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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의 학문적 발전

II. 한국여성학의 발전과 성과

1. 여성학의 학문적 발전

(1) 여성교육 및 여성연구로서의 학문제도적 발전

여성학의 발전은 연구 생산물과 연구 인력의 양적 성장, 제도적 안정화 등 외형적 발전

이외에도 학문적 성과라는 질적 측면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제도화는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 효과가 있을 수 있으나 여성학의 제도화는 여성주의 입장에서의 세계 인식이 하나의 학문, 즉 하나의 지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의미하므로, 여성학 학문 발전의 한 지표로 평가 할 수 있다.2) 이 절에서는 외형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양적 성장과 제도화를 연결지어 설명한다.

여성학의 발전을 연구와 교육의 양측면에서 보자면, 여성학의 여성교육의 필요를 역설하 던 매우 오래 전의 시기까지 거슬러올라가야 할 것이다. 이미 1896년 독립신문에 “여편네가 사나이보다 조금도 낮은 인생이 아닌데, 사나이들이 문명개화가 못 되어 인정은 생각지 않 고 다만 자기의 팔 힘만 믿고 압제하려는 것이니, 어찌 야만에서 다름이 있으리오”라는 논 설로 여성교육의 필요를 역설한 데(한국여성연구원, 2008: 5에서 재인용)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여성교육의 필요는 여성의 낮은 지위와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성평등의 개념을 가지고 여성교육이 시작된 것은 1970년대라고 할 수 있다. 1977년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여성학이 사회과학 영역의 선택과목으로 학부에 처음 개설되었다. 이러한 강좌 개설은 국제적인 차원의 여성 지위 개선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한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1975년은 세계 여성의 해였고, 한국 정부도 1975년을 한국 여성의 해로 선포하였다. 이렇듯 여성의 지위와 평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다른 한편 1970 년대는 여자교육 무용론이 제기되면서 대학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사회 참여가 저조한 것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이러한 시대 변화와 비판에 대응하여, 여성 교육의 내실을 기하기 위한 방편으로 여성학 과목 개설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성학(women's studies)은 일차적으로 여성의 열악한 상황에 관한 관심에서 비 롯된 여성에 관한 연구를 의미하므로, 엄격하게 여성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연구만을 여 성학의 발전의 역사에 포함시킬 수는 없다. 1970년대는 농촌여성의 문제들이 연구되고, 여 성을 위한 개발 프로그램들이 시행되는 등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이 여성의 상 황 개선을 위해 노력한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성평등, 또는 여성의 인간화, 여성해방의 관심에서 여성학이 한국의 대학에 도입된 것은 1977년 이화여자대학교의 선택 교양강좌 개설을 통해서였다. 이화여자 대학교에서는 1982년에 여성학 석사과정을 설치하고, 1990년 박사과정을 설치함으로써 본격 적으로 여성학 전문 연구 인력을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80년대에는 학부의 교양 과 목으로 여성학 과목 설치가 확대되었고 강좌도 단지 여성학개론이 아니라, 성문화, 성과 사 랑 등 젠더 관점에서 남녀 관계를 분석하는 여러 종류의 강좌들이 생겨났다. 1990년대에는 여러 대학교에서 대학원의 석사 및 박사과정 프로그렘을 제공하는 학과나 협동과정이 개설 되었다. 나아가 학부의 연계전공 과정이 설립됨으로써 20여 년 동안 빠른 양적 성장을 이루 었다.

현재 10개의 대학에서 대학원 석사 과정 및 박사과정을 설치한 학과제도, 협동과정 프로그 램이 제공되고 있을 뿐 아니라, 5개의 대학에서 학부의 연계전공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여자대학교들은 여성학을 통해 여자대학로서의 존립 근거와 정체성을 분명

2) 여성학의 제도화에 따른 의도치 않은 부정적 효과에 관해서는 III장에서 논한다.

