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의존성이란 과거의 사건이 미래의 사건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의미한다(Mahoney, 2000: 510). 좀 더 구체적으로 우연한 사건이 제도적 인 패턴을 만들거나 사건의 연쇄작용이 결정적인 특성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경로의존성에 대한 분석은 이전 단계의 사건에 매우 민감한 인 과적 과정과 연관이 있다. 그러나 경로의존성에 대한 분석은 제도의 형 성과정과 재생산 과정을 엄격하게 구분한다(Krasner, 1988). 결정적 단절 (critical juncture)이라 불리는 시기에는 여러 가지 대안들 중 특정한 제 도적 배열이 수용된다. 이러한 국면이 “결정적”인 이유는 특정한 제도적 옵션이 채택되고 나면 여러 대안들 중 선택이 가능한 초기 시점으로 돌 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다(Mahoney, 2000: 513). 결정적인 국면 기간 동안 에 대안 선택의 과정은 우연적인 성격이 강하다. 우연성(contingency)이 란 특정한 결과의 발생을 결정적으로나 확률적으로 예측 혹은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제도가 일단 채택이 되면 피드백 효과 와 수확체증 효과로 인해 제도의 전환과정에서 많은 사회․경제적 비용 이 발생하기 때문에 경로의존성이 강화된다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그 러므로 제도의 변화는 외부로부터 강한 충격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입 장이다(Mahoney, 2000; Pierson, 2000).
피어슨(Pierson, 1994, 2001, 2004)은 경로의존적인 접근을 복지국가연 구에 적용하여 왜 복지국가의 현재 상태를 변경하는 게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지는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했다.8) 핵심적인 주장은 일단 특정 정 책 혹은 제도가 정착이 되면 현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제도로부터의 혜택 을 지속적으로 받고자하는 집단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황금 기인 전후 30년 동안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남성부양자 (male-breadwinner)의 완전고용이 가능했기 때문에 이들에게 도움이 되 는 복지제도의 확대를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세계 경제의 상황이 악화되면서 복지지출을 무제한적으로 확대할 수 없게 되고 오히려 건전 재정의 유지라는 압박을 받게 되면서 현재 정권의 정부는 기존의 복지혜택을 축소하는 인기 없는 정책을 추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앞서 지적했듯이 복지국가 황금기에 정착된 제도들은 이미 혜택을 계속 누리고 싶어 하는 집단들이 존재하며 연금과 같이 기존에 비용을 지불한 집단이 있는 경우 고착화효과 (lock-in)가 발생하여 혜택의 규모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혁하기 매우 힘들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 정권은 기존의 제도를 그대로 유 지하고 제도 개혁을 미루는 책임 회피(blame avoidance)전략을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복지 확장기에는 새로운 복지시스템의 도입이 나 복지지출의 확대에 대한 성과를 인정받으려는(credit claiming) 인센 티브가 강했던 반면 복지 축소기에는 기존의 혜택을 축소함에 따라 발생 하게 되는 비난을 회피(blame avoidance)하려는 동기가 강하다 (Green-Pedersen and Haverland, 2002). 노조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과거 와 같은 전통적인 지지층의 강한 결집이 약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의 제도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던 집단들의 반발과 제도의 변경에 따라
8) 피어슨이 경로의존적 접근을 통해 복지국가의 안정성을 주장한 이유는 1980 년대에 걸쳐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복지국가의 생존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 가하기 시작하자 이러한 예측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 이전에는 복지국가의 다양성이나 사회정책의 발전과정에서 국가별로 특화 된 역사적 궤적을 이해하려고 했다면 피어슨은 제도적 관성 혹은 제도적 자기 강화 효과를 바탕으로 한 제도의 자기강화적 효과에 주목하였다.
발생하게 되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 때문에 경로의존성이 강해지며, 변화의 가능성이 극히 낮아지게 된다. 피어슨의 연구는 결과적으로 분석의 초점을 노조와 좌파 정당의 연합을 통한 레짐의 재생산에서 제도의 성숙(maturation)을 통해 모든 정책이 고유의 정치적인 논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바꾸었다는 것을 의미한다(Pierson, 2004; Gingrich, 2015).
