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실업률은 1975년에 4 퍼센트에 이르렀으며 1960-73년 기간 동 안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3.5 퍼센트였지만 1973-79년 사이에는 2.6 퍼센 트로 하락했다. SPD-FDP 정부는 계속해서 복지 정책의 자격요건 (entitlement)을 확대했다. 그러나 경제적 변화는 복지지출의 증가를 초 래했다. 1980년대 후반에 경기가 회복되어 실업률이 1991년에 4.2 퍼센트 로 하락했지만 통일이 되면서 심각하게 경제가 위축이 되었다. 특히 제 조업에서 대규모 실업이 발생했다. 1996년에 실업률은 10.3 퍼센트까지 상승했다. 네덜란드에서와 같이 많은 고령 노동자들은 조기퇴직을 했으 며 60세에서 64세 사이의 남성 노동자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31.5 퍼센트 까지 하락했다(Hinrichs, 1991). 게다가 1970년과 1986년 사이에 사회 보
조 혜택을 수급하는 실업자의 비율이 1 퍼센트에서 33 퍼센트까지 상승 했으며 상당한 비율이 장기실업자였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인해 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 독일은 다른 서부 유럽 국가들처럼 케인즈주의 정책을 강력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관대한 사회보험 기반의 복지시스템은 몇 가지 자율적 안정화 장치를 가 지고 있었다(Bonoli, 2013). 이는 실질적으로 실업에 의한 소득보전의 요 구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지만 동시에 노동의 공급을 줄 이는 역할을 했다. 노동 공급 축소의 핵심은 조기 퇴직의 유도였다. 이는 1970년대 위기 직후 도입되었다. 조기 퇴직은 63세 이후에는 혜택의 축 소 없이 가능했다. 게다가 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노동자들은 질병 혜택 을 신청할 수 있었으며 그들의 요구는 최근 노동 시장의 상황에 기초하 여 심사된다. 마지막으로 실업 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60세에 조기 퇴직이 가능했다. 이는 '59er-Regel'이라 불리는 관습을 발달시켰다. 즉, 노동자들이 59세가 되면 그들은 해고되어 1년 동안 실업 혜택을 받으며 그 다음에는 조기퇴직을 60세에 한다는 것이다(Ebbinghaus, 2006). 조기 퇴직에 대한 접근은 1987년에 확대되어 실업 혜택의 자격 기간이 57세 이상인 경우 12에서 32개월로 연장되었으며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입장에 서는 손실이 없었다(Manow and Seils, 2000).
그러나 이러한 자율적 안정화 장치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에 실업률이 상승하면서 사회보험제도에 대한 재정적 압박이 심화되었다. 의료, 실업, 조기 퇴직에 있어 비용 상승에 대한 우선적인 대응은 수익을 올리는 것 이었다. 따라서 기여금의 비율은 1975년과 90년 사이에 5.3 퍼센트 포인 트가 상승했다. 그러나 기존의 복지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기독민주당 과 사회민주당은 복지혜택의 관대성을 제한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장기실업률이 늘어나면서 높은 비율의 실업자들이 더 이상 실업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2003년과 2004년에 실행된 하르츠 개혁을 통해 실업보험 혜택의 최대 수급기간은 32개월에서 18개월로 축소되었다 (Seeleib-Kaiser, 2016). 또한 소득 연계 혹은 자산 조사 기반의 실업 보 조는 사회 부조 혜택과 통합되었다. 단기 실업자의 경우 소득과 연동된
혜택을 통해 이전 소득의 60∼67 퍼센트를 보장받았지만 장기실업자의 경우 사회부조 수준의 자산조사 기반의 혜택만을 보장받았으며 소득대체 율이 개인 기준 54 퍼센트에서 17 퍼센트까지 감소했다. 1990년대에 진 행된 다양한 개혁들은 독일의 실업 보험혜택의 이중적 구조를 강화했다.
단기 실업자는 끊임없이 상대적으로 관대한 수준의 실업 보험을 계속해 서 누렸지만 실업 보험 혜택의 요건에 충족하지 못하는 실업자는 상당한 수준의 혜택 축소를 겪고 있다(Ibid., 224).
실업률이 상승하자 실업자들은 취업 알선에 의한 일자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압력이 커졌으며 실업 혜택의 기준이 강화되었고 혜택의 수준이 축 소된 반면 조기 은퇴로 인한 혜택은 여전히 관대했기 때문에 실업 대신 에 조기 은퇴를 선택하는 노동자들의 수가 늘어났다. 1970년대 후반부터 의무 의료 보험에 대해 중요한 개혁이 진행되었다 기독민주당-자유당 연합과 사민당은 타협을 통해 질병 기금 간의 교차 보조가 도입되었으며 연령과 성별에 따라 다양한 위험의 성격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이러한 재조정은 질병 기금별로 기여 비율이 다른 기존의 시스템을 개혁 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둘째로, 모든 질병 펀드 중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게 만들었으며 기금은 이를 거부할 수 없다. 이러한 의료 개혁의 목적 은 기금 간의 경쟁을 통해 효율성과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함이었 다. 또한 질병 기금간의 통합을 통해 질병 기금의 수도 재조정하였다 (Hinrichs, 2010).