하고자 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예를 들어 이화여자대학교는 1990년대 이후에 더욱 더 여성 학의 제도적 발전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대뿐 아니라 다른 여자대학교들에서도 여성학과를 설치하고 육성함으로써 여자대학의 특유의 교육목표를 추구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또한 1984년에 한국여성학회가 설립되어 괄목할 만한 학회원 수의 증가와 더불어, 1985년 부터 정기학술지 ‘한국여성학’을 1995년까지는 년 1회, 1996년부터 2002년까지는 년 2회, 2003년부터 2006년까지는 년 3회, 2007년부터는 년 4회에 걸쳐 발간하고 있다. 그 밖에 봄, 가을 정기 학술대회 및 월례 학술발표회 등을 통해 학문적 성과를 공유하고 있다.

1977년에 설립된 이화여자대학교의 한국여성연구원을 위시하여, 숙명여자대학교의 아세아 여성연구소 등 여러 대학에 20여 개의 여성연구소들이 설립되어 성평등을 위한 중장기 연 구들을 진행하고 있다. 대학 외부에 여성학 관련 학회들도 개설되었는데, 여성경제학회, 젠 더법학회 등 다양한 학문분과에서 독립적인 여성학회를 조직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연구소 들과 분과학문의 여성학회들은 학술지 발간, 학술대회, 세미나 등을 통해 여성학 연구를 발 전시키고 있다.

한국여성학회뿐 아니라 대학의 여성연구소들에서는 대부분 학술지를 발간하고 있다. 숙명 여자대학교는 1960년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한 목적으로 아세아여성연 구소(2000년에 아시아여성연구소로 개칭)를 창립하고, 1962년에 창간한 <아세아여성연 구>(2000년에 <아시아여성연구>로 개칭)를 2002년까지는 연 1회, 2003년 제43집부터 1년 2 회 발간하고, 1995년에 창간한 영문학술지 <Asian Women>을 1996년부터 연 2회 발간하고 있다. 두 학술지 모두 한국학술진흥재단의 등재학술지이다. 그 외에 한국여성문화사 등 20 여 종의 단행본을 발간했다. 이화여자대학교는 1995년에 한국여성연구원 산하에 아시아여성 학센터를 설립하고 1995년부터 영문 학술지 Asian Journal of Women's Studies를 발간하고 있다. 1996년까지는 한 해에 1회, 1997년 이후에는 연 4회 발간하고 있다. 이 학술지는 ISI 와 SSCI의 등재학술지이며, 한국학술진흥재단의 등재학술지이기도 하다. 이로써 한국의 여 성학은 국제적인 수준의 학술지를 갖게 되었다.

이밖에도 국가의 정책연구기관으로서 1983년 한국여성개발원(현재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설립되었고, 경기도가족여성개발원, 인천여성정책센터, 충남여성개발원, 경북여성개발원, 부 산여성연구원 등 지방여성정책연구기관들이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 밖에 제주발전연구 원에는 여성정책연구원을 채용하고 있고, 강원도에는 도 내 여성정책연구관이 여성정책연구 를 담당하는 등 여성정책연구의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대학의 여성학과 설치는 학문적 발전뿐 아니라 여성학 전문 인력 양성에 기여하였다. 여 성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은 대학, 정책연구원, 여성단체 및 사회단체, 정부기관 등 다양한 분 야에서 할발히 활동하고 있다. 여성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여성학 교양과목을 통해서, 또는 여성학의 서적 출간 및 대중적 잡지 및 인터넷 관련 내용 등을 통해 성평등 의식은 확산되었고, 이러한 의식에 접한 학생들이 대학 안에서 또는 대학 밖에서 다양한 여성주의 활동을 벌이면서 대학의 제도와 학문 풍토 등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활동에는 여성주 의 미디어 활동도 포함되는데, 대학에서 페미니즘을 접한 많은 여성들이 <여성신문>, <페미 니스트 저널 if>, <웹진 언니네>, <일다>, <우먼타임즈> 등 여성주의 매체를 창간하고 그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

