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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문화예술 관련 통계조사의 역사와 한국사회의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의 변화

I. 서론

2. 한국사회 문화예술 관련 통계조사의 역사와 한국사회의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의 변화

(1) 1980년대 초반까지 : 소수 특권계층의 전유물로써의 문화예술에 대한 이미 지와 체계적인 국가 차원의 통계조사의 부재

한국사회에서 오랜 기간 문화예술을 즐긴다는 것은 상류계층과 교육받은 사람들의 전유 물로서 생각되어져 왔다. 물론 이러한 이미지는 서구사회에서도 별반 다를 바가 없긴 했다.

그러나 서구사회의 경우 “인간 사고와 표현의 정수(Arnold 1960: 31)“이든 상층계급 또는 지위집단의 ”취향문화(Gans 1974; Bourdieu 1984)“이든 그 사회의 특정집단이 체화하고 있 거나 그 사회에서 당연히 권위를 인정받고 있어 상식적으로 고급문화로 분류되는 예술, 생 활양식 등이 존재해 왔던 서구사회와는 달리, 한국 현세대의 문화 예술라고 생각되는 분야 들은 많은 부분 서구의 것이라는 큰 차이점이 존재한다(최샛별, 2002a). 개화기 서양문물과 함께 한국 사회에 소개된 서양의 문화예술들은 한국사회에서 서구의 영향력이 증대함에 따 라 점차적으로 교육받은 상류계층의 전유물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이미지는 한국 이 해방되어 서구의 영향력이 급증하는 1945년부터 한층 더 강화된다. 빈곤에 시달리고 있 는 국민들에게 특히 한국전(1950-1953) 이후 제공되었던 구호물자는 서구세계에 대한 이미 지를 진보, 풍요, 힘의 상징으로 각인 시켰다. 더욱이 기존의 신분계급의 붕괴와 사회적 혼 란 속에서 미국 선교 프로그램과 같은 미국 기관들과의 연계는 가장 빠른 사회적 상승이동 의 수단이었다(오갑환, 1975; 강일철, 1993). 특히 권위주의 정권이었던 제1공화국(1948-1960) 의 대통령 이승만은 신실한 기독교인이자 굉장한 친미주의자로(강일철, 1993), 그의 명령 하 에서 정부는 기독교 단체들에 대하여 여러 특혜적인 정책들을 펼쳤다(오갑환, 1979:

272-276). 이와 같이 미군정, 한국전, 제1공화국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한국사회에서는 영어 와 서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으며 따라서, 이들의 능력은 높 게 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제시대(1910-1945) 동안에도 서구세력의 비호 를 받고 있어 일제의 압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기독교 선교사들이 설립 한 학교(강위조, 1977)에서 공부하였거나 또는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사회적으로나 직 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었으며, 또한 이들은 국가와 교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이들은 서구의 사고방식과 더불어 학교교육의 일환으로 서양문 화예술을 배우고 익숙해 질 수 있었던 집단이었으며 이들이 한국사회의 중요한 지위를 차 지하게 되자 사회적으로 서양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상류계층의 상징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어갔다. 이 당시에 가정의 경제적 수준이 높거나 학력자본이 높은 부모를 두지 않 은 이상 서양문화예술을 접하거나 특히 전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으며, 이 외 에는 교회나 미국 선교단체를 통하여 이런 기회를 갖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을 뿐이었다(최 샛별, 2002b).

문화예술에 관한 위와 같은 이미지나 상황은 압축적 근대화와 급격한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1980년대 초반까지도 계속된다. 1980년대 초반의 연구에 따르면, 662명의 서 울 거주자 중 87퍼센트에 달하는 575명이 평생에 단 한 번도 음악회에 가 본적이 없었다. 사 회계층과의 관계를 분석해보니, 상류계층이 더 자주 음악회에 가고 클래식음악을 좋아하는 반면, 경제적으로나 또는 학력이 하층인 경우에는 한국대중가요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원석, 1982: 9-10; 한안식, 1983: 12-29). 또한 대상자의 90퍼센트 이상이 경제적으로 상류인 계층만이 서양고전음악을 전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한안식, 1983:12-29) 서양 문화예술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은 캠퍼스의 귀족계층으로 알려져 입시 부정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신문에 기사거리가 되어 왔다(동아일보, 1991.1.25).