연금개혁과 관련해서는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고 공적 연금보험 은 점진적인 변화만 일어났다. 1957년 연금개혁부터 계속 이어져오고 있 는 노령 인구에 대한 삶의 수준의 보장은 근본적으로 도전을 받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공적 연금보험 시스템은 중요한 변화를 겪고 있다(Seeleib-Kasier, 2016). 2001년부터 제정된 연금개혁을 통해 소 득대체율은 70 퍼센트에서 42 퍼센트로 축소되었으며 부분적인 민영화도 포함되었다(Leisering, 2011). 이를 통해 연금수령자들에 대한 생활수준의 보장이라는 원리가 도전을 받게 되었다. 공적 연금 보험의 소득대체율이 감소하면서 연금 수령 수준도 낮아졌지만 민영 연금보험과 직종
(occupational) 연금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노동자들의 소득대체율은 70 퍼센트가 보장되었다. 따라서 정규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금보 험은 계속해서 경로의존성이 유지되었기 때문에 이들은 연금개혁에 반대 하지 않았다. 2001년 이후 직종 연금보험의 보장범위가 증가하고 있지만 사적영역에 종사하는 노동자 중 50 퍼센트만이 직종 연금 혜택을 받으며 산업별로 보장범위가 큰 차이가 있다. 특히 소매업이나 간병관련 직종에 근무하는 서비스업 여성 노동자의 상당수는 직종 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 하고 있다(Seeleib-Kaiser et al., 2012).40) 따라서 연금 개혁의 결과 직종 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노인 빈곤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 리가 커지고 있다(Schmӓhl, 2007). 다시 말해, 복지 보호의 이중화의 심 화는 현재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적 연금과 직종 연금의 소득 대체율 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OECD 시뮬레이션에 근거해 볼 때 공적 연금의 소득대체율(평균 임금의 연금 수령자 기준)은 55.3 퍼센트가 될 것이며 직종연금에 의해 혜택을 받는 연금수령자는 76.4 퍼센트에 이를 것이다 (OECD, 2013: 143). 따라서 2030년부터 완전하게 적용될 연금개혁은 소 득보장을 강조하는 기존의 독일 복지정책의 기조와는 상당한 수준으로 달라질 것이다.
한편 적극적노동시장정책은 1970년대의 위기 초반에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 특히 빌리 브렌트(Willy Brandt) 총리 재임기간동안 (1969-74)에는 이러한 경향이 강했다(Bonoli, 2013). 그러나 실업률이 상 승하면서 1970년대 후반에는 적극적노동시장정책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 다. 당시 이 정책의 목적은 노동시장으로 재진입을 촉진하기 보다는 장 기 실업자의 수를 줄이는 데 있었다. 1975-77년 사이에 약 19 만 명의 직업이 공공 고용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졌다. 대부분 건설이나 사회서 비스관련 일자리였다. 이러한 정책은 1969년에 제정된 고용향상 법률에 기초하고 있다. 스웨덴의 발전 스토리의 유물로서 이 법률의 주된 목표 는 노동력의 일반적인 기술숙련 향상에서 장기 실업자의 규모를 줄이는 데 있었다. 예산의 제약 때문에 이러한 프로그램은 급격하게 축소되었다.
40) 한편 육아로 인한 연금 크레딧은 1년에서 3년으로 변경되었다(Hinrichs, 2010).
<그림 7-8> 독일의 구사회정책의 변화(1985∼2010)
출처: Comparative Welfare Entitlement Dataset 2(Scruggs et al., 2014)
1978년에 프로그램 참가자의 수가 5만 1천명에서 1982년에 2만 9천명으 로 축소되었다(Ibid.).
가족정책과 관련해서는 1982년에 기독민주당이 정권에 복귀하면서 젠 더 평등과 가족 정책이슈와 관련된 담론을 발전시켜 나갔다. 기민당의 입장은 여성들로 하여금 노동시장참여와 자녀 양육 사이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Bleses and Seeleib-Kaiser, 2004). 그 러나 1980년대 초반의 심각한 예산의 문제는 가족정책의 확대를 어렵게 만들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1986년에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육아 휴가(parental leave), 연금에 있어서 양육 으로 인한 사회보장 기여의 공제가 추진되었다. 육아 휴직은 기독민주당 에 의해 도입되었지만 10년 일찍 도입된 노르딕 국가들과는 성격이 달랐 다. 우선 육아 휴직의 혜택은 모든 부모들에게 가능했다. 취직상태에 있 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상관이 없었다. 육아 휴직의 기간은 최장 36개 월까지였다. 현금이 지급되는 기간은 더 짧았다. 혜택은 처음 6개월 동안 은 동일하게 제공되었으며 자산조사에 기반하여 다음 18개월 동안 제공 되었으며 그 이후에 점차 감소했다. 36개월 이후에는 부모는 직장으로
<그림 7-9> 독일의 적극적노동시장정책
출처: OECD statistics
복귀해야 했다(Bleses and Seeleib-Kaiser, 2004). 양육으로 인한 연금 기여 공제는 동일한 연도에 도입되었다. 자녀 한 명당 취업하지 않은 부 모는 평균 임금의 75 퍼센트에 해당하는 1년 치의 연금 기여 크레딧를 제공받았다. 취업 상태에 있는 부모는 혜택의 규모가 더 작았다. 연금 크 레딧은 계속해서 증가했다.
CDU-FDP 정권은 다른 정책 영역과 일관성을 가지게 가족 정책을 확 대시켜 나가려고 했다. 우선 여성을 주된 대상으로 하여 CDU에 대한 여 성들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노동시 장 외부에 머물러 있던 여성들을 지원함으로써 가족정책은 조기 퇴직을 통한 노동력 제공에 대한 부정적 효과와 다른 정책을 통한 노동력 축소 정책을 강화했다. 마지막으로 CDU의 가족정책은 여성들로 하여금 기존 의 남성 부양 가족모델을 받아들이도록 유도했다(Bonoli,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