새로운 연방 펀드가 주정 부로 하여금 양육 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이번에는 0세 부터 3세 아동을 대상으로 했다(Aust and Bönker, 2004). 이때부터 가족 정책은 인구 구조의 변화와 연관지어 추진되었다. 정부는 지속가능한 가 족정책을 지지하면서 인구고령화와 인구감소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맞벌 이 가구를 대상으로한 가족정책으로의 목표의 전환은 CDU-SPD 연합 정권이 2005년에 들어서면서 추진되었다. 2007년에 육아 휴직 시스템은 북유럽 시스템과 유사하게 탈바꿈하였다. 부모들은 67 퍼센트의 임금 대 체율을 바탕으로 최장 14개월까지 육아휴직의 기회를 제공받았다. 부모 중 한 사람이 12개월을 사용하고 다른 한 사람(주로 아빠)가 남은 2 달 을 사용했다(Leitner, 2008). 그리고 연방정부는 주정부에 상당한 수준의 기금을 제공했다.

독일 가족정책은 기독 민주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복지국가의 전 형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유럽 국가들보다 30년이나 뒤 에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가족정책의 목표를 수정 했다.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독일의 가족정책은 외벌이 가족에게 초 점을 맞추었지만 2인 부양자 모델로의 변화는 다른 대륙유럽국가들보다 근본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단순히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목적에만 국한시키는 정치적인 접근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그 이유 는 가족정책을 사민당(SPD)이 먼저 추진을 했고 기민당(CDU)이 사민당 의 정책을 계승하여 가족정책의 개혁을 계속 진행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제도의 변화가 점진적이지만 중대하게 이루어졌다고 해석할 수 있 다.

사실 독일에서 근로연계복지 혹은 재상품화에 대한 정책적 지향이 강 해진 이유 중 하나는 조세개혁의 어려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독일은 1990년에 이루어진 통일 이후 동독 지역에서 급격하게 높아진 실업 문제 를 해결하기 위해 증세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조세개 혁 과정에서 제도적인 거부점(veto points)의 반대에 직면함에 따라 원활 한 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독일의 공공재정의 총 세입은 연방정부, 주정부 등의 세입을 모두 합 할 경우 2010년을 기준으로 1조 496억 유로 정도다(전광희, 2012). 독일 정부의 과세 수입은 조세, 보험료, 수수료, 자산 매각을 통한 이익금 등 을 통해 확보된다. 공적 사회보험의 보험료 수입이 3천 928억 유로, 경제 활동에 대한 수입이 194억 유로 등 공공재정에 있어 조세수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림 7-12>와 같이 1980년과 2010년의 조세항목별로 GDP 대비 퍼센트의 변화를 살펴보면 총 조세규모인 국민부담률은 36.1 퍼센트에서 35 퍼센트로 약 1.1. 퍼센트 정도 감소했다. 개인에 대한 소 득세와 기업에 대한 소득세 역시 모두 감소했다. 반면에 사회보장기금과 소비세는 증가했다. 마지막으로 재산세는 소폭 감소했다.

1990년대 이후부터 실업자에게 제공되는 비임금 노동 지출과 구조적 실업이 급격하게 늘어나자 전체 복지재정의 구조에서 조세로 징수하는 비율을 증가시키자는 공적인 논의가 등장했다. 이에 따라 실업과 관련된 혜택의 축소와 세금을 기반으로 한 사회지출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보장기여금을 지불하는 노동자와 사용자에 대한 부담의 완화는 힘들 었다. 그 이유는 경제적 상황이 계속 좋지 않았으며 사회보험 시스템에 대한 추가적인 비용을 부과함으로써 전체 재정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식 이 증세보다 더 수월했기 때문이다(Manow, 2010). 세금 지불자(tax payer) 대신에 사회보장기금 지불자에게 더 부담을 지우려는 경향은 비 스마르크 국가들의 특별징수주의(parafiscalism) 경향과 관련이 있다 (Ibid.). 사회보장기금의 자동적 조정은 정치적으로 매력적이다. 그 이유 는 징수를 하는 과정에서 덜 가시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부(mistry of economics) 산하 과학위원회(scientific

문서에서 PDF Disclaimer (페이지 188-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