(2) 1980년대 - 1990년대 : 문화예술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관심의 생성과 증가 국가 차원 통계조사의 시작과 집적

1980년대에 들어 문화예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관심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으며, 소비지출에서 교양오락비가 3%를 넘어선 것도 바로 이 시기 즈음이다. 1980년대 중반에 들 어 문화예술관련 통계자료의 축척의 기초가 되는 지표체계가 고안되었다. 일단 1984년 한국 정신문화연구원에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문화지표체계를 연구 발표하였다. 자아의식, 가 족의식, 사회의식, 국가의식으로 구성된 지표 체계는 모든 항목을 주관적인 지표를 사용하여 일반적인 지표로 사용하는데 문제가 있으며 단순히 문화지표란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장영식, 2004). 그러나 문화라는 것을 단순히 국민이 공유하는 일관된 어떤 의식으로 상정했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 구획을 긋는다면 문화에 대 한 새로운 사회과학적인 경향이 반영되지 않은 마지막 문화지표체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예술관련 지표들은 사회지표 내에 문화 여가 부문으로 1985년에 처음으로 포함되었 다. 인터넷상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백과사전상의 정의에 따르자면, 사회지표란 “한 사 회의 사회적 상태를 총체적이고도 집약적으로 나타내어 생활의 양적인 측면은 물론 질적인 측면까지도 측정함으로써 인간생활의 전반적인 복지 정도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척도라 고 할 수 있다. 사회지표는 한 사회의 주요 생활영역의 조건에 관하여 종합적이고 균형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해주는 직접적이고 규범지향적인 관심의 성격을 가진 통계이다. 구체 적인 기능을 살펴보면, ① 국민생활의 양적·질적 수준 측정, ② 사회경향 및 변화 예측, ③ 사회개발정책의 성과 및 역기능 측정 등(두산백과사전)”이다. 한국의 사회지표는 1978년 처 음으로 체계화되었으며, 이 당시에는 문화가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사실은 사회지표 가 체계화된 1970년대 말까지 문화라는 영역이 인간의 복지라든지 삶의 주요 질적 수준을 나타내는 중요 요소로 상정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해석하자면, 1985년 문화 여가 부문으로 사회지표의 13개 부문의 하나로 진입하였다는 사실은 한국사회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가장 명료하게 제시하는 예라 할 수 있다.

사회지표가 통계청에서 주관하는 반면, 그 외의 문화관련 부처에서 생산하는 문화지표 체계의 기초는 1986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진행한 문화통계 및 지표

체계연구에 의해 수립되었다. 같은 해 UNESCO에서 개발한 Framework for Cultural Statistics를 보완 변형한 이 지표는 객관적 지표만으로 구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적인 문화지표체계로서 이를 기반으로 해서 현재까지 문화향수실태조사, 문화예술통계 등의 통계 책자가 발행되고 있다. 문화유산, 문학과 예술, 대중매체, 사회문화적 활동, 여가활동, 국제 문화교류 등 6개 분야와 문화유산, 문학, 조형예술, 디자인,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 대 중매체, 사회문화적 활동, 여가활동, 국제문화교류의 13개의 세부분야로 구분된다(장영식, 2004). 또한 현재까지 그 명칭을 바꾸면서 문화예술관련 통계조사를 비롯한 많은 정책연구 들을 하고 있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1985년 교통개발연구원 내 관광연구실로 처음 설립 되었다. 그 이후 1987년에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내 문화발전연구소, 그 이후 1994년, 한국문 화정책개발원, 현재 한국문화관광연구원으로 개명하였다(http://www.kcti.re.kr).