자본주의의 다양성(varieties of capitalism)을 주장하는 홀과 소스키스 (Hall and Soskice, 2001) 역시 경로 의존성에 입각하여 자본주의 모델이 영미 모델로 수렴하지 않고 조정시장경제(coordinated market economy) 와 자유시장경제(liberal market economy)라는 두 가지 모델이 계속 유 지된다고 주장했다. 두 가지 유형의 자본주의 모델은 금융 제도, 단체 협 상 제도, 직업 훈련, 제도, 그리고 복지제도와 관련해 체계적인 차이가 존재하며 이러한 차이는 결국 사용자(employer)의 조직화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홀과 소스키스는 극심한 경쟁의 압력에 직면한 행위 자들은 제도를 점진적으로 수정할 수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제도로 탈바 꿈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핵심적인 주장은 결국 경로의 존성 이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 다양성 연구에서 제 도적인 안정성을 유지시키는 긍정적인 피드백 메커니즘을 ‘제도적 상보 성(complementarity)’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상보성이란 “현 존하는 제도가 다른 제도의 수익(return)이나 효율성을 증가시키는” 경우 를 의미한다(Ibid., 17). 이러한 측면에서 제도적 상보성이란 여러 제도적 인 배열이 결국 조정시장경제나 자유시장경제 내에서 기업의 이윤을 극 대화하기 때문에 한 제도를 변경하게 되면 다른 제도까지 같이 변경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효율성을 통한 이득이 여러 제도의 공존을 통 해 가능하기 때문에 행위자들은 어느 한 제도의 변화에 저항하게 되며, 국가 경제 내에서 제도간 상보성이 높을수록 제도변화에 대한 저항은 더 욱 강해진다(Hall and Soskice, 2001: 18-19).9)
9) 자본주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고용보호, 실업보호, 소득 보장과 같은 복지제도 역시 자본주의 모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Estevez-Abe
복지국가 변화와 관련하여 이러한 경로의존적 관점을 지지하는 연구 들이 최근까지 발표되고 있다. 우선 비스(Vis, 2007)는 복지국가가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에 입각해 제도의 자기강화적 성격 때문에 복지 레짐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복지국가 이론가들의 주장과 정치·경제·사 회적인 압력 때문에 수요창출을 중심으로 한 케인주주의 복지 국가 모델 은 한계에 부딪혔으며 따라서 혁신과 유연화를 촉진하고 복지지출을 최 소화함으로써 경쟁력을 상승시키는 모델로 전환될 것이라는 조절주의 이 론가들(Jessop, 1999; Peck, 2001)의 주장을 경험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1985년부터 2002년 사이의 16개 복지국가를 대상으로 퍼지셋 이념형 분 석을 실시했다. 총 세 기간(1985-1995, 1995-2002, 1985-2002)에 대한 퍼 지셋 분석을 실시한 결과 레짐에 특화된 변화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으 며, 따라서 분석 결과는 레짐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 하고 있다고 그녀는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회경제적인 환경의 변 화에 따른 복지국가 제도의 재편에 대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복지국가는 근본적인 개혁을 추진하기 보다는 여전히 경로의존적인 측면에서 기존의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드슨과 퀴너(Hudson and Kühner, 2009)는 전통적인 소득 보호 정 책과 세계화와 지식기반 경제로의 전환에 따라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인적자본의 계발을 목표로 하는 투자형 사회지출을 동시에 고려해야 복 지국가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1994, 1998, 2003년 의 세 시점에 대한 23개 OECD 국가들의 퍼지셋 이념형 분석을 실시했 다. 분석 결과 덴마크와 핀란드가 1994년과 2003년 사이에 생산성 중심 (투자 중심)의 모델로 전환을 했으며 이들 국가들은 교육에 대한 지출과 노동시장 훈련(주로 ALMP)에 대한 상대적 투자의 비중을 늘리는 동시
et al., 2001). 예컨대, 조정시장경제에서 기업에 특화된 기술을 습득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게 되면 노동자들은 이러한 기술 습득에 대한 투자를 꺼리게 된다. 오히려 손쉽게 취득할 수 있는 일반적인 기술 습득에 매진할 가능성이 높 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용자들은 국제시장에서 자신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요구되는 특화된 기술 습득을 장려하기 위해 국가가 제공하는 고용보호, 실업보 호와 같은 관대한 사회 보호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이다.
에 고용보호 수준을 낮추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복지국가들이 1994년 과 2003년 사이에 변화보다는 안정적인 경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레짐에 특화된 변화를 겪고 있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결국 사 회투자정책에 대한 관심이 정책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많은 국가들이 여전히 생산성 중심의 모델보다는 소득 보전 형 모델로 분류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사회투자형 패러다임으로 복지국가 가 전환하고 있다는 주장은 너무 성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의룡과 양재진(2012)은 OECD 복지국가들을 대상으로 사회적 위험 의 양상이 변화함에 따른 복지국가의 대응방식의 차이를 바탕으로 복지 국가의 변화와 지속에 대해 분석을 실시했다. 복지국가는 기본적으로 경 로 의존적인 속성 때문에 변화가 어렵지만 저출산, 고령화, 서비스업 취 업자의 증가와 같은 탈산업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의 상승과 비정규직 의 양산과 같은 신사회적 위험의 증가는 복지국가들에게 기존의 방식과 는 다른 형태의 정책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이러 한 맥락에서 이들은 OECD 20 개국을 대상으로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의 기존의 위험과 새로운 위험과 관련된 정책에 대한 퍼지셋 이념형 분 석을 통해 기존의 복지레짐 유형들이 일정 부분 지속되고 있음을 지적했 다. 다시 말해,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거나 지속시키고자 하는 경로의존 적인 성향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Ibid., 328). 그러나 동일 레짐 내의 국가들 내에서도 프랑스나 오스트리아의 경우 가족지원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응을 했다면, 독일은 기존의 사회적 위험과 관련된 혜택뿐만 아니라 가족지원에 대한 지출 수준도 낮다는 측 면에서 축소하는 방향으로의 개편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자유주의 국가 내에서도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이 미국과 차별된 방식 으로 여성과 아동에 대한 지원을 늘려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피어슨(Pierson, 2011)은 사회적 현상에 대해 단일한 시점 에서 스냅샷처럼 찍어 설명을 하는 사회과학 내의 연구경향을 비판하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현상의 변화를 관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71년부터 2002년 사이의 실업, 질병, 연금관련 복지제도의 변화10)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