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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평준화제도 및 대학입시제도의 문제점 1. 평준화제도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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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현행 평준화제도 및 대학입시제도의 문제점 1. 평준화제도의 문제점

평준화제도의 공과에 대해서는 상반된 평가가 제시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평준화제도가 과도한 입시경쟁을 해소하여 중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고, 고등학교 서열화에 따른 여러 가지 병폐를 해소 하였고, 교육기회의 확대를 통해 중등교육의 완전 보편화를 달성하는 데 일조를 한 것으로 평가 하고 있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이 제도가 학력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하고,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을 제한하는 동시에 사학운영의 자율성을 침해하면서, 학교간․지역간 교육여건의 격 차를 해소하는 데도 실패했다는 비판을 가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평준화제도를 인적자원개발의 관점에서 평가해 볼 때 드러나는 문제점을 간략하게 고찰해 보겠다.

1) 국민의 새로운 교육수요 충족에 한계

평준화제도는 도입 당시에 비해 시대적 적합성이 현저하게 떨어져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우선 기본적으로 평준화제도는 1인당 국민소득이 채 5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던 국내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도입되었다. 따라서 지금처럼 1인당 국민소득이 10,000달러를 훌쩍 넘어선 상황에서 국민들의 교육에 대한 기대와 수요는 1인당 국민소득이 500달러에도 미치 는 못하던 시절의 그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자녀교육을 위해서라면 상당한 수준의 경제적 부담도 기꺼이 감수하고자 하는 국민들이 다수 있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세계화 시대의 도래로 인해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불안정성에 대응할 수 있는 좀더 다양하고 질 높 은 교육의 공급이다. 그런데 평준화제도 원형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이러한 교육의 공급을 어렵 게 하면서, 조기유학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고 기러기 가족이 양산되고 있다.

2) 교육의 수월성 추구에 한계

흔히 지식기반사회에서는 뛰어난 영재 한 사람이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한다. 이러 한 영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학교교육에서도 수월성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재의 평준 화제도로는 교육의 수월성을 추구하는 데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동안 평준화제도는 학력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했다는 비판에 줄곧 시달려왔다. 이러한 비판은 학생들 사이에 학력격 차가 엄존함에도 불구하고 같은 교실에서 획일적인 수업을 받게 함에 따라 상위권 및 하위권 학 생 모두가 학업에 흥미를 잃게 되고 교사도 학습지도에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점에 그 근 거를 두고 있다. 또한 학교간 경쟁압력의 부족 때문에 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유인이 적은 것도 학력의 하향평준화에 일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평준화제도가 학교에 학생을 안정적으 로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많은 학교들로 하여금 현실에 안주하도록 하는 문제를 초래하 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일각에서는 실증연구를 통해 얻어진 결과를 토대로 반론을 제기하고 있 기도 하다. 예컨대, 성기선․강태중(2001)은 평준화제도 지역의 학생들이 비평준화 지역 학생들보 다 전반적으로 높은 학업성취 수준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과는 주로 평준화 지 역에서 비평준화 지역에 비해 중위권 이하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분발하고 있는 사실에 기인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연구에서도 평준화제도로 인하여 최상위권 학생들의 학업성취는 부정적인 영 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최상위권 학생들이야말로 지식기반사회에서 국가경쟁력의 획기 적 제고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인적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육의 수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대에 이들의 잠재능력 계발에 걸림돌이 되는 교육제도는 시대적 적합성 을 결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교육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들 가운데 하나는 교육의 다양성으로 볼 수 있다. 그런 데 평준화제도는 학교선택권의 박탈, 획일적 교육여건의 추구, 사학의 자율성 제한을 통해 고등학 교 교육의 획일화에 일조를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행 평준화제도 아래 에서도 교육의 다양성 추구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위하여 평준화제도를 손질하는 일

은 없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성기선․강태중, 2001; 박부권, 2002). 그렇지만 이 러한 견해는 현실성이 없는 무리한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입시위주 교육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일선 학교의 입장에서는 굳이 이러한 번거로운 교육적 노력을 경주할 유인이 거의 없기 때문이 다. 그동안 교육현장에서 막연한 ‘자율성’의 허용이 곧 ‘복지부동’으로 이어진 사례는 이루 헤아리 기 어려울 정도이다. 따라서 교육의 수월성 및 다양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현행 평준화제도가 반드시 보완될 필요가 있다.

3) 정책적 실효성 소멸

1974년에 평준화제도를 도입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당시의 치열했던 고입 경쟁으로 인한 과열과외와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에 있었다. 그런데 당시의 기대와는 달리 적어도 현 시점에서 이 제도는 국민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는 데도 큰 기여를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이주호․홍성창(2001)에 따르면, 비평준화 지역에 비해 오히려 평준화 지역에서 과외비 지출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러한 효과는 평준화제도를 폐지할 경우에 초등학교 및 중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고입 경쟁을 유발하여 과외비 지출을 증가시킬 수 있는 잠재적인 효과를 상쇄하 고도 남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평준화제도가 장기간 시행되면서 공교육의 체질이 허약해졌고, 학교는 단지 졸업장이나 받는 곳으로 전락해버린 감이 있다. 학생들은 학교에 등교하여 적당히 시간을 때우면서 방과 후 의 사교육에 대비하여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고 에너지를 비축하는 생활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 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처럼 학교가 고유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됨에 따라 세칭 일류 대학 진학 가능성이 가정의 사교육비 부담능력에 의하여 결정되는 정도가 날로 커지고 있다. 또 한 상대적으로 교육여건이 나은 것으로 알려진 강남지역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중산층이 끊 임없이 전입해 오는 반면에 떠나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 이 지역의 주택시세는 천정부지로 치솟 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준다는 차원에서 평준화제도에 집착하 는 것은 더 이상 설득력을 지니기 어렵다.

4) 고학력 실업의 연결고리

평준화제도가 초래하는 보이지 않는 폐해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청소년들로 하여금 자신의 진 로에 대하여 진지한 고민을 하는 시점을 유예시키거나 아예 그런 경험 자체를 갖기 어렵게 함으 로써 궁극적으로 고학력 실업자 양산에 일조를 한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고등교육 취 학률은 세계 최상위권으로서, 2001년 현재 83.7%에 이르고 있다. 거의 모든 젊은이들이 대학교육 을 받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고 실제로 대학에 진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젊은이 들에게 이러한 대학진학이 자기 인생의 진로를 담보해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전에 비해 훨씬 넓어진 대학문호로 인하여 원하는 사람은 대부분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대학졸업장이 취업 을 보장해주지는 않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리하여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청년 실업률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최상위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청년실업 문제와 관련하여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청년실업자 가운데 고졸 이하 실 업자의 비중은 줄어드는 대신, 전문대를 포함한 대졸 이상 고학력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청년실업자 가운데 대졸자의 비중은 1998년에 25.6%에서 2002년에 36.1%로 꾸준히 높아진 반면에, 같은 기간에 고졸자의 비중은 64.7%에서 55.7%로 감소하였다(이 상우․정권택, 2003).

이처럼 고학력 실업이 갈수록 증가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진 지한 고민을 하지 않은 채 단지 대학진학만을 염두에 두고 청소년기를 보낸 점도 일조를 하고 있 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원천적으로 배제시킨 평준화제도는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통하여 적기에 진로를 결정해야 할 필요 성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인적자원개발의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심각 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