이러한 지표체계를 바탕으로 하여 1980년대에는 총서나 정책 자료집 형식으로 문화예술 일반에 대한 정리 작업들이 이루어지게 된다. 문화예술 수용 및 향수능력 실태조사(이후 문 화향수실태조사)가 1988년에 실시되었으며, 1989년에 문화예술자료집(이후 문화예술통계)과 문화예술단체현황 조사보고서(이후 문화예술단체실태조사), 문화예술인실태조사보고서(이후 문화예술인 실태조사)가 시작되어 그 이후 주로 3년을 주기로 반복 조사 되어지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문화예술정보화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으며, 문화예술기초정 보 구축 체계설립, 저작권체계 설립 등 주로 자료보관 시스템 상 정비를 하는 연구들이 상 당수이다. 그리고 1997년부터 문화관광부에서 문화산업백서를 발간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2000년대 들어서 급격하게 그 위상이 변화되는 문화산업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관심의 전 조를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1)

(3) 2000년대 : 문화산업의 급성장과 문화예술의 향유확대, 진정 문화의 세기인가?

본 논문의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문화의 세기라고 일컬어지는 21세기에 들어서 한국사회 에서는 문화예술세계가 차지하는 위상과 그 지형 등에 있어 큰 변화가 일어났다. 1980년대 말부터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온 문화예술 그리고 여가에 대한 관심은 98년 외환위기로 주춤 하였다가 2000년대에 들어 다시 재개되었다. 또한 2000년부터 시작되어 2004년 7월부터 시 행된 주 5일 근무제는 전반적인 여가시간을 증가시켰다. 이는 통계청에서 1999년과 2004년 에 수행된 생활시간조사 결과를 비교해 보면 잘 드러난다. 여가활동 시간이 1999년 2시간 49분에서 2004년 4시간 58분으로 증가했는데 특히 주말 그 중에서도 토요일 여가시간이 5 시간 13분에서 5시간 33분으로 가장 많이 늘어났다. 또한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기술 의 급속한 발달은 산업구조에 있어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며, 온라인 게임 같은 새로운 문화와 여가유형을 창출하였다. 또한 국가 신성장 동력 산업으로서의 문화산업과 창의 산업 에 대한 관심과 영향력이 증대되었다.

이러한 변화 추세에 병행하여, 문화예술관련 자료조사와 관련연구들은 2000년에 들어서 면서 양적으로 급증하였으며 그 조사 및 연구 영역 역시 확장되었다. 경제 신성장 동력으로

1) 이 시기의 조사연구 등에 대한 보다 자세한 목록은 부록을 참조하시오.

서 산업적인 측면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시각의 확대는, 문화예술 분야의 마켓팅 전략, 문화 예술 경영, 문화예술 정책 등에 대한 관심 증대를 가져왔다. 또한 급격한 문화예술의 향유 의 증대와 병행하여, 문화예술기관의 재원 조성, 경영, 홍보 등과, 문화예술강사교육, 학교 현장에 대한 적용 등의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고 있다.2) 사회지표의 문화 여가 부문은 1985년 처음 포함되어 1987년, 1995년, 2004년 세 차례의 사회지표체계 개편을 거쳐 현재의 체계에 이르렀다. 특히 문화예술활동, 여가활동, 문화의식의 세 가지였던 관심 영역이 2004년 개편에 의해 문화유산, 문화예술, 대중문화, 사회문화활동, 여가활동의 5개의 영역으로 세분화되고 관련 지표가 많아졌다. 이러한 사회지표 상에서의 문화여가 관련지표 는 문화산업 영역의 계속적인 확장과 이로 인한 다른 부분과의 중첩부문의 증가 등을 고려 해봤을 때 계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측된다. 지금부터는 문화산업과 문화예술관련 시설 행사수 그리고 관람률의 변화추이를 통해 2000년에 들어와 문화예술부분이 얼마만큼 성장 확대하고 있는지를 제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