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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절 이론적 검토

1. 현실과 정책의 Aggiornamento 48)

일반적으로 사회는 세 집단, 즉 지금 생산하고 있는 근로연령집단, 미래를 책임질 아동, 그리고 과거를 통해 지금을 일군 노인이라는 세 집단이 행복할 때, 안정성을 유지하게 된다. 기능적으로 보면, 생산 과 분배 그리고 재분배의 시스템이 얼마나 잘 작동하는가의 문제이 다. 결국, 노동을 매개로 하는 소득의 분배와 재분배가 얼마나 공정 하고 효과적인가의 문제이다. 여기에는 각국의 정치구조와 산업구조 그리고 사회구조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고용과 복지의 연 계>(linkage between work and welfare)가 특정 시대 또는 특정 국 가에 고유한 이유이다.

시대가 바뀌면, 고용과 복지의 연계방식 또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18세기 산업혁명이 그러했던 것처럼, 21세기 정보기술혁명은 생산 과 분배 그리고 재분배를 연계하는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하 지만 그 저변에는 변함없이 <가난한 노동자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

48) 이태리어인 Aggiornamento는 교황 Jean XXIII가 사용해서 유명해진 용어로, 그 의미 는 영어로 updated, 불어로는 mis à jour와 같은 의미이다. 여기서는 변화된 환경에 맞는 정책의 현실화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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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일해도 가난을 면치 못하는 사람들, 소위 근로빈곤층(working poor) 문제인 것이다. 탈산업화를 경험하고 있는 선진국에서는 쇠락 한 산업지구의 실업자와 청년층이, 신흥 산업국가에서는 제조업부문 의 저임금노동자들이, 저발전국가에서는 농업과 광업부문의 노동자 전반이 방대한 근로빈곤층을 구성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화라는 끈 의 양 끝을 부여잡은 같은 집단인 셈이다.

세계화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근로빈곤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는 고용과 복지를 연계하는 노력, 즉 Aggiornamento가 필요하다.

비유를 하자면, 산업혁명기 경제․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정치․사회구 조의 조정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그것은 다음 몇 가지 측면에서 18세기 산업혁명기와는 다르 다. 첫째, 시간적․공간적 압축(time-space compression)49)을 전제 로 하는 세계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더 이상 어떤 국가도 세계화의 흐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는 아직 국경 안에 머 물고 있지만, 산업과 고용 그리고 복지 문제는 점차 세계화의 영향권 으로 들어서고 있다. 정책결정에 있어 일국 차원의 자율성이 적어지 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노동비용이나 복지비용은 세계화의 맥락에 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역 사적으로 전례 없는 인구고령화(Ageing) 문제이다. 많은 국가들은 평균 수명이 높아짐에 따라 심각한 인구고령화 문제를 경험하고 있 다. 이는 생산가능인구가 점점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 서 생산과 분배 그리고 재분배의 시스템을 바꾸는 일이 불가피하다.

20세기에 구축된 세대 간 자원배분의 원칙과 그에 따른 제도들이 변

49) 이는 David Harvey의 표현이다. 그의 저서 <The Conditions of Post-Modernity>(1990) 참조.

제6장 한‧중‧일 고용‧복지 연계정책의 비교 183

화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사회보장제도라는 공식화된 재분 배제도를 매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종 고용보호와 최저임금제 도, 사회보험제도와 공공부조제도 등이 종종 가난한 사람들을 기만 하고 문제의 본질을 은폐한다고 비판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현대 사 회에서 생산과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정치적․정책적 수단으 로 자리 잡고 있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충격을 흡수하고, 내부의 인구고령화과 근로빈곤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일국 차원의 정책적 선택의 여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각국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경제성장과 고용창출 그리고 사회보장제도를 조합하는 <고용․복지 연계 패러다임>이다. 각국이 처한 제반 상황에 따라 고성장․저복지 전략을 선택할 수도 있고, 저성장․고복지 전략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의 타당성은 ‘불행하게도’

결과를 통해서만 확인된다.