(2) 학제간 연구 선도로 열어보인 새로운 인식의 지평

여성의 비가시화와 배제가 심각하던 시기에는 여성을 기입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여성주 의 연구자들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들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이것은 기존의 연구 주제 나 질문을 변경하지 않은 채로 여성을 기존의 학문체계에 더하는 방식이다(add-women). 이 후에 여성학은 관점을 중시함으로써 여성의 경험, 또는 여성주의 관점에서의 세계인식을 내 용으로 방향으로 전환한다. 여성학은 궁극적으로 여성주의 관점에서의 세계인식을 통해 새 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전통적인 학문 체계 안에서 여성을 설명하 고, 그러한 접근의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개념과 분석틀을 만들어내는 모험적이고 선도적인 연구를 실천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이러한 과정은 여성학 연구자들로 하여금 선행연구가 부족한 상황에서 거의 모든 연구주제에서 최 초의 연구들을 만들어내는 지난한 과정을 경험하게 하였다. 여성학은 설명되지 않고, 배제 되고, 왜곡되어 온 여성의 경험을 드러내기 위해 여성에 관한 연구에 집중하였으나, 최근에 는 여성주의 입장에서 세계를 보는 연구들이 증가하고 있다.

여성학은 여성의 본질이 있다는 가정을 비판하면서 여성의 본질 또는 특성으로 알려진 것들이 만들어지는 사회구조와 역사, 문화적 과정을 이해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여성학은 분과학문 체계가 여성의 삶에 대한 다차원적 이해를 제공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학제 간 학문으로 출발하였다. 기존의 개별 학문에서 여성의 상황과 문제를 분석하고 연구하기 위한 연구방법과 개념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기존 분과학문 간의 구분을 따라서는 여성의 상황과 문제가 설명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 니라 사회문화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명제를 설명하는 데에도 여성 정체성에 관한 철학, 정신분석학, 언어학, 문학, 사회학 등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여성이 폭력의 피해자가 되기 쉬운 것도, 젠더 구조를 인식하지 못하는 시각에서는 피해 여성이 ‘맞을 짓을 했을 것’이라 는 개인적인 차원의 설명에 그치지만, 여성학은 유독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현상 남녀관계, 폭력과 성문화에 관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고 본다. 이에 여성에 대한 폭력을 설명하는 데에 는 심리학, 문화 연구, 사회학, 사회복지학, 법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참여한다.

이처럼 여성학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은 여성학 자체가 학제간 연구로서 여성학 내부 에 매우 많은 학문적 논의들이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여성학의 학제간 연구의 성격은 연 구방법에서도 다양한 접근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여성학은 주류학문에서 여성이 설명 되지 않거나 왜곡되어 온 것은 남성의 경험을 중심으로 한 해석 때문이거나 성차별적 시각 때문이라고 본다. 이러한 배제와 왜곡은 기존 학문의 개념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못한다.

이에 여성학은 개별 분과 체계의 개념과 연구방법을 뛰어 넘는 간학문적 접근을 추구하는 것이다. 인류학의 문화기술지 방법, 실증주의의 한계를 넘어선 역사학의 구술사 연구 방법, 내용 분석 방법, 질적 연구 방법 등이 통계 연구 방법과 함께 채택될 수 있다. 여성의 경험 세계가 이른 바 사적인 영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여성, 사적인 영역이 기록에서 주로 배제되어 왔기 때문에 여성의 경험세계에 관한 자료 구축을 위해 여성학은 구술사나 심층면접방법을 중시한다. 여성의 상황이 여성억압적인 사회구조만이 아니라 그것에 대응하 는 여성의 행위를 통해서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성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객관 적 환경뿐 아니라 여성의 주관적 해석과 의미부여의 차원도 분석에 포함된다. 한국의 가부