추세적으로 보면, 한‧중‧일 3국의 <고용․복지 연계>는 유사한 점이 매우 많다. 20세기 중반과 후반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성공했고, 중산층을 형성 하며 정치사회시스템의 안정화에도 일정 부분 성공하였다. 이는 <고성장․

저복지의 패러다임>이었다. 하지만 탈산업화와 저성장 그리고 근로빈곤 층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고용과 복지의 연계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아직 그러한 패러다임은 여전히 모색중인 셈 이다.

2. <고용․복지 연계>의 두 가지 의미

고용과 복지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한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고유 한 <생산과 분배 그리고 재분배의 양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고용․복지 연계>란 모든 사회에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용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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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후 특정한 정책 또는 정책기조를 지칭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즉, <근로연령층(working age population) 또는 근로가능집단 (workables)을 대상으로 취업을 촉진하는 일련의 정책>을 총칭하는 것 이다. 그리고 과거 사회정책에 포함되지 않았던 다양한 정책을 아우르고 있기도 하다. 즉, 고용정책이나 복지정책 외에도 조세정책 등 취업을 촉 진하는데 필요한 다양한 정책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고용․복지 연계정책>은 광의(廣義)와 협의(俠義)로 구분할 필요가 있 다. 광의의 <고용․복지 연계정책>이란 변화된 경제․사회 환경에 맞게 고용 정책과 복지정책을 현실화 한다는 의미이다. 세계화나 산업구조 변화 그 리고 인구고령화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실과 정책의 괴리를 해소한다 는 의미이다. 구체적인 정책을 예로 들면, 1) 최저임금의 현실화, 2) 고용 보호입법 강화, 3) 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ALMP) 강화, 4) 취업자의 사회보험 가입 촉진, 5) 복지수급자 취업촉진 등을 아우르는 것이다. 이 는 <고용․복지 연계정책>이 산업구조나 노동시장구조 등 각 영역에서 발 생하는 문제를 복지정책에 전가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그림 6-1〕 고용․복지 연계정책의 두 가지 유형

고용보호법제(EPL)

광의의 개념 적극적노동시장정책(ALMP)

조세제도/근로장려세제

사회보험제도

공공부조제도 협의의 개념

제6장 한‧중‧일 고용‧복지 연계정책의 비교 185

협의의 <고용․복지 연계>란 공공부조 수급자 또는 실업부조 수급자를 대상으로 취업을 촉진하는 일련의 정책이나 정책기조를 지칭한다. 근로 연계복지정책(workfare policies) 또는 활성화정책(activation poli-cies) 또한 같은 표현이다. 이 정책은 국가에 따라 복지급여의 장기수급 을 억제하는 징벌적 성격을 띠는 경우가 있고, 상대적으로 취업과 탈빈곤 을 촉진하기 위해 취업지원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징벌적 정책의 가장 전형적인 예는 미국의 TANF 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평생 수급기간을 5년으로 제한하는 한편, 취업에 따른 근로인센티브(EITC)를 지급하는 방 식, 즉 <당근과 채찍>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영국은 최근 더욱 명시적으로 복지급여 수급자의 취업을 강조하는 근로연계복지정책 을 발표하였다.50) 그것은 모든 현금급여를 근로소득 증감에 따라 반 응하는 인센티브 체계로 개편하는 근로유인형 체계로 개편하는 조치 이다. 상대적으로 징벌적 성격이 덜한 근로연계복지정책 또한 존재 하고 있다. 그것은 주로 유럽대륙의 복지국가들의 정책이다. 그렇다 고 이들의 정책이 보장성을 강조하는 관대한 정책에 머물러 있는 것 은 아니다. 최근 들어 점차 많은 유럽대륙 국가들이 수급자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Hartz IV 개 혁이나, 프랑스의 RSA 개혁은 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